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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뛰어난 활솜씨는 우연이 아니다!?
고대 설화를 통해 본 한국 양궁의 비결
이선열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다름 아니라 국제 스포츠 경기에 참가한 각국의 양궁 대표선수단 감독들이 함께 모여 찍은 단체사진이었는데요. 말레이시아, 이란, 미국, 일본, 대만, 스페인,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의 대표팀 감독이 모두 한국인이어서 화제가 되었죠. 그만큼 우리나라의 양궁실력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일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국제경기가 열릴 적마다 한국이 일단 믿고 가는 두 종목이 태권도와 양궁이잖아요? 특히, 양궁은 이번 대회에서 전 종목을 싹쓸이하는 쾌거를 이뤄냈지요.



활쏘기에 특화된 유전자(?)를 지닌 한민족, 태양도 쏘아 맞추다





도대체 한국사람은 뭘 먹고 컸기에 이렇게 활쏘기에 능한 걸까요? 뭔가 활쏘기에 특화된 우월한 유전자라도 있는 걸까요? 사료와 설화를 뒤적여보면 그럴 듯한 이야기가 나오긴 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의 수렵도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오래 전부터 활쏘기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중국의 여러 옛 문헌을 들춰봐도 한반도 사람들이 활쏘기를 즐기며 무예를 겨뤘다는 기록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흔히 한민족을 동이(東夷)의 후예라고 부르곤 하는데,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夷)라는 글자의 모양 자체가 클 대(大)와 활 궁(弓)을 포개어 쓴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현대의 한국인이 곧바로 과거의 동이족과 일치하진 않지만 연관성이 없진 않아요.

 

또 중국의 고대신화에는 명궁으로 알려진 예(羿)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신화에 따르면 옛날에는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있어 열흘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세상을 비추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장난기가 동한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하늘에 오르는 난동이 벌어졌어요. 너무 뜨거워 초목이 타들어가고 강물이 말라버릴 지경이니 당연히 땅에서는 난리가 났죠. 상제까지 직접 나서서 타일렀지만 태양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답니다. 결국 상제는 백발백중의 명사수 예를 불러 사태의 해결을 명령했지요. 명을 받은 예가 아홉 개를 떨어뜨려 지금의 태양만 남았다고 합니다. 화살에 맞은 아홉 태양은 세발 달린 까마귀로 변했다고 하는데, 혹시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세발 까마귀 즉 삼족오를 본 적 있으신가요? 현대 신화학자들에 따르면 예는 동이족 계열의 신이나 우두머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늘날 한국선수들의 뛰어난 활솜씨가 단순한 우연은 아닌 듯하지요?



활쏘기가 마음공부인 까닭





물론 예로부터 활쏘기에 관한 이야기가 한반도와 동양사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로빈후드나 윌리엄텔 이야기에도 등장하듯이 활은 서양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사냥도구죠. 처음에는 사냥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테고, 문명이 발전하면서부터는 전투시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쓰였어요. 마침내 총포가 발명되어 그 효용성을 잃기 전까지 활은 오랜 세월동안 최고의 살상무기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동양에는 예로부터 활쏘기를 단순한 살상의 수단이 아닌 마음공부의 한 방편으로 삼는 오랜 전통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활을 쏘는 진짜 목적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닦고 수양하는 데 있다는 거죠. 도대체 활쏘기가 어떻게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공부와 관련된다는 걸까요?

 

유원지에서 활쏘기나 공기총 사격이라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텐데요. 활이든 총이든 과녁에 적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각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온갖 잡념과 사심이 가득해 정신이 흐트러진다면 과녁을 맞출 수 없잖아요? 물론 활을 잘 쏘기 위해서는 튼튼한 팔근육과 기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바로잡고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일 겁니다. 옛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중요하게 봤던 것이죠.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해도 내가 쏜 화살이 과녁에 적중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일단 시위를 떠난 화살은 말 그대로 내 손을 떠난 것이니까요. 정신을 집중해 정확하게 표적을 겨눴더라도 힘이 모자라거나 지나치면 과녁을 빗나갈 수 있겠죠. 혹은 바람이 불어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날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하릴없이 표적을 탓하겠어요? 에잇, 하필이면 왜 표적이 저 자리에 있어가지고! 아니면 바람을 탓하겠습니까? 나는 잘 쐈는데 그 놈의 바람 때문에!

 

분하다고 씩씩거려봐야 소용없고 결국엔 나를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힘 조절을 잘 못했던 것이고 바람의 세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탓이지요. 그런 점에서 활쏘기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활쏘기는 군자의 태도와 비슷한 점이 있으니,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는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





활쏘기를 겨루는 시합은 오늘날 인기있는 축구나 이종격투기 같은 스포츠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축구나 이종격투기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반드시 굴복시켜야만 승자가 되는 승자독식의 게임이에요. 그런 게임은 승부욕을 강하게 자극하고 쉽게 사람을 흥분시킵니다. 좋든지 싫든지 내가 지지 않으려면 상대를 꺾어야 하니 알게 모르게 상대에 대한 원망이 싹틀 수도 있구요. 그에 비해 활쏘기는 굉장히 내향적인 경기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솜씨를 겨루는 시합인만큼 이기려는 마음이 없을 수 없겠지만, 비록 지더라도 상대에 대한 분한 마음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활쏘기의 미덕입니다.

 

사실 일이 안 풀리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따지기 전에 남의 탓부터 하고보는 사람, 우리 주변에 꼭 있잖아요? 물론 일이 잘 안 풀리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방해나 실수, 혹은 열악한 환경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전혀 따지지 않고 무작정 내 탓이오 외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아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나 주위환경에 화살을 돌리기에 앞서 나의 책임과 정성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먼저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성찰의 태도가 전제될 때 타인과 주변환경에 대한 비판이 정당할 수 있겠지요. 또 그런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발전도 있을 수 있구요. 사실 말은 쉬어도 막상 실행에 옮기긴 쉽지 않습니다. 하긴 쉽지 않으니까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어요?

 

활쏘기를 군사훈련이 아닌 자기수양의 방법으로 보았던 옛사람들의 가르침은 ‘목표를 향해 진실한 마음으로 매진하고, 그 결과의 성패에 임해서도 먼저 자기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니 매 경기에 임할 때마다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를 잃지 않던 우리 대표선수들의 의연한 모습이 새삼 달리 보이네요.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게 그저 우월한 유전자 덕분만은 아닐 것 같아요. 국제경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만큼 우리가 좀더 활쏘기의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성찰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않을까요? 경쟁자를 원망하기보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이켜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극심한 경쟁이 일상화된 오늘날 필요한 것은 그같이 여유로운 반성적 삶의 태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