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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한상남이 추천하는 ‘책장 속 고전'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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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한상남이 추천하는 ‘책장 속 고전’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 《키다리 아저씨》


미국의 여류 작가,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는 편지글로 구성된 몇 안 되는 고전 중의 하나입니다. 주인공 제루샤 애벗의 고아원 생활을 그린 맨 앞의 짧은 첫 장을 제외한 모든 내용이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장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힘든 고아원 생활을 했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밝고 성실한 성격을 지녔는지, 또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 힘든 생활 속에서 웃음을 찾아내는지를 보여주는데요. 그런 그녀에게 마침내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오게 됩니다.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소녀의 편지





제루샤 애벗은 신분을 밝히지 않은 후원자로부터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후원의 단 한 가지 조건은 한 달에 한 번씩 그녀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서 편지를 보내라는 것. 그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원장실에 가는 길에 복도에서 잠깐 본 그의 뒷모습이 전부입니다. 마침 다가오는 자동차 불빛 때문에 팔다리가 우스꽝스러울 만큼 긴 그의 그림자가 바닥과 복도 벽에 깔리는데, 그 때문에 ‘키다리 아저씨’라는 친근한 별명이 생깁니다. 


첫 번째 편지는 대학의 기숙사에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제루샤는 자기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생활하지만, 고아원 밖에서 맞게 되는 수많은 새로운 경험들 앞에서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즐거워합니다. 그 모든 경험과 느낌을 생생하게 편지에 담아 보내는 이 수다쟁이 아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께선 한 달에 한 번만 편지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사흘이 멀다 하고 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혼자만 간직하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렇답니다.…


…그런데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이런 일은 처음이야’라고 말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어요. 재빨리 겨우 수습을 했어요. 마음속에 숨기는 게 있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에요. 게다가 저는 성격상 비밀을 갖는 게 힘들어요. 이렇게 편지를 드릴 아저씨마저 안 계셨다면 제 가슴은 이미 폭발해 버렸을 거예요…





역경을 극복하는 씩씩한 여주인공의 매력

그녀는 할머니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느닷없이 키다리 아저씨에게 잠시 동안만 자기 할머니가 되어 달라는 깜찍한 요청을 하는가 하면, 너무 행복해서 앞으로 아름다운 성격을 길러갈 거라는 소녀다운 다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사에 밝고 긍정적인 그녀지만, 때때로 고아원에 있을 때의 기억, 그 상처를 떠올려서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합니다.  


…구호품 상자에서 꺼낸 옷을 입고 학교에 갈 때의 제 기분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아저씨는 상상하지 못할 거예요. 제 짝이 그 구호품 상자에 옷을 넣은 아이였나 봐요. 그 아이는 다른 애들이랑 소곤대며 키득거렸어요. 라이벌이 버린 옷을 입어야 하는 비참함은 영혼을 갉아먹을 정도이지요. 평생 실크 스타킹을 신는다 해도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제가 어린 시절에 겪은 부끄러운 사건을 알고 계시나요? 쿠키를 훔쳤다고 벌을 받고서 고아원을 도망친 사건인데요…. 식품 저장고에서 굶주린 아홉 살짜리 여자애에게 혼자서 나이프를 닦게 한 거예요. 옆에 쿠키 그릇이 있었고요. 원장이 불쑥 들어왔을 때, 그 여자애의 입가에 과자가루가 조금 묻어 있을 만도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원장은 아이의 팔을 낚아채고 뺨을 때렸어요. 게다가 저녁 식사 때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푸딩을 못 먹게 하며 도둑질을 한 벌이라고 말했으니 아이가 달아날 만하지 않나요?…  


그녀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기 이름을 ‘주디’로 바꾸기도 하고, 새로 장만한 예쁜 옷이며 장갑이며 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늘어놓으면서 그 또래의 아가씨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성장





하지만 대학 4년, 그 신선하고도 진지한 탐구의 시간은 그녀를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어느덧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갖게 해줍니다. 그것은 어쩌면 ‘키다리 아저씨’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년이 넘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더 절실한 삶의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치고 마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이미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 작품이 독자를 즐겁게 하는 또 한 가지는 유쾌한 해피엔딩입니다. 한 소녀의 꿈을 이루어 주고, 그 성장을 곁에서 지켜봐 준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상상과는 달리 젊은 청년인데요. 그는 4년의 대학생활 동안 우연을 가장해서 몇 차례 주디와 만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주디의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평생 처음 써보는 연애편지예요. 제가 연애편지 쓰는 법을 알고 있다니, 재미있지 않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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