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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르 드가(Edgar De Gas) 편

전원경



예술전문작가 전원경 교수가 추천하는 ‘거장의 갤러리’ 드가 편


드가의 그림이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흔히 ‘무희의 화가’라고 불립니다. ‘드가’라는 이름은 몰라도 나풀거리며 춤추는 무용수들을 그린 드가의 그림을 보신 분들은 꽤 많을 겁니다. 실제로 드가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이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무희의 화가’라는 그의 별명은 어디로 보나 타당한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드가는 왜 그토록 발레리나의 모습에 깊이 매혹되었던 걸까요?




드가와 발레, 그리고 발레리나


중력을 무시하는 듯, 요정처럼 가벼이 떠다니는 발레리나들의 우아한 모습이 드가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드가가 춤추는 발레리나라는 주제에 빠져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를 매혹시킨 점이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움’은 아니었습니다.



|발레 레슨. 에드가르 드가, 캔버스에 유채, 1875-76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이미지 출처 The Bridgeman Art Library / 이매진스)

 


드가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민 와 장사로 큰돈을 번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운 것 없이 자라났고, 어른이 되어서도 생계를 위해서 일할 필요가 없었던 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남들보다 여유로운 시간도 많았겠지요. 드가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새로운 발레나 오페라가 공연될 때마다 객석에 나타나는 단골 고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드가의 눈에 무대에서 춤추는 발레리나들이 띈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한 가지 발견됩니다. 그의 캔버스에 등장하는 발레리나들은 대개는 뒷모습이거나, 막 도약을 하기 전의 엉거주춤한 포즈를 잡고 있거나, 몸을 굽힌 채 다리를 주무르고 있거나, 주인공이 아닌 군무 무용수로 무대 가장자리에서 서툴게 춤추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발레리나’ 그림인 드가의 작품 속 무용수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무용수들은 오히려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 자세히 뜯어보면 얼굴조차도 미인이 아닙니다.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들은 들창코에 못생긴 얼굴의 여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쁘지 않은 발레리나가 이야기하는 것


대체 드가는 무엇을 그리려 했던 것일까요?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은 고단한 무용수의 삶? 아니면 화려한 무대의 뒷모습?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드가의 그림이 과연 아름다운 것인지도 확신할 수가 없어집니다.



|휴식중인 두 여자 무용수 또는 파란 무용복을 입은 두 여자 무용수. 에드가르 드가, 베이지색 종이에 파스텔, 1898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이미지 출처 The Bridgeman Art Library / 이매진스)


 


이것이 바로 드가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점입니다. 드가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진실’을 뼈저릴 정도로 남김없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응시하게끔 만듭니다. 실제로 드가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에 발레리나들의 삶은 그리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파리 오페라 극장에 소속된 무용수들은 노동자 계급의 딸들이었고 공장 노동자이거나 가게 점원인 여성들과 큰 차이 없는 급료를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발레리나’라는 이름이 주는 우아한 인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가난한 노동자에 불과했습니다. 드가의 그림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재현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발레리나들의 얼굴을 예쁘지 않게 그린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자라난 처녀들 중에 귀티 나는 외모를 갖춘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이런 점까지도 드가는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진실의 화폭에 담은 화가 드가


드가가 남긴 자화상들을 보면 세상에 대해 어떤 열망이나 기대도 갖지 않은, 싸늘하리만큼 차가운 눈빛이 두드러집니다. 일찍이 드가의 동생 르네는 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은 재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천재 화가가 분명해. 그렇지만 과연 형이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라고 말이지요. 드가는 실제 생활에서, 그리고 그림 속에서도 몹시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 부부. 에드가르 드가, 캔버스에 유채, 1869년, 키타큐슈 시립 미술관, 일본

(이미지 출처 The Bridgeman Art Library / 이매진스)


 

무뚝뚝하고 공격적인 성격에다 그림에서 드러나는 날카로움 때문에 동료 화가들도 드가를 피하거나 두려워했습니다. 화가들 중에서 그의 친구라고 불릴 만한 유일한 인물이 에두아르 마네였습니다. 그러나 1869년에 일어난 마네와의 일화는 드가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어느 날, 마네의 집에 놀러온 드가는 피아노를 치는 마네의 아내 수잔과 그 연주를 듣는 마네의 모습을 그려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받은 마네는 수잔의 얼굴 부분을 캔버스에서 잘라내 버렸습니다. 왜 마네는 친구가 기껏 그려준 그림을 칼로 도려내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까요? 혹시 자신의 아내가 갖고 있는 성격적인 결함이 그림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그 점이 마네를 몸서리치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결국 드가가 자신의 그림에서 보여주려 했던 것은 ‘표면적인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진실’이었습니다. 드가는 진실을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참다운 모습은 아름답고 우아하기보다는 이기적이고 추할 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드가의 그림은 그래서 보는 이를 몹시 불편하게 하고, 그리고 동시에 그 감춰진 진실로 인해 보는 이를 감동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