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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소주의 자격
정동현


#정동현



“소주나 한잔 할까?”


같이 살던 형이 물었다. 멜버른이란 이국땅의 적적한 밤, 그날따라 실존과 인생에 대해 고뇌하던 찰나에 벼락과 같은 화두가 날아들었다. 와인보다 소주가 비싼 나라, 소주 한 병에 만원이 넘어가는 이 나라에서 소주라니? 내 실존과 인생의 고뇌는 그 순간 사라졌다.


“캬, 좋죠. 형. 안주는 뭘로 할까요?”


삽 십 여년 짧은 인생 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레파토리가 다시 등장했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이윽고 병 단위로 숫자를 세게 되는 그런 밤 말이다.



국민술 소주의 맨얼굴





이국땅에서 내 영혼을 사로잡은 소주. 과연 그럴 자격 있는 술일까? 한국에서 싼 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나 싼 술은 있다. 우리 같은 술꾼들에게 싼 알코올은 사회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데 그걸 증명하듯 소주 가격대의 술은 전세계에 흔하다. 호주나 프랑스는 그 술이 와인이고 러시아는 보드카며 저쪽 카리브 해 일대는 럼이다. 꼼꼼히 보면 호주나 프랑스 와인 중에는 우리나라 소주보다 싼 것도 많다. 평균소득도 우리보다 높은 나란데 말이다. “싸게 취하면 그만이지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진다.


값도 값이지만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영양학적이나 미학적 관점에서 평가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 얼굴이 못 생겼는데 성격까지 안 좋은 꼴이다. 소주 없이는 못 사는 인구가 얼만데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하겠지만 나도 소주 마신다. 아무리 그래도 내 생각에 소주는 저열한 술이다.


일단 소주는 화학주다. 본래 소주는 누룩을 발효해 얻은 청주를 증류해서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는 알코올 도수를 조절해가며 대량으로 술을 만들기가 어렵다. 해결 방법은 아예 100퍼센트에 가까운 순수한 알코올을 짜낸 다음 여기에 물을 타고 조미료를 넣는 것이다. 이 방법은 대량 생산에 유리하지만 대신 알코올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향이나 맛이 다 날아가므로 조미료가 필요하다. 제일 많이 쓰이는 조미료는 MSG와 아스파탐이다. 현대 식품 산업이 만들어낸 이 두 물질을 가지고 참 말이 많다.



화학주 소주의 비밀, MSG와 아스파탐




 

마법의 가루, 우리 주방의 동반자 MSG를 먼저 따져보다. MSG는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처음 한반도에 소개 된 후 이제 그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한편에서는 MSG가 건강에 나쁘다 좋다,하는 논쟁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식품의 안전을 주관하는 식약청에서도 안전하다고 했으니 그 부분은 넘어가자. 그렇다고 해서 MSG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MSG가 문제가 되는 것은 입맛이 그 감칠맛에 길들여짐에 있다. 감칠맛은 단맛 짠맛 신맛 등과 함께 ‘맛있다’고 느끼게 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도 과다하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MSG에 열광함으로써 모든 음식의 맛이 엇비슷해졌다. 이건 집이든 식당이든 차이가 없다. MSG에 대한 집착은 거의 강박증 수준이다. 그런데 소주에도 입에 달라붙는 그 맛을 내려 MSG를 넣는다. MSG를 통해서 간단히 감칠맛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맛의 다양성은 파괴된다. 질을 낮은 재료를 써도 MSG만 넣으면 되니 정성도 사라진다. 굳이 노력하지 않고 빠른 길로 가려한다. 이는 음식 수준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진다. 소주도 그 하향 평준화의 결과물 중 하나다.


아스파탐으로 대표되는 인공감미료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설탕의 1/100로도 똑같은 단맛을 낸다는 아스파탐은 체중 감량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식품첨가물 중 하나다. 아스파탐 역시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아스파탐으로 단맛을 낸 요구르트를 먹은 쥐가 설탕을 넣은 요구르트를 먹은 쥐보다 체중이 늘었다고 한다. 총 칼로리 섭취량에도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고(아스파탐을 넣었음에도), 더군다나 칼로리 섭취 차이가 없었음에도 오히려 아스파탐 섭취군 쪽의 체중이 늘어났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 한 문제다.


혹시 마가린을 기억하시는가? 간장 한 숟가락 넣고 비벼먹던 마가린밥의 그 마가린 말이다. 이 마가린이 1869년 처음 발명됐을 때 버터의 1/3 값으로 버터와 똑같은 맛과 효과를 낸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품공학의 가장 놀라운 발명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가린은 버터와 절대 똑같은 맛이 아니었다. 100년이 훨씬 지난 21세기에 와서야 마가린의 주성분인 트랜스지방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판명 났다. 사람은 한 번 보고는 모르고, 오래 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먹는 것도 똑같다. 오래, 아주 오래 봐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관점은 이거다. 유해하다고 증명되지 않으면 무해한 것이 아니라, 무해하다고 증명되지 않으면 유해하다. 즉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다. 최소한 먹는 것에 관해서는 그래야 한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최대한 보수적이어야 한다. 소주는 보수적이라기보다는 급진적이며, 전통이라기보다는 최신의 것이다. 겨우 사십여 년 전인 1965년, 양조에 곡류 사용을 금지하면서 생겨난 것이 우리가 마시는 화학식 소주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전통주 산업이 급격히 위축된 것도 그때부터다.


가짜 소주, 그 한잔의 추억





한식 세계화, 고급화를 논하지만 고급 전통주가 나오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식사의 품격은 간단히 말해 한 끼에 얼마큼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신문이나 티비에선 ‘한식이 좋아요’를 외쳐대지만 한식 한 상에는 아무리 비싸도 십만 원 이상 쓰기가 힘들다. 딱 벌어지게 한 상 차려 놓으면 뭐하나. 곁들이는 술이 공장표 소주인데.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으로 최고급 대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와인 덕분이다. 비싼 와인을 고른다면 한 끼 식사는 몇 천만 원, 심지어 몇 억 원이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해 한식은 초라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소주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 전통주 없으면 와인을 먹으면 될 게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도 참 안 된 말이다. 와인과 한식의 조합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다. 불고기에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회에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염소 고기에는 쉬라즈(Shiraz), 이런 식이다.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한식과 와인을 묶어놓으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유는 향이다. 와인의 향인 계피, 육두구, 체리, 제비꽃, 바닐라, 초콜릿, 구즈베리(Gooseberry), 라즈베리(Raspberry), 같은 것들의 태반은 서양의 허브나 향신료, 과일의 향이다. 같은 땅에서 자란 채소와 허브, 과일은 묘하게도 비슷한 향을 낸다. 그것을 먹은 사람도 비슷한 체취를 풍긴다. 자연히 같은 땅에서 자란 것들의 조합은 마치 한 배에서 난 형제자매처럼 도저히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끈끈한 뭔가가 있다. 일식에는 국화향 사케가 어울리고 중국음식에는 돌배향 나는 중국술을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정말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주를 마실 게 아니라 돈을 조금 더 들여 진짜 소주를 마셔야 한다. 돈이 없어서 가짜 소주를 마실지언정 그것이 좋은 것이라느니, 전통이라느니 같은 말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마시는 게 가짜라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짜 소주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며 더 좋은 술을 마시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럼에도 그날 그 형과 가짜 소주를 마신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갓 스무 살에 어른이 된 것처럼 소주 몇 병을 나눠 마시고 비틀거렸던 친구가 그리웠고, 매일 소주 한 병을 반주 삼아 드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리웠다. 그러나 아무리 쌓인 정과 추억이 한 가득이고, 낯선 이국의 쓸쓸한 밤, 싸구려 소주 없이는 가늠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있을지라도, 가짜는 가짜다. 두꺼비가 그려진, 그 소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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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베트남을 만나다, 쌀국수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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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한국은 겨울, 베트남은 초여름이었다. 출장 차 갔던 1월 베트남의 태양은 순하게 빛을 발해 직접 마주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습기가 적어 바삭바삭한 셔츠를 걷어올리고 길을 걷노라면 여행자인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마주한 맑은 국물, 베트남 포를 한 그릇 먹으면 분명 탄성을 지를 것이다.



베트남의 아침, 쌀국수





“맛있다.”


베트남 호치민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이 있다. 포호아의 쌀국수다. 국내에 들어온 미국 브랜드 포호아와는 다르다. 베트남 포호아는 파스퇴르 스트리트에만 있다. 이 집은 쌀국수를 팔아 5층 빌딩을 올리고 주인집 아들들은 포르쉐와 람보르기니를 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준재벌급이라고 한다. 한여름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한국의 냉면집과 비슷하다. 베트남 호치민에는 포호아 말고도 쌀국수 집이 골목마다 있다. 그 많은 쌀국수 집 중에 포호아의 위상은 단연 으뜸이다. 외국인에게도 내국인에게도 그렇다.


“포호아가 제일 맛있어요.”


통역을 맞아준 베트남 아가씨, ‘별(한국이름)’도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던 그녀는 알고보니 대학 후배이기도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 살짝 그을린 피부, 호치민 국립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는 그녀의 우리말 실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곱창이랑 닭갈비 좋아해요.” 라며 두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말하는 그녀는 영락없는 한국 여대생이었다. 

그녀가 고른 호치민 제일의 쌀국수 맛집도 포호아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으로 쌀국수 먹어요.” 


쌀국수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자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해장을 위해, 오후만 있는 일요일 브런치로 쌀국수를 즐기지만 베트남에선 아침이다. 베트남의 아침은 시끌벅적하다. 차로 가득찬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위용에 맞먹는 스팩터클이다. 베트남에 발을 딛어본 분들이라면 아시리라, 오토바이가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는 베트남의 아침을. 그 바쁜 아침, 베트남 사람들의 속을 채워주는 것이 쌀국수다. 쌀국수는 태생부터가 바쁜 사람을 위한 음식이었다.  



쌀국수의 기원 그리고 한국의 쌀국수





그럼 이 쌀국수는 언제 생겨났을까? 베트남 전통 음식이니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쌀국수, 즉 포(pho)의 역사는 베트남이 열강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식민지배 전에도 베트남 북부, 하노이 부근에서 포를 먹었다는 말도 있지만, 포의 조리 방법이나 어원을 볼 때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포의 원형이 생겨나고 조리법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언어학자도 아닌 마당에 음식 이름 어원 따지는 것은 내 취미가 아니지만 이건 꼭 집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왜 나이고 포(pho)는 왜 포(pho)인가? 여기 꽤 그럴 듯한 설이 있다. 프랑스 고기스튜, 포토푀(pot au feu)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발음이 비슷하다. 포(pho)와 푀(feu),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단서는 조리법이다. 포의 가장 기본인 육수를 우릴 때 동양권에서는 드물게, 당근과 양파를 노릇하게 구워 넣는다. 전형적인 서양식, 정확하게는 프랑스 식 육수 내기법이다. 그럼 왜 당근과 양파를 구워서 넣을까? 삼겹살 먹을 때 양파 구워 본 사람은 알리라. 양파를 갈색빛으로 구우면 달달한 고기맛이 우러난다는 것을. 그 현상을 영어로 캐러멀리제이션(caramalization)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캐러멀화다. 양파의 당이 열과 반응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채소를 구워서 육수에 넣으면 육향이 진해지고 입에 짝 달라붙는 감칠맛도 더해진다. 이것이 꼭 우월한 조리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동양 전통은 아니다.





한국 쌀국수와 비교해달라고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그 맛이 잘 안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우선 면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100% 건면을 쓴다. 마트에 가면 파는 그 단단한 건면이다. 베트남에서는 100% 생면을 쓴다. 자체 제면을 하는 곳도 있고 면을 받아오는 곳도 있다. 포호아에서는 하루에 두 번, 생면을 받아서 쓴다. 그 하얗고 은은히 투명한 빛깔이 단단한 질감의 밀가루 면과 다르게 부드럽고 순해 보인다. 쌀국수에는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gluten)이 없어 건강에 좋고 소화가 잘 된다고 한다. 건강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 그래서 먹어도 먹어도 지치지 않는다.


차이를 따지자면야 면말고도 많다. 신선한 허브 구하기가 한국에서는 힘들고, 또 소고기의 육향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생후 30개월 쯤에 도축하는 게 보통이다. 그때가 경제학적으로 사료값을 뽑기 딱 적정한 시점이라고 한다. 게다가 개체가 어려서 고기가 연하다. 잃는 것도 있다. 뼈의 밀도 낮고 고기의 향이 덜하다. 그래서 육수를 뽑아내면 맛의 밀도가 떨어진다.



베트남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야기, 쌀국수의 맛





“음.”


내 앞에 놓인 쌀국수를 보며 이런 학구적이고 진지한 생각을 할 턱이 없다. 나중에 따져보고 알아보니 그랬다는 것. 모든 면 요리가 그렇듯 나오자마자 빠르게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국물 맛, ‘캬’ 소리가 단번에 나온다. 국물의 밀도 깊은 맛이 내 속을 쓰윽하고 어루만진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 한 평생을 가듯, 이성을 놓게 만드는 쌀국수 국물의 오묘하고도 낯익은 맛은 이 세상 모든 여행자를 끌어들인다. 사위를 둘러보면 나 같은 여행자가 여럿이다. 내 앞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어라. 먹는 속도가 만만치 않다. 나야 두 번 먹을 기회가 드물기에 허겁지겁 먹다고야 하지만 그녀는 왜? 아까는 새침떼기 같더니 쌀국수 먹을 때는 딴판이었다. 맛이 있는지 고개를 그릇에 박고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맛있어요?”

“네. 맛있어요.”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말, 맛있다. 괜히 부끄러운지 그녀가 미소지었다. 상그러운 20대다. 탁자 위에 놓은 허브들도 그 푸르름을 뽐냈다. 한국에서 쌀국수에 흔히 곁들이는 고수는 없다. 대신 타이 바질(thai basil)과 대나무 잎사귀 비슷하게 생긴 쿨란트로(culantro)가 있다. 빨간 스리라차 핫소스와 호이신 소스는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같다. 호치민이 아니라 하노이에는 이런 소스가 없다 하지만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확신은 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어디에나 있는 스리라차 소스와 호이신 소스처럼 쌀국수는 이제 베트남의 음식이 아니라 세계의 음식이란 것이다. 한국에도 잘 찾아보면 베트남처럼 쿨란트로 허브를 쓰고 베트남식으로 육수를 뽑은 가게들이 있다. 일산 킨텍스 이마트 타운 피코크 키친의 ‘프레시 포’은 베트남에서 셰프를 데리고 와 현지 방법, 현지 허브 그대로 쌀국수를 내놓는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서 요리법을 배워온 곳도 있고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가 직접 차린 가게도 있다. 그곳에서 서툰 한국어를 들으며 쌀국수를 먹으면 지난 베트남에서의 시간이 떠오른다.





베트남에서 만난 그녀는 똑똑했고 통통 거리며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힘이 넘쳤다. 나의 출장은 계획대로 끝이 났고 통역을 해준 그녀와도 예정대로 이별했다. 서로 손을 흔들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을의 중턱인 지금, 반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 뜨겁고 시끄러웠으며 향기롭던 그 시간, 열띤 열대의 밤과 치열하고 집요했던 사람들의 낮, 무관심한 눈빛으로 내 앞에 내놓았던 뜨거운 쌀국수, 그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을 서울 어딘가에서 나는 그리워하고 있다. 풋내 나는 싱그러움, 자신의 개성을 잊지 않는 그 젊음과 반짝이는 눈빛을, 바쁘게 쌀국수 한 그릇 먹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가득찬 하루와 그 하루를 딛고 일어서는 또 다른 내일을. 아마 지금 이 순간의 베트남도, 절묘한 포호아의 쌀국수도, 그리고 그녀도, 여전할 것이다. 또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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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힘, 매운맛
정동현
#삼식일기



“쏘 스파이시!”

 

요리사들의 식사 시간, 같이 일하던 한국 요리사가 한국 특산품이라며 뭔가를 끓여 솥째 냈다. 한눈에 봐도 시뻘건 그 무엇, 호기심 많은 몇몇이 젓가락 대신 포크를 대보았지만 다 나가떨어졌다. 오마이갓!

 

“왓 이즈 잇?”

“잇츠 코리안 누들, 라면.”

 

득이양양한 미소를 짓던 그 한국 요리사의 얼굴, 반면 입안에 라면을 넣었던 하얀 얼굴의 요리사들은 얼굴이 삶은 랍스타처럼 시뻘개졌다. 한국에서 술 마신 다음 날이면 꼭 끓여먹던 그 빨간 포장의 라면, 외국인들에겐 도저히 입도 못댈 음식이었다. 하긴 나도 외국에 있다 한국에 오면 꼭 며칠을 고생했다. 위가 맵고 뒤가 매워서 말이다.

 

 

한국인의 ‘매운맛’



그 고생을 하면서도 외국에 있으면 빨갛게 매운 것들이 자주 당겼다. 지금도 날이 쌀쌀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속이 허전하면 방법이 없다. 그런 날은 무교동으로 향한다. 낙지 반 양념 반, 고추장, 고춧가루를 아낌 없이 털어넣어서, 한 입 넣으면 입 안이 타들어가고 속이 쓰린 낙지 볶음을 파는 그곳, 단무지나 조개탕이 없으면 도저히 하나를 다 해치울 수가 없기에, ‘이것은 조개탕을 팔기 위한 수작인가’, 라는 음모론을 품기도 하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며 이런 것을 먹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불평을 하지만, 이게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구남친의 문자처럼, 불현듯 생각이 난다. 그러면 나는 기어코 무교동까지 찾아가 낙지 볶음을 시켜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좀 과하다. 매운 음식 앞에 빼지 않는 대한의 남아이지만, 매운 음식 가지고 외국 친구들 여러번 골려먹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조금만 둘러보면 사방천지에 매운맛이다. 동네 뒷골목에도, 명동 사거리에도, 매운 맛을 빼놓고는 식당 장사가 되지 않는다. 흔한 것이 불닭이요, 먹다 보면 화가 나는 그 음식을 사람들은 많이도 사먹는다. 그것뿐인가? 거의 서커스 수준으로 매운 짬뽕에, 매운 짜장면, 매운 떡볶이 등등, 한국 음식은 매운 것 투성이다. 매운 게 문제일까? 문제다. 취향은 존중해주세요, 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것은 문화현상이고 더구나 좋지 않은 종류다. 간단하다. 너무 매우면 다른 맛들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 민족은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화끈하게 매운 민족이라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며, 이 매운 맛이야 말로 널리 알려야 할 한국의 맛이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한국 사람이 매운 맛을 즐긴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지만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후였다. 남미에서 자라던 고추가 세계를 절반이나 돌아 일본에 왔고 그것이 한국까지 전래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운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백김치만 있던 김치가 시뻘개지고 방방곡곡 고추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얼마전 방송에 이런 내용도 나왔더랬다. 1924년 조리책에 보면 맨드라미로 붉은색을 내라고 할 정도로 고춧가루가 귀해 배추 한 포기에 밥숟가락 하나 정도만 넣었다는 것이다. 멀지 않은 과거인 70년대에는 28그램 정도로 늘었으나 여전히 적은 양이었던 것이 2000년 이후에는 포기당 71그램으로 늘어 80여 년 만에 김치가 12배 매워졌다는 기사였다(2015.4.21. MBC). 매운 맛으로 신문을 검색해봐도 그 추세를 알 수 있다. 1900년대에는 거의 검색되지 않던 ‘매운’이란 키워드는 2000년 대로 향할수록 꾸준히 증가한다. 인기 상품도 그렇다. 아직까지 건재한 ‘불닭’이 처음 선보인 것도 1990년대 후반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1999년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매운콩라면’이었다.





우리만 맵게 먹는게 아니라며, 중국의 사천음식, 똠양꿍으로 대표되는 태국 음식, 그리고 빈달루(vindaloo) 커리를 먹는 인도처럼 매운 음식 먹는 나라가 많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맵다고 소문난 그것들도 한국 음식의 맵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먼저 스타일이 다르다. 사천, 타이 음식의 매운맛은 아웃복서의 날카로운 잽 같다. 특히 사천의 매운맛은 사천 후추, 외국에선 시쯔완 페퍼라고 부르는 ‘초피’가 주인공이다(흔히 산초로 아는데 초피와 산초는 엄연히 다르다. 추어탕어 넣어먹는 그것은 초피가 맞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 한국에서도 매운맛을 담당했던 이 초피는 날아갈듯 가볍게 맵다. 뒤로는 시트러스류의 경쾌한 향을 남기는데 그래서 빨래비누 맛이 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 그 맛과 향이다. 태국의 매운맛도 비슷하다. 향은 덜하지만 매운맛을 쓰는 방법은 여자들이 반짝이는 악세서리를 하듯 맛에 악센트를 주기 위함이 보통이다. 인도 고아 지방 원산의 빈달루 커리는 한국의 매운맛과 비슷하다면 가장 비슷하다. 밑에서부터 천천히 달아오르는 매운맛이다. 무게감은 글쎄, 제대로 맞아 본 적은 없지만 중량급 복서 정도 될 것 같다. 게다가 시큼하고 향신료의 향도 복잡다양해 마치 기교파 선수를 보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매운맛이란 헤비급 복서가 내민 묵직한 펀치 같다. 맞으면 퍽하고 날아갈 것 같은. 근래에는 태반이 공장표 고추장으로 매운맛을 내는데, 그 맛이란 고추장의 물성처럼 무겁고 질척인다. 고추장만으로는 날카롭고 짜릿한 매운맛을 낼 수가 없으니 이름부터가 화학약품스러운 ‘캡사이신’을 따로 넣는다. 비타민 C처럼 자체로는 향과 맛이 없는 이 캡사이신이 매운맛의 근원이다. 매운맛으로는 맛이 비는 듯하니 설탕 물엿을 팍팍 집어넣는다. 달고 맵고, 아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고 서서히 중독되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널리 알리고 알려야 하는 한국의 매운맛이 이렇게 탄생한다.

 

 

왜 우리는 매운맛에 중독될까?



여기서 매운맛이란 무엇인지 한번 집고 넘어가야겠다. 매운맛이란 맛이 아니다. 통증이다. 혀를 얼얼하게 하고 귀까지 멍멍하게 하는 이유는 매운맛이란 통증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리 사람들은 매운맛에 ‘홀릭’할까? 왜냐면 매운맛이 가져온 통증을 이겨내고자 뇌에서 ‘엔드로핀’을 내뿜어서 그렇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그 엔도르핀이 맞다. 이 천연 마약 엔드로핀 때문에, 사람들은 매운맛에 ‘중독’ 된다. 그럼 왜 하필 우리는 매운맛에 중독되었을까?





앞서 적었듯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나와 스트레스가 풀린다. 내가 생각한 답은 간단히 이렇다. 한국 사회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들이 해소 방법을 찾는다. 한국에는 매운 음식 전통이 있다. 되먹임 과정을 통해 매운 음식이 붐을 일으킨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고리다. 소득격차는 커지고 물가는 오르나 가처분소득은 그만큼 증가하지 못했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는 집에서 요리할 시간도 많지 않다. 돈은 없고 스트레스는 받고 시간은 없으니, 싸고 매운 식당 음식을 찾는다. IMF 직후 급격히 대학가를 점령하던 불닭집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매워지던 음식들, 심지어 요리사들도 겁이나 만지지 못하는 그 독하게 매운 것을 입에 넣고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더구나 매운맛이 재료의 질은 두꺼운 화장을 칠한 것처럼 감쪽같이 감춰 버리니 원재료 값을 낮추는데 이만한 효자가 없다. 어딜 가나 똑같이 십 킬로 단위 담은 덕용 고추장을 쓰니 조선 팔도 음식 맛이 비슷해졌다. 매운맛의 악순환이다.





나도 이 악순환의 고리 안에 있다. ‘미쳐야 미친다’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는 이 땅에서, 독하지 않고는 ‘열정’이 없고 ‘패기’가 없다며 핀잔이나 듣는다. 매번 이를 악물고 파이팅을 외치다보니 몸에 순한 것이 맞지 않는다. 국산에 태국산 종자를 교배해 만든 청양고추를 공장표 고추장에 찍어 아삭 깨물고, 알콜에 조미료를 타고 물을 섞은 희석식 소주를 마셔야만 이 독하디 독한 하루가 끝이 난다. 어쩌겠나, 어젯밤 마신 술에 위장은 또 매운 것을 부르고, 어느덧 그 독한 것들에 인이 박혀버렸으며, 버텨야할 하루가 또 찾아오는데.

 

“여기 고추 짬뽕이요!”

 

오늘도 나는 고추장 먹는 싸움닭처럼 그 독한 것을 들이키며,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흘려보낸다. 먹고 살기 참 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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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저는 짜게먹습니다”
정동현
#정동현


소금을 한 줌 먹어본 일이 있는가? 순대에 딸려나오는 꽃소금을 한방에 털어넣었다고 하면 감이 오려나, 정확하게는 두 봉지 분량을 한 방에 탁! 하고. 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절대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리 호기심이 충만해도, 용기가 넘쳐나도, 그것만은 말리고 싶다.


“윽.”


고통스러웠다. ‘짜다’라는 단순하고 냉정한 형용사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혓바닥의 세포들이 소금에 절여지는 것 같았다. 더불어 왜 옛날 고문을 할 때 상처에 소금을 부었는지, 덤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만큼 악에 받쳐 있었다. 다 소금 때문이었다.





“간을 더(more seasoning).”


백이면 백, 나의 냄비는 되돌아왔다. 호주 멜버른의 한 호텔, 올해의 셰프로 뽑히기도 했던 영국 런던 출신, 잘생겼던 나의 헤드셰프 존(John)은 반백발의 무리뉴 감독처럼 냉정했고 그의 혀는 그랙 메덕스가 던진 공처럼 예리했다. 그리고 나는 믿음이 부족한 신자였다.


‘더(more)?’


차마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하루가 될테니까. 그러나 의심은 거둬지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소금을 넣으란 말인가?



소금, 간 맞춤 그 이상





이 내적 갈등은 요리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소금 그리고 버터는 요리학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재료였다. 서양 애들도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퍼쓰던 버터는 그렇다치더라도, 서양식 ‘간맞춤’은 내가 요리학교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새로움이었다.


“리얼리?”

“예쓰!”


인심 좋아보이던 아줌마 선생님도 간을 볼 때만은 단호했다. 왜냐면 어떤 요리든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서양 요리에서 소금 간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식처럼 간을 보조할 수 있는 매운맛이나 감칠맛이 흔하지 않다(MSG를 넣으면 소금을 적게 써도 된다). 더구나 크림이나 버터 같은 유지류를 많이 쓰기 때문에 웬만큼 간을 해서는 표시도 나지 않는다. 또한 요리의 중심이 되는 소스를 한국처럼 마시지 않기에 염도가 높더라도 괜찮다.


소금의 역할은 단지 짠맛을 가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소금은 어렵게 말해서 수용액 속의 이온의 힘을 증가시켜, 냄새 분자가 음식으로부터 쉽게 분리될 수 있게 만든다. 쉽게 말하면 소금을 넣으면 향이 더 두드러진다. 게다가 음식의 잡맛과 쓴맛을 없애주고 재료가 가진 맛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어떤 바리스타들은 그 이유로 커피를 내릴 때 소금을 조금 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서양식 소금 치기 요령은 ‘끝’까지다. 조금이라도 더 넣으면 ‘짜다’고 느끼기 직전까지 소금 간을 한다. 아슬아슬하게 간을 하면 맛이 쨍하게 살아난다. 마치 포토샵 보정 버튼을 클릭하면 흐릿했던 그림자가 걷히는 것과 같다. 단호박 수프를 끓일 때 단맛을 더하기 위해서 설탕 대신 소금을 넣는 이유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고기에 소금을 치는 것은 단지 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고 숨은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 소금이 필요하다. 무염버터와 가염버터의 차이도 생각해보시라. 100g의 가염버터에 든 소금은 2g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맛은 천지 차이다.


사실 이런 팩트를 알려면 하룻밤이면 족하다. 어려운 것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고, 더 어려운 것은 그 맛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레스토랑 주방에 갓 발을 내딛은 그때, 나는 존이 만들어 놓은 그 맛, 그 염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나의 험난한 ‘소금의 맛’ 정복기





“어게인.”


내가 만든 폴렌타(polenta, 이탈리아식 옥수수죽)를 앞에 두고 존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간이 부족했다. 손님이 밀어닥치는 저녁 시간, 다시 냄비를 가져다가 소금을 뿌리고 간을 맞추기엔 너무 급했다. 답안지를 밀려 썼는데 시험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매일 계속 같은 음식을 만들어야만 알 수 있는 그 미묘한 차이, 존은 100이 아니라면 95도 만족하지 않았다.


“너무 짜잖아!”


그러다 기어코 사달이 났다. 영점을 조절하듯 조심스러워야 했건만,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한 번에, 그 100점을 맞추겠다는 욕심에 소금을 ‘조금’ 많이 넣었더니 100이 아닌 110이 되었다. 먹을 수 없는 요리가 된 것이다. 존의 고함 소리가 주방을 절반으로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의 리듬은 어긋났고 존의 욕지거리는 나만을 향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주문은 인정사정 없이 밀려올 뿐이었다. 땀이 흘러들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피크 타임의 한 복판 어딘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아귀에는 소금이 있었다. 그때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고3 시절, 나는 틀린 시험지를 찢어 먹곤 했다. 그 심정으로, 나는 앙갚음이라도 하듯 소금을 입 속에 집어 넣었다. 뇌가 흔들리고 혀가 뽑히는 것 같았다. 그날, 내 입에서는 소금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수모를 당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주방에서 나가는 모든 음식을 먹어보는 존의 입에 딱 걸리면 욕지거리는 예사요, 심하면 냄비가 날아다닌다. 사흘 뒤 동료 요리사에게 그런 날이 찾아왔다. 인도 출신, 그 착한(나를 많이 도와줬다는 뜻이다) ‘싱’의 냄비가 주방 바닥에 나뒹굴고 폴렌타는 주방 바닥에 엎질러졌다. 존은 세상에서 가장 심한 모욕을 들은 것처럼 얼굴이 뻘개져서 식식거렸다. 영국 악센트로 하는 욕은 또 어찌나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지, ‘발음 참 찰지다’, 생각할무렵 부주방장이 냄비를 나에게 드밀었다.


“네가 대신 해.”


밥 한 그릇 더먹으라는 권유였다면 ‘괜찮다’고 짐짓 거절했을텐데, 그것은 아니되오,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는 주방에 있었다.


“예쓰.”


사흘 전 그날처럼 나는 냄비를 잡았다. 사실 조리랄게 없었다. 폴렌타에 육수와 우유를 조금 넣고 데워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최후의 관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흘 전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소금 간이었다. 열을 받은 폴렌타가 부글부글 끓었다. 이제 소금 차례, 하얀 소금을 집어 뿌렸다. 조금씩 색칠을 하듯이, 여리디 여린 꽃을 쓰다듬듯이. 음. 맛을 보니 약간 부족하다. 조금만 더 살짝. 아. 거의 다 됐다. 97점 정도 됐을까? 슬쩍 고개를 돌려 옆으로 보니 나의 헤드셰프 존이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밖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바글댔고 앞으로 나가야할 음식이 줄을 서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소금을 더했다. 저 옛날 용 그림에 눈을 그려넣던 화가의 심정이 그랬을까? 폴렌타를 입에 넣었다. 짰다. 그러나 짜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는 소리가 들린다. 짜면서도 짜지 않다니. 그 맛에는 긴장감이 있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흐트러질 것 같은 절묘한 균형, 내 입으로 100점이라고 하긴 뭐하니, 한 99점 정도였달까? 딱 이거다 싶었다. 존은 내가 넘긴 폴렌타의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끄덕였다. 그리고 던진 한 마디.


“이 맛을 기억해.”



“저는 짜게 먹습니다”





아마 존이 한국에 온다면 그 잘생긴 얼굴이 여러번 구겨졌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간이 안 된 음식을 자주 만난다. 특히 양식이 그렇다. 싱겁게 먹는 것이 마치 문화적인 우월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가 된 것 같다. 음식 평을 할 때도 ‘짜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마트 선반에 가면 짜지 않은 소금이 있고, 간이 되지 않은 파스타가 ‘짜지 않아 좋다’는 평을 받으며 널리 팔린다. 그 배후에는 저염식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아직 나는 저염식이 건강식이라는 납득할만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다. 버클리 대학의 통계학자 데이비드는 고염식이 고혈압의 원인이라는 가설은 잘못된 통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냈다. 대신 김치에 소금을 적게 써 김치를 먹고도 식중독에 걸리는 일이 생겨났다. 소금을 적게 쓰니 김치가 발효되지 않고 부패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짜게 먹자는 게 아니다. 단지 짜야 할 것이 짜지 않고, 오로지 ‘짜다’와 ‘싱겁다’로 구분하는 맛 평가의 몰상식함에 짜증이 치밀었을 뿐이다. 하긴 그것이 사람들 잘못이랴. 사회가 모든 잘못을 개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우니 내 한 몸이라도 건강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보신주의가 판을 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메뚜기떼처럼 보신음식의 유행을 타고 여기에서 저기로 바쁘게 넘나든다.


나는 여전히 존이 나에게 기억하라고 말하던 그때 그 순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입안에 가득히 머금은 그 짠맛이 외줄타기를 하듯 똑바로 균형을 잡았을 때의 그 맛을, 그 희열을.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저는 짜게 먹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