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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아메리칸 소울, 햄버거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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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왜 쪘냐고? 왜냐면 일 마치고 나면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으니까.”

 

“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음식을 만드는 당신 같은 요리사가요?”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동그랗고 큰 안경을 쓴 신참 웨이트리스 제인이 주방장 제이크의 배를 보며 사연을 물었다.. 전후 사정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오래 일하고(일주일에 70시간) 잘 먹지도 못하는데(먹을 틈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이 찌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제이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대화를 듣던 다른 요리사들은 공범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그 중 미국에서 온 마이클의 눈빛은 ‘햄버거’라는 단어에 급격히 반응했다. 분명 입 안에서 침이 돌고 있을 마이클을 보며 나는 ‘저 치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미국의 배추김치, ‘치즈 버거’

영국 시골의 펍(pub)에서 치즈버거를 발견 했을 때 단 1초도 망설이지 않던 학교 친구 프랭키의 구수하고 느끼한 미국 악센트도 떠올랐다. 몇 안 되는 나의 미국 친구들은 모두 햄버거를 사랑했다. 그것은 분명 한민족에게 김치와 같은 위상이었다. 그리고 ‘치즈 버거’는 ‘배추 김치’와 비슷했다.

 

아이언맨(2008년)의 토니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탈출해 처음 주문한 것도 바로 치즈 버거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딱 두 개야. 첫번째는 어메리칸 치즈 버거. 그리고 기자회견을 준비해줘. 일단 치즈 버거.”

 

피투성이가 된 토니 스타크는 배달된 치즈버거(맥도날드가 아니라 버거킹이었다)를 먹으며 기자 회견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기자 회견장에서 두 번째 햄버거를 마저 먹고 나서야 입을 연다. 2016년 지금이었다면 아마 토니 스타크는 버거킹이 아닌 다른 햄버거를 먹었을 것이다.



| 미국 동부를 주름잡고 있는 셰이크쉑(Shake Shack)

 

지금 미국 햄버거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 계의 대부 대니 마이어가 2001년 뉴욕 메디슨 파크에서 처음 시작한 셰이크쉑(Shake Shack)은 햄버거의 신약 성경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것은 동부의 사정. 메이저 리그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로 나눠지듯 햄버거의 신약 성경도 미국 서부에서는 셰이크쉑이 아닌 인앤아웃(IN-N-OUT)버거다.



  

| 동부에 셰이크쉑이 있다면, 서부에는 인앤애웃(IN-N-OUT)

 

이 두 버거의 인기 비결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만드는 것.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라는 말 처럼 들리는 이 비결 뒤 본질을 보면 이 또한 햄버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빵 사이에 소고기 패티와 양파, 양상추, 피클, 그리고 치즈를 넣은 치즈 버거다.

    

 

햄버거, 결코 단순한 정크푸드가 아니다!

치즈 버거의 구성은 음식 공학적으로 볼 때 거의 완벽하다. 햄버거 빵은 폭신하고 살짝 구운 빵 안 쪽은 바삭하다. 양파와 양상추는 바삭한 식감과 신선한 감각을 선사한다. 피클은 산미로 식욕을 돋우고 구운 패티에서는 인류가 거부할 수 없는 구운 맛이 난다. 열량 가득한 지방인 치즈는 이성을 마비시키며 햄버거 속 재료를 하나로 묶는다.


  



단순하기 보다 복합적인 감각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그리고 요리사들)은 이렇게 무력해진다. 영양학적으로도 그렇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이뤄진 3대 영양소가 딱 보기에도 적절히 안배된 구성이다.

 

여기서 잠깐. 이 치즈버거는 음식으로만 분석하기엔 그 함의(含意)가 재미나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요소 요소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된 치즈 버거는 서양 환원주의(Reductionism) 철학이 음식으로 현현(顯現)한 가장 똑부러지는 예이기도 하다. 어떤 상태나 물질을 최소 단위를 향해 나눠가다보면 그 요소 뿐만 아니라 전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리란 사고가 바탕이 된 환원주의. 그 환원주의처럼 치즈 버거는 고기, 채소, 빵, 치즈라는 구성 요소 그 자체를 겹쳐 만든 공학적 음식이다. 그리고 이 치즈 버거를 빨리 달라고 외치는 아이언맨은 미국 액션 히어로 물의 전형이라는 면에서 또 다른 환원주의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세계 각지의 민속 신화를 수집 분석 했던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Joseph Campbell)은 그의 저서 ‘천 가지 얼굴을 한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에서 모든 신화는 한 가지 유형을 띈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는 영웅이 미지의 땅으로 뛰어들고 (출발, Departure) 그곳에서 악의 무리와 만나 결국 승리 한 뒤 (시련, Initiation)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물을 가지고 온다는(귀환, Return) 것이다. 이것은 아이언맨의 스토리 라인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무슨 뜻일까? 빵(도입)을 거쳐 양파와 양상추(전개)가 이에 닿으면 그 후는 피클의 신맛(위기), 구운 패티와 치즈로 클라이막스(절정)에 이르고 다시 결말(빵)으로 향하는 구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부분이 전체를 반영하고 복제하는 프렉탈(fractal) 구조를 닮아 있다. 그리고 관객은 치즈 버거를 먹으며(또!) 아이언맨을 보고, 아이언맨 속 풍경과 비슷한 세상에서 같은 삶을 반복한다.

 

아이언맨에서 '조력자'에 해당하는 깡마른 안경잡이 기술자 ‘잉센’은(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부상 입은 토니 스타크를 고쳐준다) 가족이 없다는 스타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중요한 게 없군요.”

 

나는 늦은 밤 치즈 버거를 먹으며 배가 부르고 혀가 즐거웠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에 맥주를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었다. 그 나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요리를 하겠다고 하루종일 주방에 서 있는 나의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삶과, 그 치즈 버거의 완벽한 효율성의 괴리. 그리고 측정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은유와 충동이 그 치즈 버거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날 밤 포니테일의 예쁘장한 제인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들여 먹는 비효율적인 식사를 떠올리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얕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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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김치찌개를 찾아서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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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김치찌개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전에 이야기 했듯이 지인은 얼마 전부터 냉면문화연구소에 출근을 시작했다.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역전의 주자처럼 지치지 않고 냉면을 먹고 있는데, 아무리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주일 연속으로, 하루 세 번, 스물 한 끼를 냉면으로 떼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최소한 술 마신 다음날은 해장라면, 회식 할 때는 삼겹살이라는 패턴이 있다.

 

그러나 이놈의 냉면문화연구소는 해장으로는 팔도비빔면, 회식으로는 중화냉면을 먹는 만행을 저지른다고 하니, 지인은 이러다가 몸의 피는 육수가 되고 근육은 냉면가닥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인은 용기를 내어 동료 연구원들에게 "오늘 점심은 냉면 말고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제안을 했다. 이에 연구원들은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흠칫 놀라더니 '허허, 이 사람 참 맹랑하구먼' '아직 새해도 오지 않았는데, 다른 메뉴라니요, 남사스러워서' '아직 신입이라 어쩔 수 없는가보죠'라며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과는 달리 그들의 눈은 묘한 희열과 해방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제일 연장자 격인 김선생이 말을 꺼냈다.

 

"뭐 그럼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도록 하죠.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지인이 말했다.

 

"오늘따라 유난이 속이 허하니,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찌개가 어떠합니까?"





이에, 사람들은 말문이 트인 벙어리처럼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한 것이, 코 옆에는 콩알만한 점이 있는 박선생이 선수를 쳤다.

 

"역시 김치찌개라면 광화문에 있는 광화문집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김치찌개 용으로 젓갈을 적게 넣어 김치를 담궈 국물이 시원하며, 돼지 목살을 아낌 없이 썼기에 든든하기까지 하니, 장안의 김치찌개 집 중에서는 최고라는데 이견이 없지요. 게다가 계란말이까지 곁들이면 한끼 식사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혀가 있고 맛을 느낄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이 집을 가야 합니다."

 

"광화문집에 들어간 고기가 고기요? 그걸 가지고 고기라고 말한다면 저기 우래옥 옆에 있는 은주정의 고기는 맘모스 정도 되겠소이다. 자고로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란 은주정 정도 되어야, '아 고기가 들어갔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기가 적어 속이 허전하니 계란말이 같은 것을 시키는 게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은주정은 상추까지 따로 주니, 광화문집이랑은 비할 것이 아니지요."

 

"아니, 이 사람 키만 작은 줄 알았더니, 김치찌개 맛도 잘 모르는구려. 원래 김치찌개란 것이 김장김치가 남아서 처치 곤란할 때, 봄 쯤 되어서야 먹을 수 있던 그런 음식 아니겠소? 우리가 이렇게 사시사철 김치찌개를 먹은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소. 그런 면에서 광화문집이나 은주정의 김치찌개는 김치찌개의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것임을 모르시나 보군요. 게다가 부르스타 위에 냄비를 올려 끓여먹는 것 역시 80년 대 이후에 나타는 풍습이라오. 그런면에서 공덕 굴다리집이야 말로 김치찌개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하는 곳이지요. 냉면 그릇 가득, 살살 녹는 김치에 돼지 앞다리 살을 써서 쫀득거리면서도 비계의 달달한 맛이 살아있는 그 김치찌개의 맛은 가히 장안의 최고 아니겠습니까? 을지면옥 운운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입맛 참."

 

"거기서 을지면옥이 왜 나옵니까? 계속 원형 원형 그러는데, 어차피 모든 음식은 발전하고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선생들이 말한 그 김치찌개집들은 반찬재활용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산더미처럼 김치나 반찬들을 내놓던 곳이 아니요? 그 전후로 내놓는 반찬의 양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럼 뻔한 것이지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정된 맛으로 접객을 하는 새마을 식당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7분 김치찌개는 비록 체인점이지만, 얇게 썰어낸 돼지고기에 김치를 듬뿍 올려 자작하게 끓여낸 것이, 백종원 씨의 탁월한 감각이 발휘된 명작이지요. 자고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이지요. 거, 자기 입맛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요. 쯧쯧, 그러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요."

 

"갑자기 웬 나라 타령이요? 그때도 함흥냉면 타령 하시더니 역시 입맛이 영 유치하시구랴, 그렇게 화학조미료 팍팍 들어가고 어린 애들 알바 써서 내놓는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소? 당신 머리 빠진 것도 다 그런 화학조미료 때문에 그런거요. 유전자도 한 반 쯤 변형 되었을 것이니, 조금만 지나면 초록색으로 변할지도 모를 일, 조심하시오, 조선생."

 

"머리카락 이야기는 왜 해? 니가 탈모인의 심정을 알아? 함흥냉면에도 깊이가 있고, 그 싼 김치찌개 한 그릇에도 문화가 담겨 있는 거라고."

"그래봤자 대머리고 그래봤자 싸구려 음식이지, 그런 걸 먹으니까 머리가 빠지는 거야."

"누군 빠지고 싶어서 빠지냐! 내가 오백만 탈모인을 대표해서 너를 응징하리라. 이 자식아!"


그 말과 동시에 건축을 전공한 조선생이 책상 위로 올라갔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박선생은 조선생에게 머리채가 붙잡혔다. 이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법학박사 정선생도 협공을 시작, 사무실은 탈모인 대 비탈모인의 대결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직 머리털이 빼곡한 지인은 난리가 벌어지기 직전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간 지라, 참변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요즘엔 주방 찬모들 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캡사이신을 허공에 뿌려대니, 굳이 김치찌개 집이 아니더라도 눈물 콧물 빼어 가며 매콤한 맛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오늘은 광화문 일대가 김치찌개 풍 공기가 될 터이다. 그러니 공짜로 한국 전통의 맛을 즐길 자는 광화문과 시청 주변으로 모이시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태평성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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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냉면 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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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기에 앞서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냉면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 냉면 문화의 역사 및 진흥 발전에 대한 연구 및 대안 제시를 하는 곳이다. 공채는 하고 있지 않으며, 수시로 채용이 이루어지니 입사를 원한다면 연구소 홈페이지 올라오는 채용공고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근래 입사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연구소원의 평균 스팩은 박사급 5명, 석사급 4명으로, 토익은 물론 중국어에 능통한 이도 다수라고 한다. 전공은 제각각인데, 러시아문학부터 국문학, 그리고 경영학 및 컴퓨터 공학 등 그 공통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단지 그들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특성을 든다면 역시 냉면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지인이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면접을 치룰 때, 면접관은 지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최고의 냉면집은 어디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지인은 ‘제 생각에 을지면옥은 옛날의 명성에 기대어 그 맛이 하락중이고, 역시 강호의 최강자는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우래옥이 아닌가 여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인이 답하자마자 면접은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인의 답에 면접관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을지면옥의 맛이 하락세란 말인가?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김선생, 어찌 맛에 객관적인 증거를 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맛이 떨어짐을 안다는 것은 증거가 필요 없는 일이요, 단지 단 것과 짠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누구나 아는 것 아니요, 허허 참.”


“박선생,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구려. 비록 을지면옥을 찾는 이들이 백발성성한 노인들이 대다수라고 하나, 그것이야 말로 을지면옥의 맛이 한결같고 냉면이 추구하는 본질에 가깝다는 증거 아니요?”


“김선생, 노인들의 입맛을 어찌 믿는다는 말이요? 그들의 미각이란 그들이 지나온 세월이 무뎌지고 술 담배 등 각종 유해물질에 감각이 상하여, 면수에도 간장을 타서 먹어야 겨우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지 않소.”



평양냉면 면의 주 재료, 메밀



그때 정선생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 을지면옥이나 우래옥이나 냉면의 대세에서는 멀어졌다고 봅니다. 이제 우래옥에서 일하던 김태원 명인이 봉피양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종로의 시대는 가고 이제 강남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사대문 냉면 사대천황이니 하던 것들은 이제 옛날 이야기지요.”


그 옆에 있던 조선생이 한 수 거든다.


“장충동에 있는 평양면옥이야 말로, 냉면의 진수이지요. 냉면 한 젓가락을 입 안에 넣고, 육수를 같이 마시면, 메밀꽃 필 무렵의 서정이 입 안에서 펼쳐지니, 그것이야 말로 한국 냉면 문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이자, 한국 민속 문화의 깊이 아니겠습니까?”


이때부터 면접관들은 지인의 존재를 잊은 채 싸움… 논쟁을 이어갔다.



메밀향이 나는 거친 면과 맑은 육수의 평양냉면



“마포에 있는 을밀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소? 살얼음이 낀 육수는 가히 해장 냉면의 최고봉이라고 하는데, 이런 특수적인 상황에서의 냉면의 위치와 효용을 따지자면 냉면집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냉면 육수에 얼음이 껴서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이 연해지고, 마치 녹아버린 팥빙수 먹는 느낌이 나거늘, 을밀대의 냉면은 정파도 아니고, 단지 분식집 냉면이 진화한 것에 불과하지요. 얼음이라니, 쯧쯧.”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입맛이 바뀌고, 거기에 맞춰 발전해나가는 것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분식집 운운하다니요, 을밀대의 역사와 전통을 보세요. 참, 이런 분하고 내가 같이 일하고 있다니!”



고구마 전분의 쫄깃한 면과 새콤달콤한 육수의 함흥냉면



“아니, 그럼 함흥냉면은 어떻게 할겁니까?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의 솥을 받치는 세 개의 발 마냥, 오장동을 지배하는 세 곳의 냉면집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요? 이거 너무 편협한 것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함흥냉면도 평양냉면에 비해 못할 것 없는 역사와 맛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웬 함흥냉면이요? 이 사람 입맛 참 후지네.”


“뭐라고? 아니 그럼 발씻은 물 맛 나는 육수가 좋다고 하는 당신 입맛은 뭔데?”


“발 씻은 물이라니, 그 은은하고 진하며, 깊디 깊은 맛을 그렇게 말해?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요, 찬란하고 고귀한 기호를 꿋꿋히 지켜가는 천만 냉면인에 대한 모욕이야!”


그 말과 동시에 책상 위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박사가 올라가고, 국문학 박사의 구두가 날아다녔으며,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법학박사는 몇 줌 없는 머리카락이 뽑혔다. 지인은 그 아수라장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


며칠 후 지인에게 합격을 알리는 편지가 도착했는데, 지인이 추측하기로 우래옥을 좋아한 연구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 연구원은 지인에게 ‘참으로 강단있고 소신있는 사람’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냉면의 계절 여름, 더욱 냉면연구소에 할 일이 많아졌다. 냉면이 가장 인기많은 시기에 발맞춰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 전통 문화 발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웬만하면 함흥냉면이나 비빔냉면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빨개서라나. 냉면이름에 평양이니 함흥이니 이름이 붙어 가뜩이나 의심의 눈길을 사고 있는데, 더 나아가면 안된다며,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나는 ‘하여간 먹물들은 어쩔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호기롭게 빨간 냉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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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가 알려주는 캠핑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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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떠들어서 고기가 도망 가잖아.”


아버지는 낚시대를 거두며 투덜거렸다. 앞으로는 샤갈이 쓰던 파란 물감을 푼 것 같은 바다가 멀리 펼쳐졌고, 그 위로는 한 여름의 태양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빛을 발했다. 한낮 온도는 30도를 넘었고 햇빛 피할 길 없는 갯바위 위는 불판 위에 올라간 것처럼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20년도 전, 우리 가족은 부산 영도의 동삼중리에 피서를 갔다. 더위를 피해야 피서인 것인데 바다에 왔으니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타던 아버지는 부득불 갯바위 위에 홀로 섰다. 붕어 낚시도 아니고, 저 멀리 줄을 던지는 릴낚시 이거늘, 시끄럽다고 물고기가 도망간다는 논리에 10살 갓 넘은 우리 형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물고기는 잡히지 않고 우리가 입을 삐죽거릴 무렵이 되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밥 먹자!”


갯바위 멀리, 한적한 공터 차양막 아래에서 우아하게 쉬던 어머니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는 “이제 좀 잡히려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못이긴 척 낚시대를 거두었다. 그쯤 우리는 이미 차양막 아래 들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윽고 펼쳐질 만찬의 면면을 보면 굳이 왜 바닷가까지 와야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고기 또 고기. 고기가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는 동생과 아무래도 물고기 보다는 육고기가 좋다던 서울 출신 아버지(그런데 왜 낚시를?) 덕분에 반찬의 태반은 고기였다. 그 양상을 보며 나는 이런 합리적인 질문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고기 먹으면 안 돼요?”




굳이 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물고기는 아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고를 해야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한 화로에 번개탄을 올리고 불을 당기면 그 말은 쏙 들어갔다. 그 불길을 보노라면 어린 나의 머릿 속에는 이미 구워진 고기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준비한 삼겹살, 제육, 불고기를 순서대로 올리고 ‘치치직’하는 불길 닿는 소리와 야생의 본능을 자극하는 고기 익는 냄새가 요염하게 공기를 가르면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모든 욕망이 식욕으로 변했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 한국의 초여름, 시대가 바뀌어 그때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날이 좋을 때 산과 들로 나가는 풍습은 건재하다. 먹는 것 또한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이 딱 드러맞는다. 언제까지 삽겹살에 쇠고기 등심만 먹을 것인가? 하긴 그것이 마치 아버지의 노래방 18번처럼 자주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남녀노소 좋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좋은 말이라도 자주 들으면 질리듯, 이왕 시간을 내어 산과 들로 나간다면, 매번 집에서, 혹은 길거리 식당에서 뭔가가 달라야 조금 더 그 맛이 살 것이다.



쇠고기 대신 양갈비




양갈비는 양꼬치 집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근래 이마트나 SSG 마켓 같은 대형 마트에 가면 양갈비 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아직 호주나 영국처럼 본격적으로 파는 것은 아닐지라도 매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여전히 양고기는 냄새가 나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맛있다”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뿐이다. 주방에 있을 때 소고기는 ‘질렸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요리사들이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달려들던 것은 바로 양갈비였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비록 사이코패스에 살인마 이지만 감미안이 뛰어났던 미식가 살인마 랙터 박사가 선택한 식사 역시 양갈비였다. 양갈비도 뜨겁게 달군 불판에서 겉만 살짝 지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로 먹어야 제 맛이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의 대부분은 ‘램(lamb)’으로 한 살 이하의 어린 양이다. 어린 것 특유의 연한 식감이 입 안에서 녹아들고 희미하게 풀냄새가 나는 육향을 즐기면,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이 흘러나오는 듯 목가적이고, 식욕이 돋을라치면 어린 양을 잡아 놓고 축제를 지내던 저 옛날로 돌아간 듯 야성이 끓어온다. 양고기에 곁들이는 소스도 돼지고기나 소고기와는 다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민트젤리다. 양고기 매대 한 켠에 같이 팔고 있을 확률이 높은 민트젤리의 달달한 박하향은 양고기는 궁합이 좋다. 요구르트에 민트잎을 다져서 넣고 올리브유, 소금 등으로 간을 하면 그것 역시 훌륭한 양고기 소스가 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기가 있으면 술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양고기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와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목을 하기 때문일까? 양고기에서는 프랑스 요리에 흔히 쓰이는 허브 향이 나는데 이 향은 와인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종류다. 덕분에 프랑스 론 지방에서 나는 ‘샤토네프뒤파프’ 같은 와인을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 왜 본토 프랑스 사람들이 이리도 양고기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꼭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을 먹어야 한다면


그러나 누구 한명은 양고기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몽골 유목민도 아닌 마당에 양고기 몇 킬로그램을 먹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 굽지 않으면 먹는 것 같지 않다는 전통주의자도 있기 마련이다. 고추장 쌈장도 훌륭한 소스이지만 이 두 개를 곁들이는 순간 결국 상추쌈이 필요하고 소주가 뒤따르게 된다. 조금만 준비를 한다면 캠핑을 나가서도 이국적인 소스를 맛 볼 수 있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침미추리 (chimichurri)소스다. 브라질 원산의 이 소스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진 고수, 오레가노, 샬롯, 파슬리, 올리브유, 레드와인식초, 마늘, 레몬즙을 적당량 넣고(레시피에 이런 말을 쓰면 반칙 같지만 정말 그렇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된다. 산미가 있어 깔끔한 이 소스는 한 여름 소나기처럼 청량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둘다 잘 어울린다. 만약 요리에 자신이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소스가 있다. 바로 홀렌데이즈 소스다. 버터를 녹여 위로 뜬 유분을 제거한 클래어파이드 버터(clarified butter)와 후추와 샬롯을 넣고 졸인 식초로 만드는 이 프랑스 소스는 마요네즈의 따뜻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만드는 방법은 조금 까다롭다. 먼저 화이트 와인 식초(업장에서는 샴페인 식초를 쓴다)에 으깬 통후추와 샬롯(shallot)을 넣고 절반 정도로 졸인다. 여기에 동량 정도의 몰을 섞고 중탕기에 올린 뒤 녹인 버터를 조금씩 부어가며 거품기로 채를 치면 되는데 이 작업이 까다롭다. 많은 양을 만드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으니 이왕이면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 만약 제대로 만든다면 별 달린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다. 녹여 거른 버터의 풍부한 맛과 식초의 산미가 맛의 중심을 잡고 후추의 매콤함이 뒤를 받친다. 여기에 구운 고기를 찍어 먹으면 버터로 만든 소소가 이리 맛있는지, 왜 프랑스 미식이 위대한지 실감할 수 있다.



샐러드 드레싱, 부디 직접 만들자




마트 매대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것이 샐러드 드레싱이다. 건강에 좋다며 지방과 당이 들지 않았다고 붙여놓은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특히 발사믹 드레싱이라고 하여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섞어 놓은 것을 볼 때면 지긋지긋한 기분까지 든다. 오히려 심플하게 올리브유 3에 레몬즙 1, 마늘, 디종 머스타드, 1/4의 설탕과 약간의 소금을 섞으면 보다 산뜻하고 맛있는 드레싱을 만들 수 있다. 흔히 프렌치 드레싱이라고 부르는 이 소스와 구운 닭가슴살, 로메인 상추, 파마산 치즈 등을 섞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샐러드가 된다.



한낮에 즐기는 칵테일




뜨거운 태양이 쬐는 낮이라면, 혹은 열기가 가시지 않은 밤이라면 간단히 만든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클래식 칵테일, 진토닉이 가장 만만하다. 소나무 과의 주피터 열매로 만드는 진(gin)은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리쿼다. 진 때문에 벌어진 알콜 중독에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던 전력이 있을 정도다. 이 진은 무엇보다 여름에 마시면 좋다. 진 5에 라임주스 1, 그리고 시럽 1을 넣고 쉐이킹한 김렛(gimlet)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칵테일로 레시피가 매우 간단하지만 그만큼 맛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하여 바텐더의 실력을 알아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놀러 나와서 어깨에 각 잡을 필요는 없다. 맛있는 진토닉 만으로도 피크닉의 격은 몇 순위 올라간다. 취향에 맞는 진 브랜드를 고르고 달지 않은 헨리스 같은 좋은 토닉 워터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진토닉에 다다를 수 있다. 오이를 얇고 길게 썰어 넣고 민트잎 몇 개를 올리면 더 좋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현재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태양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쓰는 것,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지나간 과거 아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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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주방의 뼈와 살, 팬과 기름
정동현
#정동현


주방에서 가장 흔한 부상은 자상(刺傷)이다. 칼로 베이고 찔려서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난다. 그 다음은 화상(火傷)이다. 주방은 모든 것이 뜨겁다. 오븐 속 불길은 꺼질 일이 없다. 모든 주방 기기는 잠재적으로 뜨거운 상태다. 방심한 나머지 맨손으로 무언가를 잡는다면 그날 손바닥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래서 늘 타올을 겉대어 물건을 잡는다. 필수적인 습관이다. 그러나 뜨거운 기름은 언제든 튈 준비를 하고 있다. 타올을 겉대어도 기름은 사방팔방으로 튀어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주방 어디에나 있는 이 기름은 주방의 살이다. 그리고 모든 주방인은 잠재적 염좌(捻挫)환자다. 주방은 모든 것이 뜨겁다, 라는 말을 이쯤에서 수정해야 한다. 주방의 모든 물건은 뜨겁고 무겁다. 믹서에는 마력(馬力) 단위로 표시되는 출력의 모터가 달려있고 밀가루와 설탕 포대는 기본이 20kg이다. 무엇보다 주방의 뼈와 같은 팬이 무겁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방의 뼈와 살, 팬과 기름이다.



팬. 그 무거움에 대하여





“윽.”


처음 주방에서 팬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한국 남자는 군대 다녀온다며 으시대던 나는 없었다. 멋을 부리며 팬 몇 개를 한 손으로 들어올렸을 때 손목이 묘한 각도로 꺾였다. 그만큼 팬은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주방의 팬은 무겁다. 주방에서 어머니들이 쓰는 가벼운 코팅 팬은 볼 수가 없다. 왜일까?


팬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많은 열을 품을 수 있다. 말인즉슨 팬이 쉽게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팬이 무거울수록 팬 밑바닥이 두껍다. 그 말은 또 무엇인가 하니 팬 밑바닥이 골고루 데워진다는 것이다. 싼 팬은 보통 얇고 가벼운데 이런 경우 팬은 쉽게 식는다. 화기의 열기가 얇은 밑바닥을 뚫고 직접적으로 음식에 닿기 때문에 두꺼운 팬보다 음식이 타기가 쉽다. 두꺼운 팬은 뜨거워지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뜨거워지면 잘 식지 않는다. 화기의 열기도 직접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팬 전체를 달구어 간접적으로 음식에 닿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타지 않는다. 물론 가벼운 팬, 얇은 팬이 필요할 때가 있다. 팬이 얇을수록 빨리 달구어진다. 급히 요리를 해야 할 때 용이하다는 뜻이다. 더불어 팬이 얇기 때문에 열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이점을 살린 팬이 바로 중화냄비인 웍(wok)이다. 웍의 밑바닥 두께는 3mm가 채 안 된다. 이 얇은 두께 아래 섭씨 1000도 가까이 되는 프로판 가스불을 쏴주고 웍을 돌리면 우리가 열광하는 ‘불맛’이 난다. 그러나 가정에서 중국집에서 맛보는 불맛을 내기 쉽지 않다. 팬이 얇더라도 화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재료를 넣으면 온도가 쉽게 떨어진다. 팬 위 온도가 100도 언저리로 떨어질 때 재료는 볶아지는 게 아니라 자체 수분으로 삶아진다. 해결책은 역시 두껍고 무거운 팬을 쓰는 것이다. 무쇠팬처럼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팬을 10분 넘게 뜨거운 불에 달구어 요리를 하면 맛이 아예 다르다. 팬의 무게 말고도 열전도율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까지 따지기에 인생에 신경 쓸 것이 한 둘인가? 점심 메뉴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는 시대. 간단하게 생각하자. 무거운가? 가벼운가? 슬프게도 가벼우면서 열을 많이 품는 팬은 없다. 영국 저널리스트 비 윌슨이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옮겼듯 “불가능이 없는 이 좋은 세상에도 완벽한 냄비용 금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팬에도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 만능팬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벼운 팬과 무거운 팬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무거운 팬이 더 좋다.


그렇다면 왜 팬이 쉽게 식는 것은 좋지 않은가? 볶음이나 튀김을 할 때 재료가 갈색이 되도록 구워야 맛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색은 맛의 단서다. 단백질 조직이 120도가 넘는 열을 받으면 단백질은 갈색으로 변한다. 이것이 마이야르(Maillard)현상이다. 이 마이야르 현상은 아미노산과 열의 화학반응이고 그 결과물은 우리 인류가 좋아하는 풍미다. 그럼 왜 그 구운 맛에 끌릴까? 하버드 대학 인류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인류는 화식(火食)을 통해 음식 섭취 속도와 양이 패러다임 전환적으로 늘고 그 초과된 영양 공급으로 두뇌가 진화했다고 밝힌다. 어찌되었든 이 갈색은 이미 밝힌 것처럼 섭씨 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발생한다. 만약 온도가 낮게 되면 재료에 있는 물기가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끓는다. 팬이 가벼우면 보통 그렇다. 그래서 나는 팬을 고를 때 직접 들어보고 고른다. 한 손으로 들기 힘들면 오케이. 온라인으로 고를 때면 상품평을 본다. ‘너무 무거워서 쓰기 힘들어요’라는 평이 있으면 딱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는 이유





기름을 치면 맛있다. 대부분의 맛과 향 분자가 수용성이 아닌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에 기름을 두르는 이유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역시 온도와 관계가 있다. 기름은 팬 위의 재료와 팬 사이에 온도 전달자 역할을 한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걀 후라이를 해보면 달걀이 팬에 달라붙고 쉽게 탄다. 왜냐하면 팬의 뜨거운 열이 매개체 없이 바로 달걀에 닿아서 그렇다. 기름은 재료 전체에 골고루 온도가 적용되도록 돕고 팬이 가진 열의 완충 작용을 하여 타는 것을 막는다(물론 너무 뜨거워지면 재료는 탄다). 더불어 버터와 같은 기름은 풍미를 더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름을 써야할까?


올리브유는 일반적으로 가열 조리에 쓰지 않는다. 이유는 올리브유의 성분이 열에 약해서다. 세계의 모든 요리사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물어보는 과학적 조리의 아버지, 화학자 해롤드 맥기에 따르면 올리브유를 일정 온도 이상 가열하면 본연의 향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굳이 가열 조리시에 좋은 올리비유를 쓸 필요는 없다고 밝힌다. 더불어 개성이 강해 마구잡이로 쓰게 되면 맛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과유불급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리브유는 비싸다. 굳이 그 비싼 올리브유를 별 효용 없이 쓸 필요는 없다. 대신 좋은 올리브 오일은 음식의 마무리에 혹은 드레싱으로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낮에 가열 조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올리브유도 품질에 따라 발화점이 다르다. 품질이 좋은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섭씨 22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주방은 땀과 기름이 현현(顯現)하는 실존의 공간이자, 냉정한 숫자와 물리가 함께 하는 과학의 장이기도 하다. 오늘 당신이 한 요리가 맛이 없는 이유는 소질이 없어서도 아니고 날이 이상해서도 아니다. 충분히 무거운 팬을 쓰지 않았고 충분한 양의 기름을 두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의 팔 근육이 견딜 수 있는 질량이 일정 수준 이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몸과 머리, 뜨겁고 차가운 것이 함께 하는 이 주방의 이야기가 늘 흥미롭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요리는 그 맛으로 화답한다. 팬과 기름, 이 두 가지는 그 이야기는 충분히 귀 기울일만 하다. 혹시 아는가? 당신이 무거운 팬을 들어올려 만든 요리에서 프로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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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코스요리를 대하는 셰프의 자세
정동현
#정동현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별로 다르지도 않았다. 모두 핀셋을 들고 조그만 이파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정해진 위치에 놓았다. 완벽한 이파리, 시들어서도 안 되고, 너무 커서도 안 된다. 마치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 마냥 허리를 굽히고 땀을 흘렸다. 그 뒤로 다른 접시들이 줄 지어 있었다. 내가 맡은 것은 앙트레, 지체할 수 없었다.





“뭐 도와줄까?”


“오케이, 내 뒤로 소스 뿌려.”


셰프 한 명이 도와주겠다고 내 섹션으로 넘어왔다.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접시를 캔버스 삼아 예술적 감성을 펼칠 기회는 없다. 플레이팅도 다 정해져 있다. 헤드셰프가 지난 번에 보여준 플레이팅의 사진이 옆에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마음대로 플레이팅을 고쳤다가는 주방에서 가장 흔한 단어, F 어쩌구를 듣게 될 것이다. 물론 원본 보다 예쁘면 상관 없을테지만 그 찰나에 그런 ‘창조’를 하는 것 정말 쉽지가 않다. 필요한 것은 창조가 아니라 완벽이다. 국밥집처럼 밥에 국물을 부어주면 되는 것도 아니다. 접시 하나에 올라가야 하는 것들이 대 여섯 개가 기본. 하나라도 빼 먹지 않기 위해 신경이 곤두선다.


밖으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오픈 주방이라 우리가 작업하는 것들이 다 보였다. 손님들은 신기한 표정, 처음에야 손님이 눈에 들어오지 일 하다보면 봬는 게 없다. 밭을 메는 아낙처럼 허리가 아파 온다.



코스 요리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셰프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철두철미함,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도가 넉넉한 카드, 그리고 세 시간을 마주 앉아 있어도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상대다. 이성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차림새는 정장이다. 꼭 턱시도를 입을 필요는 없지만 청바지 차림은 곤란하다. 예약도 필수다. 유명한 곳은 아마 몇 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치금을 받기도 한다.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당일 취소인 경우에도 예치금은 환급이 안 된다. 그러니 알박기 하듯 예약을 할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당신이 가는 곳은 레스토랑, 먹으려는 식사는 정찬 코스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갑을 털고 셰프는 모든 아이디어를 짜낸다. 어딘지 모르게 있어보이는 이 비싸고 긴 코스 요리의 시작은 19세기 러시아였다. 러시아 귀족들이 음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씩, 코스로 내는 문화가 프랑스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정통 프랑스 정찬은 아뮤즈 부쉬-앙트레-수프-샐러드-생선 요리-고기 요리-프리 디저트-가금류 요리-치즈-디저트-커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법처럼 꼭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돈을 내는 대로, 셰프 마음대로 얼마든지 코스를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역사 상 가장 긴 코스는 21개에 달했다고 한다.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은 입 안의 기쁨이라는 뜻의 아뮤즈 부쉬 (Amuse Bouche)다. 레스토랑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음식으로, 작고 예쁘며 재기 발랄해야 한다. 대화의 포문을 여는 작은 농담이요 가벼운 키스. 냉채 류 샐러드나 작은 튀김이 흔히 쓰인다.


님의 입 속으로 아뮤즈 부쉬가 들어가는 동시에 본 게임이 시작된다.


“퍼스트 코스, 테이블 10번!”


웨이터가 주문을 넣으면 주방에 있는 출력기에서 영수증이 나오듯 주문서가 튀어 나온다.


“트득트득”



장거리 달리기, 우아한 코스 레이스의 시작


파블로프의 개처럼 셰프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일분 일초가 아쉽다. 코스 사이 간격이 길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긴 코스가 더 늘어지기 때문이다. 앙트레가 빨리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욕하는 요리사로 악명 높은 영국 요리사 고든 램지는 “앙트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12분 내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가 늦으면 모든 게 늦어진다. 손님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와 일단 뭐라도 먹은 것은 체감 시간이 다르다.





헤드셰프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기 전, 앙트레가 손님 테이블에 놓여졌다. 남자와 여자는 조개 껍질을 들고 ‘후르릅’ 소리를 낸다. 앙트레의 기본, 굴이다. 프랑스의 영향이다. 생굴을 최고로 치는 그들의 문화 덕에 제철이 아닌 이상 굴은 앙트레의 주전 선수다. 굴이 아니라도 된다. 곧이어 나올 메인을 기대하게 만드는 은은하고 짜릿한 전희, 입맛을 돋우고 무겁지 않은 것을 내놓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간이나 고기를 갈아 익히고 식힌 파테(Pâté)와 프랑스 식 육회인 타르타르(TarTar), 조개 관자와 같은 해산물, 메추라기 같은 작은 가금류도 많이 쓰인다. 일식의 영향으로 ‘사시미’도 흔히 보인다.


그런데 두번째 코스가 나가고 나서 세번째 코스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방 문제가 아니다. 헤드셰프가 웨이터에게 말한다.


“썅, 정말 늦게 먹네. 확인 좀 해봐.”


코스가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짠 것 마냥 두 번째 코스에서 막혀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 코스가 밀리면 회전이 늦게 되고 마감 시간도 늦춰지며, 나중에 한 섹션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완급이 중요한 이유는 코스요리는 장거리 달리기이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그리고 지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코스를 짜는데 원칙이 있다면 식재료나 소스를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편하자고 같은 재료를 연달아 쓰면 제대로 된 코스가 아니다. 튀긴 음식이 계속 나와서도 안 되고 구운 음식이 계속 나와도 안 된다. 한 번은 부드럽게, 한 번은 바삭하게, 한 번은 노릇하게, 식감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마치 강 약 중 강 약으로 이어지는 5/8 박자처럼 리듬을 타고 식사가 절정으로 향해 간다. 그러나 그전에 거쳐야 할 것이 있다.


프리 디저트 (Pre Dessert), 메인 시작 되기 전 잠깐의 휴식, 식사의 터닝 포인트다. 프리 디저트란 이름처럼 정식 디저트가 아니다. 입맛을 정리 하기 위해 메인 요리 전에 나오거나, 말 그대로 디저트로 전에 나와 달지 않은 메인에서 디저트의 단맛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달지 않게, 보통은 오이나 셀러리 등으로 만든 소르베가 나온다.





메인도 육해공, 이렇게 세 개는 나와야 테이스팅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갑각류가 하나 더 나올 수도 있고, 양고기와 쇠고기가 함께 나올 수도 있다. 큼지막한 고깃 덩어리를 기대하지는 말자. 메인이 시작되기 전에 먹은 코스 갯수가 많게는 다섯 개, 메인도 최소 두 개다. 개별 요리의 양이 적다면 익는데 걸리는 시간도 적게 들고 조금 더 섬세하게 조리할 수 있다.


이윽고 핏기가 감도는 고기가 손님의 입속에 들어간다. 첫 번 째 절정, 앙트레와는 다른 크고 강한 맛이다. 메인에서 비프 스테이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스테디 셀러요 베스트 셀러다. 그러나 비프 스테이크는 특별한 날의 정찬으로는 너무 평범하다. 나온다 하더라도 최고급 와규(Wagyu) 정도가 아닐까? 나머지 자리는 어린 양고기와 섬세한 생선 요리,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이라면 어김없이 달달한 살점의 랍스터가 차지할 것이다.


메인이 자리를 비워주고 나면 이제 치즈 차례다. 정찬이라는 개념 자체가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다보니 치즈는 필수다. 원산지와 종류 별로 나눠진 십 여 종의 치즈 중 몇 가지를 고르면 웨이터는 그 자리에서 작은 덩이로 잘라 준다. 사람의 체취를 닮은 치즈 향이 레스토랑에 가득하다. 그 향은 밝기보다는 어둡고, 낮이기보다는 밤의 향이며,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것이다.


치즈를 떼어 먹는 손님들의 얼굴도 상기 되어 있다. 남녀의 속삭임은 은밀하지만 열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열기는 차오르지만 반대로 주방은 마감을 할 시간, 메인을 내던 그 열기가 사그라든다. 셰프들은 남은 식재료를 정리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주방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고 오는 이들도 있다.



긴 정찬 레이스를 마무리하다


“어땠어?”

 

“괜찮아.”





다들 말수가 별로 없다. 얼굴은 벌겋고 몸은 땀에 절어 있다. 몰래 담배 피는 고등학생처럼 빠르게, 그리고 끝까지 꽁초를 빨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바톤 터치를 하듯 디저트를 내는 페이스트리 주방이 한참 바빠진다. 코스의 후반부, 아직 강렬한 한 방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번 째 절정, 디저트다. 디저트만 담당하는 헤드셰프를 따로 둘 만큼 그 비중은 절대적이다. 머리 끝까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요리가 잊혀질만큼 달고 화려하다. 메인요리처럼 두 세 번에 걸쳐 나오는 디저트, 그 중 초코렛으로 만든 요리는 무조건 나온다. 장담한다. 그것이 케이크든 수플레든 확실하다. 수플레도 마찬가지로 빠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먹은 코스에서는 안 나왔다’며 항의는 하지 말길 바란다. 가끔은 주전이라도 쉬는 경기가 있는 법이다.


디저트 다음에도 나올 코스가 있다. 프티 뽀(Petit Four), 작은 오븐이란 뜻으로 마카롱, 초코렛과 같이 한 입에 들어갈만한 단 과자가 나온다.


“아아.”


작은 보석 같이 예쁜 것들을 입에 넣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토록 황홀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프티 뽀까지 마치면 차나 커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기본은 에스프레소,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음식의 잔해를 없애는, 저 어두운 밤 하늘처럼 까맣고 독한 것이다. 커피를 마실 쯤이면 디저트 쪽을 제외한 셰프들은 이미 정리가 끝내고 퇴근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모두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이제 일어날까?”


웨이터는 정중하게 계산서를 테이블에 놓아둔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면, 레스토랑에서는 따로 준비한 선물을 손님에게 건내기도 한다. 레스토랑의 로고가 찍힌 간단한 소스나 주전부리가 보통이다. 먹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뒤다. 밖으로 총총히 나서면 거리는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거나, 혹은 저 찬란한 기억과는 다른 완전한 적막이다.


“내일 보자.”


그리고 마침내 셰프들도 주방을 나선다.


“휴우.”


모두 고생이다. 손님은 먹느라 힘들고 셰프들은 그 많은 코스를 내느라 힘들다. 배를 채우자면야 김밥 한 줄에 컵라면 한그릇으로 충분하다. 코스 요리에 내는 값이면 김밥 몇 십 미터는 살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고급 레스토랑의 이익률은 5%도 안 되는 곳이 허다하다. 돈보다는 ‘최고’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셰프와 웨이터들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고, 그렇게 아낀 돈은 모두 최고급 재료와 최신 주방 기기를 사는데 쓰인다.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치가 하룻밤 몇 차까지 술을 마시며 쓴 돈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먹는 그렇고 그런 식사를 가볍게 압도하는 스케일, 수 십 명의 스테프가 힘을 모아 만들어낸 식문화의 정점, 3, 5, 8 과 같은 코스 숫자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 드라마다.


어쨌든 우아한 음식을 만들었던 나는 배가 고프다. 밑준비에 바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자정에도 여는 식당에 들른다. 코스는 아니다. 한 접시에 푸짐하게 나오는 셰프들의 소울푸드다. 크게 외친다.


“빅맥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