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Home > 정동현
Home > SSG LIFE/COLUMN
정동현 셰프의 음식을 쓰다
이탈리아 여행 대신
서울 이탈리안 레스토랑 BEST3
정동현
#정동현


이탈리아에서 처음 먹은 파스타는 볼로네제 파스타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있는 그 볼로냐에서 유래한 볼로네제 파스타는 흔히 ‘미트소스’라고도 불린다. 만드는 방법을 요약하면 고기와 양파, 당근 등을 볶고 토마토를 넣어 푹 우려낸다고 보면 된다.



볼로네제 파스타는 몇백만에 달했던 미국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토마토, 치즈, 고기의 조합은 감칠맛을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여기에 파스타를 버무리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디서나 친숙한 ‘면 요리’가 된다. 미국에 널리 퍼진 볼로네제 파스타는 해방과 6.25를 거친 한국에도 미군 부대를 통해 상륙했다. 풍요로운 미국에서 소스와 고기는 흥건해졌고 한국에 와서는 파스타를 국수처럼 푹 익혀냈다.


이탈리아에서 먹은 볼로네제 파스타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소스에 감칠맛이 엄청나게 나지도 않았고, 고기의 질도 좋지 않았다. 허브도 살짝, 소스도 살짝, 파스타를 비빌 정도로만 나왔다. 다른 파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인당 한 접시씩 먹는 파스타의 양은 밥 세 공기 정도 되는데 소스는 간장 종지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파스타 면은 뻑뻑하고 간은 강하며 양도 많아 도저히 완식할 수 없을 때도 잦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눈을 감으면 그때 먹던 파스타들이 떠오른다. 소스가 흥건하지도, ‘건더기’가 많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그들이 먹는 파스타에 있었다. 재료의 간결함, 배를 부르게 하는 푸짐함, 격 없이 풍성한 식탁을 한가득 차려놓고 가족들이, 연인들이 세련되게 차려입고 맞이하는 저녁의 한가한 날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끈끈한 정, 오랫동안 가난했기에 더욱 소중했던 식사, 그 시절 배고픔을 상징하는 산더미 같은 파스타, 언제나 사랑을 노래했던 열정적인 민족.



이것이 이탈리아 본토의 맛, 청담동 Terra13



청담동 Terra13은 이탈리아 요리사 ‘소르티노’의 레스토랑이다. 그의 음식을 관통하는 철학은 현지의 재료를 사용하며 절대적으로 확실한 ‘간’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Terra13 메뉴판에는 지리산 흑돼지 같은 익숙한 이름이 산재한다.


이탈리아식 소금간의 정석을 맞춘 Terra13의 요리


음식 맛을 보면 쨍하게 떨어지는 소금간이 중심에 있다. 한국이나 일본은 소금의 역할보다는 단맛, 감칠맛, 매운맛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국물 요리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탈리아는 대신 소금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비교적 적은 양의 소스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에 단위 중량 당 염도도 높다. 그러나 국물을 마셔대는 한국 일본에 비해서 절대적인 염분 섭취량은 낮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한국 사람이 이탈리아 본토 파스타를 먹으면 ‘짜다’는 반응이 십중팔구다.


Terra13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식전빵과 전채요리, 파스타


그래서 한국 이탈리아 음식점은 소금간을 낮추는 것이 하나의 필승전략이 되었다. 슴슴한 이탈리아 요리라는 말은 달지 않은 디저트와 동격임에도 그렇다. Terra13은 이런 면에서 완고하다. 식전빵에는 입자가 큰 소금과 올리브유가 발라져 있다. 오븐에서 살짝 구운 빵을 한 입 먹으면 달달한 뒷맛이 느껴지는 소금 맛이 크게 다가온다. 덩달아 와인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게 된다. 모든 메뉴가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이 집에서는 특히 전채와 파스타류를 섭렵해보는 것이 좋다.


대표 메뉴인 ‘블랙 트러플 페스토 파케리’는 일종의 크림 파스타다. 크림을 쓴다는 면에서 완벽한 정통 이탈리안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부대찌개를 한식으로 봐야 하냐는 논쟁처럼 음식이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이 파스타를 먹으면 허브 타임(thyme)을 우려낸 진득한 크림과 트러플의 오묘한 향기, 그 모두를 아우르는 소금간에 입맛이 쭉 돋는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와인잔을 비우게 되고 빈 접시는 늘어만 간다.



맛도 멋도 더 깔끔하게, 상수동 브렛피자



상수동의 ‘브렛피자’는 상호처럼 피자가 주다. 이탈리아에 온 듯한 Terra13과 달리 (어둑하고 소품이 많다는 뜻이다) 브렛피자는 주인의 성향처럼 단순하고 정갈하다. 말끔히 정돈된 실내처럼 음식 역시 잡티 하나 없이 균형을 이룬다. 보통 나폴리 피자는 500도 가까이 되는 고온의 오븐에서 2분 안팎으로 빠르게 익힌다. 브렛피자는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 굽는 시간을 오래 가져간다. 빵처럼 구운 맛과 단단하고 바삭한 식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볼 수 있을법한 브렛피자의 화덕


이탈리아 삼색 국기를 본따 만들었다는 마르게리타 피자는 주인장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음식이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먹었던 마르게리타 피자는 분명 흠잡을 곳 없었지만 채 날아가지 않은 수분 때문에 피자 도우 밑이 흐느적거렸다. 나폴리 피자집 대부분이 그렇다. 브렛피자에서 먹은 마르게리타 피자는 수분이 고르게 날아가 질척거리지 않았다. 대신 빵을 구웠을 때 나오는 고소한 향, 조밀한 질감, 산미가 확실히 살아있는 토마토, 촉촉한 모짜렐라 치즈가 하나로 뒤엉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맛을 냈다.


브렛피자의 대표 메뉴 마르게리타 피자와 가을 한정 메뉴 무화과 피자


가을 한정으로 내놓는 무화과 피자 역시 이 집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메뉴 중 하나다. 무화과에 설탕을 뿌리고 토치로 그을려 단맛을 최대한으로 뽑아낸 다음 스페인 산 하몽을 올리고 구워낸 이 피자는 단맛과 짠맛, 도우의 구수한 향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즉흥적이기보다는 철저히 조율되고 계산된 맛이다.



이탈리아를 그대로, 이태원 일키아소



만약 이탈리아 본토의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 모두를 원한다면 이태원 ‘일키아소’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Terra13처럼 이탈리안 요리사가 주방에 서 있는 이곳은 주문도, 요리도 모두 이탈리아어로 한다. 낮은 천장, 가득한 소품, 아늑한 조명, 친절한 종업원, 이 모두가 이탈리아에서 목도한 것들이다.


일키아소의 프로슈토 햄과 파스타


주문을 구령처럼 여겨 그때그때 잘라내는 프로슈토 햄은 오래된 불쾌한 냄새 없이 갓 딴 와인처럼 상큼한 향기가 난다. 정확한 몸놀림으로 볶아낸 파스타는 소스와 면이 하나가 된 것처럼 찰싹 붙어 있다. 그 ‘하나’를 입에 넣으면 마치 애정 어린 연인의 스킨십처럼 농밀한 감각이 온몸에 퍼진다.


치즈의 풍미가 살아있는 파르미자노 리소토


이 집에서 꼭 시켜야 하는 메뉴는 ‘파르미자노 리소토’다. 트럭 뒷바퀴만 한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를 절반으로 자른 뒤 뜨겁게 익혀낸 리소토를 올린 뒤 손님 앞에서 비벼낸다. 감칠맛이 실타래처럼 엉킨 치즈 범벅이 된 리소토를 접시에 올린 다음에는 그 접시 밑을 툭툭 쳐 평평하게 만든다. 그러면 리소토가 조금씩 퍼지는데 이때 죽처럼 흐물거려서도 안 되고 또한 너무 뻑뻑해서 탑처럼 쌓여 있어도 안 된다. 그리고 남은 일은 리소토를 입에 넣는 것뿐이다. 그 흔한 건더기도 없다. 오로지 소스와 쌀 뿐이다. 그러나 그 하모니는 복잡하고 잡다한 구성을 저 멀리 뛰어넘는다. 너와 나 사이에는 그 무엇도 필요 없듯이, 그 간결한 조합 앞에 사람들은 저절로 웃음을 짓고 붉은 와인을 모자름 없이 따른다.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것은, 모자름 없는 애정이었다. 풍족하지 못하더라도 아낌없이 주는 마음이었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바라는 모든 것이 그 작은 접시 위에 있었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Home > SSG LIFE/COLUMN
정동현 셰프의 음식을 쓰다
그리운 추억의 맛, 노포 중국집 BEST3
정동현
#정동현


한국의 전통음식은 불고기일까? 세계에 소개할만한 음식은 김치일까? 그러나 정작 불고기를 자주 먹는 한국인은 드물다. 앞에서는 클래식을 듣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메탈리카를 즐겨듣는 내 취향처럼, 한국의 자랑스러운 음식이 아닌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을 꼽자면 당연 ‘짜장면’이 맨 앞에 서 있다.



중국 음식이라고, 때로는 ‘짱깨’라는 비속어를 쓰며 낮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짜장면 한 그릇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생각해보면 이보다 가까운 음식이 없고 이보다 특별한 요리가 없다. 그리고 이 짜장면을 파는 오래된 중국집들을 보면 나이 든 어르신의 굽은 등을 보는 것처럼 애잔한 마음이 든다. 뼈는 휘고 살은 말랐지만, 여전히 근육이 살아 있다. 땀을 흘리며 느리게 걷지만 멈추지 않는다.



색바랜 간판을 달고 반들반들한 테이블 위에 간장과 식초를 올린 옛 중국집들도 마찬가지다. 중화 냄비를 잡는 노인은 주문이 멈출 때마다 앉을 곳을 찾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익숙하고 빠른 몸짓으로 벌건 불 앞에 선다. 가마솥을 뒤집은 듯 커다란 중화 냄비는 탈을 쓴 곡예사가 사자춤을 추듯이 위아래로 몸을 떨며 흔들린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웍의 숨결(Wok Hei, 鑊氣)’이라고 하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탄생한다. 냄새를 맡으면 채 식지 않은 주방의 열기를 타고 상긋한 채소와 부드러운 고기, 탄력 있는 면의 물성이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것 같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수십 년간의 노동에 익숙해진 나이 든 육신의 향기다. 그 향기를 맡기 위해 나는 서울 시내의 낡은 간판을 쫓는다.



광화문 뒷길의 50년 터줏대감, 동성각



그 발걸음이 가장 먼저 닿는 곳 중 하나는 광화문 ‘동성각’이다. 세종문화회관 바로 뒤 좁은 골목에 있는 동성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쉽지 않다. 널따란 홀이 있는 1층과 방들이 좁게 들어찬 2층이 있고 홀 구석구석 마다 홀로 식사를 하는 이들이 있는 그곳이라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메뉴는 전형적인 중국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집의 묘미는 요즘 무슨 무슨 맛집처럼 하나만 딱 먹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몇몇과 함께 테이블 하나를 잡고 메뉴를 여럿 시켜야 한다.



오래된 집이 보통 그렇듯 이 집도 메뉴 뭐 하나 빠지지 않지만 그래도 닭고기를 튀겨 마늘소스를 곁들인 뒤 양상추와 함께 내는 유린기, 그리고 고기와 해삼 등을 얇게 채 쳐서 빠르게 볶아낸 유산슬은 시켜보는 편이 좋다. 바삭하게 튀긴 유린기 닭튀김의 겉면은 아삭거리고 고기는 부드럽게 씹힌다. 양상추는 튀김옷과 함께 왈츠를 밟듯 경쾌한 식감을 이루고 달고 짭조름한 마늘소스는 변박자로 요리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칼질과 빠른 타이밍에 양념을 넣고 볶아야 하는 기술이 중요한 유산슬은 의외로 제대로 하는 집이 드문 요리다. 사람들의 취향은 탕수육과 같은 튀김 요리로 쏠리고 있고 덕분에 유산슬과 같은 볶음 요리는 아예 취급하지 않는 곳도 많다. 그러나 간장이 뜨거운 열을 만나 캐러멜과 같은 독특한 향기를 만들고 해삼, 돼지고기, 아스파라거스 같은 재료들이 소스의 힘에 하나의 요리로 만들어지는 모습은 중식당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기다란 중화풍 젓가락으로 중국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요리를 나누어 먹는 정취 역시 그렇다.



관광지의 소음도 비껴가는 장인의 맛, 혜빈장



광화문을 떠나 서쪽으로 멀리 길을 떠나면 동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는 ‘혜빈장’에 다다른다. 조악한 장식물과 뜨내기손님을 끄는 세트 메뉴가 장악한 인천 차이나타운은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 먹을 것은 드물다. 그곳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 무심히 콘크리트 도로가 깔렸고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으며 잠시 허리를 펴며 쉬는 곳에 혜빈장이 있다.


페인트칠한 단층 건물에 문을 당겨 들어가면 안에는 테이블 몇몇이 단출히 놓여 있을 뿐이다. 주방에 서 있는 요리사는 한눈에도 은퇴를 앞둔 것처럼 보이고 홀에서 손님을 맞는 이 역시 일반 정년을 훌쩍 넘어선 것이 확실하다. 이곳은 메뉴가 다른 곳처럼 길지 않다. 손님이 적은 수가 아닌 것이 첫째 이유, 혼자서 주방을 보는 노구(老軀)가 이겨낼 수 있는 노동의 한계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오는 음식을 보면 타협이 이루어지는 지점은 낮지 않다. 주방을 홀로 책임지기 때문에 주문이 밀리면 꽤 기다려야 한다. 바쁠 때 후루룩 먹고 가는 식당은 아니다. 하지만 바다를 가까이 한 동인천의 옅은 소금물 냄새, 그 냄새와 함께 바래간 건물과 켜켜이 쌓인 시간을 느끼다 보면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리라.



주방에서 치익치익 채소가 불에 닿아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흘러나오면 식욕이 조금씩 요동친다. 어릴 적 동네에 놀러 나갔다가 들어와 허기진 마음으로 밥상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얌전히 앉아 있으면 어느새 그릇이 앞에 놓인다. 산미가 진하게 풍기는 옛날식 탕수육도 좋지만, 이곳에서 무조건 먹어봐야 할 음식은 간짜장과 짬뽕이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음식이지만 이곳의 음식은 시간 속에 희석되거나 바래지지 않은 힘이 담겨 있다.


채소와 고기를 칼로 잘게 다진 뒤 춘장과 함께 볶아낸 간짜장은 질척거리거나 둔탁하지 않다. 한가닥 한가닥 선이 보이는 수공예품처럼 간짜장의 재료는 알알이 살아 있다. 면을 슥슥 비벼 입에 넣으면 강한 자극보다는 유순히 머리를 쓰다듬는 정겨운 맛이 느껴진다. 단맛은 절제되어 있고 간간한 맛은 해무처럼 그윽하게 깔려 튀지 않는다. 짬뽕은 그에 비해 맛이 강하다. 바닷가에 앉아 해산물을 듬뿍 넣어 끓인 탕처럼 매운맛이 의외로 강해 이마에 땀이 조금씩 맺힌다. 그릇을 비울 때쯤 해서는 ‘캬’하는 탄성도 나오는데 그때마다 무심히 흘러간 시간이 몸으로 느껴진다.



수타면이 불러오는 추억의 그 맛, 현래장



먼 길을 돌아 다시 서울로 올 시간이다. 서울에서도 오래전부터 음식점이 많았던 마포의 ‘현래장’으로 가보자. 불교방송국 빌딩 지하에 있는 현래장은 마포 먹자골목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상가도 몇 되지 않는 지하에 무슨 중국집일까 생각하다 막상 그 앞에서 서면 꽤 큰 규모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안으로 들어서면 멀리 통유리로 막힌 주방이 보인다. 그 안에는 머리가 하얀 주방장에 가운데 섰고 그 양 옆으로 당당한 체격의 요리사가 몇 서서 중화 냄비와 칼을 잡고 있다.



이곳의 모든 면 요리는 수타면을 쓴다. 당연히 면 요리에 강점이 있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는다. 포슬포슬한 감자와 달달한 양파를 크게 썰어 넣은 옛날짜장은 잊혔던 기억을 새삼스럽게 되살린다.


어머니에게 졸랐던 짜장면, 졸업식 날이면 으레 먹었던 짜장면, 군대 휴가를 나와 먹던 짜장면, 그 하찮은 음식과 맞닿은 추억이 너무 많아서 실상 제대로 세어지지 않는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여 이뤄낸 나란 사람. 그런 상념들이 흩어지며 입속으로 짜장면을 밀어 넣는다. 탄성이 있는 면발은 기계로 뽑은 것과는 결이 다른 쫄깃한 맛을 낸다. 면발이 입술을 치고 목구멍을 때린다. 진한 갈색빛을 한 짜장에 얽힌 단맛과 짠맛, 고소한 풍미.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맛이다. 그래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맛과 시간이 면처럼 얽혀 몸에 스며든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Home > SSG LIFE/COLUMN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이런 완벽한 밥은 어떻게 짓는거죠?
정동현
#정동현




배가 불러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뒷 주방을 바라보며 디저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찌에 앉아 스시를 먹은 지 1시간 남짓 흐른 때였다. 광어로 시작해 도미, 전복, 성게알, 제철을 맞은 방어까지, 갖가지 생선을 올린 스시에 쉴 틈이 없었다. 느긋한 포만감이 찾아왔다. 그 후에는 자리를 뜨고 싶은 성급한 마음이 들었다. 간만의 부산이었다. 해운대 인근에 있는 스시집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는 아까웠다.


“서비스 괜찮으십니까?”


실장이란 배지를 단 요리사가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답했다. 안경을 쓰고 팔뚝이 굵었던 그는 주방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마 50대 중 후반쯤 되었을까?


“솥밥이 조금 남아서요.”


부산 사투리로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리던 그는 솥을 앞에 두고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스시를 쥐기 전 요리사들이 으레 하는 몸동작이었다. 그다음 그는 얼음물에 두꺼운 두 손을 담그더니 바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 속에 손을 넣었다. 갓 지은 밥을 쥐기 위해 얼음물로 손을 차갑게 식힌 것이었다. 그리고 흔히 보는 삼각형으로 밥 모양을 잡고 김으로 밑을 받쳐 나에게 건넸다.





“소금물로 지은 오니기리(주먹밥)입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밥과 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주먹밥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주먹밥에 비해 크기도 꽤 컸다. 나는 그 주먹밥을 잠시 바라봤다. 밥알 깨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밥과 밥 사이를 잇는 전분기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하얀 쌀눈도 보였다.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습기에 김이 눅눅해질 것 같았다. 그대로 밥을 입에 넣었다. 한 입을 베어먹고 나는 다시 그 밥을 바라봤다. 놀라운 식감이었다. 소금물로 밥을 지어서일까? 살짝 단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밥알에 탄력이 있었다. ±1의 오차도 없이 간은 완벽했다. 뭉쳐진 밥은 입속에서 밥알 하나하나로 자연히 흩어졌다. 솥에서 익힌 밥이 버금은 구수한 향이 코로 빨려 들어갔다. 식감과 향, 간이 모여 하나의 감각으로 변했다. 쾌감이었다. 나는 놀라서 요리사를 바라봤다. 그는 다른 손님과 이야기 하며 웃고 있었다.


“이 밥을 어떻게 지은 거죠?”


나는 굳이 그 요리사를 불러 물었다. 그는 여전히 웃으며 답했다.


“쌀 종류는 고시히카리입니다. 쌀도 중요하지만 프로세스도 중요합니다. 씻기, 불리기, 물기 제거, 밥물 잡기, 불 세기, 뜸 들이기, 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는 우문에 현답을 하듯 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세세한 노하우가 모여야 사람의 감각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나는 더 설명을 청하지 않았다. 대신 그 주먹밥을 묵묵히 씹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밥이란 무엇일까? 한국 식당과 일본 식당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밥맛이라고 한다. 일본 식당에 가면 밥맛 없는 곳이 드물다. 우리가 식사하는 것을 '밥' 먹는다라고 말하듯이 한국인의 식단에서 여전히 밥은 제일 중요하다. 영양소 측면에서는 주된 탄수화물 공급처이며, 맛의 구성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된다. 그림으로 치자면 하얀 캔버스와 같다. 특별한 맛이 없는 듯 보이지만, 밥맛이 없으면 전체 그림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밥이 제일 중요하다. 그럼 어떤 쌀을 골라야 할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쌀의 가공 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쌀 겉면은 하얗다. 이유는 도정을 하면서 겉을 깎아내서 그렇다. 쌀 외피는 쌀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그 외피를 깎아내는 순간부터 순수한 탄수화물에 가까운 '쌀'은 쉽게 산화된다. 오래된 쌀로 밥을 하면 맛이 산뜻하지 않고 쉰 맛이 나는 게 바로 그것 때문이다. 좋은 쌀을 고르기 위해서는 첫째, 도정일이 가까워야 하고, 둘째 부서진 쌀이 없는 완전미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 쌀이 부서져 있으면 속의 전분이 쉽게 빠져나와 밥을 지으면 입에서 풀어지지 않고 떡져서 식감이 떨어진다. 쌀의 품종도 중요하다. 사실 어떤 품종을 고르는가는 기호의 문제다. 그보다 ‘혼합미’라고 적힌 쌀을 고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품종의 구분 없이 종합미곡처리장에서 쌀을 섞어 가공했다는 뜻이다. 애초에 품종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과정을 거친 쌀이 좋기는 쉽지 않다. 이제 정말 밥을 지어보자.





요즘 나오는 전기밥솥은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굳이 가마솥 타령을 하지 않아도 가정에서는 차고 넘친다. 그보다는 밥을 짓는 과정이 중요하다. 쌀은 차가운 물에 세 번 정도 씻는다. 이때 너무 박박 씻으면 겉면에 상처가 나서 좋지 않다. 예전처럼 불순물이 섞이는 경우도 적어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 쌀은 한 시간 정도 불려서 쓰는 게 가장 좋다. 그보다 오래 불리는 것도 좋지 않다. 목욕을 오래 하면 피부가 불듯이, 쌀도 마찬가지다. 오래 놔두면 잘 익기야 하겠지만, 표면이 뭉개져서 밥의 식감이 좋지 않다. 드디어 밥물을 맞출 차례다. 밥물 맞추는 게 가장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불리지 않은 쌀은 1:1.2, 불린 쌀은 1:1로 밥물을 맞추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 이것은 손맛이 아니라 화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화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레시피를 보면 밥을 지을 때 소금을 넣거나 물 대신 육수를 쓰기도 한다. 분명히 소금을 넣거나 다시 국물을 쓰면 맛이 달라진다. 특히 소금을 넣게 되면 쓴맛이 덜해지고 잡맛을 제거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도 쌀의 경우에는 소금을 넣는 레시피가 많다. 그 이유는 한국 쌀보다 기름기가 훨씬 적기 때문에 밥이 심심하게 느껴지기 쉽기 때문이다. 뜸을 들일 때 코코넛 밀크를 섞는 레시피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중에서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 하나만을 말하라고 한다면 답이 있다. 바로 그때그때 밥을 짓는 것이다. 식당 밥이 맛없는 이유는 쌀이 너무 익어서 그런 것이다. 식은 밥을 낼 순 없으니 밥을 보온기에 넣어두는데 그 열에 밥은 계속 익는다. 그 시간 동안 신선함과 윤기, 수분은 사라지고 찰기만 남아서 마치 군내 나는 떡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갓 지은 밥의 향기가 사라진다. 쌀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그때 그때 밥을 짓는다면 최소한 몇 시간 지은 밥보다는 맛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뜸을 들이고 밥이 완성되면 바로 밥을 잘 섞어주자. 밥 속에 갇혀 있던 여분의 수증기가 밖으로 나와 밥이 뭉치는 것을 막는다. 이것으로 밥 짓기는 끝이 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우리가 전기밥솥 스위치 한번 누르고 마는 그 행위 속에 무수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일본에서는 밥을 제대로 지을 때 쌀을 100번 씻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쌀에 붙은 전분기를 확실히 제거한다. 그래야 쌀알과 쌀알이 붙지 않고 낱알이 살아 있다. 솥 위에 엄청난 무게를 더해 압력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려면 깨진 쌀알이 없는 완전미여야 한다. 그러지 않을 때 오히려 전분이 쉽게 새어 나와 밥 전체를 망치게 된다. 계절에 따른 쌀알의 건조 정도도 밥물 잡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조건, 레시피와 조리 예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디테일이 합쳐졌을 때, 우리는 밥 한 숟가락에 눈을 뜨고 기뻐하게 된다. 깊이 알면 알수록, 몰입할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하얀 쌀밥, 우리가 삼시 세끼 먹는 그 밥에도 깊고 넓은 신비가 담겨 있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입이 무거워진다. 알면 알수록 고개가 숙어진다. 알면 알수록 부끄러움이 많아진다. 이는 밥뿐만이 아닐 것이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Home > SSG LIFE/COLUMN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워라밸의 시작, 요리하는 자유
정동현
#정동현


신세계그룹이 올해부터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덕분에 업무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오후 다섯시다. 회사 문을 나서 지하철에 들어서면 쉽게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삶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팀의 부제가 ‘2AM’, 팀 주제가로 ‘죽어도 못 보내’를 부르던 시절은 안녕이다. 아침 9시에 업무를 시작해 저녁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운 오후 5시가 되면 일이 끝난다. 이른바 워라밸은 이렇게 이룩되었다. 정확한 시간에 일이 시작되고 끝난다.





지하철은 바흐의 평균율 연주처럼 규칙적인 리듬으로 역을 통과한다. 직장인이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생활을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온다고 한다.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것은 자율이라고 하고 또 다른 말로는 자유라고 한다. 이제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선택의 문제다. 여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할 수 있는 자유, 또 다른 하나는 하지 않을 자유다. 어떤 것을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요리할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하라.


생존의 필수 기술이었던 요리가 취미 생활이란 범주 안에 들어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이제 요리는 당당한 취미 생활이고 또 당당한 특기인 시대다. 그 말은 요리 자체에 돈과 시간이 꽤 많이 든다는 이야기다. 한가지 밝힐 사실이 있다. 만약 절약하고 자 한다면 4인 가구 이상이 아니라면 외식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비싼 식재료 값, 각종 기구, 수도광열비, 특히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말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대규모로 식재료를 구입하고 대량으로 조리해 단가를 낮춘 즉석식품을 먹는 편이 시간과 돈을 아끼고자 한다면 보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요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쉽게 생각해보자 일 년에 몇 안 되는 캠핑과 같은 행사에 솜씨를 발휘할 수도 있다. 물론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무인도에 떨어진다거나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좋은 기술인 것도 맞다. 역시 이 또한 매우 드문 확률이다. 직업으로서 요리란 기술을 습득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직업을 구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든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며 그 나라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확실하다. 하나하나 따지면 굳이 스스로 요리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남이 몰아주는 차가 제일 좋듯 남이 해주는 요리가 제일 맛있다는 말에 수긍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요리는 편리나 이익, 영리 같은 숫자 놀음과 큰 관련이 없다.



불, 요리 그리고 진화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한 책 요리본능(2011,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옛날 요리는 생존의 기술이었고 인류가 동물과 다른 존재가 된 전제조건이었다. 하버드 교수 랭엄 박사는 자신의 저서 ‘요리 본능’에서 현재 인류가 존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요리라고 썼다. 요리함으로써 각종 식재료의 맛과 흡수율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가용 가능한 열량이 늘어나게 되어 뇌 체적 증가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현재 각종 신념과 여러 필요 때문에 식재료 그대로 생식을 하는 집단의 경우 시간당 흡수 열량 자체가 요리해서 먹는 쪽에 비교해 현저히 낮으며 그에 따라 성장 장애, 영양결핍, 생리불순, 심지어 불임과 같은 여러 증상을 겪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거창하지만 요리란 인간이기 위한 하나의 조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리는 문화 그 자체이다.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요리에 각국의 기후, 문화, 역사, 경제 상황에 스며들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오래 보관이 가능한 건조 파스타 위주의 단순한 식문화가 발달했고 중앙집권적인 정치 제도를 가졌으며 물산이 풍요로운 프랑스에서는 일찍이 왕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호화로운 식문화가 탄생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요리로 귀결된다.


요리하며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인간의 조건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말 자체는 거창하지만, 요리를 하는 순간 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밥을 짓고 나물을 무치며 국을 끓일 때, 그 모든 준비 과정에서 고립된 현대인이 아니라 이 사회와 관계하는 인간임을 느낀다. 만약 밥을 짓는다면 어떤 쌀을 고를지, 그 쌀이 어떤 처리 과정을 거쳤는지, 쌀에 물을 얼마나 불릴지, 화력에 따라 쌀알의 분포에 따라, 기구에 따라, 어떻게 밥맛이 달라지는지 느끼게 된다. 그 과정이 반복되고 학습되면 요리란 행위로 이름 붙여진다. 시금치를 산다. 서양의 시금치와 동양 시금치의 차이에 대해서, 왜 소금물에 데쳐야 싱싱한 초록색이 살아나는가에 대해서, 왜 소금간을 할 때 설탕으로 살짝 밑간을 하는지, 왜 소금에서도 단맛이 나는지, 이런 사실에 대해 알게 된다. 그것이 요리다.





만약 밥 짓기 전문가라면 이보다 더욱 많은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쌀의 유래, 품종의 역사, 그리고 한국 농경 정책과 자본의 역할 등, 수많은 이야기가 밥 짓기 하나에 얽혀 있다. 요리를 하려면 장을 봐야 한다. 그때부터 무수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쌀을 살 것인가? 왜 이 쌀이어야 하는가? 그 선택을 하며 사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 쌀이 어떤 가공을 거치고, 그 가공 방법에 있어 어떤 법제가 적용되는지. 그리고 문화적으로 왜 쌀이 우리에게 중요한지, 밥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식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등 그 끝이 없다. 실제로 요리에 들어가게 되면 또 다른 차원의 설명이 필요하다. 요리는 이제 화학이 된다. 물을 얼만큼 부어야 하고, 어떻게 불 조절을 해야 하는지는 삼투압과 열에너지, 비열 등과 관련이 있다. 어떤 팬이 잘 뜨거워지는가? 왜 팬은 무거워야 하는가? 비열이 높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요리를 하며 배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즉 요리를 통해 우리는 사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다. 김밥을 한 번이라도 싸본 사람은 김밥 원가 운운하며 그 값이 비싸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김밥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수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김밥을 싸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 과정에 숙련되면 마지막에는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재료들을 썰고 볶아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기쁨이 찾아온다. 이윽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과 나눌 때는, 먹을 것을 나누는 원초적인 사랑이 탄생한다.


느껴보라. 차가운 물이 손에 닿고 쌀알이 그 물속에서 움직이는 감촉을. 갓 지은 밥의 구수한 향내를. 요리는 귀찮고 해치워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인간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이요, 필수적인 과제다. 자신이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립의 가장 기초다. 바로 주방에 가라. 칼을 들어라. 양파를 잘라라. 불 위에 팬을 올려라. 인간이란 동물로서, 한 사회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한 남자와 여자로서,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그 밸런스를 위해, 요리란 무게추를 삶에 올려놓자. 돈과 서류 속에서 존재하는 허깨비 같은 삶이 아니라 칼과 불, 피와 고기, 풀과 나무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되자. 그리고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균형 속에 찾아온다는 것을. 균형이란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란 것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Home > SSG LIFE/COLUMN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셰프가 아플때 먹는 음식, 추억에 담긴 힘
정동현
#정동현


휴일 없이 일했다. 어젯밤까지 웃고 떠들던 동료가 갑자기 출근하지 않았다. 모두 말은 하지 않을 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도망갔군.’


주방에서 도망치는 요리사는 봄날 환절기 감기처럼 드문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을 한 시간쯤 넘기면 부주방장이 조용히 다가와 ‘이건 네가 해야겠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모두 동요하지 않는다. 속으로 욕을 할 뿐 티를 내지도 않는다. 그러다 창고나 주방 뒤편 쓰레기장에서 잠시 틈이 나면 ‘왜 그랬대?’라고 소식을 묻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무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고, 며칠 전부터 그런 낌새가 보이는 경우(일이 힘들다고 징징댔다니까)도 있다. 때로 동료와 대판 싸우고 그 기세를 몰아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레스토랑 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일해야 하고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 한다. 땀이 들어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이마의 땀을 닦으면 이미 땀은 굳어 소금이 되어 있었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몸의 한기에서 치솟은 식은땀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었다.


‘젠장.’


기름이 튀어 나의 살을 익혀도 욕을 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일을 마친 뒤 나눠준 맥주 한 병을 단숨에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두운 천장을 보며 잠에서 깼을 때 침대 시트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감기몸살이었다. 영하로 기온이 잘 내려가지 않는 호주 멜버른에서 감기라니. 나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리고 무기력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겨우 찾아온 휴일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힘을 내어 침대에 앉아 요리책을 꺼내 읽었다.


요리책의 이름은 ‘moro’였다. 영국의 모로칸 음식점에서 낸 요리책으로 흑백의 화보가 가득했다. 그 화보는 이런 것들이었다.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콩을 고르고, 머리에 두건을 쓴 어머니는 또 국을 끓인다. 터번을 쓴 아버지는 화덕에 빵을 굽고 자신만만한 표정의 젊은 부부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음식 사진의 채도는 낮아 흐릿한데 오히려 그 담백한 색감에 맛이 더 가깝게 전해오는 것만 같았다. 화려하지 않은 사진은 그렇기에 더욱 정감이 가고, 그 속에 함께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이것을 먹는 이들이 정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요리라는 것은 사람들과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외국에서 살며 몸이 아프면 자연히 한국음식을 찾게 됐다. 나는 영국과 호주에 널린 각국의 음식점을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각국의 이민자들은 각국의 음식점을 찾는다.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이 고향의 음식인 것이다. 무엇보다 남의 땅에 와서 그곳에 진짜로 살지 못하고 자꾸만 저 멀리 떨어진 곳의 음식을 찾는 나를 볼 때마다 나는 웃음을 잃었다.


현대의 요리는 첨단을 달린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세계의 요리사들과 '과학자'들은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 고민한다. 전에 없던 기법을 고안하고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은 피쉬앤칩스라든가 라멘, 스파게티 같은 것들이다. 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많은 셰프들은 맥도날드로 향한다. 그들이 만드는 음식과 먹는 음식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란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다. 누구는 진한 커피를, 누구는 연한 커피를 좋아한다. 이것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순전히 취향일 뿐이다. 그렇다면 맛있는 커피와 맛없는 커피를 구별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맛'에도 객관적인 척도를 적용하여 그것을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남이 맛있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각각의 요리와 식재료는 그런 객관적인 척도로 적용할 수 없는 차원에 있는 것들이 있다. 흐물흐물하고 질기고 냄새나는 것들에 우리는 미치도록 열광하지 않는가?


예를 들면, 떡볶이의 식감은 외국인에게는 고무(rubber) 같다며 낮게 평가된다. 물론 배고픈 근대를 겪으며 그 맛과 질감이 예전 같지 않아진 탓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떡을 쫄깃하다며 즐겨 먹는다.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아무리 외치고 답답해해도 그들의 입맛을 바꿀 수는 없다. 어렸을 적부터 스테이크와 감자칩을 먹으며 살아온 이들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TED강연에서 말했듯이 스파게티 소스에서도 사람들의 취향은 무수히 다양하다. 절대적인 스파게티 소스는 없고 상대적인 스파게티 소스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이진 않다. 미인은 많지만, 절대적 미인은 없는 것과 같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 공자 부처 같다면 그것은 또 다른 지옥일 것이다. 음식도 그렇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의 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잘나고 못나고 예쁘고 작고 큰 우리만큼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을 떠나 혼자 아픈 나는 오징어 볶음을 떠올렸다.


부산 살던 어린 시절, 일요일 점심에는 꼭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먹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동생은 어머니께 자주 오징어 볶음을 해달라고 졸랐다. 내가 군대 가기 전 집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 오징어 볶음이었다. 인도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 처음 먹었던 음식 또한 오징어 볶음이었다. 나이가 들어 술을 마시고 속이 쓰린 일요일이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꼭 오징어 볶음을 했다. 이제 아들은 커서 해장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에게는 어린아이였고 그 아이가 좋아한 것은 오징어 볶음이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을 점령했던 무어인들의 전통음식을 기반으로 한

런던 레스토랑<MORO>의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 <MORO> 시리즈.

단순히 음식 뿐 아니라 음식에 담긴 문화와 가족, 지역사회의 정신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저 책을 읽으며 눈물이 났던 이유는 별 것 없는 요리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맵고 짜고 질긴 오징어 볶음을 먹던,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것, 내가 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 객관이 아닌 주관, 절대적이기보단 상대적이며, 평가가 아닌 사랑이 있던 요리 때문이었다. 별 것 아닌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근처 한인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오징어 볶음을 시켜 먹었다. 그 오징어 볶음은 철판 위에서 지글거렸다. 양파와 파, 오징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흰 쌀밥 위에 양념을 비벼가며 오징어 볶음을 싸우듯 씹고 삼켰다. 조금씩 땀이 흘렀다. 매운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따위가 빗어낸 극동의 매운맛이 혈관 속을 흐르며 몸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철판 위의 작은 빨간 흔적마저 싹싹 긁어낸 후 나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매운맛과 약 기운이 몸에 동시에 흘렀다. 나는 다시 땀으로 침대를 적시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들었다. 그것은 꿈이었지만 꿈같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불 앞에 서서 냄비와 칼을 휘둘렀다. 혹시나 마늘 냄새가 난다고 비웃을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땀만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Home > SSG LIFE/COLUMN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노포, 낡은 거리에서 세월의 맛을 느끼다
정동현
#정동현


아무리 가도 가도 다른 것이 없다. 여기에 가도 저기에 가도 사람들은 똑같은 곳에 앉아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주제를 논할 뿐이다. 전동차 안에 앉아 죽은 듯 눈을 감고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보내고 끝나는 시간, 나는 번화한 거리가 아닌 어두운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크고 깨끗한 빌딩은 아니다. 불빛이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넘쳐나지도 않는다. 콘크리트 포장이 벗겨져 울퉁불퉁한 거리의 건물은 낡고 불빛은 어둡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숲속의 작은 짐승들처럼 낯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이들이 찾아드는 집들은 찾기 어렵고 찾았다 해도 겉모습을 보고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제대로 온 것일까? 영업은 하는 것일까? 용기를 내어 문을 열면 시간이 멈춘 듯 아마 저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탁자, 끝이 닳아버린 숟가락, 허리가 굽은 주인장, 낮은 조도의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보내는 시간은 오래된 농담 같다. 그리고 이 농담은 한국의 부(富)가 모여든다는 강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거센 세월의 흐름이 돌아가는 곳, 강북의 을지로와 종로에 은일(隱逸)을 꿈꾸며 오래도록 자리한 노포(老鋪)에서 잊힌 노래를 듣는다.


세월의 맛을 느끼려 노포를 찾는다면 우선 가야 할 곳은 을지로 3가 일대다. 아직도 문을 닫지 않은 철공소 단층 건물이 군락을 이룬 이곳에 가면 골목 어귀어귀 작게 둥지를 잡은 식당이 여럿이다. 늦은 저녁거리를 걸으면 까맣게 절은 러닝셔츠마저 벗고 등목을 하는 사내들이 있다.



그 골목에서 가장 자리 잡기 힘든 곳은 '세진식당’이다. 1991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탁자 하나에 석유 곤로를 놔두고 라면 장사로 시작했다는 이곳은 이제 어엿한 식당이요, 주인의 아들은 중년이 되어 머리가 희끗하다. 메뉴를 보면 흔한 밥집 메뉴인 김치찌개, 된장찌개부터 시작하는데 삼합, 생태탕에 이르러서는 고개가 갸웃한다. 그러다 시가(市價)인 갑오징어 숙회를 보면 이곳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게 된다. 보통 오래 살아남은 집들이 그러하듯 주문이 들어가면 음식은 빠르게 나온다. 업력이 길어 손님이 어떤 주문을 할지, 어떻게 하면 음식이 빨리 나갈지 이미 계산이 서 있다.



유지태를 닮은 중년의 아들이 음식을 가져다주면 맛을 볼 차례가 남는다. 흘깃 주방을 살펴봤을 때는 채 1만 원이 되지 않는 싸구려 프라이팬과 찜기와 솥뿐이었는데 나오는 음식의 수준을 보면 과연 고수는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양념의 맛은 과하지 않고 오로지 미각을 자극하는 만큼만 쓰였을 뿐이다. 흔한 오징어 볶음도 이곳의 맛은 다르다. 채소를 약한 불에 볶아 물이 흥건한 하급이 아니다. 물이 자작하니 북인도의 드라이 카레를 먹는 것 같은 농축된 맛과 오래 볶지 않아 질기지 않고 쫄깃한 식감만 남았다. 강남의 반값도 되지 않는 갑오징어 숙회는 이 집의 필청 메뉴요, 민물새우를 넣어 감칠맛을 극대화한 전라도식 생태탕과 풀어져 내려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심이 살아 있는 야들야들하고 탱탱한 돼지 수육이 곁들여 나오는 삼합은 이 집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네가 으슥하다고 아무 때나 찾아가면 자리가 있는 그런 집이 아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이가 여럿, 사려 깊게 예약 전화를 넣는 것이 현명한 이의 자세다. 


이곳을 빠져나와 골목을 건너면 을지로 골뱅이 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모인 골뱅이 집은 여럿이지만 단 하나의 집을 골라야 한다면 '영락골뱅이'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곳이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크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단골집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딱 영락골뱅이 맛이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살던 시절,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은 골뱅이무침을 해 먹었다. 부산에서는 흔히 초고추장에 골뱅이를 버무려 냈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가 않았다.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로 양념을 해 그 맛이 번잡스럽지 않고 깔끔했다. 북어포를 채 썰어서 파채와 함께 버무리는 것도 특징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어머니의 솜씨인 줄 알았다. 커서 서울에 와 말로만 듣던 영락골뱅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신화 속 인물을 눈으로 목격한 것처럼 신기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이 집의 골뱅이 맛이 우리 집의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서울 생활을 추억하며 골뱅이무침을 만들었고 나는 어른이 되어 그 골뱅이무침의 시작을 목격했다. 



영락골뱅이의 특징은 언제나 계란말이가 서비스로 나온다는 점이다. 계란 파동이라 하여 사람들이 계란 먹기를 꺼려했을 때도 이 집은 되려 더욱 크게 계란을 말아 손님상에 올렸다. 호기가 엿보이는 이런 태도는 역시 시간에서 나온다. 나라가 망할 것처럼 휘청거려도 이 집은 문을 열었고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골뱅이 캔을 따서 파채와 양념, 그리고 빻은 마늘 한 숟가락 올려주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빛바랜 벽지와 달력, 나무 기둥과 좁은 계단, 늘 보는 찬모의 얼굴마저도 맛이 되고 멋이 된다. 이곳의 메뉴는 골뱅이무침 하나로 귀결되지만, 꼭 스팸 구이는 먹어보길 권한다.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이곳에서 먹으면 왠지 맛이 다르다. 먹어보지 않으면 또 이 차이를 알 수도 없다. 



만약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 을지로 3가 지하철역 10번 출구에 있는 '안동장'을 꼽아야 한다. 1948년 문을 열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이란 별칭을 얻은 이곳은 단지 오래되었다고 다니는 집은 아니다. 한 번 식당을 개조해 식사하기 쾌적하여 남들에게 추천하기 좋다는 점은 이곳을 찾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안동장에서 맛을 봐야 할 것을 여러 가지지만 초행자라면 우선 굴짬뽕과 탕수육을 맛봐야 한다. 안동장의 굴짬뽕은 특히 유명한데 소문에 의하면 굴짬뽕을 처음 개발한 곳이 바로 이 집이라고 한다. 속에 쌓인 세속의 먼지를 다 씻어내리는 듯한 개운한 국물과 깔끔한 뒷맛은 명불허전, 겨울 찬 바람이 불면 자동으로 안동장의 굴짬뽕이 생각날 정도다. 



중국집의 기본 메뉴인 탕수육도 이곳은 맛이 다르다. 찍먹이니 부먹이니 할 것은 없다. 당연히 중화 냄비, 웍(Wok)에서 소스를 한번 굴려 입혀 나와야 하는 것이 정석, 안동장의 탕수육은 유행하듯이 아주 바삭거리지도 그렇다고 살이 콱 씹히는 두꺼운 종류도 아니다. 조금 폭신하다는 느낌이 있는, 오래전부터 먹은 그 맛, 그러나 얼갈이배추를 썰어 넣어 소스의 감칠맛이 남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연구와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기에 나는 탕수육 한 점을 먹을 때도 겸허해진다. 그리고 하얀 머리를 한 노인이 허리를 숙여 주문을 받고 음료수 한 병을 가져다줄 때도 친절히 마개를 따 주는 그 세심함에 노포의 명성이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게 내가 거리를 쏘다니며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깨달음보다 더욱 나를 이 낡은 거리로 이끄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세월 속에, 그 무상함 속에 살아남는 것들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나이가 들고, 점점 사라져가는 그 무상한 것들, 몇 푼 되지 않는 한 끼 속에 잠든 시간과 그 한 끼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다 전해지지 못하고 다 기억되지도 못하며 그저 거리에 잠들고 잊힐 뿐이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