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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냉정과 열정으로 완성한 한 장의 레시피
정동현
#정동현


비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볼 수 있다는 멜버른이었다. 해가 떴다가 소나기가 내리고 심지어 우박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공기와 호주 대륙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만나 기층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 점심이 되지 않은 오전,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방안 공기가 눅눅하게 몸을 감싸 안았다. 두꺼운 이불 속에 몸을 말고 다시 눈을 감았다. 휴일이었다. 간밤 자정까지 일하고 기절하듯 누워 잔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휴일 아침이니 더 잘 수 있다는 느긋한 희망과 잠으로 휴일을 보낼 수 없다는 아쉬움에 갈등했다.


몇 분 후 나는 애벌레가 고치에서 기어나오듯 느릿하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목이 말랐다. 아래층 주방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다. 다시 방에 와 침대에 하반신을 묻고 맥주를 마셨다. 탄산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차가운 기운이 내장을 훑고 알코올은 혈관을 타고 올라왔다. 살짝 올라오는 취기에 잠 기운이 가셨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살짝 비릿한 비 냄새를 맡았다. 해가 높게 뜬 날에는 있는 것조차 몰랐던 내 마음은 비가 오면 그 존재를 알리는 양 잔잔히 흔들렸다.


비가 오면 이 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를 읽으면 간밤의 뜨거운 순간이 다 헛것 같았다. 악다구니를 쓰며 팬을 돌리고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지낸 밤, 날아오는 총알처럼 무수히 쏟아지던 주문을 쳐내며 허둥대던 시간이 가고, 패잔병처럼 텅 빈 주방 구석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몸을 식히던 자정 언저리의 풍경. 그 모든 것이 몇 시간 전이건만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다 꿈만 같았다. 그렇게 흔들리던 마음을 바라보다 정신이 드는 것은 얼마간 후였다.


침대 맡에 둔 요리책을 들어올려 무릎 위에 올리고 책장을 넘겼다. 그 종이 위에는 전쟁의 기록들이 냉정한 숫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g(그램)으로 대표되는 중량이 아니라 한 스푼, 한 컵과 같은 부피로 계량을 한 요리책을 싫어한다. 아예 사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부피로 계량을 한 레시피는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한 컵을 계량하더라도 수분과 밀도에 따라 약 1.5배까지 무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부피 계량을 여전히 많은 요리책에서 쓰는 까닭은 오래된 습관일 뿐이요, 게으른 타성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1g까지도 정확하게 파고드는 집요한 레시피였다. 내가 또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요리는 손맛이란 격언 아닌 격언이다. 한식은 계량할 수 없다며 손맛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측정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게으름을 합리화 하는 행태에 당혹감을 느낀다. 모든 요리는 화학이고 물리학이다. 열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결합되고 그것이 각 분자의 물성과 시간의 변화에 맞춰 작용할 때 우리가 지각하는 맛과 향이 나온다. 과학은 측정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모든 조리법 역시 계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애매모호한 부피 계량과 조리법이 적힌 요리책을 덮었다. 그리고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요리책을 찾아 펼쳤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매일 요리를 하는 주방은 레시피를 검증하기 좋은 무대다. 모든 요리책이 정확한 레시피를 적어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레시피가 부정확할 때가 많다. 그 레시피를 믿고 조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모든 조건을 정확하게 맞춰도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땐 시간과 노력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된다. 잘못된 지도를 펼쳐든 셈이다. 셰프들은 그 지도에 선을 죽죽 긋고 새롭게 측량하여 길을 낸다.


나는 누더기에 가까운 레시피 한 장을 볼 때마다 선조의 오랜 유물을 보는 것 같이 감상에 빠질 때가 잦았다. 1g의 차이를 기록하고 1분의 간극을 조정하며 만들어낸 레시피는 집념의 산물이요 지극한 정성으로 쓰인 연애편지 같았다. 누군가 적어내린 요리에 대한 연애편지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 처음 칼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해군 이등병 시절, 주방에 일손이 달려 칼을 처음 잡았다. 예리한 칼날이 손등에서 1mm 간격을 두고 위 아래를 오고갔다. 초짜 북재비가 북을 치듯 엉성한 리듬에 비뚤비뚤한 간격으로 도마를 내리치던 시간은 잠깐이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면, 그제서야 칼은 주인을 만난 듯 시원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전진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이 악기가 된 것처럼 즐거운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빨리 다음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아침부터 나는 칼 주변을 서성거렸다. 주방의 모든 일에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다보면 칼은 내 차지였다. 밤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주방 구석 작은 의자에 앉았다. 조리 하사가 보던 요리책을 펼쳤다. 지난 낮의 순간이 요리책에 담겨 있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칼로 썰고 몇 g(그램)의 조미료를 넣고 몇 분간 끓이고 볶는다는 문장 속에 잘 벼린 칼날과 뜨거운 불길이 녹아 있었다. 그이는 그 한장의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기록하고 다듬었을 것이다. 나는 홀로 그이가 보낸 시간에 조용히 감탄하고 감사했다.


비오는 소리에 맞춰 책장을 넘기길 몇 시간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문득 방 안이 환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새 비가 그쳐 해가 떠 있었다. 멜버른의 날씨다웠다. 나는 그제야 침대 밖으로 나와 주방으로 내려갔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재료를 꺼내 별 것 없는 파스타를 만들었다. 홀로 앉아 파스타를 깨작이며 창문 너머를 보면 새파랗게 푸른 하늘을 배경에 비현실적으로 풍성한 구름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나는 찬란하게 밝은 멜버른의 오후를 좋아했다. 휴일 오후 멜버른의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것은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밝음을 피해 어두운 주방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반쯤 미친 사람들이 칼과 냄비를 붙잡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 하루를 보내는 지옥 같은 그곳은 어떤 거짓말도 없는 순수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비가 오기를 바랐다. 빗소리를 들으며 거두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생각하고, 숫자와 건조한 지시어로 쓰인 요리책 보는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차분히 쌓아올린 숫자 더미, 그 속에 담긴 시간과 땀, 그것은 시끄러운 구호가 아닌 조용한 열정이었다.


회색빛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요리책을 보던 그 시절처럼 오전 적막한 가운데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그 숫자, 단어 하나 하나, 가득히 쌓인 A4 종이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실히 쌓아올린 하루하루가 무엇보다 진실된 것이 아닌가. 쉽게 이야기 하고 쉽게 강요하는 그 열정은 잔잔히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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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정동현
#정동현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트레일러 영상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힘찬 카덴차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언어의 하나이자,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본 낭만주의 사조에 충실하게 멜로디는 논리가 아니라 급변하는 충동에 따라 흐르고 템포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고저를 오고 간다. 그 흐름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스시 한 점이 접시 위에 올라간다. 푸르게 벼린 칼날에 베인 생선의 단면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그 위에 바른 간장은 오래전 산수화의 담백한 음영처럼 은은히 빛난다. 그 스시를 바라보는 노인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2011)’의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스시를 내놓는 리듬감이 마치 협주곡의 카덴차만큼이나 다이나믹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스시가 단지 밥 위에 생선을 올린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의도와 철학이 담긴 어떤 예술에 가깝다는 조용한 웅변이기도 하다. 엄격한 아버지였다는 지로는 그 음악을 배경으로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본인이 스시를 만들어온 과거를 설명한다.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서 내놓는 것도 내가 처음 한 것이었지. 그러고 나니 다른 스시집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고급 스시집에 가면 손님이 스시에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사가 직접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준다. 손님이 스시를 간장에 찍을 때 밥이 떨어져 나가거나 간이 강하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손님이 요리사가 의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지금은 매우 손쉬운 발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한다. 이런 끝없는 도전과 연구는 긴자 지하철역 지하,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10석가량의 작은 스시집이 미쉐린 3 스타를 받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미쉐린 3 스타란 그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그 나라로 여행을 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제 아흔 살이 넘은 지로의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3개월 이란 수치도 대략적인 것이고 일본의 인맥, 일류 호텔의 컨시어지 등을 통하지 않고서는 쉽게 예약을 할 수가 없다. 힘들게 예약을 하고서도 식사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는다. 전채요리 등이 아예 없고 스시가 10~12점 나오는 게 전부다. 식대는 모두 그날그날 시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만엔, 원화로 대략 3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사케 등을 시킨다면 최소 100만 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 예약 문의가 쇄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초입에 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맛이란 무엇일까? 맛은 설명하기 어려워. 나는 꿈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생각들이 터져 나와서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꿈에서 나는 스시의 환영을 보지.”





나도 요리하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15시간 넘게 주방에 서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집에 들어오면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방의 열기가 몸에 남아 채 식지 않고 곤두선 신경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한 실수, 그 덕에 들어야 했던 수모와 욕설, 어찌할 수 없는 자괴감, 음식이 나가는 빠른 템포, 뜨거운 팬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쓰던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마치 몸에 새겨진 듯했다. 시간이 흘러 늦은 밤, 잠이 들면 나는 또 주방에 서 있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보였다. 나를 보고 비웃는 동료가 보였다. 그러면 꿈에서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시 눈을 뜨면 또 주방에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충혈된 눈을 한 동료들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건조하게 인사를 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이다. 악순환이다. 지친 정신에 몸은 나약해진다. 나의 몸은 아프기를 고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조금 쉴 수 있으려니, 나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픈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몸이 아팠다. 오래 서 있으니 자연히 허리가 아팠고 신경을 계속 쓰니 장이 뒤를 따랐다. 일 년 에 한 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갈라 디너 날, 온몸에서 미열이 났다.


준비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 갈라 디너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는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짬뽕을 만들듯 볶아내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수를 우리는 것부터 시작, 재료에 따라 준비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코스 중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서 투입되는 노동력은 어마어마하다. 접시 하나는 요리 하나가 아니다. 주요리에 부요리 몇 개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요리사는 절대적으로 쉴 수가 없다. 그 중 하나였던 나는 몸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나는 불쌍한 요리사다. 나는 혹사당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모두 나를 불쌍히 여겨라. 아침부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나를 보고 몇몇이 걱정의 말을 던졌다. 나는 괜찮다고 답을 하면서도 아프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주방에 서 있었다. 이윽고 대망의 디너가 시작되기 30분 전이 됐다. 주방장이었던 애쉬가 말을 걸었다.



“너 어디 아프지?”

“어.”

“생애 최고의 날에 아프단 말이야? 말도 안 돼.”



투명한 파란 눈에 꼬불거리는 금발이었던 애쉬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에게 아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고였다. 무엇보다 일주일을 준비해 손님들을 대접하는 갈라 디너 날, 아프다는 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이 가진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모든 요리사가 달라붙어 준비한 이 날은 애쉬에게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처음에는 서러웠다. 나는 아픈 몸이었다. 그러니 위로를 받아 마땅한데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는 애쉬가 미웠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미움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곧추세웠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애쉬의 구령에 따라 음식들은 접시 위에 올라갔다. 수십 가지가 되는 요리들이 모두 똑같은 맛과 모양을 가지고 손님 앞에 나갔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 순간순간은 느리게 느껴졌다. 불이 이글거리는 틈 사이로 손을 넣었다 뺄 수 있을 것만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풀어졌던 신경이 예민해지고 나의 몸은 잘 준비된 도구가 되었다. 얼굴에 흐른 땀이 말라 짠 소금이 되었을 때 모든 요리가 나갔다. 끝이었다. 애쉬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아프다고 했지? 빨리 집에 가. 수고했어.”

“아니야. 괜찮아. 이제 안 아파.”



나의 답에 그는 비웃음도 미소도 아닌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대청소가 시작됐다. 웃으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던 동료들은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주방 곳곳을 쓸고 닦았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 일터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 일은 누구나 하기 꺼린다. 주방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건물 공용 쓰레기장에 갖다 놓는 일도 그랬다. 같이 일하던 백인 요리사들은 그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늘 나나 다른 외국인 요리사가 그 일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었다. 건물 뒤편으로 나가 쓰레기통의 행적을 살폈을 때 나는 애쉬의 뒷모습을 봤다. 주방장인 애쉬는 쓰레기통을 밀며 뛰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일을 빨리 끝내려 뛰고 있었다.


일류와 일등의 차이는 간단하다. 일등은 이등이 필요하다. 이등을 밟고 올라가야 일등이 된다. 남과 비교하고 우열을 가린다. 비교할 수 있는 남이 없으면 일등도 없다. 그러나 일류는 이류가 필요 없다. 일류에게는 남의 시선도 필요 없다. 그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간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그 길이 더럽고 힘들지라도 그곳을 간다. 그래서 그는 일등이란 순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일류(一流), 즉 사조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뒷모습이 아름답다. 깊은 밤, 어두운 지하에서도 빛나던 그의 등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은 나를 부끄러움으로 뜨겁게 달궈 오래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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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대(大)자 하나요!
정동현


#정동현



출근을 하자 마자 퇴근을 하고 싶었다. 매일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언제나 성실한 21세기의 일꾼인 나로서는 드문 날이었다. 그나마 내가 가진 장기 중 가장 예민한 코가 아침부터 벌렁거렸다. 가죽, 자동차, 기계 상가가 들어찬 하드보일드한 성수동 공기 중으로 기름지고 고소하며 얼큰한 냄새가 부유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오늘 점심은 감자탕이다.”


나의 한마디에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감자탕’이라는 고유 명사로 족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성수동의 ‘소문난 성수 감자탕’이었다.


감자탕이라는 음식은 그 족보가 곰탕이나 설렁탕처럼 멀리 올라가지 않는다. 감자를 넣어서 끓이던 탕에 해방 이후 돼지 공급이 늘어나면서 뼈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는 설, 돼지뼈를 감자라고 불렀다는 설 등이 혼재 한다. 하지만 어원으로 음식의 계보를 따지는 것은 그 실체가 모호하고 사회경제적인 흐름 속에 음식의 탄생과 소멸은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믿을 만 하다. 그리하여 시중 감자탕집의 역사는 대부분 그리 길지 않다. 동네 마다 군소 감자탕집이 있고 몇몇 프랜차이즈가 그 나머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몇 집을 꼽자면 분당의 ‘서울24시 감자탕’, 을지로의 ‘동원집’, 그리고 우리가 찾은 ‘소문난 성수동 감자탕’집이 있다. 분당 ‘서울24시 감자탕’은 주방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손님에 주방 상황을 실시간을 보여준다. 청결에 신경을 쓰는 이른바 신도시형 맛집이다. 묵은지가 들어가는 맛은 그 외관에 걸맞게 깔끔하고 양은 푸짐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곳은 을지로의 ‘동원집’이다. 이제는 일본 중국 관광객까지 찾아드는 ‘동원집’은 감자탕 집 중 가히 노포라 부를 만 하다. 좁은 실내와 계단 사이로 어깨를 비비며 자리를 잡으면 을지로 뒷골목의 풍경을 옮겨놓은 듯한 감자탕이 앞에 놓인다. 국물은 붉고 살은 두터운데 맛을 보면 일면 담백하게 밀려오는 질감에 살짝 놀란다. 순대와 수육을 반반 시켜서 곁들이면 소주 안주로 그 이상이 없다. ‘소문난 성수 감자탕’으로 할 것 같으면 동네 맛집이 방송을 타고 전국구 대열의 반열에 든 경우다. 방송 이후에도 꾸준히 줄을 서니 이 집의 실력은 밝혀지지 않았던 것일 뿐 절대 유명세를 얻어 탄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 집은 여느 감자탕 집과 마찬가지로 뚝배기에 파는 것과 냄비째 끓이는 것 두 종류가 메뉴에 올라와 있다. 바쁘고 혼자라면 뚝배기를 시켜야겠지만 머릿수가 둘을 넘어가면 냄비째 시키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네 명인데 중(中)자를 시켜야겠죠?”

“무슨 말씀이세요. 대(大)자는 시켜야죠.”


감자탕이라는 말에 비선 조직처럼 은밀히 감자탕 집 구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메뉴 선정에 작은 혼선을 빚었다. 그것은 둘은 소, 셋은 중, 넷은 대자라는 간단한 공식을 암기하지 못한 자의 불찰일 뿐이었다. 11시 40분을 넘어 남의 돈을 받아 먹고 사는 인간의 무리들이 하나 둘씩 감자탕 집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미 피로에 찌든 종업원은 보기에도 큼지막한 냄비를 브루스타 위에 올려 놓고 갈 길을 갔다.


“다 익혀서 나온 거니까 끓으면 바로 드세요.”


그녀가 남긴 한마디에 나는 가스 불을 점화했다. 혹자는 테이블 위에 브루스타가 올라간 풍경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식당의 노동력을 절감하고자 하는 한반도 국가 현실의 방증이라고도 한다. 점심 나절부터 브루스타를 끓이는 것이 남 보기 부끄럽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만약 미식의 길을 간다면 그 번잡스러움은 마땅히 치뤄야할 대가이다. 그 대가는 시간과 노력이라는 X와 Y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아무리 종업원이 끓기만 하면 바로 먹으라 했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아무리 육수에 넣고 끓인 고기라 할지라도 바로 먹게 되면 맛이 덜하다. 더군다나 시래기와 대파를 올렸기에 국물이 우려나는데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렌치 요리에서 기본이 되는 채소 스톡을 우릴 때도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물이 한번 끓으면 불을 끄고 그대로 우려내기도 하고 시간이 얼마 없을 때는 간단히 한번 끓이는 것으로 갈음 하기도 한다. 그 최소 시간이 바로 10분이다. 오히려 스톡을 오래 우리게 되면 오히려 쓴맛이 빠져나와 맛을 버리게 된다.


우리는 식전 반주라는 전통을 수호하고자 약간의 알콜을 섭취하며 잠깐 찾아온 기다림의 순간을 만끽했다. 채소를 국물에 넣고 위로 뜬 부유물을 제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간+ 노력 = 맛 이라는 공식은 그렇게 완성된다. 드디어 대파의 심이 죽어 향긋한 아로마와 달큰한 부케가 공기와 국물 속으로 뻗어나가고 나서야 우리는 국자를 떠서 큰 뼈다귀를 나눠 앞 접시에 담았다. 우리는 태초, 원시에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뼈 틈을 파해치고 손으로 들어 입으로 뜯었다. 건조 과정 속에 감칠맛이 증폭된 시래기를 살에 싸서 먹고 시큼한 깍두기의 산미를 지렛대 삼아 식욕을 폭발 시켰다.


“뼈 추가요!”


기본으로 나온 뼈는 이미 4인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된장 푼 육수에 담긴 뼈를 추가하고 나서야 4인의 배가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뼈로 끝날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코스가 남아 있었다.


“라면 사리 두 개 주세요.”


꼬불꼬불한 면 가닥이 들어갈 자리는 있는 것이 한민족이다. 두 봉지는 너무 많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물 속에 담긴 나선형 모양을 보자 그 이견은 찬성으로 바뀌었다. 건조면을 반으로 쪼개어 국물 속에 넣었다. 면의 심이 조금 남은 ‘알덴테’ 스타일로 해달라는 의견도 접수했다. 먼저 불을 세게 올렸다. 면이 불지 않고 탱탱하게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라면을 굳이 같이 끓이는 이유는 허기를 달래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의도가 있다. 면의 전분기가 빠지면서 국물의 농도가 진해진다. 마치 중식에서 수프를 끓일 때 물전분을 넣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국물의 농도와 점성이 높아질수록 혀에 닿는 밀도감도 달라진다. 흔히 ‘맛에 깊이가 있다’고 할때의 깊이는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화학과 물리학적 반응에 의한 것이다.


포만감이 더해지고 취기가 오를수록 국물의 양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방치가 아니라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프렌치의 소스의 기본 중 하나가 바로 ‘주(Jus)’다. 영어로는 주스와 같은 어원을 가진 이 소스는 단순히 말하자면 스톡을 젤라틴이 응고되는 수준으로 졸이고 졸인 것을 말한다. 대략 처음 스톡의 1/10 수준이 되면 그 모든 것이 응축된 맛이 난다. 밀도는 높아지고 질감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비록 감자탕 집이었지만 우리의 냄비 속 액체도 프렌치 음식의 그 무엇과 비슷한 모양새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육수를 졸인 것은 마지막 코스를 끝마치기 위해서였다.


“볶음밥 두 개요!”


이제 고함을 질러야만 종업원을 부를 수 있었다. 김치 등등을 썰어넣은 밥을 들고 종업원이 왔을 때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육수의 수위에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분을 살짝 날려 바삭하게 굽듯이 볶은 밥을 먹으니 1시간이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어둡고 불길했던 하늘은 개었고 공기는 커다란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처럼 산뜻하게 양 볼을 스쳤다. 배가 부르니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것 같았다. 그 생의 기쁨에 우리 중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아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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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점을 찍는다, 딤섬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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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피로한 각색의 인종은 어두침침한 공항 출입국 사무소 앞에 뱀처럼 꼬불꼬불한 줄을 섰다. 이무기 같은 그 뱀은 몇 번이나 똬리를 꼬았다. 나는 그 줄의 중간에 홀로 서서 눈을 비볐다. 빠르고 불친절한 영어, 알아들 수 없는 광둥어는 모두에게 평등했다. 자기 몸 만한 가방을 맨 서양인, 나와 같은 동양 여행객, 이 모두 홍콩이라는 작은 섬에 모여들어 시큰한 냄새를 나는 공항에서 입국 스탬프를 받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양된 것이 이제 20여 년, 사이가 틀어진 부부처럼 서양과 동양이 묘하게 뒤섞인 이 섬은 몇 천억 대의 돈을 굴리는 세계의 금융회사와 그들을 태우는 엄청난 규모의 택시, 그리고 그 모두를 먹이는 식당들이 단테의 지옥도처럼 난잡하게 뒤엉켜있다. 그 섬에 모인 다양한 인종들만큼이나 홍콩에서 먹지 못할 음식은 없다. 영화배우 양조위가 단골이라는 국수집 앞은 합석도 개의치 않는 관광객들이 일렬로 줄을 섰고 호텔 지하 떨어질듯 위태로이 매달린 샹들리에를 단 고급 레스토랑에는 저 높은 빌딩 어딘가에 책상이 있을 사람들이 점잖을 떨며 음식을 기다린다. 

 

나는 미쉘린 2스타를 받은 성퉁럭(Sun Tung Lok)에 자리를 잡았다. 성퉁럭은 본래 미쉘린 3스타였으나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도 불구, 시그니쳐 메뉴인 샥스핀을 계속 판매하여 2스타가 되었다는 명문 레스토랑이다. 악마적인 그 고집스러움이 빛나는 이 레스토랑에서 나는 점심으로 가볍게 딤섬 몇 가지를 시켰다. 잠시 후 바싹 마른 웨이터가 가져다준 슈마이를 먹고 나는 정신이 멍했다. 마치 기천만 짜리 오디오로 듣는 라이브 실황처럼, 각각의 재료는 하나하나의 맛을 잃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하나로 모여친 총합의 맛은 그 개별을 초과하는 규모였다. 이것이 바로 본토의 딤섬이구나. 나는 탄식을 하며 접시를 비웠다. 




홍콩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 걸리는 한국은 딤섬의 불모지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의 딤섬(點心), 홍콩과 광둥성을 중심으로 실제 점심에 즐겨 먹는 딤섬의 섬세한 맛을 한국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현지에서 만나는 딤섬의 종류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얇은 피 안에 젤라틴을 넣고 쪄서 육즙이 가득찬 소롱포(小籠包)부터 시작해 찐빵과 모양이 흡사한 빠오(包), 전분으로 투명한 피를 만들어 속에 새우를 넣은 하가우(蝦餃), 돼지고기와 새우살을 다져 뭉치고 찐 슈마이(燒賣), 쌀가루로 피를 만들어 그 속에 돼지고기 바비큐나 새우 등을 넣고 돌돌만 창펀(肠粉), 그외 무수한 페이스트리(pastry)가 적힌 메뉴판을 보면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하지만 한국으로 넘어오면 그 메뉴판은 경상도 남자의 안부 인사처럼 매우 단순해지고 그 맛을 보면 딤섬이 아니라 냉동만두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우선 딤섬이 대중적이지 못하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메뉴가 아니다보니 시장이 작다. 돈이 안 되니 인력도, 또 투자도 모이지 않는다. 지금껏 대만과 홍콩에서 몇 큰 브랜드가 한국 시장 문을 두드렸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났다.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고 재료도 귀한 딤섬을 서비스로 내어주는 만두와 값을 비교하며 가성티 타령을 하니 그 고급스러운 맛도 함께 즐기기 힘든 것이다.


더구나 딤섬 문화를 지탱할 화교 인구는 한국식으로 변형된 ‘중화요리’에 뛰어들고, 화교 자체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역사적으로 탄압을 받은지라 그 힘이 약하다. 여러모로 딤섬 먹기 힘든 나라다. 그러나 딤섬 없이 견딜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작고 맛난 것을 입 안에 넣지 않고 몇 주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나는 홍콩에서 맛본 딤섬을 추억하며 가로수 길이 아닌 세로수 길, 15평 남짓한 ‘쮸즈’에 간다.


‘기둥’이란 뜻의 쮸즈가 세로수길 안경점 자리에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된 세로수길이란 말은 이제 가로수길의 뒷골목을 통칭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좁다란 가로수길에서 개인 사업자 명의를 둔 가게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살인적이라는 극단적인 뜻의 관형어는 가로수길의 임대료 앞에서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바람에 지친 새가 조그만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듯 세로수길엔 옹기종기 젊은 창업자들이 둥지를 틀었고 그 중 하나가 쮸즈다. 가게 규모는 15평 남짓, 창가로 조그만 좌석을 넣고 건물 안쪽으로 두 사람이 엉덩이를 비빌만한 크기로 주방을 만들었다.




5평이나 될까, 그 안에서 83년 생 젊은 주인장은 매일 딤섬 피를 빚고 육수를 끓인다. 중국 베이징에서 요리학교를 나온 이력을 증명이나 하듯 좁은 가게 안으로 주인장의 사진과 자격증 등이 붙어 있다. 점심 가게 문을 여는 것이 오전 11시 30분, 그러나 매번 그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다. 나는 그 긴 줄 뒤에 꼬리 부분을 맞으며 홍콩 출입국 사무소 앞에 있던 시간을 떠올렸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 좁은 가게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일까? 유리문 넘어 젊은 요리사들은 손님에게 잠시 눈 줄 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마침내 자리를 잡은 것은 1시간 뒤였다. 종업원은 미안한 표정을 가득 지으며 자리를 안내 했다. 그 줄을 뚫고 자리를 잡았으니 주문에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소룡포(3500원)를 빼놓을 수 없다. 얇은 피 안에 담긴 뜨거운 육수를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으면 애교를 부리는 것 같은 섬세한 피와, 돌직구 고백처럼 위장으로 파고드는 향긋한 육수는 이 집의 정통성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강남 한복판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는 가격, 그러나 유명 음식점을 넘어서는 맛에 인기는 필연적이고 그래서 자주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가게 측의 사과 인사를 듣게 된다.


여기에 10여 가지의 재료로 직접 만드는 고추기름에 다층적인 향은 네덜란드 미술가 에셔(Escher)의 그림처럼 끝없이 겹쳐져 매콤완탕(6000원)을 베스트 셀러로 만든다. 그 기름은 고소한 탄탄면(7000원)에도, 소고기와 무로 육수를 낸 우육면(8000원)에도 올라간다. 고추, 팔각, 정향, 생강, 제피, 대파와 같은 향신료의 향은 인도 영화 속 군무처럼 화려하지만 길을 잃지 않고 오직 손님의 혀를 위해 봉사할 뿐이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이 10000원 이하란 것은 또 다른 놀라움이다. 이래서 남는 게 있냐고, 산적을 닮은 주인장에게 물으면 늘 이런 답이 돌아온다.


“저는 한국에 딤섬의 진짜 맛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주인장은 그 말을 끝내자 마자 땀으로 물들어 야하게 비치는 등판을 내보였다. 물이 끓고 주인장이 땀을 흘리는 주방 건너편,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의 얼굴 위로는 작은 점을 찍듯 미소가 퍼졌다. 


*스타필드 하남에는 200평 규모의 얌차 레스토랑 ‘피닉스’가 새로 생겼다. 호주의 유명 얌차 레스토랑인 ‘피닉스’와 기술제휴를 맺고 처음 국내에 들여온 전문점이다. 종업원들이 갓 찐 딤섬을 새로 설계한 특수 카트에 싣고 돌아다니며 그때 그때 손님에게 내놓는다. 가슴을 퍽 치고 들어오는 묵직한 맛이 호주를 사로잡을만 하다. 더구나 넓고 쾌적하여 가족 동반도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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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아메리칸 소울, 햄버거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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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왜 쪘냐고? 왜냐면 일 마치고 나면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으니까.”

 

“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음식을 만드는 당신 같은 요리사가요?”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동그랗고 큰 안경을 쓴 신참 웨이트리스 제인이 주방장 제이크의 배를 보며 사연을 물었다.. 전후 사정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오래 일하고(일주일에 70시간) 잘 먹지도 못하는데(먹을 틈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이 찌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제이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대화를 듣던 다른 요리사들은 공범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그 중 미국에서 온 마이클의 눈빛은 ‘햄버거’라는 단어에 급격히 반응했다. 분명 입 안에서 침이 돌고 있을 마이클을 보며 나는 ‘저 치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미국의 배추김치, ‘치즈 버거’

영국 시골의 펍(pub)에서 치즈버거를 발견 했을 때 단 1초도 망설이지 않던 학교 친구 프랭키의 구수하고 느끼한 미국 악센트도 떠올랐다. 몇 안 되는 나의 미국 친구들은 모두 햄버거를 사랑했다. 그것은 분명 한민족에게 김치와 같은 위상이었다. 그리고 ‘치즈 버거’는 ‘배추 김치’와 비슷했다.

 

아이언맨(2008년)의 토니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탈출해 처음 주문한 것도 바로 치즈 버거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딱 두 개야. 첫번째는 어메리칸 치즈 버거. 그리고 기자회견을 준비해줘. 일단 치즈 버거.”

 

피투성이가 된 토니 스타크는 배달된 치즈버거(맥도날드가 아니라 버거킹이었다)를 먹으며 기자 회견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기자 회견장에서 두 번째 햄버거를 마저 먹고 나서야 입을 연다. 2016년 지금이었다면 아마 토니 스타크는 버거킹이 아닌 다른 햄버거를 먹었을 것이다.



| 미국 동부를 주름잡고 있는 셰이크쉑(Shake Shack)

 

지금 미국 햄버거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 계의 대부 대니 마이어가 2001년 뉴욕 메디슨 파크에서 처음 시작한 셰이크쉑(Shake Shack)은 햄버거의 신약 성경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것은 동부의 사정. 메이저 리그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로 나눠지듯 햄버거의 신약 성경도 미국 서부에서는 셰이크쉑이 아닌 인앤아웃(IN-N-OUT)버거다.



  

| 동부에 셰이크쉑이 있다면, 서부에는 인앤애웃(IN-N-OUT)

 

이 두 버거의 인기 비결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만드는 것.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라는 말 처럼 들리는 이 비결 뒤 본질을 보면 이 또한 햄버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빵 사이에 소고기 패티와 양파, 양상추, 피클, 그리고 치즈를 넣은 치즈 버거다.

    

 

햄버거, 결코 단순한 정크푸드가 아니다!

치즈 버거의 구성은 음식 공학적으로 볼 때 거의 완벽하다. 햄버거 빵은 폭신하고 살짝 구운 빵 안 쪽은 바삭하다. 양파와 양상추는 바삭한 식감과 신선한 감각을 선사한다. 피클은 산미로 식욕을 돋우고 구운 패티에서는 인류가 거부할 수 없는 구운 맛이 난다. 열량 가득한 지방인 치즈는 이성을 마비시키며 햄버거 속 재료를 하나로 묶는다.


  



단순하기 보다 복합적인 감각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그리고 요리사들)은 이렇게 무력해진다. 영양학적으로도 그렇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이뤄진 3대 영양소가 딱 보기에도 적절히 안배된 구성이다.

 

여기서 잠깐. 이 치즈버거는 음식으로만 분석하기엔 그 함의(含意)가 재미나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요소 요소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된 치즈 버거는 서양 환원주의(Reductionism) 철학이 음식으로 현현(顯現)한 가장 똑부러지는 예이기도 하다. 어떤 상태나 물질을 최소 단위를 향해 나눠가다보면 그 요소 뿐만 아니라 전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리란 사고가 바탕이 된 환원주의. 그 환원주의처럼 치즈 버거는 고기, 채소, 빵, 치즈라는 구성 요소 그 자체를 겹쳐 만든 공학적 음식이다. 그리고 이 치즈 버거를 빨리 달라고 외치는 아이언맨은 미국 액션 히어로 물의 전형이라는 면에서 또 다른 환원주의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세계 각지의 민속 신화를 수집 분석 했던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Joseph Campbell)은 그의 저서 ‘천 가지 얼굴을 한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에서 모든 신화는 한 가지 유형을 띈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는 영웅이 미지의 땅으로 뛰어들고 (출발, Departure) 그곳에서 악의 무리와 만나 결국 승리 한 뒤 (시련, Initiation)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물을 가지고 온다는(귀환, Return) 것이다. 이것은 아이언맨의 스토리 라인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무슨 뜻일까? 빵(도입)을 거쳐 양파와 양상추(전개)가 이에 닿으면 그 후는 피클의 신맛(위기), 구운 패티와 치즈로 클라이막스(절정)에 이르고 다시 결말(빵)으로 향하는 구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부분이 전체를 반영하고 복제하는 프렉탈(fractal) 구조를 닮아 있다. 그리고 관객은 치즈 버거를 먹으며(또!) 아이언맨을 보고, 아이언맨 속 풍경과 비슷한 세상에서 같은 삶을 반복한다.

 

아이언맨에서 '조력자'에 해당하는 깡마른 안경잡이 기술자 ‘잉센’은(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부상 입은 토니 스타크를 고쳐준다) 가족이 없다는 스타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중요한 게 없군요.”

 

나는 늦은 밤 치즈 버거를 먹으며 배가 부르고 혀가 즐거웠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에 맥주를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었다. 그 나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요리를 하겠다고 하루종일 주방에 서 있는 나의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삶과, 그 치즈 버거의 완벽한 효율성의 괴리. 그리고 측정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은유와 충동이 그 치즈 버거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날 밤 포니테일의 예쁘장한 제인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들여 먹는 비효율적인 식사를 떠올리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얕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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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김치찌개를 찾아서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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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김치찌개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전에 이야기 했듯이 지인은 얼마 전부터 냉면문화연구소에 출근을 시작했다.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역전의 주자처럼 지치지 않고 냉면을 먹고 있는데, 아무리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주일 연속으로, 하루 세 번, 스물 한 끼를 냉면으로 떼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최소한 술 마신 다음날은 해장라면, 회식 할 때는 삼겹살이라는 패턴이 있다.

 

그러나 이놈의 냉면문화연구소는 해장으로는 팔도비빔면, 회식으로는 중화냉면을 먹는 만행을 저지른다고 하니, 지인은 이러다가 몸의 피는 육수가 되고 근육은 냉면가닥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인은 용기를 내어 동료 연구원들에게 "오늘 점심은 냉면 말고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제안을 했다. 이에 연구원들은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흠칫 놀라더니 '허허, 이 사람 참 맹랑하구먼' '아직 새해도 오지 않았는데, 다른 메뉴라니요, 남사스러워서' '아직 신입이라 어쩔 수 없는가보죠'라며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과는 달리 그들의 눈은 묘한 희열과 해방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제일 연장자 격인 김선생이 말을 꺼냈다.

 

"뭐 그럼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도록 하죠.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지인이 말했다.

 

"오늘따라 유난이 속이 허하니,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찌개가 어떠합니까?"





이에, 사람들은 말문이 트인 벙어리처럼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한 것이, 코 옆에는 콩알만한 점이 있는 박선생이 선수를 쳤다.

 

"역시 김치찌개라면 광화문에 있는 광화문집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김치찌개 용으로 젓갈을 적게 넣어 김치를 담궈 국물이 시원하며, 돼지 목살을 아낌 없이 썼기에 든든하기까지 하니, 장안의 김치찌개 집 중에서는 최고라는데 이견이 없지요. 게다가 계란말이까지 곁들이면 한끼 식사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혀가 있고 맛을 느낄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이 집을 가야 합니다."

 

"광화문집에 들어간 고기가 고기요? 그걸 가지고 고기라고 말한다면 저기 우래옥 옆에 있는 은주정의 고기는 맘모스 정도 되겠소이다. 자고로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란 은주정 정도 되어야, '아 고기가 들어갔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기가 적어 속이 허전하니 계란말이 같은 것을 시키는 게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은주정은 상추까지 따로 주니, 광화문집이랑은 비할 것이 아니지요."

 

"아니, 이 사람 키만 작은 줄 알았더니, 김치찌개 맛도 잘 모르는구려. 원래 김치찌개란 것이 김장김치가 남아서 처치 곤란할 때, 봄 쯤 되어서야 먹을 수 있던 그런 음식 아니겠소? 우리가 이렇게 사시사철 김치찌개를 먹은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소. 그런 면에서 광화문집이나 은주정의 김치찌개는 김치찌개의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것임을 모르시나 보군요. 게다가 부르스타 위에 냄비를 올려 끓여먹는 것 역시 80년 대 이후에 나타는 풍습이라오. 그런면에서 공덕 굴다리집이야 말로 김치찌개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하는 곳이지요. 냉면 그릇 가득, 살살 녹는 김치에 돼지 앞다리 살을 써서 쫀득거리면서도 비계의 달달한 맛이 살아있는 그 김치찌개의 맛은 가히 장안의 최고 아니겠습니까? 을지면옥 운운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입맛 참."

 

"거기서 을지면옥이 왜 나옵니까? 계속 원형 원형 그러는데, 어차피 모든 음식은 발전하고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선생들이 말한 그 김치찌개집들은 반찬재활용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산더미처럼 김치나 반찬들을 내놓던 곳이 아니요? 그 전후로 내놓는 반찬의 양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럼 뻔한 것이지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정된 맛으로 접객을 하는 새마을 식당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7분 김치찌개는 비록 체인점이지만, 얇게 썰어낸 돼지고기에 김치를 듬뿍 올려 자작하게 끓여낸 것이, 백종원 씨의 탁월한 감각이 발휘된 명작이지요. 자고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이지요. 거, 자기 입맛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요. 쯧쯧, 그러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요."

 

"갑자기 웬 나라 타령이요? 그때도 함흥냉면 타령 하시더니 역시 입맛이 영 유치하시구랴, 그렇게 화학조미료 팍팍 들어가고 어린 애들 알바 써서 내놓는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소? 당신 머리 빠진 것도 다 그런 화학조미료 때문에 그런거요. 유전자도 한 반 쯤 변형 되었을 것이니, 조금만 지나면 초록색으로 변할지도 모를 일, 조심하시오, 조선생."

 

"머리카락 이야기는 왜 해? 니가 탈모인의 심정을 알아? 함흥냉면에도 깊이가 있고, 그 싼 김치찌개 한 그릇에도 문화가 담겨 있는 거라고."

"그래봤자 대머리고 그래봤자 싸구려 음식이지, 그런 걸 먹으니까 머리가 빠지는 거야."

"누군 빠지고 싶어서 빠지냐! 내가 오백만 탈모인을 대표해서 너를 응징하리라. 이 자식아!"


그 말과 동시에 건축을 전공한 조선생이 책상 위로 올라갔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박선생은 조선생에게 머리채가 붙잡혔다. 이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법학박사 정선생도 협공을 시작, 사무실은 탈모인 대 비탈모인의 대결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직 머리털이 빼곡한 지인은 난리가 벌어지기 직전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간 지라, 참변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요즘엔 주방 찬모들 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캡사이신을 허공에 뿌려대니, 굳이 김치찌개 집이 아니더라도 눈물 콧물 빼어 가며 매콤한 맛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오늘은 광화문 일대가 김치찌개 풍 공기가 될 터이다. 그러니 공짜로 한국 전통의 맛을 즐길 자는 광화문과 시청 주변으로 모이시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태평성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