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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후원의 덕수궁 문화 행사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10년차 맞아
대표적인 고궁 문화 프로그램으로
소문난 행사는?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대표이사 이석구)가 후원하는 대표적인 고궁 문화행사인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가 지난 2009년 첫 행사 이후 올해로 10년차를 맞았다.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는 각 층의 유명인사를 초청해 고종 황제가 커피와 함께 연회와 휴식을 즐겼던 역사가 깃든 장소인 덕수궁 정관헌에서 초청 명사들의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행사다.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는 지난 2009년부터 시작돼 매년 봄과 가을마다 개최되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첫 회 강의를 시작으로 해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 한비야 국제구호 전문가, 이해인 수녀, 김영하 소설가, 설민석 한국사 강사 등 70여 명의 명사들이 올해 하반기까지 초청 강연자로 나서면서 2만여 명이 넘는 시민과 함께 했다.  


특히, 고궁을 시민들이 친근하게 방문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고궁 관람  프로그램으로서 자리 잡은 대표적인 민관협력 사례로서 지난 10년간 아름다운 고궁 유물을 친근하게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타벅스는 정관헌 문화 행사 외에도 덕수궁 음악회를 비롯해 창경궁 야간 특별 관람 행사를 위해 시민들에게 커피 증정 봉사 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해 온 바 있다.


지난 10년간 이 문화행사를 지속적으로 후원해 온 스타벅스는 행사 진행을 위해 파트너 2,000여 명이 참여해 총12,000여 시간이 넘는 봉사활동을 기록했으며, 매회 참석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됐던 음료도 총 2만잔을 넘어섰다.


지난해 스타벅스는 정관헌 외부에서 관람하는 시민들을 위한 행사 중계용 대형 TV를 기증했으며, 올해에는 10년차를 맞아 시민들이 좀 더 편안하게 강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1,200만원 상당의 의자 150개를 기증했다. 


올해 10년차를 맞이해 스타벅스는 10월 5일까지 온라인 이벤트도 진행한다. 


스타벅스 코리아 페이스북(www.facebook.com/StarbucksKorea)에서 공개하는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10년 축하 동영상을 공유하고 댓글로 친구 소환하기를 동시에 진행하면 총 200명을 선정해 1등 10명에게는 2018 코리아 머그 355ml, 2등 90명에게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텀블러, 3등 100명에게는 MMS 무료 음료 쿠폰 1장을 증정한다.  


10년차를 맞는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가을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13일 건축가 김봉렬 한예종 총장이 강사로 나와서 ‘마음의 풍경, 비움의 건축’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고, 오는 9월 27일과 10월 4일에는 각각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김연수 소설가가 강연자로 나온다.


이번 행사의 자세한 정보는 덕수궁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행사 시작 전인 오후 6시부터 덕수궁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좌석 신청자에 한해 스타벅스 푸드를 제공하고, 모든 방문객들은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음료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한편,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고궁 문화 행사를 비롯해, 고궁 청소와 식재 활동, 전통 문화 디자인을 담은 매장 소개 및 MD 개발 등 다양한 문화재 보호 활동을 실천해 오고 있다. 


지난 2015년과 2016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1948년)에 쓴 ‘광복조국’, ‘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을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한 바 있으며, 경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고도지구 문화재를 소개하는 황남골목길 지도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활발한 전통 문화 보존 및 보호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2017년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및 보존에 대한 후원 약정을 체결하며 후원금 3억원을 전달해 올해 5월 공개한 대한제국공사관의 한국 전통 정원 조성 및 공사관 보존 활동을 후원해왔다.



2018.09.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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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복궁, 어디까지 가봤니?
1편. 광화문의 수난과 곳곳에 숨은 보물들
김 석
#김석기자


천만 인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조선의 대표 궁궐.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서울 관광 1번지. 바로 경복궁입니다. 사드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는데도 평일이고 주말이고 경복궁은 요즘도 북적거립니다. 그만큼 나라를 대표할 만한 자랑스럽고 소중한 문화유산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경복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수난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는 어떤가요. 곳곳에 숨어서 그 진가를 알아봐주길 기다리는 보물들은 또 어떻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요. 500년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이자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봐 왔는지도 모릅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대표 궁궐이었을까요? 실제론 아니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살았던 기간을 계산해 보면 70년이 채 안됩니다. 심지어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모두 불에 타버린 뒤로는 무려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방치됐고요. 그러다 고종 4년인 1867년이 되어서야 경복궁은 옛 모습을 되찾습니다. 이 야심만만한 중건(重建) 사업을 주도한 흥선대원군은 한 술 더 떠 창건 당시의 28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경복궁을 확장합니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절도 잠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의해 경복궁은 말 그대로 누더기가 돼버리고 맙니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국권의 상징인 궁궐인들 온전할 리가 없었지요.





광화문 앞에 서서 수난의 역사를 돌아보다


다시, 광화문 앞에 섭니다. 저리도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다시 서기까지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다니요. 2010년 8월 15일. 시끌벅적했던 광복절 기념식에서 많은 이의 환호와 박수 속에 광화문 현판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제는 명실상부 어엿한 경복궁의 얼굴을 되찾았구나 싶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지요. 현판 글씨를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생기 없는 죽은 글씨’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석 달 뒤엔 현판 곳곳에서 갈라진 흔적까지 발견됩니다.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잖아요? 정권의 빛나는 치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속도전이 빚은 일대 참사였습니다.





사실 광화문 현판 글씨의 고증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광화문 현판 글씨는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공사를 총지휘한 훈련대장 임태영(任泰瑛, 1791~1868)이 쓴 겁니다. 이 현판은 6.25 전쟁 당시에 불타 없어졌지요. 그 뒤로 현판을 다시 만든 건 1968년의 일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한글 현판이었어요. 이 현판을 2006년까지 걸어 놓았다가 광화문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떼어냅니다. 현판을 다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실물이 없으니 사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광화문 현판 복원의 근거가 될 흑백사진이 나옵니다. 1916년에 촬영한 광화문 사진의 유리원판이었습니다



광화문 현판 색깔도 잘못됐다


유리원판이란 다른 말로 유리건판(琉璃乾板, glass dry-plate)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사진 필름에 해당하는 감광판을 뜻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필름이 보편화하기 전에 주로 사용된 것인데, 특히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들은 문화재 복원에 결정적인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거든요. 광화문 현판 복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5년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6년 유리원판을 디지털로 분석해 당시 현판을 70%가량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며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를 공개합니다.





이렇게 해서 광화문 현판을 복원해 공개한 겁니다. 하지만 볼품없는 글씨에 비난이 쏟아지고 현판 목재가 갈라져 긴급 보수를 한다, 현판을 다시 제작한다, 볼썽사나운 일들이 꼬리를 물었지요. 첫 단추를 잘못 꿰어도 단단히 잘못 꿴 셈입니다. 그런데 현판의 수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2016년 2월, 이번엔 광화문 현판 색깔이 잘못됐다는 중대한 사실이 방송 뉴스를 통해 폭로됩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찾아낸 사진 한 장은 문화재 당국을 충격에 빠뜨렸지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진인데다가, 현판 색깔을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였으니까요.






분명 짙은 바탕에 밝은 글씨입니다. 수많은 광화문 사진을 봤어도 이렇게 광화문 세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면서 현판 색깔까지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없었거든요. 박물관 홈페이지의 사진 정보에는 ‘1893년 9월 이전 사진’이라고 돼 있습니다. 촬영 시기 역시 정확합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광화문 입구에 옛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흔히 ‘구(舊) 군복’이라 불리는 옛 군복은 1895년 칙령 제78호 발표로 육군의 복장 규칙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서양식 군복으로 싹 바뀝니다. 사진이 적어도 1895년 칙령 발표 이전에 촬영됐다는 걸 알려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거지요.



옛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의 모습 (빨간 동그라미)



지금 이 시각에도 광화문에는 잘못된 현판이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하도 이리저리 얻어맞아서 그런지 문화재청도 이번엔 신중에 신중을 기할 모양입니다. 현판 색깔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하고 추가적인 고증에다 과학적 실험까지 하겠다고 하니 말이에요. 어찌 됐든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경복궁의 얼굴이자 조선 왕실 문화의 상징으로 오늘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광화문에 제대로 된 현판을 되찾아주는 일이지요. 광화문 앞에 서서 아직 끝나지 않은 수난의 역사를 더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답사는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이토록 무겁기만 합니다.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금천과 그 위에 놓인 영제교


영제교 다리 에 숨은 보물 ‘천록상’


광화문을 출발해 오른쪽으로 경복궁 매표소가 있는 너른 마당을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경복궁 답사가 시작됩니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으로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요. 궁궐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반드시 이 작은 냇물을 건너야 합니다. 여기부터는 신성한 왕의 영역이오, 하는 일종의 관문인 셈이지요.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 이 냇물을 금천(禁川), 다리를 금천교라 합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예로부터 영제교(永濟橋)란 이름으로 불렸다 하네요.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 다리를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대개는 눈높이 위를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화려한 궁궐 건물에 시선을 빼앗기는 겁니다.


영제교 왼쪽과 오른쪽에 보이는 천록. 북서쪽 천록은 혀를 내민 모습입니다.


다리 양옆을 자세히 봅니다.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돌짐승 네 마리가 석축 위에 턱을 괸 채 물길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군요. 앞만 보고 가는 이들에겐 잘 눈에 띄지 않는 뜻밖의 보물입니다. 한눈에 봐도 아주 영험한 동물이란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이 아주 재미납니다. 심지어 한 녀석은 혀를 날름 앞으로 내밀고 있군요.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익살스럽고 친근한 얼굴이에요. 조용하고 엄숙한 궁궐이란 공간에 작은 숨통을 틔워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이 상상 속의 동물을 옛사람들은 천록(天鹿)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조각상은 경복궁 창건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해요.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귀한 유물입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다가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제자리를 찾았지요. 다리 양옆의 석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천록 네 마리는 훼손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작은 기적이라 할 만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도 이 천록상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답사기 제6권 경복궁 편에 꽤 비중 있게 다뤄놓았습니다. 이렇게 숨은 보물을 하나씩 찾아내고 알아가다 보면 답사하는 재미는 물론 그 의미까지도 한층 풍성해집니다.



국보 제223호로 지정된 경복궁 근정전



거칠고 투박해서 더 아름다운 ‘박석’


영제교를 건너 근정문을 지나면 마침내 경복궁의 심장으로 불리는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호)이 그 화려하고도 웅장한 위용을 드러냅니다. 사실 경복궁 하면 근정전이지요. 경복궁이란 무대의 공식적인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근정전입니다. 경복궁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도, 가장 오래 머무는 곳도 바로 이곳이지요. 너도나도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다시 눈높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근정전 앞에 이르면 누구나 고개를 들어 건물이 주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감상합니다. 그리고 멋지게 사진 한 장 박으면 끝. 관광객들은 여기서 대개 발길을 돌립니다.


근정전 앞마당에 깔려 있는 박석


근정전 일대를 가장 멋있게 찍을 수 있는 촬영 장소는 어디일까요? 바로 근정문 양 옆으로 붙은 행각 끝 모서리입니다. 이곳에 서서 초점을 맞추면 근정전이 왜 아름다운지 대번에 알 수 있지요. 땅바닥으로 카메라를 바짝 내려서 찍으면 더 끝내줍니다. 여기에 한몫을 하는 게 바로 근정전 앞마당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납작한 돌덩이들입니다. 두께가 얇고 넓적하다고 해서 박석(薄石)이라고 부르는데요. 위에서 내려다본 생김새가 저마다 천차만별인데다, 표면도 고르지가 않고 울퉁불퉁합니다. 게다가 돌과 돌 사이에 드문드문 잡초까지 자라 있으니 이게 도대체 궁궐 관리를 제대로 하는 건가, 혀를 끌끌 차는 분들도 있다는군요.


그런데요,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만약 저 돌들을 가로 세로 반듯하게 자르고 표면까지 매끄럽게 다듬어서 빈틈없이 깔아놓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더 깔끔해 보이기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인공적인 아름다움은 사실 궁궐이란 공간에는 잘 어울리지 않지요. 조선의 석공에게 돌 깎고 다듬는 기술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닐 겁니다. 저 우툴두툴 불규칙한 돌들의 어울림이 주는 자연스러운 맛은 절대로 자로 잰 듯 잘라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박석이 넓게 잡히도록 구도를 잡아 근정전을 사진에 담으면 탁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바로 그 장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정전 월대를 수놓은 또 다른 보물 ‘석상’


이렇게 멀찍이서 근정전의 아름다움을 한껏 눈에 담은 뒤, 이제 관람객들 틈에 섞여 근정전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사실 근정전이란 주인공 곁에는 근정전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빛나는 조연들이 있어요. 바로 근정전을 떠받치고 있는 돌 축대 사방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갖가지 조각상들입니다. 상월대, 그러니까 위쪽 월대의 동서남북에는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새겨져 있고, 그 사이와 아래쪽 월대에는 십이지 동물들이, 그리고 월대의 끝 모서리에는 똑같은 얼굴을 한 상서로운 짐승이 올라앉아 있습니다. 하나씩 일일이 세어보니 자그마치 40마리나 되더군요.


근정전 남쪽 월대 모서리 아래 위에 있는 석견상


그중에서도 유독 어느 미술사 학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동물이 있었습니다. 근정전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양옆모서리에 꼭꼭 숨어 있는 돌 짐승들이지요. 앙증맞은 표정을 한 사자 새끼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저 위를 쳐다보면 사자 어미가 떡 하니 앉아서 새끼들을 보듬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사신상이나 십이지신상은 그렇다 해도 이 녀석들은 또 뭔가 싶어 호기심이 절로 일어나지요. *수헌거사(樹軒居士)는 『춘성유기(春城遊記)』에서 이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석견(石犬)이라 불렀는데요.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반했다고 했던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수헌거사(樹軒居士) : 유득공(柳得恭)의 아들 유본예(本藝)로 추정된다. 주요 편찬 서적으로 서울의 사적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이 있다. 


사실 건물이 중요하긴 해요. 그런데 경복궁을 두 번 세 번 자꾸 가서 보면 오히려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근정전 월대를 산책하듯 돌면서 한 마리 한 마리 짚어가며 이건 호랑이, 이건 원숭이, 이렇게 맞혀가는 재미가 남다르거든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고 정이 들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돌덩어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 동물들을 괜히 만들어서 두었을 리가 없지요. 덕분에 지엄하기 이를 데 없는 궁궐이 지금 우리에게 한결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일 테고요.


근정전 양옆에 놓여 있는 세 발 달린 솥


세 발 달린 솥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제 근정전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리기 전에 소개해드리고 싶은 보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근정전의 양옆에 있는 금속으로 만든 솥 이야기인데요. 조금 안다는 분들도 이 솥을 향로로 알고 계신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제로 솥 안을 들여다보면 흙을 반쯤 담아놓기도 했으니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향을 피우는 그릇이 아니었을까 흔히 짐작들을 하는 거지요. 제게는 사실 관람객들이 대부분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이 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몇 달 전 현충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현충사 사당 양옆에 모양도 크기도 비슷한 솥이 놓여 있었거든요.


이걸 뭐라고 부르나 찾아봤더니 정(鼎)이라 합니다. 정은 다리 세 개 달린 솥을 가리키는데요. 도대체 용도가 뭘까요? 백방으로 자료도 뒤적거리고 궁궐과 고문헌 전문가들에게 직접 자문도 구해봤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딱 부러지는 답은 못 얻었습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지요. 다만 이 물건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중국 측 사료를 보면 아홉 정의 전설, 이름 하여 구정(九鼎)의 전설이라는 게 전해지는데요. 내용인즉슨 중국 고대 주나라 시절에 9개 주의 금속을 모아 정 9개를 만들어서, 통치권을 넘겨줄 때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로 함께 넘겨줬다는 겁니다.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중화전 앞에 있는 정(鼎)



궁궐에 깃든 것은 다 이유가 있으니…


다시 말해 정(鼎)은 정통 왕조,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 장식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궁궐마다 다 있는 게 아니라, 조선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과 대한 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딱 두 곳에만 있습니다. 결국 지금으로선 향로로 간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지요. 당연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현충사에 둘 이유도 없고요. 왕권을 상징하는 궁궐 유물이니까요. 현충사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사당에서 이렇게 정(鼎) 2개를 설치해 놓고 제사용 향로로 쓰고 있습니다. 틀렸습니다. 향로라면 하나를 쓰는 게 맞지요. 과거 어떤 기록을 살펴봐도 향로를 좌우 쌍으로 두고 쓴 사례는 없었거든요.


안타깝게도 궁궐을 좀 안다는 전문가들의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 부분을 명쾌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없더라고요. 저 역시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찾아보고 물어보고 해서 내린 결론은 적어도 향로는 아니다, 라는 겁니다. 게다가 오직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잖아요. 그만큼 뭔가 깊은 뜻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만 할 뿐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 말이에요. 혹 근정전에 가시거든 이 진귀한 유물에도 한 번쯤 눈길을 주시면 어떨까요. 오랜 세월 궁궐 안에서 살아온 것들은 무엇 하나 이유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게 아니니까요.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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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참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닭이야기
김 석
#김석기자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닭 띠의 해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영 편치가 않네요. 닭들의 모진 수난 때문이지요. 조류 인플루엔자라는 몹쓸 바이러스에 수많은 닭이 차디찬 땅속에 묻혔습니다. 나란히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닭에게 정말 큰 빚을 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참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아왔는데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닭은 우리 인간에게 퍽 중요한 식량 공급원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닭은 대단히 신성하고 상서로운 존재였어요.



서쪽에서 올려다본 경복궁 근정전 계단. 앞쪽 월대 기둥머리 위에 닭 한 쌍이 앉아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은 돌로 쌓은 두 단의 월대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대개 관람객들은 근정전 건물에만 눈길을 주게 마련인데, 실은 월대를 찬찬히 둘러보는 맛이 정말 각별하거든요. 위아래 월대 곳곳을 지키는 예쁜 돌조각들 때문이랍니다. 사신상과 십이지신상들이지요. 이 가운데 근정전 서쪽 계단의 아래쪽 월대 기둥 위에 닭 한 쌍이 다소곳이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임금이 앉았던 자리에서 보면 왼쪽이 수탉, 오른쪽이 암탉입니다.





닭이 울면 귀한 존재가 태어났다!


닭이 궁궐 계단을 지키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닭은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이지요. 방향으로는 서쪽, 시간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로는 음력 8월을 지키는 방위의 신이자 시간의 신입니다. 닭이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 역사적 유래는 아주 깁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듯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지요. 게다가 혁거세 왕의 왕후가 탄생한 과정은 더 흥미롭습니다.


“그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여자아이의 얼굴과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 부리와 같았다.”


“처음에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으므로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脫解王) 때 김알지(金閼智)를 얻자,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국호를 고쳐 계림이라 했다고 한다.”


신라 김 씨의 시조로 여겨지는 김알지의 탄생설화에도 닭이 등장합니다.


“하늘에서 땅까지 자줏빛 구름이 드리워지고 구름 속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황금 상자가 걸려 있었다. 상자 안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중략) 왕이 숲으로 가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바로 일어났는데, 혁거세의 고사와 같았기 때문에 알지(閼智)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속 <조속필금궤도>, 비단에 채색, 105.5×56.0cm, 163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숲 속에서 닭이 울어서 나라 이름을 고쳤다 했을 정도로 우리 옛 시조 설화에서 닭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과 건국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이 김알지 설화를 그림으로 남긴 이가 있었지요. 조선 후기의 사대부 화가인 창강 조속(趙涑, 1595∼1668)이 그린 <금궤도>란 그림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커다란 나무에 금궤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목을 빼 울고 있습니다.



(좌) 고구려 무용총 천장 그림 / (우) 경복궁 근정전 주작상



닭을 신성시하고 숭배했던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 오면 구체적인 유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고구려 고분 무용총 천장에는 긴 꼬리를 가진 닭이 그려져 있습니다. 닭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주작입니다. 닭의 모습을 본떠서 그려냈기 때문이겠지요. 아시다시피 주작은 남쪽을 지키는 동물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을 정면에서, 다시 말해 남쪽에서 바라보면 위쪽 월대 기둥머리에 닭의 모습을 한 돌조각이 놓여 있어요. 닭으로 여기기 쉽지만 주작입니다.



(좌) <계형토기>, 백제시대, 높이 19.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닭>, 통일신라시대, 전(傳) 민애왕릉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백제의 유물로는 닭 모양 토기가 남아 있어요. 생김새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질그릇 특유의 소박한 멋이 참 아름답지요. 섣부른 감은 있지만 닭의 이미지가 생활 속 물건에 반영된 가장 오래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른쪽에 있는 유물은 신라의 44대 왕인 민애왕의 것으로 전해지는 무덤에서 출토된 겁니다. 1980년대 발굴조사 당시 무덤 안에서 십이지상 가운데 쥐ㆍ돼지ㆍ소ㆍ닭 4개만 발견됐다고 해요. 높이 10cm로 아담한 이 조각들은 무덤의 바깥쪽을 보며 서 있었다고 합니다.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던 거지요.



<김유신묘 십이지 유상 탁본>, 통일신라, 가로 71×세로 159,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무덤까지 함께하는 동반자! 닭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에도 십이지신상 가운데 닭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그 탁본 중 하나가 단국대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닭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두 손에는 각각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지요. 무덤을 지켜야 하니까요. 박물관 유물 해설에 따르면 김유신묘의 십이지상은 현존하는 십이지상 가운데 예술적인 면이나 규모 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힌다고 해요.



조선시대 닭 그림의 대가 변상벽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에 닭이 등장합니다. 조선의 닭 그림 하면 단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요. 그 주인공은 바로 조선 후기의 화원화가 변상벽(卞相壁, ?~?)입니다. 두 차례나 영조의 초상화를 그렸을 정도로 그림 솜씨로는 당대 최고였던 변상벽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바로 고양이와 닭 그림입니다. 얼마나 귀신같이 잘 그렸으면 변 고양이(卞古羊), 변 닭(卞鷄)이란 별명으로 불렸을까요.



변상벽, <모계영자도>, 비단에 수묵담채, 100.9×50.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설적인 닭 그림이라고 불러도 좋은 변상벽의 작품은 대표적으로 두 점이 거론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그림이 바로 위에 보시는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에요. 어미닭의 부리를 자세히 보면 벌레를 물고 있지요. 귀엽고 앙증맞은 새끼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줄 참입니다. 어미와 새끼들이 다정하게 어울린 모습에서 살뜰한 모정(母情)과 따스한 가족애(家族愛)가 느껴져 마음이 다 푸근해지네요.


그래서 이 그림은 우리 옛 그림을 소개하는 여러 미술 책에 꽤 자주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작고한 미술사학자 오주석 선생의 글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 감동이 어찌나 컸던지 각기 다른 자신의 책에 두 번씩이나 이 작품에 대한 깊고도 진한 애정을 토로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 강연에서 절대 빼놓지 않았던 그림으로 바로 이 <모계영자도>를 꼽으면서 이런 상찬의 말을 남겼지요.


“세상에 원, 외국 박물관에서도 여기저기서 닭 그림을 많이 보시겠지만 이렇게 정답고 살가운 그림은 다시없어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선한 작품을 그리고, 또 그것이 좋아서 벽에 걸어 두고 흐뭇해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얼마나 순박하고 착한 것이었는지 절로 느껴집니다.”



변상벽, <자웅장추>, 종이에 채색, 30.0×46.0cm, 간송미술관 소장



여기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닭 그림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에 잘 생긴 수탉과 암탉 한 쌍이 있고, 왼쪽으로는 암탉 주위로 병아리들이 종종 모여 있군요. 닭 가족의 평화롭고 단란한 한때를 그렸습니다. 소재도, 구도도 평범하지요. 하지만 닭과 병아리를 묘사한 솜씨만큼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랍거든요. 아주 가는 붓으로 닭의 깃털을 한 올 한 올 그어냈을 화가의 집착에 가까운 육체노동이 빚은 경탄스러운 극사실의 세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초상화로 다져진 숙련된 기량이 닭을 그리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니, 가히 닭의 초상이라 할만하다.”라고 썼습니다. 절묘한 그림에 걸맞은 절묘한 표현입니다.


백인산 선생의 책 <간송미술 36 회화>를 보면 조선 후기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이 변상벽의 그림을 품평한 흥미로운 글이 소개돼 있습니다. 당시에 변상벽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이보다 더 잘 알려주는 글은 없지 싶어요.


“변상벽이 변 고양이로 불리는 것은 고양이를 잘 그린다고 사방에 이름이 나서이다. 이젠 또 닭과 병아리를 그려내니, 마리 마리가 털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중략) 형형색색 세밀하여 실물과 똑같고, 도도한 기상 또한 막을 수 없다. 듣자 하니 이 그림을 막 그렸을 때, 수탉이 잘못 알고 울어 댔다 한다.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도 쥐들이 겁을 먹었으리라. 기예의 지극함이 여기까지 이르니, 만지고 또 만져도 싫지가 않다. 되지 못한 화가들은 산수화를 그린다며 이리저리 휘두르니 거칠기만 할 뿐이다.”


예로부터 닭은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 했지요. 머리에 벼슬을 이고 있는 것은 벼슬자리, 즉 입신출세를 상징한다 해서 문(文), 발에 달린 발톱은 무기로 쓰이니 무(武), 적 앞에서 물러섬이 없이 싸운다 하여 용(勇), 먹이가 생기면 서로 알려주고 먹여주는 것은 인(仁), 때를 놓치지 않고 정시에 꼬끼오 하며 정확하게 제 할 일을 한다 해서 신(信)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닭을 사랑했고, 그림으로도 그렸던 겁니다.



정선, <등롱웅계>,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의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닭


조선 최고의 화가들도 한두 점씩은 닭 그림을 남겼지요. 진경산수의 대가로 추앙받는 겸재 정선의 그림 가운데 <등롱웅계(燈籠雄鷄)>란 작품이 있습니다. ‘꽈리와 수탉’이란 뜻입니다. 겸재 하면 워낙에 산수화 걸작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낯설게 보일 정도인데요. 이 그림에서 우리는 가장 기세등등하고 호전적인 장닭의 위용을 보게 됩니다. 자세를 한껏 낮춰 당장이라도 돌격 앞으로 할 것만 같은 자세에서 생생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더욱이 흰 벼슬은 바로 토종닭의 징표이기도 하니, 참 장하고 자랑스러운 토종닭 그림입니다.



김득신, <야묘도추>, 종이에 담채, 22.4×27.0cm, 간송미술관 소장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이니 따로 소개해 드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린 이는 조선 후기의 화원화가인 긍재 김득신(金得臣, 1754~1822)입니다. 마치 움직이는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보듯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며 동물들의 자세, 표정 하나하나에 사실감이 넘칩니다. 선배 김홍도와 후배 신윤복, 두 대가 사이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김득신이었다지만, 이 그림만큼은 화가의 유명세와 관계없이 걸작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눈길은 닭에게 가닿습니다. 새끼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따라가보려고 홰를 치는 어미닭의 자세에서 자식을 잃을지 모르는 어미의 절박함이 뚝뚝 묻어나지요. 어미닭 주위로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느라 여념이 없는 병아리들의 모습은 또 어떻고요. 병아리 절도 사건이란 심각한 내용을 다뤘지만,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떠오르는 미소까지야 어쩌겠어요. 기분 좋은 해학이 깃든 그림입니다.



신윤복, <닭>, 비단에 채색, 23×23.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혜원 신윤복의 것으로 전하는 닭 그림도 한 점 있습니다. 두 마리 모두 발 뒤에 뾰족한 칼날을 달고 있지요. 싸움닭입니다. 자세를 보면 한 판 붙기 전에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에요. 그런데 자세를 보아하니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닭의 다섯 가지 덕 가운데 무(武)와 용(勇)을 드러낸 이 그림의 오른쪽 위에 있는 글귀는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였던 한유의 글을 인용한 겁니다.


高行若矜豪 (고행약긍호) 고상한 행동은 거만하고 호방한 듯

側睨如伺殆 (측예여사태) 곁눈질로 허점을 살피네.



닭에게서 각별한 깨달음을 얻다


그런 닭이 어떤 선비에게는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자신의 문집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닭에 관한 글을 여럿 남겼는데요. 병아리(鷄雛)란 글을 보면 어쩜 그렇게 병아리의 생태를 면밀하게 관찰해 놓았는지요. 배고픔과 추위에 곧잘 죽는 병아리를 먹여 살리는 방법이라든가, 먹이 경쟁에서 밀려난 병아리를 돌보는 요령, 심지어 병아리 똥구멍이 막혔을 때 뚫어주는 방법까지 적어놓았으니 말입니다. 학문의 실질적 쓸모에 관심을 기울였던 실학자답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 단락을 함께 읽어볼까요.


“백성들이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는 모습 또한 잘 살고 귀한 지위에 있는 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백성들이 온갖 고통을 겪고 또 배도 곯게 되니 어찌 떠돌아다니다가 도랑과 구렁에 엎어져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승업, <계도(鷄圖)>, 19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140×43.5cm, 개인 소장



그런가 하면 축계지편당(祝鷄知偏黨)이란 제목의 글도 있습니다. ‘닭을 키워보면 당파에 치우치는 걸 알 수 있다.’는 뜻인데요. 서로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 싸우는 닭들의 생태에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를 탐하는 인간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본 겁니다. 요즘도 닭의 특정한 신체 부위를 들어 상대를 비꼬고 폄하하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지요. 닭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겠습니다. 심지어 그런 닭만도 못한 사람에 대한 비유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말입니다.


“사람에겐 닭보다 못한 것도 있다. 닭들이 먹을 것을 다툴 때는 날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싸우다가도 그 일만 끝나면 서로 다투던 일은 잊은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지낸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폭포의 물이 용솟음치듯 노여운 모습을 가라앉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반드시 상대를 죽여 없애 버리고자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결코 뉘우치지 않으니, 이야말로 차마 못할 일이다.”


번잡한 도시의 삶은 꼬끼오 우렁찬 닭 울음소리를 속절없이 앗아갔지요. 그래서 이제는 식탁 위 먹을거리로 제 한 몸 내준 닭이 우리에겐 더 친숙합니다. 뜻하지 않게 닭 값, 계란 값이 오르는 초유의 상황을 겪고 나니 아낌없이 주고 또 주는 닭의 존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닭의 해인 2017년에는 부디 여느 해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심전 안중식 <쌍계도>(1900년) 부분



※ 이 글은 아래 책과 글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흥식 엮음, 정종우 해설 <조선동물기>(서해문집, 2014)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컬처그라퍼, 2014)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솔, 2003)

오주석 <그림 속에 노닐다>(솔, 2008)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민음사, 2008)

천진기 ‘여명과 축귀의 계명성’ <정유년 닭띠 학술 토론회 자료집>(국립민속박물관, 2016)

탁현규 <고화정담>(디자인하우스, 2015)

<간송문화 :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전>(간송미술문화재단, 2014)

<간송문화 90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간송미술문화재단,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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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한 스타벅스의 노력
백범 김구 선생 '광복조국' 친필휘호 기부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 백범 김구 선생 ‘광복조국’ 친필휘호 유물 기부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근대문화유산 보존 활동으로 8월 4일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光復祖國(광복조국)’ 친필휘호 유물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합니다. 이는 지난 2015년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에 이은 두 번째 유물 기부 활동입니다.


 



‘光復祖國(광복조국)’ 친필휘호유물은 백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1948년) 3월1일에 독립운동가 송재준 선생을 위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스타벅스가 지난해 존심양성 텀블러 판매 수익금으로 마련한 문화유산 보전기금의 일부로 그 동안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구입해 기부했으며, 향후 전시회를 통해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와 함께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지난해 스타벅스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8.15머그, 텀블러, 카드 판매 수익금의 일부로 백범 김구 선생의 존심양성 친필휘호를 구매해 기부하고, 전국 매장에서 우리 문화재 보호 활동 기금 조성을 위해 존심양성 텀블러를 소개하며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이석구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광복을 위해 힘써주신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휘호 유물을 지난해에 이어 기부해 많은 시민들과 나눌 수 있게 되어 더욱 뜻 깊다”고 소회를 전하며 “앞으로도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한문화재 한지킴이 협약을 맺고 다양한 우리 문화재를 알리며, 우리 문화유산 보전에 일조해 오고 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덕수궁 정관헌에서 명사 강연 고궁 문화행사를 후원하고, 전통 문화를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에 접목해 다양하게 소개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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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명전에서 특별유물전시회 통해 전시
스타벅스 기부, 백범 김구 선생 유물 공개
스타벅스커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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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덕수궁 중명전에서 특별유물전시회 통해 전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기부한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이 2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리는 특별전시회를 통해 일반인에게 최초 공개됩니다. 스타벅스는 작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월 15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1948년)에 쓰신 ‘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을 문화재청,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한 바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은 금번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문화재청(청장 나선화)과 함께 개최하는 소장유물 특별전 <국민의 빛으로 역사의 빛을 더하다>에서 이준 열사, 한규설 선생 서화 등 평소 한 곳에 모아 볼 수 없었던 다른 역사적 인물의 유물과 함께 전시됩니다. 일반인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존심양성’ 친필휘호가 최초 공개되는 이번 특별전시회를 통해 유물에 담긴 ‘좋은 마음을 그대로 지키고 간직하여, 하늘이 주신 성품을 키워 나간다’는 뜻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벅스가 작년 10월에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를 담아 문화재 사랑에 친환경 활동의 의미까지 더해 특별 제작해 선보인 텀블러는 현재까지 일부 매장에서 판매 중에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존심양성 텀블러의 수익금 전액을 기금으로 마련해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활동을 펼칠 예정입니다.


한편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고 다양한 문화재 보호활동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덕수궁 정관헌에서 명사 강연 문화행사 후원 및 창경궁 야간개장 행사에 커피를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고궁 청소 및 식재 활동 등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알리고 보전하는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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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모금 행사로 선보인 텀블러에 대한 호응과 문의로 매장에서 한정 소개
백범 김구 ‘존심양성’ 텀블러
스타벅스코리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를 담은 텀블러를 전국 800여 매장에서 28일부터 한정적으로 소개합니다. (단, 일부 매장은 29일부터 출시) 텀블러 가격은 1만원으로, 판매 수익금 전액은 우리 문화재 보호 활동 기금으로 기부됩니다.

 

앞서 스타벅스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광복절에 출시한 <2015 코리아 8.15 머그, 텀블러, 카드> 판매로 조성된 수익금으로 10월 15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김종규 이사장)에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을 기부한 바 있습니다.

 

이 날 유물 기부와 함께 진행된 문화재 보전 활동 모금 행사에서 한정적으로 선보였던 친필휘호 텀블러에 대해 추가적인 호응과 고객 문의가 이어졌으며, 스타벅스는 문화 유물을 더 많은 시민에게 소개하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문화재 보호 기금으로 활용하고자 전국 매장으로 확대해 텀블러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1948년)에 쓰신 친필휘호는 ‘좋은 마음을 그대로 지키고 간직하여, 하늘이 주신 성품을 키워 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친필휘호 원본은 덕수궁 중명전에서 11월 중에 특별 전시되어 공개될 예정입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고 다양한 우리 문화재를 알리며, 우리 문화유산 보전에 일조해오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덕수궁 정관헌에서 명사 강연 문화행사를 후원하고, 창경궁 야간개장 행사를 알리는 커피 후원을 비롯해, 전통 문화를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에 접목해 다양하게 소개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