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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일류,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정동현
#정동현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트레일러 영상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힘찬 카덴차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언어의 하나이자,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본 낭만주의 사조에 충실하게 멜로디는 논리가 아니라 급변하는 충동에 따라 흐르고 템포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고저를 오고 간다. 그 흐름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스시 한 점이 접시 위에 올라간다. 푸르게 벼린 칼날에 베인 생선의 단면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그 위에 바른 간장은 오래전 산수화의 담백한 음영처럼 은은히 빛난다. 그 스시를 바라보는 노인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2011)’의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스시를 내놓는 리듬감이 마치 협주곡의 카덴차만큼이나 다이나믹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스시가 단지 밥 위에 생선을 올린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의도와 철학이 담긴 어떤 예술에 가깝다는 조용한 웅변이기도 하다. 엄격한 아버지였다는 지로는 그 음악을 배경으로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본인이 스시를 만들어온 과거를 설명한다.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서 내놓는 것도 내가 처음 한 것이었지. 그러고 나니 다른 스시집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고급 스시집에 가면 손님이 스시에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사가 직접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준다. 손님이 스시를 간장에 찍을 때 밥이 떨어져 나가거나 간이 강하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손님이 요리사가 의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지금은 매우 손쉬운 발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한다. 이런 끝없는 도전과 연구는 긴자 지하철역 지하,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10석가량의 작은 스시집이 미쉐린 3 스타를 받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미쉐린 3 스타란 그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그 나라로 여행을 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제 아흔 살이 넘은 지로의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3개월 이란 수치도 대략적인 것이고 일본의 인맥, 일류 호텔의 컨시어지 등을 통하지 않고서는 쉽게 예약을 할 수가 없다. 힘들게 예약을 하고서도 식사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는다. 전채요리 등이 아예 없고 스시가 10~12점 나오는 게 전부다. 식대는 모두 그날그날 시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만엔, 원화로 대략 3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사케 등을 시킨다면 최소 100만 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 예약 문의가 쇄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초입에 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맛이란 무엇일까? 맛은 설명하기 어려워. 나는 꿈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생각들이 터져 나와서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꿈에서 나는 스시의 환영을 보지.”





나도 요리하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15시간 넘게 주방에 서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집에 들어오면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방의 열기가 몸에 남아 채 식지 않고 곤두선 신경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한 실수, 그 덕에 들어야 했던 수모와 욕설, 어찌할 수 없는 자괴감, 음식이 나가는 빠른 템포, 뜨거운 팬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쓰던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마치 몸에 새겨진 듯했다. 시간이 흘러 늦은 밤, 잠이 들면 나는 또 주방에 서 있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보였다. 나를 보고 비웃는 동료가 보였다. 그러면 꿈에서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시 눈을 뜨면 또 주방에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충혈된 눈을 한 동료들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건조하게 인사를 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이다. 악순환이다. 지친 정신에 몸은 나약해진다. 나의 몸은 아프기를 고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조금 쉴 수 있으려니, 나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픈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몸이 아팠다. 오래 서 있으니 자연히 허리가 아팠고 신경을 계속 쓰니 장이 뒤를 따랐다. 일 년 에 한 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갈라 디너 날, 온몸에서 미열이 났다.


준비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 갈라 디너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는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짬뽕을 만들듯 볶아내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수를 우리는 것부터 시작, 재료에 따라 준비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코스 중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서 투입되는 노동력은 어마어마하다. 접시 하나는 요리 하나가 아니다. 주요리에 부요리 몇 개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요리사는 절대적으로 쉴 수가 없다. 그 중 하나였던 나는 몸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나는 불쌍한 요리사다. 나는 혹사당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모두 나를 불쌍히 여겨라. 아침부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나를 보고 몇몇이 걱정의 말을 던졌다. 나는 괜찮다고 답을 하면서도 아프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주방에 서 있었다. 이윽고 대망의 디너가 시작되기 30분 전이 됐다. 주방장이었던 애쉬가 말을 걸었다.



“너 어디 아프지?”

“어.”

“생애 최고의 날에 아프단 말이야? 말도 안 돼.”



투명한 파란 눈에 꼬불거리는 금발이었던 애쉬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에게 아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고였다. 무엇보다 일주일을 준비해 손님들을 대접하는 갈라 디너 날, 아프다는 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이 가진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모든 요리사가 달라붙어 준비한 이 날은 애쉬에게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처음에는 서러웠다. 나는 아픈 몸이었다. 그러니 위로를 받아 마땅한데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는 애쉬가 미웠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미움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곧추세웠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애쉬의 구령에 따라 음식들은 접시 위에 올라갔다. 수십 가지가 되는 요리들이 모두 똑같은 맛과 모양을 가지고 손님 앞에 나갔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 순간순간은 느리게 느껴졌다. 불이 이글거리는 틈 사이로 손을 넣었다 뺄 수 있을 것만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풀어졌던 신경이 예민해지고 나의 몸은 잘 준비된 도구가 되었다. 얼굴에 흐른 땀이 말라 짠 소금이 되었을 때 모든 요리가 나갔다. 끝이었다. 애쉬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아프다고 했지? 빨리 집에 가. 수고했어.”

“아니야. 괜찮아. 이제 안 아파.”



나의 답에 그는 비웃음도 미소도 아닌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대청소가 시작됐다. 웃으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던 동료들은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주방 곳곳을 쓸고 닦았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 일터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 일은 누구나 하기 꺼린다. 주방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건물 공용 쓰레기장에 갖다 놓는 일도 그랬다. 같이 일하던 백인 요리사들은 그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늘 나나 다른 외국인 요리사가 그 일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었다. 건물 뒤편으로 나가 쓰레기통의 행적을 살폈을 때 나는 애쉬의 뒷모습을 봤다. 주방장인 애쉬는 쓰레기통을 밀며 뛰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일을 빨리 끝내려 뛰고 있었다.


일류와 일등의 차이는 간단하다. 일등은 이등이 필요하다. 이등을 밟고 올라가야 일등이 된다. 남과 비교하고 우열을 가린다. 비교할 수 있는 남이 없으면 일등도 없다. 그러나 일류는 이류가 필요 없다. 일류에게는 남의 시선도 필요 없다. 그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간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그 길이 더럽고 힘들지라도 그곳을 간다. 그래서 그는 일등이란 순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일류(一流), 즉 사조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뒷모습이 아름답다. 깊은 밤, 어두운 지하에서도 빛나던 그의 등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은 나를 부끄러움으로 뜨겁게 달궈 오래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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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김치찌개를 찾아서
정동현
#정동현

*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김치찌개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전에 이야기 했듯이 지인은 얼마 전부터 냉면문화연구소에 출근을 시작했다.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역전의 주자처럼 지치지 않고 냉면을 먹고 있는데, 아무리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주일 연속으로, 하루 세 번, 스물 한 끼를 냉면으로 떼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최소한 술 마신 다음날은 해장라면, 회식 할 때는 삼겹살이라는 패턴이 있다.

 

그러나 이놈의 냉면문화연구소는 해장으로는 팔도비빔면, 회식으로는 중화냉면을 먹는 만행을 저지른다고 하니, 지인은 이러다가 몸의 피는 육수가 되고 근육은 냉면가닥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인은 용기를 내어 동료 연구원들에게 "오늘 점심은 냉면 말고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제안을 했다. 이에 연구원들은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흠칫 놀라더니 '허허, 이 사람 참 맹랑하구먼' '아직 새해도 오지 않았는데, 다른 메뉴라니요, 남사스러워서' '아직 신입이라 어쩔 수 없는가보죠'라며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과는 달리 그들의 눈은 묘한 희열과 해방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제일 연장자 격인 김선생이 말을 꺼냈다.

 

"뭐 그럼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도록 하죠.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지인이 말했다.

 

"오늘따라 유난이 속이 허하니,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찌개가 어떠합니까?"





이에, 사람들은 말문이 트인 벙어리처럼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한 것이, 코 옆에는 콩알만한 점이 있는 박선생이 선수를 쳤다.

 

"역시 김치찌개라면 광화문에 있는 광화문집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김치찌개 용으로 젓갈을 적게 넣어 김치를 담궈 국물이 시원하며, 돼지 목살을 아낌 없이 썼기에 든든하기까지 하니, 장안의 김치찌개 집 중에서는 최고라는데 이견이 없지요. 게다가 계란말이까지 곁들이면 한끼 식사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혀가 있고 맛을 느낄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이 집을 가야 합니다."

 

"광화문집에 들어간 고기가 고기요? 그걸 가지고 고기라고 말한다면 저기 우래옥 옆에 있는 은주정의 고기는 맘모스 정도 되겠소이다. 자고로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란 은주정 정도 되어야, '아 고기가 들어갔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기가 적어 속이 허전하니 계란말이 같은 것을 시키는 게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은주정은 상추까지 따로 주니, 광화문집이랑은 비할 것이 아니지요."

 

"아니, 이 사람 키만 작은 줄 알았더니, 김치찌개 맛도 잘 모르는구려. 원래 김치찌개란 것이 김장김치가 남아서 처치 곤란할 때, 봄 쯤 되어서야 먹을 수 있던 그런 음식 아니겠소? 우리가 이렇게 사시사철 김치찌개를 먹은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소. 그런 면에서 광화문집이나 은주정의 김치찌개는 김치찌개의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것임을 모르시나 보군요. 게다가 부르스타 위에 냄비를 올려 끓여먹는 것 역시 80년 대 이후에 나타는 풍습이라오. 그런면에서 공덕 굴다리집이야 말로 김치찌개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하는 곳이지요. 냉면 그릇 가득, 살살 녹는 김치에 돼지 앞다리 살을 써서 쫀득거리면서도 비계의 달달한 맛이 살아있는 그 김치찌개의 맛은 가히 장안의 최고 아니겠습니까? 을지면옥 운운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입맛 참."

 

"거기서 을지면옥이 왜 나옵니까? 계속 원형 원형 그러는데, 어차피 모든 음식은 발전하고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선생들이 말한 그 김치찌개집들은 반찬재활용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산더미처럼 김치나 반찬들을 내놓던 곳이 아니요? 그 전후로 내놓는 반찬의 양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럼 뻔한 것이지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정된 맛으로 접객을 하는 새마을 식당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7분 김치찌개는 비록 체인점이지만, 얇게 썰어낸 돼지고기에 김치를 듬뿍 올려 자작하게 끓여낸 것이, 백종원 씨의 탁월한 감각이 발휘된 명작이지요. 자고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이지요. 거, 자기 입맛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요. 쯧쯧, 그러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요."

 

"갑자기 웬 나라 타령이요? 그때도 함흥냉면 타령 하시더니 역시 입맛이 영 유치하시구랴, 그렇게 화학조미료 팍팍 들어가고 어린 애들 알바 써서 내놓는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소? 당신 머리 빠진 것도 다 그런 화학조미료 때문에 그런거요. 유전자도 한 반 쯤 변형 되었을 것이니, 조금만 지나면 초록색으로 변할지도 모를 일, 조심하시오, 조선생."

 

"머리카락 이야기는 왜 해? 니가 탈모인의 심정을 알아? 함흥냉면에도 깊이가 있고, 그 싼 김치찌개 한 그릇에도 문화가 담겨 있는 거라고."

"그래봤자 대머리고 그래봤자 싸구려 음식이지, 그런 걸 먹으니까 머리가 빠지는 거야."

"누군 빠지고 싶어서 빠지냐! 내가 오백만 탈모인을 대표해서 너를 응징하리라. 이 자식아!"


그 말과 동시에 건축을 전공한 조선생이 책상 위로 올라갔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박선생은 조선생에게 머리채가 붙잡혔다. 이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법학박사 정선생도 협공을 시작, 사무실은 탈모인 대 비탈모인의 대결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직 머리털이 빼곡한 지인은 난리가 벌어지기 직전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간 지라, 참변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요즘엔 주방 찬모들 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캡사이신을 허공에 뿌려대니, 굳이 김치찌개 집이 아니더라도 눈물 콧물 빼어 가며 매콤한 맛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오늘은 광화문 일대가 김치찌개 풍 공기가 될 터이다. 그러니 공짜로 한국 전통의 맛을 즐길 자는 광화문과 시청 주변으로 모이시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태평성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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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냉면 맛을 찾아서
정동현
#정동현



* 들어가기에 앞서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냉면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 냉면 문화의 역사 및 진흥 발전에 대한 연구 및 대안 제시를 하는 곳이다. 공채는 하고 있지 않으며, 수시로 채용이 이루어지니 입사를 원한다면 연구소 홈페이지 올라오는 채용공고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근래 입사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연구소원의 평균 스팩은 박사급 5명, 석사급 4명으로, 토익은 물론 중국어에 능통한 이도 다수라고 한다. 전공은 제각각인데, 러시아문학부터 국문학, 그리고 경영학 및 컴퓨터 공학 등 그 공통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단지 그들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특성을 든다면 역시 냉면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지인이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면접을 치룰 때, 면접관은 지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최고의 냉면집은 어디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지인은 ‘제 생각에 을지면옥은 옛날의 명성에 기대어 그 맛이 하락중이고, 역시 강호의 최강자는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우래옥이 아닌가 여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인이 답하자마자 면접은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인의 답에 면접관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을지면옥의 맛이 하락세란 말인가?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김선생, 어찌 맛에 객관적인 증거를 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맛이 떨어짐을 안다는 것은 증거가 필요 없는 일이요, 단지 단 것과 짠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누구나 아는 것 아니요, 허허 참.”


“박선생,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구려. 비록 을지면옥을 찾는 이들이 백발성성한 노인들이 대다수라고 하나, 그것이야 말로 을지면옥의 맛이 한결같고 냉면이 추구하는 본질에 가깝다는 증거 아니요?”


“김선생, 노인들의 입맛을 어찌 믿는다는 말이요? 그들의 미각이란 그들이 지나온 세월이 무뎌지고 술 담배 등 각종 유해물질에 감각이 상하여, 면수에도 간장을 타서 먹어야 겨우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지 않소.”



평양냉면 면의 주 재료, 메밀



그때 정선생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 을지면옥이나 우래옥이나 냉면의 대세에서는 멀어졌다고 봅니다. 이제 우래옥에서 일하던 김태원 명인이 봉피양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종로의 시대는 가고 이제 강남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사대문 냉면 사대천황이니 하던 것들은 이제 옛날 이야기지요.”


그 옆에 있던 조선생이 한 수 거든다.


“장충동에 있는 평양면옥이야 말로, 냉면의 진수이지요. 냉면 한 젓가락을 입 안에 넣고, 육수를 같이 마시면, 메밀꽃 필 무렵의 서정이 입 안에서 펼쳐지니, 그것이야 말로 한국 냉면 문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이자, 한국 민속 문화의 깊이 아니겠습니까?”


이때부터 면접관들은 지인의 존재를 잊은 채 싸움… 논쟁을 이어갔다.



메밀향이 나는 거친 면과 맑은 육수의 평양냉면



“마포에 있는 을밀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소? 살얼음이 낀 육수는 가히 해장 냉면의 최고봉이라고 하는데, 이런 특수적인 상황에서의 냉면의 위치와 효용을 따지자면 냉면집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냉면 육수에 얼음이 껴서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이 연해지고, 마치 녹아버린 팥빙수 먹는 느낌이 나거늘, 을밀대의 냉면은 정파도 아니고, 단지 분식집 냉면이 진화한 것에 불과하지요. 얼음이라니, 쯧쯧.”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입맛이 바뀌고, 거기에 맞춰 발전해나가는 것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분식집 운운하다니요, 을밀대의 역사와 전통을 보세요. 참, 이런 분하고 내가 같이 일하고 있다니!”



고구마 전분의 쫄깃한 면과 새콤달콤한 육수의 함흥냉면



“아니, 그럼 함흥냉면은 어떻게 할겁니까?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의 솥을 받치는 세 개의 발 마냥, 오장동을 지배하는 세 곳의 냉면집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요? 이거 너무 편협한 것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함흥냉면도 평양냉면에 비해 못할 것 없는 역사와 맛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웬 함흥냉면이요? 이 사람 입맛 참 후지네.”


“뭐라고? 아니 그럼 발씻은 물 맛 나는 육수가 좋다고 하는 당신 입맛은 뭔데?”


“발 씻은 물이라니, 그 은은하고 진하며, 깊디 깊은 맛을 그렇게 말해?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요, 찬란하고 고귀한 기호를 꿋꿋히 지켜가는 천만 냉면인에 대한 모욕이야!”


그 말과 동시에 책상 위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박사가 올라가고, 국문학 박사의 구두가 날아다녔으며,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법학박사는 몇 줌 없는 머리카락이 뽑혔다. 지인은 그 아수라장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


며칠 후 지인에게 합격을 알리는 편지가 도착했는데, 지인이 추측하기로 우래옥을 좋아한 연구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 연구원은 지인에게 ‘참으로 강단있고 소신있는 사람’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냉면의 계절 여름, 더욱 냉면연구소에 할 일이 많아졌다. 냉면이 가장 인기많은 시기에 발맞춰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 전통 문화 발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웬만하면 함흥냉면이나 비빔냉면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빨개서라나. 냉면이름에 평양이니 함흥이니 이름이 붙어 가뜩이나 의심의 눈길을 사고 있는데, 더 나아가면 안된다며,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나는 ‘하여간 먹물들은 어쩔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호기롭게 빨간 냉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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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가 알려주는 캠핑 레시피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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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떠들어서 고기가 도망 가잖아.”


아버지는 낚시대를 거두며 투덜거렸다. 앞으로는 샤갈이 쓰던 파란 물감을 푼 것 같은 바다가 멀리 펼쳐졌고, 그 위로는 한 여름의 태양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빛을 발했다. 한낮 온도는 30도를 넘었고 햇빛 피할 길 없는 갯바위 위는 불판 위에 올라간 것처럼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20년도 전, 우리 가족은 부산 영도의 동삼중리에 피서를 갔다. 더위를 피해야 피서인 것인데 바다에 왔으니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타던 아버지는 부득불 갯바위 위에 홀로 섰다. 붕어 낚시도 아니고, 저 멀리 줄을 던지는 릴낚시 이거늘, 시끄럽다고 물고기가 도망간다는 논리에 10살 갓 넘은 우리 형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물고기는 잡히지 않고 우리가 입을 삐죽거릴 무렵이 되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밥 먹자!”


갯바위 멀리, 한적한 공터 차양막 아래에서 우아하게 쉬던 어머니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는 “이제 좀 잡히려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못이긴 척 낚시대를 거두었다. 그쯤 우리는 이미 차양막 아래 들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윽고 펼쳐질 만찬의 면면을 보면 굳이 왜 바닷가까지 와야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고기 또 고기. 고기가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는 동생과 아무래도 물고기 보다는 육고기가 좋다던 서울 출신 아버지(그런데 왜 낚시를?) 덕분에 반찬의 태반은 고기였다. 그 양상을 보며 나는 이런 합리적인 질문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고기 먹으면 안 돼요?”




굳이 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물고기는 아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고를 해야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한 화로에 번개탄을 올리고 불을 당기면 그 말은 쏙 들어갔다. 그 불길을 보노라면 어린 나의 머릿 속에는 이미 구워진 고기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준비한 삼겹살, 제육, 불고기를 순서대로 올리고 ‘치치직’하는 불길 닿는 소리와 야생의 본능을 자극하는 고기 익는 냄새가 요염하게 공기를 가르면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모든 욕망이 식욕으로 변했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 한국의 초여름, 시대가 바뀌어 그때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날이 좋을 때 산과 들로 나가는 풍습은 건재하다. 먹는 것 또한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이 딱 드러맞는다. 언제까지 삽겹살에 쇠고기 등심만 먹을 것인가? 하긴 그것이 마치 아버지의 노래방 18번처럼 자주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남녀노소 좋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좋은 말이라도 자주 들으면 질리듯, 이왕 시간을 내어 산과 들로 나간다면, 매번 집에서, 혹은 길거리 식당에서 뭔가가 달라야 조금 더 그 맛이 살 것이다.



쇠고기 대신 양갈비




양갈비는 양꼬치 집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근래 이마트나 SSG 마켓 같은 대형 마트에 가면 양갈비 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아직 호주나 영국처럼 본격적으로 파는 것은 아닐지라도 매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여전히 양고기는 냄새가 나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맛있다”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뿐이다. 주방에 있을 때 소고기는 ‘질렸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요리사들이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달려들던 것은 바로 양갈비였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비록 사이코패스에 살인마 이지만 감미안이 뛰어났던 미식가 살인마 랙터 박사가 선택한 식사 역시 양갈비였다. 양갈비도 뜨겁게 달군 불판에서 겉만 살짝 지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로 먹어야 제 맛이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의 대부분은 ‘램(lamb)’으로 한 살 이하의 어린 양이다. 어린 것 특유의 연한 식감이 입 안에서 녹아들고 희미하게 풀냄새가 나는 육향을 즐기면,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이 흘러나오는 듯 목가적이고, 식욕이 돋을라치면 어린 양을 잡아 놓고 축제를 지내던 저 옛날로 돌아간 듯 야성이 끓어온다. 양고기에 곁들이는 소스도 돼지고기나 소고기와는 다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민트젤리다. 양고기 매대 한 켠에 같이 팔고 있을 확률이 높은 민트젤리의 달달한 박하향은 양고기는 궁합이 좋다. 요구르트에 민트잎을 다져서 넣고 올리브유, 소금 등으로 간을 하면 그것 역시 훌륭한 양고기 소스가 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기가 있으면 술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양고기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와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목을 하기 때문일까? 양고기에서는 프랑스 요리에 흔히 쓰이는 허브 향이 나는데 이 향은 와인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종류다. 덕분에 프랑스 론 지방에서 나는 ‘샤토네프뒤파프’ 같은 와인을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 왜 본토 프랑스 사람들이 이리도 양고기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꼭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을 먹어야 한다면


그러나 누구 한명은 양고기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몽골 유목민도 아닌 마당에 양고기 몇 킬로그램을 먹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 굽지 않으면 먹는 것 같지 않다는 전통주의자도 있기 마련이다. 고추장 쌈장도 훌륭한 소스이지만 이 두 개를 곁들이는 순간 결국 상추쌈이 필요하고 소주가 뒤따르게 된다. 조금만 준비를 한다면 캠핑을 나가서도 이국적인 소스를 맛 볼 수 있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침미추리 (chimichurri)소스다. 브라질 원산의 이 소스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진 고수, 오레가노, 샬롯, 파슬리, 올리브유, 레드와인식초, 마늘, 레몬즙을 적당량 넣고(레시피에 이런 말을 쓰면 반칙 같지만 정말 그렇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된다. 산미가 있어 깔끔한 이 소스는 한 여름 소나기처럼 청량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둘다 잘 어울린다. 만약 요리에 자신이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소스가 있다. 바로 홀렌데이즈 소스다. 버터를 녹여 위로 뜬 유분을 제거한 클래어파이드 버터(clarified butter)와 후추와 샬롯을 넣고 졸인 식초로 만드는 이 프랑스 소스는 마요네즈의 따뜻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만드는 방법은 조금 까다롭다. 먼저 화이트 와인 식초(업장에서는 샴페인 식초를 쓴다)에 으깬 통후추와 샬롯(shallot)을 넣고 절반 정도로 졸인다. 여기에 동량 정도의 몰을 섞고 중탕기에 올린 뒤 녹인 버터를 조금씩 부어가며 거품기로 채를 치면 되는데 이 작업이 까다롭다. 많은 양을 만드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으니 이왕이면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 만약 제대로 만든다면 별 달린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다. 녹여 거른 버터의 풍부한 맛과 식초의 산미가 맛의 중심을 잡고 후추의 매콤함이 뒤를 받친다. 여기에 구운 고기를 찍어 먹으면 버터로 만든 소소가 이리 맛있는지, 왜 프랑스 미식이 위대한지 실감할 수 있다.



샐러드 드레싱, 부디 직접 만들자




마트 매대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것이 샐러드 드레싱이다. 건강에 좋다며 지방과 당이 들지 않았다고 붙여놓은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특히 발사믹 드레싱이라고 하여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섞어 놓은 것을 볼 때면 지긋지긋한 기분까지 든다. 오히려 심플하게 올리브유 3에 레몬즙 1, 마늘, 디종 머스타드, 1/4의 설탕과 약간의 소금을 섞으면 보다 산뜻하고 맛있는 드레싱을 만들 수 있다. 흔히 프렌치 드레싱이라고 부르는 이 소스와 구운 닭가슴살, 로메인 상추, 파마산 치즈 등을 섞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샐러드가 된다.



한낮에 즐기는 칵테일




뜨거운 태양이 쬐는 낮이라면, 혹은 열기가 가시지 않은 밤이라면 간단히 만든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클래식 칵테일, 진토닉이 가장 만만하다. 소나무 과의 주피터 열매로 만드는 진(gin)은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리쿼다. 진 때문에 벌어진 알콜 중독에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던 전력이 있을 정도다. 이 진은 무엇보다 여름에 마시면 좋다. 진 5에 라임주스 1, 그리고 시럽 1을 넣고 쉐이킹한 김렛(gimlet)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칵테일로 레시피가 매우 간단하지만 그만큼 맛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하여 바텐더의 실력을 알아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놀러 나와서 어깨에 각 잡을 필요는 없다. 맛있는 진토닉 만으로도 피크닉의 격은 몇 순위 올라간다. 취향에 맞는 진 브랜드를 고르고 달지 않은 헨리스 같은 좋은 토닉 워터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진토닉에 다다를 수 있다. 오이를 얇고 길게 썰어 넣고 민트잎 몇 개를 올리면 더 좋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현재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태양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쓰는 것,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지나간 과거 아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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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과일의 황제, 멜론
정동현
#정동현


“수박은 과일의 왕이다.”


<허클베리 핀>을 쓴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전후 맥락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압도적인 크기와 흘러넘치는 과즙을 보며 ‘왕’이란 단어를 떠올렸으리라.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멜론은 과일의 황제다.”



호주의 한국인 요리사, 멜론에 눈뜨다



나는 중산층을 밑도는 가정 경제 환경에서 자랐기에 멜론은 머나먼 과일이었다. 백화점 코너 한켠에 있는 멜론을 볼 때면 ‘누가 저걸 사 먹을까?’ 생각하며 멜론 아이스크림을 사먹곤 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요리를 하게 되면서 나는 멜론과 친해졌다. 그곳은 호주, 호텔의 조식 뷔페였다.


남반구에서 가장 큰 카지노라는 멜버른 크라운 호텔의 조식 뷔페 준비는 새벽 4시부터였다. 새벽 4시, 제대 이후 그 시간에 눈을 떠 본 적은 처음이었다. 호텔로 가는 번화한 길에는 거나하게 취한 객들만 돌아다닐 뿐이었다. 성스러운 노동으로 향하는 길. 나는 아무도 눈 뜨지 않은 새벽 거리를 혼자 걸을 때면 신성한 노동에 대한 찬양이 절로 나왔다, 는 거짓말이고 절로 욕이 나왔다. 현지에 가면 가장 빨리 배우는 것이 욕이라 했던가? 내가 아는 영어 욕 레퍼토리를 다 써갈 때 쯤이면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주방에 도착했다.


“나마스떼.”

“굳모닝.”


나의 인도말 인사를 영어로 받는 인도 요리사 ‘라지’. 나보다 살짝 어두운 피부색에 투박한 손. 나를 보며 씩 웃는데 ‘아서라 정든다’는 말은 못 하고 씩 웃으며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다른 요리사들과 웨이터들도 하나 둘 도착. 그 중 태반이 인도 친구들이었다. 이 부분에서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호주에 왜 인도 요리사인가? 호주에서 힘든 일은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도맡아 한다. 덕분에 힘들고 임금이 싼 접시닦이와 요리사 일은 이 다국적 군단 차지다. 그 중에서도 새벽에 나오는 조식 담당 요리사들 면면을 보면 이곳이 호주의 별 다섯 달린 호텔인지, 아니면 델리 어디쯤의 인도 레스토랑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요리사 출신 성분이 어떻든 맛만 제대로 나오면 상관 없는 것.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아침 일찍 나는 새들, 얼리 버드를 위해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것은 과일 준비였다.



“얘야, 과일 좀 깎아오너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1단계, 과일깎기. 사과 몇 개 깎는다면야 일도 아닌 것. 그러나 여기는 호텔 조식 뷔페. 세상이 좋아져서 깎아놓은 과일도 많이 판다는데 이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아니될 말이었다. 나는 냉장 창고에서 과일 한 무더기를 가지고 와 큰 칼로 깎고 썰기 시작했다. 그 과일 중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수박. 호주산 수박은 어찌나 덩치가 큰지. 호주 토박이들을 닮은 그 큰 덩치들 껍질을 벗기고 토막을 내다보면 진이 절로 빠졌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한 과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멜론이었다.



과일의 황제, 멜론의 맛



떡을 만들면 떡고물을 먹듯 과일을 담당하면 과일을 많이 먹게 된다. 과일은 몸에 좋다며 나는 억지로, 는 아니고 틈날 때마다 과일 조각을 입에 집어 넣었다. 과일 좀 깎고 먹어본 사람으로서 맛 평을 해보자면 이렇다. 먼저 나를 고생시킨 수박의 맛은 솔직하다. 큰 덩치만큼이나 수박의 맛에는 감춤이 없고 풍만하기 그지 없다. 빨간 속살을 보면 선정적일 것 같지만 맛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이 같은 느낌이다. 수박을 묘사할 때 괜히 아이들이 수박 한 조각을 물고 있는 정경을 그리는 게 아닌 듯 싶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으면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과는 어떤 맛일까?


푸른기가 도는 사과는 젊은 남자 같다. 아삭 부서지는 경쾌한 식감과 단단한 육질은 젊음 그 자체. 많이 먹고 크게 웃을 것만 같다. 소설이자 애니메이션인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의 남자친구 길버트가 사과 과수원을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반면 케이크 장식으로 자주 올라가는 빨간 딸기는 젊은 여자의 웃음처럼 생그럽다. 당도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무르지 않은 육질과 지워지지 않는 산도는 나를 들뜨게 한다. 딸기는 산딸기… 말을 말자. 제사상에 올라가는 황토색 배는 어떨까? 배는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사십 대 남자 같다. 일단 밀도가 높다. 단단하고 치밀하다. 맛을 보면 공격적으로 치고 돌어오는 기운은 없다. 그렇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다. 멜론은 몽환적이다. 저항감 없이 이가 쑥 들어가는 식감, 나른한 단맛, 멜론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파스텔 톤의 몽롱하고 화사하며 은은한 맛. 그 초현실적인 감각 덕분에 멜론을 먹다보면 내가 서울에 있는지 도쿄에 있는지 파리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멜론을 먹는 순간만 있다.


멜론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일본의 멜론 사랑은 여러모로 유별난 구석이 있다. 소보로빵의 다른 이름이 멜론빵인 것은 일본인이 가진 멜론 사랑의 한 단면이다. 멜론음료, 멜론 아이스크림 등, 멜론이 들어가지 않은 종류를 찾기가 힘들고, 인기가 없는 것 역시 찾기 힘들다.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참외를 먹었으나 멜론이 도입된 이후 참외가 거의 사라져버린 역사를 생각하면 일본의 멜론 사랑은 가히 전면적이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진 애착을 보려면 가장 얼마나 비싼 값을 치르는지 보면 되는 일. 일본 훗카이도 도청 소재지 유바리 산 멜론 한 통이 1300만원에 팔린 기록이 있을 정도니 일본의 멜론 사랑은 세계 최고라 할만 하다. 다른 과일 역시 일본에서는 좋은 품질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의 값을 받지만 멜론 수준은 아니다. 현재 후지산 인근 히즈오카 현에서 나는 최고급 멜론의 경우 백화점에서 30만원 정도 되는 값에 팔린다. 그리고 고급 스시 레스토랑의 디저트는 백이면 백, 멜론이다. 그 가치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혹은 집착에서 나온다. 비닐 하우스가 아닌 유리 온실에서 기르는 것은 기본이다. 꽃이 피기까지 정확히 50일, 그리고 그 이후 50일을 키운 후 정확히 수확한다. 질을 위해 한 그루에서 하나의 멜론만 수확하는 맹목은 같은 이유로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한 송이의 포도만 수확한다는 프랑스의 그랑크뤼 디저트 와인, 샤또 디켐에 비할만 하다.



멜론 최고의 짝궁, 하몬(jamon)



이런 고급 멜론은 일본에서 디저트로 먹듯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좋은 짝이 있으면 더 빛을 발하는 법. 스페인 산 생햄 하몬(jamon)과 멜론의 궁합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충분하지 않다.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 뒷다리를 2주간 소금에 절였다가 6개월 정도 천장에 매달아 숙성시켜 만드는 생햄 하몬은 짭짤한 소금의 맛과 숙성된 돼지고기의 감칠맛, 무엇보다 숙성된 꼬릿한 냄새 뒤로 스페인의 들녘 공기를 마시는 듯한 묘한 상쾌함이 깃든다. 그 하몬을 노란 멜론과 함께 입안에 넣으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녹아내린다. 단맛과 짠맛은 서로를 탐하듯 입 안에서 뒤섞인다. 멜론과 하몬의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향기는 내 몸에 스며들어 나를 여기가 아닌 어디로 이끈다.


아마 이국에서 내가 멜론의 맛을 알게 된 것과 일본의 6~70년대 고도 성장기 시절, 일본인이 멜론에 급격히 빠져들게 된 것은 멜론의 맛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북아프리카 원산인 멜론의 퇴폐적이기까지 한 집요한 단맛과 나른한 향은 고된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그 꿈은 어느 한군데 막힘 없이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촉촉하고 달콤하다. 그 꿈이 끝나고나면 다시 고된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테지만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그 꿈은, 맛있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멜론의 맛이다.


* 한국에서 제일 비싸고 제일 맛있는 멜론은 SSG 마켓에 판다. 먹어보고 하는 소리니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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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주방의 뼈와 살, 팬과 기름
정동현
#정동현


주방에서 가장 흔한 부상은 자상(刺傷)이다. 칼로 베이고 찔려서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난다. 그 다음은 화상(火傷)이다. 주방은 모든 것이 뜨겁다. 오븐 속 불길은 꺼질 일이 없다. 모든 주방 기기는 잠재적으로 뜨거운 상태다. 방심한 나머지 맨손으로 무언가를 잡는다면 그날 손바닥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래서 늘 타올을 겉대어 물건을 잡는다. 필수적인 습관이다. 그러나 뜨거운 기름은 언제든 튈 준비를 하고 있다. 타올을 겉대어도 기름은 사방팔방으로 튀어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주방 어디에나 있는 이 기름은 주방의 살이다. 그리고 모든 주방인은 잠재적 염좌(捻挫)환자다. 주방은 모든 것이 뜨겁다, 라는 말을 이쯤에서 수정해야 한다. 주방의 모든 물건은 뜨겁고 무겁다. 믹서에는 마력(馬力) 단위로 표시되는 출력의 모터가 달려있고 밀가루와 설탕 포대는 기본이 20kg이다. 무엇보다 주방의 뼈와 같은 팬이 무겁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방의 뼈와 살, 팬과 기름이다.



팬. 그 무거움에 대하여





“윽.”


처음 주방에서 팬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한국 남자는 군대 다녀온다며 으시대던 나는 없었다. 멋을 부리며 팬 몇 개를 한 손으로 들어올렸을 때 손목이 묘한 각도로 꺾였다. 그만큼 팬은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주방의 팬은 무겁다. 주방에서 어머니들이 쓰는 가벼운 코팅 팬은 볼 수가 없다. 왜일까?


팬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많은 열을 품을 수 있다. 말인즉슨 팬이 쉽게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팬이 무거울수록 팬 밑바닥이 두껍다. 그 말은 또 무엇인가 하니 팬 밑바닥이 골고루 데워진다는 것이다. 싼 팬은 보통 얇고 가벼운데 이런 경우 팬은 쉽게 식는다. 화기의 열기가 얇은 밑바닥을 뚫고 직접적으로 음식에 닿기 때문에 두꺼운 팬보다 음식이 타기가 쉽다. 두꺼운 팬은 뜨거워지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뜨거워지면 잘 식지 않는다. 화기의 열기도 직접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팬 전체를 달구어 간접적으로 음식에 닿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타지 않는다. 물론 가벼운 팬, 얇은 팬이 필요할 때가 있다. 팬이 얇을수록 빨리 달구어진다. 급히 요리를 해야 할 때 용이하다는 뜻이다. 더불어 팬이 얇기 때문에 열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이점을 살린 팬이 바로 중화냄비인 웍(wok)이다. 웍의 밑바닥 두께는 3mm가 채 안 된다. 이 얇은 두께 아래 섭씨 1000도 가까이 되는 프로판 가스불을 쏴주고 웍을 돌리면 우리가 열광하는 ‘불맛’이 난다. 그러나 가정에서 중국집에서 맛보는 불맛을 내기 쉽지 않다. 팬이 얇더라도 화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재료를 넣으면 온도가 쉽게 떨어진다. 팬 위 온도가 100도 언저리로 떨어질 때 재료는 볶아지는 게 아니라 자체 수분으로 삶아진다. 해결책은 역시 두껍고 무거운 팬을 쓰는 것이다. 무쇠팬처럼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팬을 10분 넘게 뜨거운 불에 달구어 요리를 하면 맛이 아예 다르다. 팬의 무게 말고도 열전도율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까지 따지기에 인생에 신경 쓸 것이 한 둘인가? 점심 메뉴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는 시대. 간단하게 생각하자. 무거운가? 가벼운가? 슬프게도 가벼우면서 열을 많이 품는 팬은 없다. 영국 저널리스트 비 윌슨이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옮겼듯 “불가능이 없는 이 좋은 세상에도 완벽한 냄비용 금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팬에도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 만능팬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벼운 팬과 무거운 팬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무거운 팬이 더 좋다.


그렇다면 왜 팬이 쉽게 식는 것은 좋지 않은가? 볶음이나 튀김을 할 때 재료가 갈색이 되도록 구워야 맛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색은 맛의 단서다. 단백질 조직이 120도가 넘는 열을 받으면 단백질은 갈색으로 변한다. 이것이 마이야르(Maillard)현상이다. 이 마이야르 현상은 아미노산과 열의 화학반응이고 그 결과물은 우리 인류가 좋아하는 풍미다. 그럼 왜 그 구운 맛에 끌릴까? 하버드 대학 인류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인류는 화식(火食)을 통해 음식 섭취 속도와 양이 패러다임 전환적으로 늘고 그 초과된 영양 공급으로 두뇌가 진화했다고 밝힌다. 어찌되었든 이 갈색은 이미 밝힌 것처럼 섭씨 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발생한다. 만약 온도가 낮게 되면 재료에 있는 물기가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끓는다. 팬이 가벼우면 보통 그렇다. 그래서 나는 팬을 고를 때 직접 들어보고 고른다. 한 손으로 들기 힘들면 오케이. 온라인으로 고를 때면 상품평을 본다. ‘너무 무거워서 쓰기 힘들어요’라는 평이 있으면 딱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는 이유





기름을 치면 맛있다. 대부분의 맛과 향 분자가 수용성이 아닌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에 기름을 두르는 이유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역시 온도와 관계가 있다. 기름은 팬 위의 재료와 팬 사이에 온도 전달자 역할을 한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걀 후라이를 해보면 달걀이 팬에 달라붙고 쉽게 탄다. 왜냐하면 팬의 뜨거운 열이 매개체 없이 바로 달걀에 닿아서 그렇다. 기름은 재료 전체에 골고루 온도가 적용되도록 돕고 팬이 가진 열의 완충 작용을 하여 타는 것을 막는다(물론 너무 뜨거워지면 재료는 탄다). 더불어 버터와 같은 기름은 풍미를 더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름을 써야할까?


올리브유는 일반적으로 가열 조리에 쓰지 않는다. 이유는 올리브유의 성분이 열에 약해서다. 세계의 모든 요리사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물어보는 과학적 조리의 아버지, 화학자 해롤드 맥기에 따르면 올리브유를 일정 온도 이상 가열하면 본연의 향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굳이 가열 조리시에 좋은 올리비유를 쓸 필요는 없다고 밝힌다. 더불어 개성이 강해 마구잡이로 쓰게 되면 맛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과유불급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리브유는 비싸다. 굳이 그 비싼 올리브유를 별 효용 없이 쓸 필요는 없다. 대신 좋은 올리브 오일은 음식의 마무리에 혹은 드레싱으로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낮에 가열 조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올리브유도 품질에 따라 발화점이 다르다. 품질이 좋은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섭씨 22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주방은 땀과 기름이 현현(顯現)하는 실존의 공간이자, 냉정한 숫자와 물리가 함께 하는 과학의 장이기도 하다. 오늘 당신이 한 요리가 맛이 없는 이유는 소질이 없어서도 아니고 날이 이상해서도 아니다. 충분히 무거운 팬을 쓰지 않았고 충분한 양의 기름을 두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의 팔 근육이 견딜 수 있는 질량이 일정 수준 이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몸과 머리, 뜨겁고 차가운 것이 함께 하는 이 주방의 이야기가 늘 흥미롭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요리는 그 맛으로 화답한다. 팬과 기름, 이 두 가지는 그 이야기는 충분히 귀 기울일만 하다. 혹시 아는가? 당신이 무거운 팬을 들어올려 만든 요리에서 프로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