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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식에 ‘쓱’ 들어온 가정간편식, “날도 더운데 삼계탕도, 갈비탕도 간편하게 집에서 즐긴다”
쓱닷컴, 보양식과 신선식품 ‘경쟁’


온라인 장보기가 보편화되고, HMR(가정간편식) 제품 수준도 나날이 발전하면서 ‘여름 보양식’을 준비하는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가정에서 삼계탕 등을 직접 조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HMR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

SSG닷컴이 초복을 앞두고 6월 4일부터 7월 3일까지 한 달 간 매출을 분석한 결과, 삼계탕 갈비탕 장어요리 전복죽 등 보양식 HMR 매출이 전월 같은 기간에 비해 70% 이상 늘어났다고 4일 밝혔다.

특히 복날 대표 음식인 ‘삼계탕’이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으며, 해당 기간 동안 매출액은 3배 이상 증가했다. 

단일 상품으로는 ‘피코크 진한 삼계탕 900g’, ‘피코크 녹두삼계탕 2입기획(900g*2입)’이 압도적으로 판매량이 높았다. 

‘설렁탕’과 ‘곰탕’, ‘갈비탕’ HMR 상품군은 각각 전월 보다 50%, 30%, 26%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생닭, 사골, 전복 등 ‘원물’ 식재료 매출 증가는 20%대에 머물러 대조를 이뤘다. 

이처럼 HMR은 조리가 간편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침식사는 물론, 간식, 보양식, 캠핑, 집들이용 등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지난해 약 3조 원까지 시장이 불어났다.

실제로 SSG닷컴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년 간 매출을 집계한 결과, 전체식품 가운데 HMR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자릿수에서 15%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신선식품 비중은 38%에서 40%로 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예철 SSG닷컴 영업본부장은 “HMR 시장의 성장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며, 

“얼마 전 시작한 새벽배송에서도 여름철 보양식 HMR 상품이 순위권에 대거 포진했다”고 밝혔다.



2019.07.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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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먹던 진짜 설렁탕은 어떤 모습이었나?
한국인의 힘! 설렁탕 한뚝배기에 담긴 이야기
황광해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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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칼럼리스트, 황광해



설렁탕 집에서 자주 발견되는 “임금께서 선농단(先農壇)에서 쇠고깃국을 끓여서 백성들과 자주 나눠 먹었다. 그게 설렁탕의 시작이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선농단에 갔다가 비를 만나면 급히 환궁(還宮)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당시 쇠고기는 귀했고 그릇도 귀했습니다. 탕을 끓여 먹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설렁탕은 최소 10시간 이상 고아야 합니다. 실제 설렁탕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무렵입니다.



설렁탕의 실제 기원





‘이문설렁탕’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즉 가장 오래된 식당입니다. 1904년 무렵 문을 열었다고 알려졌는데요. ‘이문(里門) 부근에 있는 설렁탕 집’이니 ‘이문집’이라 불리다가 ‘이문옥里門屋’이 되었고, 지금의 ‘이문설렁탕’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1897-1910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설렁탕은 ‘저잣거리 서민들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문설렁탕이나 해장국집 ‘청진옥’에는 나무꾼들이 주요 손님이었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 동소문을 거쳐서 땔감을 한양(경성)으로 져 날랐던 나무꾼들은 땔감을 부려놓고 설렁탕 한 그릇으로 주린 배를 채웠던 것입니다. 서민의 길거리 음식이다 보니 기록도 변변치 않습니다.


한식의 기본은 탕반음식입니다. 국(양)과 밥(음)이 밥상의 주인공인 것이죠. 나물국이든 고깃국물이든 늘 밥과 더불어 국이 한 그릇 놓여야 합니다. 반가(班家)나 상민(常民) 구분 없이 밥상의 주인공은 탕반(湯飯)입니다. 저잣거리 서민들의 음식인 설렁탕은 어느 날 기록에 나타나면서 그 시작이 명시된 음식이 아닙니다. 정확한 레시피가 있는 음식도 아니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주막 등에서 편하게 끓였던 여러 종류의 국물 중 하나였죠. 그것이 일제강점기 무렵, 주막에서 내놓는 설렁탕이 된 것입니다.



서민들이 먹던 진짜 설렁탕은 어떤 모습이었나?





조선은 ‘3금(三禁)의 나라’였습니다.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늘 금송(禁松)을 지켰습니다. 누룩을 만들거나 곡물로 술을 빚고 마시는 것도 금했습니다. 이른바 금주령(禁酒令)을 어기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소는 중요한 농사 도구이죠. 그래서 (금육禁肉)은 영조 시절까지도 철저하게 지켜진 금기입니다.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은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합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청나라의 ‘쇠고기 먹는 법’이 전해지면서 조선의 궁궐부터 쇠고기 소비가 늘어납니다. 영조가 신하들에게 쇠고기를 먹자고 하자 신하들이 “상(上=임금)께서는 금육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본인은 드신다”는 말도 나옵니다. 정조도 늦은 밤 규장각의 신하들과 난로회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쇠고기 소비는 일제강점기에 다시 한 번 증가합니다. 조선을 지탱하던 ‘금육’도 풀렸죠. 쇠고기 소비가 늘어나면 쇠고기 부산물로 끓이는 설렁탕, 설렁탕과 닮은 음식이 유행하기 마련입니다. 살코기는 정육(精肉)입니다. 정육은 귀하게 쓰고 서민들은 구하기 쉬운 나머지 부산물로 길거리 음식인 설렁탕을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8월 24일 동아일보의 ‘평양인상’이라는 기사에는 설렁탕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전략) (서울)설렁탕은 뿔만 빼놓고 소고기란 모조리 휩쓸어 넣고 끓이는 국입니다만, 이곳 명물은 모든 잡고기는 다 제쳐놓고 그중에 혹살, 혓바닥, 우량 우신 등을 비롯하여 그중에 맛있고 연한 것만 넣고 끓이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서울 설렁탕같이 기름지지는 못할망정, 깨끗하고 맛있습니다. 설렁탕같이 쇠털 내음새(냄새)는 조금도 나지 아니합니다. 이것도 값은 서울 설렁탕보다 쌉니다. 한 그릇에 십 전씩입니다. 맹물에는 밥도 넣거니와 밀국수도 섞어 넣어줍니다. (후략)”



서울의 대표 설렁탕 맛집





설렁탕은 “모든 식재료를 귀하게 사용”하는 한식의 정신이 잘 드러나는 음식입니다. 설렁탕처럼 사골과 잡뼈, 머리뼈와 각종 부산물까지 사용하여 탕을 끓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일제강점기 설렁탕에는 반드시 지라(만하 혹은 마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내장도 모두 사용했다는 뜻이죠. 오늘날도 잘 끓인 설렁탕은 굵고 가는 한우 뼈, 양지 등 살코기 부분, 도가니, 각종 부산물 등을 모두 넣고 오랜 시간 잘 고아낸 것입니다.


서울 종로의 ‘이문설렁탕’은 이사를 한 후 국물이 더 좋아졌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전통 설렁탕에 가까운 맛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곡동 ‘하영호신촌설렁탕’은 고소한 곡물 냄새가 나는 설렁탕 국물을 내고 있습니다. 장인의 솜씨로 곤 국물이죠. 공덕동 로터리 부근의 ‘마포양지설렁탕’, 왕십리 언저리 ‘홍익진국설렁탕’ 등도 추천할 만합니다. 서소문 언저리 ‘잼배옥’, 종로3가 ‘영춘옥’, 신설동 ‘옥천옥’ 등도 대대로 이어져 오는 맛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