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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속 백화점
근대 자유와 낭만의 상징 (1편)
상업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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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의 공간은 그 시대를 담는 세계로 이야기됩니다. 때로는 작품 속 인물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하죠. 1930년 10월 24일 우리나라 최초의 미스코시 백화점 경성점. 일제시대에 등장한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당시 생활사적 면에서 일대 전환점이 될 만큼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 문학작품의 좋은 소재가 된 곳인데요, 우리 민족에게 있어 격변의 시기인 20세기 초의 문학에서는 백화점을 어떻게 그리고 있었을까요? 오늘부터 3편에 걸쳐 우리 근대 문학 속 백화점을 모습을 시대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서춘(徐椿), 미스코시 백화점의 유통혁명을 논하다 (1931년)


“상업을 하더라도 가령 미스코시 같은 데를 가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상품을 여러 가지로 또 많이 사다 놓고 팝니다. 그러니 상품 한 두 가지나 조금씩 내놓고 파는 상점보다 손님이 많이 옵니다. 또 파는 물건뿐 아니라 설비에도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

-서춘, ‘조선사람 빈궁의 실지적 7대 원인’ 中


서춘은 일제와 운명을 같이한 경제평론가입니다. 그는 1931년 4월 발간한 잡지 『혜성(彗星)』에 ‘조선사람 빈궁의 실지적 7대 원인’이라는 글을 게재하였죠. 이 글에는 미스코시 백화점이 일으킨 유통 혁명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국내 최초 백화점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전경 칼라엽서


미스코시 백화점은 전근대적인 상품판매 방식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이와 함께, 진열장 판매, 정찰제 및 자유관람제, 철저한 교환환불제, 다량 구매에 따른 가격 책정, 갤러리와 옥상공원 운영 등을 시행하죠. 이렇게 미스코시 백화점이란 이름은 우리 근대 유통사뿐 아니라 식민지 일제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문화와 근대 인식을 뒤바꾼 전환기적인 상징어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이효석, 근대의 낭만을 표현하다(1934년)


“검은 빛깔에 붉은 줄이 은은히 섞인 사치하면서도 결코 속되지 않은, 몸에 조화되고 취미에 맞는 넥타이”

-이효석, ‘수난’ 中


우리나라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 이효석은 우리 근대의 작가이자, 언론인, 수필가, 시인입니다. 그의 작품 『수난』(1934년)에서도 백화점은 중요한 배경이죠. 여자 주인공이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골라주자 남자 주인공은 그녀의 예민한 미적 감각과 세련된 안목을 칭찬합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넥타이라는 근대 문물을 통해 모던 보이와 신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3층에 위치한 넥타이(네쿠다이라 표기) 코너





이상, 근원을 향한 자유를 담다 (1936년)


“나는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스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 ‘날개’ 中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옥상에서 본 충무로, 좌측에는 한국은행, 정면에는 구 상업은행 본점, 우측에는 중앙우체국이 보인다.


박제된 천재라 불리는 이상. 그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날개』 후반부에 등장하는 독백이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일상에서 외출과 귀환, 자유와 억압의 수평적 왕복 운동을 계속하죠. 그러다 집으로의 귀환을 접고 미스코시 백화점 옥상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억압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미스코시 백화점의 옥상은 본질을 추구하는 자유와 해방의 세계를 향한 비상 의지가 담긴 공간인 것이죠.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옥상 및 전망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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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면세점’ 지양, 신세계에서만 경험 가능한 콘텐츠 강조
“세상에 없던 면세점 만들자”
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어메이징(Amazing)한 콘텐츠’로 가득 찬 면세점을 만들어 ‘신세계 다운 신세계’를 보여주자고 당부했습니다. 5일 저녁 속초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에서 진행된 대졸 신입 1년차 연수캠프에서의 환영인사를 통해서입니다.

 

정부회장은 입사 1년을 맞이한 새내기 사원들에게 “우리가 지금 도전하고 있는 시내면세점의 경우에도 세계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비슷비슷한 면세점을 만들어선 안 된다”며, “오직 신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어메이징한 콘텐츠로 가득 찬,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면세점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회장은 “해외 비즈니스맨들이 신세계 면세점을 방문했을 때 사업적 영감을 얻어갈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내 고객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고객까지도 신세계가 만들면 항상 뭔가 새롭고 재미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심어줘야 한다”며, “이런 신뢰감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굳이 값비싼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세계 곳곳의 고객들이 신세계란 브랜드에 열광하며 찾아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신세계측은 정부회장이 면세사업의 방향에 대해 피력한 의견은 평소 자신이 추구하는 경영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혁신과 도전의 DNA로 무장해 한계를 돌파하는 정신이야 말로 진정으로 ‘신세계다운 신세계’의 모습이란 얘기입니다.

 

정부회장은 “우리가 만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콘텐츠로 우리나라 고객뿐 아니라 전세계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며, “백화점, 이마트, 프리미엄아웃렛 등 기존 유통채널은 물론 그룹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개발중인 복합쇼핑몰과 면세사업에서도 신세계다움을 심어주자”고 역설했습니다.

 

신세계 관계자는 “할인점의 한계를 뛰어 넘은 ‘이마트타운’,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L)의 지평을 넓혀준 ‘피코크’처럼 신세계다운 DNA로 콘텐츠 차별화에 나서달란 주문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대졸 신입 1년차 연수 캠프에서 면세사업 방향에 대한 의견 피력



 


정부회장은 본인이 추구하는 ‘기업관’에 대해서도 이날 신입사원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부회장은 “앞으로 우리 신세계가 치열한 경쟁에서 일등을 차지하는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룰을 만들어서 시장을 선도해 가는 그런 일류기업이 됐으면 좋겠다”며, “신세계 임직원들이 상하좌우로 소통하고 협력해 건설적 대안을 마련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계를 넘어설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회장은 입사 1년을 맞은 신입사원들을 위해 앞으로의 회사생활을 위한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먼저, ‘정석을 배웠으면 정석을 잊어 버리자’고 주문했습니다. 정부회장은 “선배한테 배운 대로만 일해서는 절대 자기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없다”며, “새로운 정석을 만들어 내는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연구하면서 실력을 키워가 주길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며 소통과 협업도 강조했습니다.

 

정부회장은 “우리 회사는 ‘비전 2023’을 달성하기 위한 장거리 경주에 돌입한 상태로 전에 가 본적이 없던 새로운 길을 가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며 “한계 돌파는 어느 한 사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문제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이날 대졸신입 1 년 차 연수캠프에는 정부회장을 비롯해 김해성 신세계그룹 전략실 사장,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 이갑수 이마트 영업총괄부문 대표 등 신세계그룹 사장단이 대부분 참석했다고 신세계측은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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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주인을 잃은 백화점
격변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백화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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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주인을 잃은 백화점



1950년대 서울 상계지도 세부


1945년 9월 15일, 해방 이후 미스코시백화점은 동화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합니다. 종업원 대표가 관리하던 백화점은 적산으로 편입되고, 6•25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PX로 사용됩니다. 해방 직후, 지금의 미도파는 조지야라는 상호를 중앙백화점으로 바꾸는데요, 이 역시 적산으로 평가되어 미군정청이 접수합니다. 미스코시와 마찬가지로 미군 전용 PX로 사용되던 중앙백화점은 1948년 한국 무역협회에 불하됩니다. 충무로에는 미나카이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해방 후 국유 재산이 되어 해군 본부 건물로 사용하다 훗날 원호처 소유가 됩니다. 종업원과의 갈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던 화신백화점은 1946년 2월 자본금 2천만 원으로 재개점 하지요.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백화점은 제 기능을 잃고 명맥만 겨우 잇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백화점



왼쪽부터 동화백화점 미군 PX 사진엽서(1951), 미국인 앨범에서 발견한 동화백화점 당시 미군 PX사진(1953)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백화점업계는 또 한차례의 수난을 겪습니다. 서울이 수복된 후 동화백화점은 1951년 7월 19일에 미군 PX로 사용되죠. 전쟁이 끝난 뒤, 서울에는 몇 개의 백화점만 남게 됩니다. 1954년 10월 1일 무역협회 건물의 지하와 1/3 층을 매장으로 내고 영업을 시작한 미도파가 그중 하나입니다. 신신백화점은 1955년 2월 20일 동화로 재개장합니다. 1955년 11월 15일 화신백화점 옆에 이름만 바꿔 개장한 신신백화점도 전쟁 이후 서울에 남게 됩니다.



신신백화점 외관(1950년대)


백화점은 전쟁으로 생산시설이 붕괴하였고 직영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단일품목 코너를 운영하거나 외래품을 취급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백화점은 사치의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나머지 매장은 임대를 주어 보증금과 함께 월세를 받아 운용하는 매장 임대업의 장소로 전락해 버립니다. 1954년 11월 29일 관재청에서는 미군으로부터 동화백화점을 정식으로 명도받아 1955년 2월 20일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됩니다. 지하매장은 직영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매장은 임대하는 영업방식을 취하게 되죠. 4층에는 이후 동화백화점을 인수하는 동방생명이 임대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임대백화점으로서의 사업방향은 동화백화점이 1962년 동방생명에 인수될 때까지 지속합니다.



왼쪽부터 동화백화점 광고(1955), 동화백화점 상품광고(1955)



급변하는 사회의 축소판이 된 백화점



|왼쪽부터 국산품 판매 매장 입점 광고(1961), 동화백화점 경품권(1962)



1950년대 말, 동화백화점은 임대업자들이 주축이 되어 ‘새나라 자동차 경품대회’를 엽니다. 이 경품대회는 판매촉진의 일환으로 연말에 추진된 것인데요, 특등에 새나라 자동차, 1등 고급 미싱, 2등 오르간, 3등 행운 열쇠(순금)를 주는 경품행사였습니다. 임대업자들은 특등 상품으로 내건 새나라자동차를 각자 돈을 거둬 1층 쇼윈도우에 전시하였는데요, 엄청난 경품인지라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1961년 5•16 군사혁명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게 되는데요, 군사정권은 ‘재건국민운동’의 일환으로 1961년 7월 15일부터 외래품 판매금지를 발표하게 됩니다. 상품 대부분을 부정 외래품으로 취급해온 백화점은 상당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외래품 판매금지로 백화점의 점포 가격은 폭락하였고 상당수 임대업자는 백화점을 떠나게 됩니다.


백화점업계의 외래품 파동이 있기 석 달 전인 1961년 4월 1일부터 동화백화점에 국산품 매장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외국산이 판치는 백화점에 국산품 직매장이 들어선 것은 신문에 날 만한 일이었죠.


그러나 외래품 판매금지 조치 이후 동화의 2층 매장은 반으로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객 수도 격감했기 때문에 동화의 이 같은 노력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동화는 경영상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1962년 9월 28일 동방생명과 동화백화점 소유권 이전계약을 체결하게 되는데요, 동화백화점 인수 이후 동방생명은 사세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새로운 경영주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삼성은 1963년 7월 15일 동방생명을 인수하게 됩니다. 바로 삼성생명보험의 전신이 된 곳이지요.


해방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의 상징이었던 백화점은 2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 명맥만을 겨우 유지합니다. 미국의 PX, 임대업장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때이죠. 이는 당시 우리 경제와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원조로 근근이 유지한 때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시기를 딛고, 국민 경제의 중심을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변화시켰죠. 바로 백화점의 변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해방 이후 백화점은 당시 상업과 사회상 변화의 축소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