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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덕온공주의 인장이 60년 만에 귀환한 사연은?
김 석
#김석기자


2016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기억하시나요? 다른 건 몰라도 박보검이란 배우만큼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지요. 이 드라마에서 박보검이 맡은 역할은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였습니다. 스물둘이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뜬 바로 그 비운의 왕위계승자 말입니다. 효명세자의 아버지는 순조입니다. 순조는 조선 최고의 문예군주로 불리는 정조의 아들이지요. 그러니까 효명세자는 정조의 손자인 겁니다.



2016년 KBS 2TV에서 방영돼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순조와 순원왕후는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습니다. 효명세자가 장남이었고, 둘째 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요. 그리고 세 딸 명온, 복온, 덕온공주가 있습니다. 드라마에는 세 공주 가운데 명온공주만 등장하더군요. 아쉽게도 드라마에선 만나볼 수 없었지만, 이 자리에서 소개할 우리의 주인공은 다섯 남매의 막내딸이자 효명세자의 막내 여동생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입니다.


덕온공주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입니다. 덕혜옹주가 있는데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공주와 옹주는 엄밀히 말해서 출생 신분이 다릅니다. 정실 왕후가 낳은 딸이 ‘공주’, 그 외에 다른 부인이 낳은 딸을 ‘옹주’라 했습니다. 그래서 고종의 딸인 덕혜는 ‘조선의 마지막 옹주’로 불리는 겁니다. 덕온공주는 일반인에게 시집을 가 궁궐 밖에 나가 살다가 효명세자와 마찬가지로 스물셋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와 함께 말이에요.



<덕온공주 당의>, 1837년,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중요민속문화재 제1호


요행히도 덕온공주가 입었던 옷 가운데 원삼, 당의, 장옷, 삼회장저고리, 누비저고리 등 6점이 지금까지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유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일괄 지정됐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덕온공주의 당의(唐衣)는 우리나라 중요민속문화재 제1호입니다. 그나마 이만큼 어엿하게 유물들이 남았으니 고인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마지막 공주의 인장, 뉴욕 경매에 등장하다



<덕온공주 인장>


그런데 최근 바다 건너 미국 뉴욕에서 범상치 않은 도장 하나가 경매에 나옵니다. 해태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것만 봐도 상당히 지체 높은 이의 물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영어 해설을 자세히 읽어보니 놀랍게도 덕온공주(Princess Deokon)의 인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닥에 ‘덕온공주지인’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경매사인 크리스티 측에 물어보니 미국의 한 소장자가 갖고 있다가 내놓은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만일 진품이라면 그것 자체로 ‘사건’이었습니다.


덕온공주의 도장은 어보(御寶), 즉 왕실 도장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격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11년 6월, 조선 왕실 도장인 어보(御寶)가 국내에서 경매에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1496년에 만들어진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비(妃) 공혜왕후의 도장이었는데요. 실제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의례용으로 만든 어보는 왕실을 상징하는 유물이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급입니다. 당연히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고요.



2011년 국내 경매를 통해 존재가 확인된 <공혜왕후 어보>


이런 유물이 경매에 나왔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그럼 도대체 어떤 경로로 이 귀중한 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오게 됐을까요. 추적을 해보니까 6•25 때 미군이 불법으로 몰래 반출을 했고, 그 뒤로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는지 무려 6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춘 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1987년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나라 수집가가 낙찰받아 보관해 오다가 2011년에 국내 경매에 내놓은 겁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경매를 통해 국내로 가져온 건 정말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경매라는 것이 가진 자들의 한가한 돈 놀음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만, 어디에 있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었던 귀중한 문화재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한 순기능이 있습니다. 만약 소장자가 이 유물을 다시 경매에 내놓지 않았다면 국내에 이런 귀중한 왕실 유물이 있는지조차 몰랐겠지요.


다행히 경매에서 어보를 낙찰받은 건 ‘문화유산국민신탁’이었습니다.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소중한 공동체의 문화유산을 국민의 힘으로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공적 성격의 기구입니다. 4억 6천만 원에 낙찰된 조선왕실 어보는 국가에 무상으로 양도됐고, 이제 어엿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됐습니다.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호조태환권'이 장물이 되다



2010년 5월 미국에서 경매에 나와 논란이 된 <호조태환권 원판>


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온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사례를 소개할까요? 2010년 5월, 미국 미시건 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소리소문없이 경매에 나온 유물 하나가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1893년 대한제국이 ‘호조태환권’이란 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인쇄용 원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폐를 실제로 발행해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화폐 개혁을 향한 대한제국 황실의 굳은 의지가 담긴 소중한 유물입니다. 그런데 이 유물이 미국의 자그마한 지방 소도시 경매에 나온 겁니다.


왕실 어보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라이오넬 헤이즈라는 미군이 1951년 덕수궁에서 반출한 겁니다. 당시 미군이 전리품 삼아 챙겨간 왕실 유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전쟁이란 비극이 초래한 또 다른 비극입니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당시에 액수에 따라 모두 네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국내에는 50냥짜리와 10냥짜리 뒷면만 남아 한국은행의 화폐박물관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불법으로 반출된 유물은 ‘장물’, 즉 ‘훔친 물건’입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미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경매사와 낙찰자를 장물 거래 혐의로 처벌했고, 마침내 호조태환권 원판은 고향 땅을 떠난 지 6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유물 역시 경매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테고, 돌려받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왕실 유물은 일반에 유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장물입니다. 그래서 왕실 유물은 소재만 확인되면 언제든 되찾아올 기회가 있는 거죠.


하지만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는 반출 과정을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훔친 건지, 아니면 선물로 준 건지, 돈을 주고 사 간 건지, 어떤 경로를 거쳐 해외로 빠져나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왕실문화재가 아닌 다음에야 불법으로 반출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나서서 입증해내지 못하면 돌려받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걸 가진 사람이 어서 가져가시오, 하고 알아서 선뜻 내놓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다시, 덕온공주의 인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누군가 조선 왕가의 인장을 경매에 내놓고 있다?



인장 경매결과


4월 1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의 <일본과 한국 미술> 경매에 143번째로 나온 <덕온공주 인장>은 23만 7,500달러, 우리 돈으로 3억 원에 낙찰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확인된 낙찰자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조사와 환수를 맡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귀중한 유물 한 점이 경매라는 절차를 통해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겁니다. 국내에 남아 있는 공주와 옹주의 인장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더구나 조선의 마지막 공주의 유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덕온공주 인장>의 가치는 오롯합니다.



2017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숙선옹주 인장>


비슷한 다른 사례가 없을까 하고 과거 크리스티 경매 기록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더 나오더군요. 꼭 1년 전인 2017년 5월에 해태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또 다른 인장이 경매에 출품됐던 겁니다. 이 인장은 정조가 후궁 수빈 박 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가 쓰던 겁니다. 정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순조의 여동생이지요. 덕온공주에게는 고모가 되는 셈입니다.


숙선옹주 인장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한국 고미술품 53점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인 34만 3,500달러에 낙찰됩니다. 당시 환율로 계산해보면 우리 돈으로 3억 8,500만 원 정도 됩니다. 덕온공주 인장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 거죠. 그런데도 이 소식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언론 보도도 거의 없었고요. 숙선옹주 인장은 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걸까요. 이후 인장의 종적을 알려주는 정보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1년 간격으로 숙선옹주와 덕온공주의 인장이 똑같은 경매에 나왔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누군가 조선의 인장을 여럿 소장한 사람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하나씩 조심스럽게 물건을 경매에 내놓는 건 아닐까요? 공주와 옹주의 도장은 왕가의 유물이긴 해도 왕실 문화재는 아니기 때문에 증거가 명백한 도난품이 아닌 한 돌려달라고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매에도 나올 수 있는 거고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우리 문화재 당국은 과연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요.



다시 고국의 품에 안긴 조선백자의 꽃, 달 항아리


(좌) 2015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국내로 환수된 백자 달항아리

(우)2018년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백자 달항아리


2015년 11월,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한 점이 경매에 나옵니다. 일본인 소장자가 50년도 넘게 애지중지 아껴온 귀한 물건이라 처음엔 경매에 내놓지 않으려 했다는군요. 경매 주관사인 서울옥션이 무려 3년 넘게 공을 들여 설득했답니다. 조선 백자의 꽃으로 불리는 달항아리는 현재 온전하게 남아 전하는 것이 10여 점에 불과할 정도로 귀하디귀한 유물이지요. 이 달항아리는 어느 한국인이 21억여 원에 최종 낙찰을 받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문화재 환수의 사례였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보다 예술성이 더 뛰어난 백자 달항아리가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나왔습니다. 역시 일본 도쿄의 한 소장자에게서 나온 물건이라 했습니다. 이 경매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85억 3,000만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워낙 화제가 된 터라 달항아리는 사실 뒷전이었습니다. 경매가 끝난 뒤에 확인해보니 다행히 한국인이 낙찰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답니다. 크기로 보나 형태로 보나 빛깔로 보나 근래 보기 드문 이 명품 달항아리의 최종 낙찰가는 우리 돈 25억여 원,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로는 역대 최고가 기록을 썼습니다.


우리 문화재가 반드시 우리 땅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문화재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발상은 쉽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생각일 뿐이지요. 우리의 귀중한 유물이 해외 유수의 미술관, 박물관에서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숱한 외세의 침략과 기나긴 식민지 시절 동안 워낙에 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리고 빼앗겼기 때문에, 이제라도 정말 귀중한 것들은 우리 손으로 되찾아 와야겠다는 열망이 솟아나는 것 또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문화재를 해외 경매에서 낙찰받아 되찾아오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언론 보도를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문화재 반환에 대한 생각과 여건이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그게 합법적으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모두가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이제 긴 타향살이를 마치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덕온공주 인장>을 우리 박물관에서 곧 만날 수 있겠지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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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유일한 낙화장의 낙화 담은 스타벅스 텀블러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텀블러에 복원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대표 이석구)가 다가오는 삼일절 앞두고 2월 22일 (목) 종로구에 위치한 스타벅스 더종로점에서 문화재청(청장 김종진)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에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보존 기금 1억원을 전달한다. 


앞서 스타벅스는 지난해 5월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대한제국 자주 외교의 상징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복원과 보존을 위한 후원 약정식을 갖고 후원금 2억원을 전달한 바 있다. 이로써 스타벅스는 현재까지 총 3억원의 기금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및 보존 사업을 위해 기부하고, 대한제국공사관의 ‘한국 전통 정원’ 조성 및 공사관 보존 활동을 후원한다.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오는 5월 개관하여 일반인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스타벅스는 김영조 낙화장(烙畵匠)(충북무형문화재 제22호 지정)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헌정 낙화 작품을 디자인에 반영한 텀블러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낙화 텀블러’는 스타벅스가 대한제국공사관을 주제로 선보인 세 번째 텀블러로, 오는 3월 5일부터 스타벅스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에 전달된 1억원의 기금은 지난해 광복절을 기념해 출시되었던 두 번째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텀블러’의 판매 수익금에 금번 소개되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낙화 텀블러’의 예상 판매 수익금을 더해 마련된 것이다. 아울러, 스타벅스는 SNS를 통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역사적 의의를 알리는 등 공사관 복원 및 보존 사업을 지속 후원해 나가면서 문화재 민관협력의 대표 사례로서 문화재 보존 공헌 활동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낙화 텀블러’는 스타벅스 최초로 장인의 손길로 탄생된 예술 작품을 텀블러 디자인에 반영해 출시함으로써 한국의 전통예술과 대한제국공사관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커피색을 닮은 그림 낙화 는 불에 달구어진 인두로 종이나 섬유, 나무, 가죽 등의 표면을 지져 그림이나 문양 등을 표현하는 한국의 전통예술로, 낙화장은 이러한 ‘낙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일컫는다. 이런 낙화 분야에서 유일하게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김영조 장인은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국내 단 한 명의 낙화장이다. 


김영조 낙화장은 “어려웠던 시기에 우리 민족의 애환을 간직한 건물인 만큼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을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하고자 했고, 그 어떤 회화보다 낙화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타벅스 이석구 대표이사는 “스타벅스가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은 지 10년째 되는 올해, 소중한 우리 문화재인 대한제국공사관을 한국의 전통예술 낙화로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을 스타벅스 매장에서 소개할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스타벅스와 1만 3천여명의 스타벅스 파트너는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고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고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59명의 강연자와 2만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한 대표적인 궁궐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한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의 덕수궁 정관헌에서 명사 초청 행사를 후원하고 있으며, 정관헌 음악회를 비롯해 창경궁 여름 야간 특별 관람 방문 시민에게 커피 증정 봉사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지난 2015년과 2016년에는 김구 선생의 '존심양성'과 '광복조국' 친필휘호 유물을 구매해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한 바 있으며, 올해에는 경주지역 고도지구육성 발전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전통 문화 보존 및 보호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2018.2.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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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복궁, 어디까지 가봤니?
2편. 디테일에 담긴 호젓한 아름다움
김 석
#김석기자

 


경복궁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십중팔구 경복궁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근정전(勤政殿)을 먼저 꼽으실 거예요. 하지만 근정전 못지않게, 아니 되려 건물과 주변 풍광까지 어우러진 경복궁 최고의 명소는 따로 있습니다. 근정전 서쪽 행각을 빠져나오면 넋을 잃게 만드는 빼어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요. 궁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그 장한 규모 하며 호젓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바로 경회루(慶會樓)입니다. 눈부신 가을날의 경복궁 하늘은 얼마나 높고 푸르렀던지… 물 위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번잡한 세상 시름마저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그 옛날 석공의 기교를 담은 경회루 돌기둥


북쪽만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을 뿐 경회루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참 멋집니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예술이 되는 풍경 있잖아요. 그런데 한때 경복궁에서 살다시피 했던 어느 미술사 학자에게는 경회루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을 지어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기둥이었어요. 바깥으로는 사각기둥 24개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안쪽으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기둥이 가지런합니다. 누각 아래로 들어가서 보면 돌기둥에서도 이런 감동을 얻을 수 있구나 싶어지지요. 그 옛날 석공은 어찌 저리도 큰 화강암 덩어리를 깎고 다듬었을까요.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주열



이토록 아름다운 경회루 돌기둥의 멋을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선생입니다. 한국의 미(美)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지녔던 선생은 경회루 돌기둥이 주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더할 바 없이 감동적인 글로 남겨놓았지요.



이렇게 시원스럽고 엄청난 화강석 네모기둥의 주열이
또 어디에 있는지 나는 그 예를 모른다.
(중략)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면서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크기도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를
우리는 이 화강석 주열에서 역력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향정(下郷町)



경복궁 내 숨은 근대의 산물, 하향정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회루를 떠나려는 발길을 붙드는 것이 또 있습니다. 경회루 왼쪽으로 연못 건너편에 자그마한 정자 한 채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지요. 하향정(荷香亭)입니다. 근처 연못 위로는 나무배 한 척까지 근사하게 떠다닙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문제는 이 정자가 조선 왕실의 유산이 아니란 점입니다. 하향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지은 겁니다. 낚시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쉼터로 말이에요. 실제로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도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궁궐 안에다 버젓이 낚시터를 지어 놓고 경회루 일대를 개인 휴양지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하향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의 기준 시점은 이 글의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중건한 1888년에서 1907년 사이입니다. 이 시기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하향정은 철거해야 마땅합니다.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대책을 촉구했건만 2013년 문화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그대로 두라고 결정합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건물 자체에 역사성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그 뒤로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철거해서 내버리자는 게 아니라 적절한 다른 위치로 옮기자는 게 과연 무리한 요구일까요. 경복궁 복원의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정전(修政殿)



수정전 앞 말채나무에 깃든 사연


경회루 권역을 떠나기 전에 가볼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경회루 남쪽에 수정전(修政殿)이란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요.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였던 유서 깊은 공간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고종 때 다시 지어져 대한 제국의 내각 건물로 두루 사용된 곳입니다. 지금은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고종 때에는 주변으로 200칸에 이르는 각종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고 해요. 앞마당이 제법 널찍해서 요즘은 야외 공연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더군요. 바로 이 수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보입니다. 이름은 말채나무. 봄에 늘어지는 가지로 말채찍을 만들어 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수정전 앞뜰에서 자라고 있는 말채나무 두 그루



그런데 원래는 지금 자리가 아니라 수정전 건물 앞 계단 사이에 70~80살 먹은 말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해요. 국내 최고의 궁궐 나무 전문가인 박상진 선생이 쓴 <궁궐의 우리 나무>란 책에 바로 이 수정전 말채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1999년에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수정전 계단 사이에 자라고 있던 말채나무를 잘라내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는데요. 당시 문화재청이 제시한 역사적 근거는 이렇답니다. 첫째, 왕을 해하려는 자객이 나무에 가려 안 보일 수 있다. 둘째, 건물과 나무가 일직선상에 있으면 문 밖에서 건물을 볼 때 한자로 문(門)에 나무(木)가 겹쳐져 한가롭다는 뜻의 한(閑) 자가 되어 나라가 번창할 수 없다. 셋째, 담장 안 한가운데에 나무가 있으면 한자로 담장(口)과 나무(木)가 겹쳐져 곤란하다는 뜻의 곤(困) 자가 되니 역시 나라에 이롭지 않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수정전 앞 말채나무 두 그루가 더 특별하게 보입니다.



교태전(交泰殿)



경회루 권역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아 다시 근정전 뒤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지난 글에서 눈높이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건물 위만 쳐다보면 아래가 안 보인다고요. 궁궐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뒤를 보는 겁니다. 대개 궁궐을 이곳저곳 돌다 보면 건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앞만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정작 건물 뒤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더 좋은 것들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지요. 근정전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에 만나볼 보물은 교태전 뒤에 있습니다.



아미산(峨眉山)



아미산 위 자리한 작은 보물


왕비가 잠을 자는 곳이었던 교태전 뒤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을 아미산(峨眉山)이라 불렀지요. 보시는 것처럼 차곡차곡 단을 쌓아서 만든 인공 정원입니다. 교태전은 왕비가 자는 곳이었으니 당연히 온돌에 불을 때서 난방을 했겠지요. 당연히 연기를 밖으로 빼줄 굴뚝이 필요했을 거고요. 그런데 우리 조상은 이 굴뚝 하나조차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태전 굴뚝은 모두 4개입니다. 조선시대 내내 있었던 게 아니라 1865년 폐허가 된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만든 거랍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굴뚝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요.



아미산 굴뚝만 따로 보물 제81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미산 굴뚝의 핵심은 육각으로 쌓아올린 몸체의 각 면에 그려진 문양들입니다. 가운데 큰 그림에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그 위아래 작은 그림에는 봉황이며 박쥐, 학, 사슴 등 온갖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왕비가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니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기둥 위에는 제법 서까래에다 기와까지 얹었으니 기둥 하나하나 어엿한 집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위에는 또 다른 작은 기와집이 앉아 있군요. 연기가 빠져나가는 집이라 해서 연가(煙家)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물건입니다. 저 굴뚝 꼭대기에 종종 모여서 앉아서 마치 여기 나 좀 봐 주세요, 손짓하는 것만 같아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아미산 굴뚝 연가(煙家)



이러니 경복궁을 좀 가봤다는 분들은 아미산 정원과 굴뚝의 아름다움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지요. 앞에서 인용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도 아미산 굴뚝에 매료돼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경복궁 역사의 구석구석에 백성들의 고혈이 엉겼다 하지만,
한 가닥 불평도 불만도 비끼지 않은 이 멋진 굴뚝들의 쌓음새를 보고 있으면
‘참 우리 백성은 좋은 백성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따뜻이 해 준다.



그뿐인가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 역시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복궁이 세계 어느 나라 궁궐보다 인간적 체취가 느껴진다는 것은
아미산 꽃동산 같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자경전 꽃담장과 경회루 연못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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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 가득한 덕수궁 정관헌의 봄날을 즐기세요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후원하는 문화재청 덕수궁 관리소(소장 곽수철)의 대표적인 고궁 야간문화행사인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가 열립니다. 이번 행사는 5월 11일 첫 행사를 시작으로 6월 8일까지 매주 수요일(5월 25일 제외) 오후 7시부터 8시30분까지 덕수궁 정관헌에서 진행됩니다. ‘덕수궁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는 문화계 유명인사를 초청해 고종 황제가 커피와 함께 연회와 휴식을 즐겼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장소인 덕수궁 정관헌에서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무료커피와 함께 주제별 강연을 펼치고 함께 대화를 즐기는 행사입니다.


11일에 진행된 올해 첫 번째 행사는 30여년 이라는 긴 시간 감초 연기로 우리에게 친근한 배우 양희경의 ‘제자리 찾기’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18일은 각종 매체에서 한국사를 대중들에게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는 강사 설민석이 ‘설민석의 역사 이야기’라는 강연을 통해 역사 속 선조들의 지혜와 통찰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6월 1일은 외국인 최초로 서울대 국악과 부교수로 재임 중인, ‘힐러리 핀첨 성’의 강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인류음악학자가 바라본 국악’이라는 제목으로 ‘21세기 우리 국악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 들어볼 수 있습니다. 8일은 해학과 풍자, 과장, 익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그려내는 것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 성석제가 ‘역사를 탐광하는 광부들의 문학’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펼칩니다.



한국 전통 문화에 의미 더하는 다양한 활동 올해도 지속적 전개 예정



지난 2009년부터 8년 째 매년 봄과 가을마다 진행되고 있는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행사는 소설가 조정래, 혜민 스님, 이준익 영화감독, 안숙선 명창 등 총 48명의 명사들이 명사들이 강연을 통해 9,600여 명의 시민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행사의 자세한 정보는 덕수궁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행사 시작 전 6시부터 모든 방문객들은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이 제공하는 커피와 간식를 무료로 즐길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고 다양한 문화재 보호활동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1948년)에 쓴 ‘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을 문화재청,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한 것을 비롯하여 창경궁 야간개장 행사 커피 지원, 고궁 청소 및 식재 활동 등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알리고 보전하는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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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변함 없이 신정동 일대 저소득 계층 겨울 김치 책임져
다정다감 김장 나누기
신세계조선호텔
#신세계조선호텔





 

신세계조선호텔은 오는 11월 19일(목) 오전 10시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신목종합사회복지관 앞에서 식약청과 함께 ‘다정다감 김장 나누기’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신세계조선호텔, 식약청 임직원들과 더불어 노상덕 신세계조선호텔 상무, 조형학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총주방장, 유무영 서울 식양청장이 참여해 만든 김장 김치 1,200Kg(350포기)는 복지관 인근 저소득층 220가정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매년 진행하고 있는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는 단순히 김장 김치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정다감’, 즉 ‘다양한 이웃, 정다운 지역사회, 다 함께 만드는 감동의 김장나누기’라는 주제로 재가노인에서부터 저소득 다문화 가정에까지 온정의 손길을 나누자는 의미로 매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태욱 신세계조선호텔 CSR팀장은 “지난 13년 동안 매년 겨울 신목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김장 담그기 행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번 행사는 식약청 임직원들과 협동해 ‘다정다감’의 뜻을 나누게 되어 더욱 의미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세계조선호텔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회 활동”을 중심으로 봉사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지난 1999년부터 조선호텔에서 정기적으로 전담 직원을 배치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실시해 왔는데, 2005년부터는 신목사회복지관에서 연결해준 치매 혹은 무의탁 노인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통해 매월 주제를 정해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한 2002년부터는 양천구 ‘신목종합사회복지관’과 결연을 맺고, 매년 약 350포기의 김치를 함께 담그고 있으며, 명절에 물품지원 및 부서별∙동호회별 재능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 센테니얼 호텔의 이미지에 맞게 ‘희망전통지킴이’ 활동으로 문화재 보호활동 및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호텔 임직원이 사회봉사에 참여한 시간은 2014년 기준 연간 6,700여 시간에 이르며, 환경보호에 참여한 시간을 합치면 총 8,000시간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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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모금 행사로 선보인 텀블러에 대한 호응과 문의로 매장에서 한정 소개
백범 김구 ‘존심양성’ 텀블러
스타벅스코리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커피 코리아가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를 담은 텀블러를 전국 800여 매장에서 28일부터 한정적으로 소개합니다. (단, 일부 매장은 29일부터 출시) 텀블러 가격은 1만원으로, 판매 수익금 전액은 우리 문화재 보호 활동 기금으로 기부됩니다.

 

앞서 스타벅스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광복절에 출시한 <2015 코리아 8.15 머그, 텀블러, 카드> 판매로 조성된 수익금으로 10월 15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김종규 이사장)에 백범 김구 선생의 ‘存心養性’(존심양성) 친필휘호 유물을 기부한 바 있습니다.

 

이 날 유물 기부와 함께 진행된 문화재 보전 활동 모금 행사에서 한정적으로 선보였던 친필휘호 텀블러에 대해 추가적인 호응과 고객 문의가 이어졌으며, 스타벅스는 문화 유물을 더 많은 시민에게 소개하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문화재 보호 기금으로 활용하고자 전국 매장으로 확대해 텀블러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30년(1948년)에 쓰신 친필휘호는 ‘좋은 마음을 그대로 지키고 간직하여, 하늘이 주신 성품을 키워 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친필휘호 원본은 덕수궁 중명전에서 11월 중에 특별 전시되어 공개될 예정입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고 다양한 우리 문화재를 알리며, 우리 문화유산 보전에 일조해오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덕수궁 정관헌에서 명사 강연 문화행사를 후원하고, 창경궁 야간개장 행사를 알리는 커피 후원을 비롯해, 전통 문화를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에 접목해 다양하게 소개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