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SG LIFE/COLUMN
SSG 고전
나목
장석주



시인 장석주가 추천하는 ‘책장 속 고전’

작가 박완서의 삶과 문학 그리고 소설 《나목》



박완서는 자기 의지가 아닌 한국문학이 그를 콕 찍어서 작가로 호명한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하는 작가입니다. 『나목』으로 시작해서 『친절한 복희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들로 우리 안의 탐욕과 뻔뻔함, 위선과 허장성세를 참혹할 만큼 예리하게 벗겨내곤 했습니다. 『엄마의 말뚝』 연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등에서는 그만의 살아있는 문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제 체험을 투영하여 ‘허구를 완전하게 배제한’ 악몽 같은 시대 체험을 담아낸 것입니다.



 

 





평범한 주부에서 소설가가 되기까지

박완서라는 이름으로 담아낸 특유의 문체는 문학적 평가와 대중의 지지를 함께 이끌어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살아가는 개인의 울음을 담아낸 박완서의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합니다. 평론가 황도경은 박완서의 소설을 두고 “잡담하기, 수다 떨기, 울기, 웃기, 곡하기, 염불 외기, 비명 지르기, 신음하기, 딸꾹질하기, 주정하기, 도리질하기”라고 평가하는데요. 이러한 독특함이 박완서를 한국의 ‘대표작가’이자 우리 시대의 ‘증언자’로 자리매김토록 하는 지점입니다.

 

그의 일생을 잠깐 살펴보는 것은 박완서의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중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뜹니다. 어머니의 ‘치맛바람’ 덕분에 서울로 와서 살게 되었고, 해방 전해에 숙명여고를 들어가 졸업하고, 1950년 6•25가 나던 해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로 진학합니다. 당시 대학교 입학식은 6월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입학 후 그가 학교를 다닌 기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쟁통에 오빠와 숙부를 잃고, 미 8군 ‘PX’의 초상화부에 취직해 생계를 이어가다, 1953년 휴전 무렵 결혼합니다.

 

“휴전이 되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했다. 나는 선을 보고 조건도 보고 마땅한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청첩장을 찍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남자네 집」 中

 

결혼 뒤 박완서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4녀1남을 낳아 기르는 일에 몰두합니다. 커다란 한옥에 연탄아궁이가 있는 집에서 보통여자로 살림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1970년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합니다. 바로 그가 젊은 시절 미 8군 PX 초상화부에서 만난 화가 박수근과의 추억을 담은 소설입니다. 처음에 논픽션으로 썼다가 나중에 소설로 고쳐 썼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요.

 





화가 박수근과의 만남을 기억의 서사로 풀어내다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한국문학 최고의 유산인 박완서의 데뷔작이자 생애 마지막까지 직접 보고 다듬고 매만진 아름다운 유작.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실 애 다섯을 낳아서 키우다보면 아무 생각도 못하죠.”

 

작가의 고백에 따르면 그렇게 변변한 습작도 하지 못한 채, 마흔 살, 늦깍이 작가로 출발한 것입니다. 별다른 습작을 거치지 않고 대뜸 「나목」 같은 빼어난 장편소설을 써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나목」은 전쟁으로 폐허간 된 채 수복된 서울, 그 한가운데의 미군 PX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바로 미군 PX로 사용된 곳인데요. 해방 후 동화백화점으로 운영되던 이곳은 6•25 전쟁과 함께 또 다른 삶의 격전지로 변모합니다. 여 주인공의 일터인 미8군 PX는 생존에 내몰린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젖줄입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산 자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장입니다. 박완서는 ‘고가’와 ‘PX’의 ‘하우스’ 사이를 오가던 여주인공 ‘이경’과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옥희도’와의 만남을 축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 군상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흥미로운 생태보고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사람들의 생존 이야기로 읽는다면 소설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나목」에는 풍부한 서사와 시대의 무게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는 천재화가와 그 아픈 시대의 사랑

“큰댁 덕에 비교적 윤택하던 피난살이, 아니 그 전일 게다. 활량하던 피난길, 그때도 아니다. 그 전, 어수선하던 크리스마스였던가. 피난을 갈까 말까 어머니 몰래 보따리를 챙겼다간 풀고, 다시 챙기고. 그때도 아니다. 그 전, 수복 후의 나날들, 비췻빛 하늘을 인 노오란 빛들, 아낌없이 쏟아지던 노오란 빛들, 지금도 눈이 부시다. 그때도 아니다. 그럼 그 전,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기억의 소급을 정지시켰다. 몇십 년이나 묵은 은행이 그 가을엔 왜 그렇게 처절하도록 노오랬던가. 난 그것을 보며 왜 그렇게 살고 싶고, 죽고 싶고를 번갈아가며 격렬하게 소망했던가. 지금도 그것이 궁금할뿐 내 기억의 소급은 노오란 빛 속에 용해되어 다시는 헤어나질 못했다.”

-「나목」 中

 

박완서는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풍부한 기억의 서사로 「나목」을 채워나갑니다. 전쟁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을 끄집어냅니다. 천재화가가 생계를 위해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고, 대학 생활 대신 세일즈로 생계를 꾸리는 삶. 전쟁이 만들어낸 삶의 추락을 여지 없지 드러내지만, 그 속에서 인간애를 놓지 않는 것입니다.

 

박완서의 우리나라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낸 일상인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 쿠데타 등 근대화의 과정을 견뎌냈지요. 박완서는 작가가 아닌 일상인으로 살았던 그 세월을 5백 년 같은 세월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경이롭고도 신산스럽다. 나는 수공업 시대에 태어났고 그때는 유리도 워낙 귀해서 유리로 된 물건을 본 것은 푸르스름한 정종병 정도였다. 나는 어떤 때 내가 5백 년을 산 것 같은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전히 우리곁에 남아 삶의 위안이 되어주다

그가 겪어낸 시대는 박완서를 작가이게끔 하는 밑천이 되었습니다. 5백 년 같은 그 세월을 부지런히 담아내며 박완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하지만 자기 체험을 알뜰하게 ‘파먹는’다고 누구나 다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개인적인 것에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불어와 내 삶을 왜곡시키는 그런 것에 중점을 두었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것은 울궈먹을 생각이 없어요.”

 

소설이라는 것은 체험이라는 원단을 갖고 개성적인 ‘옷’을 지어내는 작업입니다. 좋은 원단이 좋은 ‘옷’의 기초가 되겠지만, 디자이너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옷’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박완서가 대작가로 우뚝 선 것은 개인이 겪어낸 경험을 좋은 원단 삼아 자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흡입력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 속에 동시대의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체험을 바탕으로 담아내는 압도적인 문체, 살아 움직이는 입말 등이 어우러집니다. 이러한 요소 간의 화학적 조합이 너무나 절묘하지요. 작가는 죽어서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다섯 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젊은’ 소설들은 늙을 줄도 모른 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어 위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