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스페셜/칼럼

Home > SSG 스페셜/칼럼
Home > SSG 스페셜/칼럼
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대영제국의 중심, 런던을 거닐다
이 환
#이환작가
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no.1,THE UNITED KINGDOM,런던 편 Part.2
영국,정식명칭: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위치:서유럽, 프랑스의 북서쪽,언어:여어,수도:런던(LONDON),인구:64,769,452명(2017년7월기준),종교:영국성공회 카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THE UNITED KINGDOM,LONDON

UK LONDON PART 2.

영국의 중심, 런던의 일상을 거닐다
아직도 종이 신문을 읽는 이들이 많은
미디어의 천국
COUNTRY OF MEDIA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가판대를 채우고 있다. 공원이든 카페든, 혹은 지하철이든 신문 읽는 이들 이 많다. 요즘엔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신문이나 책을 읽는 이들이 부러울 정도로 많다. 영국 신문들이 세계 신문시장의 모델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변하는 독자들의 취향 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경쟁을 통해 변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사랑하는 명소, 코벤트 가든
COVENT GARDEN

코벤트 가든 역 광장. 가장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런던 명소다. 마술, 저글링, 버스커들의 놀라운 창작음악 등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매일 감상할 수 있다.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이라는 이름 그대로 ‘수도원 채소밭’에서 출발했을 이곳은 1970년대 중반까지 청과시장 이었다고 한다.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 라는 뮤지컬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주인공 일라이자 둘리틀(Eliza Doolittle)의 모습으로 꽃을 팔던 거리도 이곳이다. 가난하지만 말괄량이 여인 일라이자가 교양 있고 우아 한 신데렐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처럼, 이곳에 오면 꿈과 희망이 꿈틀거린다!
작지만 자신이 가진 한 가지 재능에 몰두하며 탄성과 웃음을 선사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여정의 고단함도 덜어낸다.
런던을 물 위로 거닐다,
리틀 베니스
LITTLE VENICE

리틀 베니스는 패딩턴 기차역(Paddington Station) 옆 두 개의 큰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런던 내의 하천은 거의가 인공 물길(Canal)이다. 매년 5월이면 리틀 베니스 물길 위는 울긋불긋 깃발과 문양과 꽃 장식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장식의 보트 수백여 척이 한데 모여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주변 리젠트 파크(Regent Park)나 더 캠든 마켓(The Camden Market), 런던 동물원(London Zoo) 등을 쉬이 갈 수 있다. 고색창연한 런던을 물 위로 다니며 색다른 풍경을 맛볼 수 있다.

즐거운 거리 축제, 노팅힐 카니발
NOTTING HILL CARNIVAL

휴 그랜트(Hugh Grant)와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나오는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1999)]의 배경지역. 노팅힐 카니발은 서부 런던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아프리카계 캐리비언(Afro-Caribbean) 이민자들이 1964년부터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뽐내는 거리 축제다. 매년 8월 마지막 주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세계 음식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양한 음악과 함께 시름을 잊을 수 있다. 거리 축제 중 브라질 리우 카니발(Rio Carnival)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골동품 속 숨은 진주를 찾아라,
포토벨로 마켓
PORTOBELLO MARKET

노팅힐 바로 옆 골동품 가게. 전 세계 서화들과 동서양의 온갖 물건들이 즐비하다. 주말이면 거리에도 긴 노점이 펼쳐진다.

안전한 도시를 책임지다,
런던 경찰
LONDON POLICE

런던의 경찰은 친절한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연속된 테러 때문인지 꽤 엄격하다. 런던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건 정복 경찰 외에 눈에 안 띄는 수많은 사복 경찰 때문이다. 시민 대부분은 경찰의 권위를 인정하며 범죄가 발생하면 놀랄 만큼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런던에는 지하철의 안전만 책임지는 교통 전문 경찰이 따로 있다.
약속과 만남의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
PICCADILLY CIRCUS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만나는 약속을 한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를 연상시킨다.

모던한 국제도시 런던과
세월을 보전하는 시민들
LONDON PEOPLE

뉴욕처럼 전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국제도시, 시내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알려주는 이를 찾기 힘들다. 그 역시 관광객이거나 혹은 다니는 길만 알고 사는 런던 사람일 거다. 첨단 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에도 런던 사람들은 수백 년 긴 세월의 흔적들을 매우 아끼고 보존하는 데 지극정성이다. 백 년 넘는 펍이나 레스토랑도 많고, 도심 한가운데에도 리젠트 파크나 하이드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 들이 잘 보존되어 시민들에게 위안을 준다.

런던 사람들은 특히 집을 사랑하고 정원을 사랑한다. 집안이나 정원 가꾸기에 관한 쇼핑몰, 그런 제품들을 소개하는 잡지나 TV프로그램도 많다.
성당 옆에는 어김없이 공동묘지가 있다. 노인들이 옛 사람들의 무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이나 거리 어디를 가든 버스커들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Walk alone in London
is the greatest rest.
런던을 혼자 걷는 것은 가장 큰 휴식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11월·12월 Publisher’s letter
새로운 도전을 위한 겨울나기
SSG블로그




한 해의 끝에 서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많은 시작이 함께했던 만큼 좋은 기억들이 더 많길 바랍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을 거예요.

끝은 시작만큼 명쾌하지 않으니까요.


매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고,

똑떨어지는 마무리가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생기더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그냥 계속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늦는 것은 지금 나의 다급함일 뿐이니까요.

이제 끝이라고 단념하기보다는

이 시간을 다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휴식시간을 갖고

‘보다 나은 다음’을 준비하는 거죠.


SSG블로그는 2017년을 마무리하며

여러분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휴식 같은 이야기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 가을의 끝을 잡고, 서울에서 즐기는 단풍여행코스

송년회 장소 걱정은 이제 그만. 연말 모임 히든 스폿

제주소주 '푸른 밤'과 함께하는 즐거운 연말 파티까지!


바삭바삭 많은 것이 마르는 계절이지만

여러분의 순간은 촉촉하기를 바란다고 꾹꾹 눌러쓰며

2017년의 마지막 SSG블로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복궁, 어디까지 가봤니?
2편. 디테일에 담긴 호젓한 아름다움
김 석
#김석

 


경복궁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십중팔구 경복궁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근정전(勤政殿)을 먼저 꼽으실 거예요. 하지만 근정전 못지않게, 아니 되려 건물과 주변 풍광까지 어우러진 경복궁 최고의 명소는 따로 있습니다. 근정전 서쪽 행각을 빠져나오면 넋을 잃게 만드는 빼어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요. 궁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그 장한 규모 하며 호젓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바로 경회루(慶會樓)입니다. 눈부신 가을날의 경복궁 하늘은 얼마나 높고 푸르렀던지… 물 위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번잡한 세상 시름마저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그 옛날 석공의 기교를 담은 경회루 돌기둥


북쪽만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을 뿐 경회루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참 멋집니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예술이 되는 풍경 있잖아요. 그런데 한때 경복궁에서 살다시피 했던 어느 미술사 학자에게는 경회루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을 지어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기둥이었어요. 바깥으로는 사각기둥 24개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안쪽으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기둥이 가지런합니다. 누각 아래로 들어가서 보면 돌기둥에서도 이런 감동을 얻을 수 있구나 싶어지지요. 그 옛날 석공은 어찌 저리도 큰 화강암 덩어리를 깎고 다듬었을까요.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주열



이토록 아름다운 경회루 돌기둥의 멋을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선생입니다. 한국의 미(美)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지녔던 선생은 경회루 돌기둥이 주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더할 바 없이 감동적인 글로 남겨놓았지요.



이렇게 시원스럽고 엄청난 화강석 네모기둥의 주열이
또 어디에 있는지 나는 그 예를 모른다.
(중략)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면서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크기도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를
우리는 이 화강석 주열에서 역력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향정(下郷町)



경복궁 내 숨은 근대의 산물, 하향정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회루를 떠나려는 발길을 붙드는 것이 또 있습니다. 경회루 왼쪽으로 연못 건너편에 자그마한 정자 한 채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지요. 하향정(荷香亭)입니다. 근처 연못 위로는 나무배 한 척까지 근사하게 떠다닙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문제는 이 정자가 조선 왕실의 유산이 아니란 점입니다. 하향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지은 겁니다. 낚시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쉼터로 말이에요. 실제로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도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궁궐 안에다 버젓이 낚시터를 지어 놓고 경회루 일대를 개인 휴양지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하향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의 기준 시점은 이 글의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중건한 1888년에서 1907년 사이입니다. 이 시기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하향정은 철거해야 마땅합니다.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대책을 촉구했건만 2013년 문화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그대로 두라고 결정합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건물 자체에 역사성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그 뒤로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철거해서 내버리자는 게 아니라 적절한 다른 위치로 옮기자는 게 과연 무리한 요구일까요. 경복궁 복원의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정전(修政殿)



수정전 앞 말채나무에 깃든 사연


경회루 권역을 떠나기 전에 가볼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경회루 남쪽에 수정전(修政殿)이란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요.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였던 유서 깊은 공간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고종 때 다시 지어져 대한 제국의 내각 건물로 두루 사용된 곳입니다. 지금은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고종 때에는 주변으로 200칸에 이르는 각종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고 해요. 앞마당이 제법 널찍해서 요즘은 야외 공연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더군요. 바로 이 수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보입니다. 이름은 말채나무. 봄에 늘어지는 가지로 말채찍을 만들어 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수정전 앞뜰에서 자라고 있는 말채나무 두 그루



그런데 원래는 지금 자리가 아니라 수정전 건물 앞 계단 사이에 70~80살 먹은 말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해요. 국내 최고의 궁궐 나무 전문가인 박상진 선생이 쓴 <궁궐의 우리 나무>란 책에 바로 이 수정전 말채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1999년에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수정전 계단 사이에 자라고 있던 말채나무를 잘라내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는데요. 당시 문화재청이 제시한 역사적 근거는 이렇답니다. 첫째, 왕을 해하려는 자객이 나무에 가려 안 보일 수 있다. 둘째, 건물과 나무가 일직선상에 있으면 문 밖에서 건물을 볼 때 한자로 문(門)에 나무(木)가 겹쳐져 한가롭다는 뜻의 한(閑) 자가 되어 나라가 번창할 수 없다. 셋째, 담장 안 한가운데에 나무가 있으면 한자로 담장(口)과 나무(木)가 겹쳐져 곤란하다는 뜻의 곤(困) 자가 되니 역시 나라에 이롭지 않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수정전 앞 말채나무 두 그루가 더 특별하게 보입니다.



교태전(交泰殿)



경회루 권역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아 다시 근정전 뒤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지난 글에서 눈높이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건물 위만 쳐다보면 아래가 안 보인다고요. 궁궐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뒤를 보는 겁니다. 대개 궁궐을 이곳저곳 돌다 보면 건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앞만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정작 건물 뒤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더 좋은 것들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지요. 근정전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에 만나볼 보물은 교태전 뒤에 있습니다.



아미산(峨眉山)



아미산 위 자리한 작은 보물


왕비가 잠을 자는 곳이었던 교태전 뒤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을 아미산(峨眉山)이라 불렀지요. 보시는 것처럼 차곡차곡 단을 쌓아서 만든 인공 정원입니다. 교태전은 왕비가 자는 곳이었으니 당연히 온돌에 불을 때서 난방을 했겠지요. 당연히 연기를 밖으로 빼줄 굴뚝이 필요했을 거고요. 그런데 우리 조상은 이 굴뚝 하나조차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태전 굴뚝은 모두 4개입니다. 조선시대 내내 있었던 게 아니라 1865년 폐허가 된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만든 거랍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굴뚝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요.



아미산 굴뚝만 따로 보물 제81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미산 굴뚝의 핵심은 육각으로 쌓아올린 몸체의 각 면에 그려진 문양들입니다. 가운데 큰 그림에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그 위아래 작은 그림에는 봉황이며 박쥐, 학, 사슴 등 온갖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왕비가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니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기둥 위에는 제법 서까래에다 기와까지 얹었으니 기둥 하나하나 어엿한 집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위에는 또 다른 작은 기와집이 앉아 있군요. 연기가 빠져나가는 집이라 해서 연가(煙家)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물건입니다. 저 굴뚝 꼭대기에 종종 모여서 앉아서 마치 여기 나 좀 봐 주세요, 손짓하는 것만 같아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아미산 굴뚝 연가(煙家)



이러니 경복궁을 좀 가봤다는 분들은 아미산 정원과 굴뚝의 아름다움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지요. 앞에서 인용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도 아미산 굴뚝에 매료돼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경복궁 역사의 구석구석에 백성들의 고혈이 엉겼다 하지만,
한 가닥 불평도 불만도 비끼지 않은 이 멋진 굴뚝들의 쌓음새를 보고 있으면
‘참 우리 백성은 좋은 백성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따뜻이 해 준다.



그뿐인가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 역시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복궁이 세계 어느 나라 궁궐보다 인간적 체취가 느껴진다는 것은
아미산 꽃동산 같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자경전 꽃담장과 경회루 연못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노포, 낡은 거리에서 세월의 맛을 느끼다
정동현
#정동현


아무리 가도 가도 다른 것이 없다. 여기에 가도 저기에 가도 사람들은 똑같은 곳에 앉아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주제를 논할 뿐이다. 전동차 안에 앉아 죽은 듯 눈을 감고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보내고 끝나는 시간, 나는 번화한 거리가 아닌 어두운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크고 깨끗한 빌딩은 아니다. 불빛이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넘쳐나지도 않는다. 콘크리트 포장이 벗겨져 울퉁불퉁한 거리의 건물은 낡고 불빛은 어둡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숲속의 작은 짐승들처럼 낯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이들이 찾아드는 집들은 찾기 어렵고 찾았다 해도 겉모습을 보고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제대로 온 것일까? 영업은 하는 것일까? 용기를 내어 문을 열면 시간이 멈춘 듯 아마 저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탁자, 끝이 닳아버린 숟가락, 허리가 굽은 주인장, 낮은 조도의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보내는 시간은 오래된 농담 같다. 그리고 이 농담은 한국의 부(富)가 모여든다는 강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거센 세월의 흐름이 돌아가는 곳, 강북의 을지로와 종로에 은일(隱逸)을 꿈꾸며 오래도록 자리한 노포(老鋪)에서 잊힌 노래를 듣는다.


세월의 맛을 느끼려 노포를 찾는다면 우선 가야 할 곳은 을지로 3가 일대다. 아직도 문을 닫지 않은 철공소 단층 건물이 군락을 이룬 이곳에 가면 골목 어귀어귀 작게 둥지를 잡은 식당이 여럿이다. 늦은 저녁거리를 걸으면 까맣게 절은 러닝셔츠마저 벗고 등목을 하는 사내들이 있다.



그 골목에서 가장 자리 잡기 힘든 곳은 '세진식당’이다. 1991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탁자 하나에 석유 곤로를 놔두고 라면 장사로 시작했다는 이곳은 이제 어엿한 식당이요, 주인의 아들은 중년이 되어 머리가 희끗하다. 메뉴를 보면 흔한 밥집 메뉴인 김치찌개, 된장찌개부터 시작하는데 삼합, 생태탕에 이르러서는 고개가 갸웃한다. 그러다 시가(市價)인 갑오징어 숙회를 보면 이곳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게 된다. 보통 오래 살아남은 집들이 그러하듯 주문이 들어가면 음식은 빠르게 나온다. 업력이 길어 손님이 어떤 주문을 할지, 어떻게 하면 음식이 빨리 나갈지 이미 계산이 서 있다.



유지태를 닮은 중년의 아들이 음식을 가져다주면 맛을 볼 차례가 남는다. 흘깃 주방을 살펴봤을 때는 채 1만 원이 되지 않는 싸구려 프라이팬과 찜기와 솥뿐이었는데 나오는 음식의 수준을 보면 과연 고수는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양념의 맛은 과하지 않고 오로지 미각을 자극하는 만큼만 쓰였을 뿐이다. 흔한 오징어 볶음도 이곳의 맛은 다르다. 채소를 약한 불에 볶아 물이 흥건한 하급이 아니다. 물이 자작하니 북인도의 드라이 카레를 먹는 것 같은 농축된 맛과 오래 볶지 않아 질기지 않고 쫄깃한 식감만 남았다. 강남의 반값도 되지 않는 갑오징어 숙회는 이 집의 필청 메뉴요, 민물새우를 넣어 감칠맛을 극대화한 전라도식 생태탕과 풀어져 내려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심이 살아 있는 야들야들하고 탱탱한 돼지 수육이 곁들여 나오는 삼합은 이 집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네가 으슥하다고 아무 때나 찾아가면 자리가 있는 그런 집이 아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이가 여럿, 사려 깊게 예약 전화를 넣는 것이 현명한 이의 자세다. 


이곳을 빠져나와 골목을 건너면 을지로 골뱅이 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모인 골뱅이 집은 여럿이지만 단 하나의 집을 골라야 한다면 '영락골뱅이'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곳이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크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단골집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딱 영락골뱅이 맛이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살던 시절,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은 골뱅이무침을 해 먹었다. 부산에서는 흔히 초고추장에 골뱅이를 버무려 냈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가 않았다.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로 양념을 해 그 맛이 번잡스럽지 않고 깔끔했다. 북어포를 채 썰어서 파채와 함께 버무리는 것도 특징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어머니의 솜씨인 줄 알았다. 커서 서울에 와 말로만 듣던 영락골뱅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신화 속 인물을 눈으로 목격한 것처럼 신기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이 집의 골뱅이 맛이 우리 집의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서울 생활을 추억하며 골뱅이무침을 만들었고 나는 어른이 되어 그 골뱅이무침의 시작을 목격했다. 



영락골뱅이의 특징은 언제나 계란말이가 서비스로 나온다는 점이다. 계란 파동이라 하여 사람들이 계란 먹기를 꺼려했을 때도 이 집은 되려 더욱 크게 계란을 말아 손님상에 올렸다. 호기가 엿보이는 이런 태도는 역시 시간에서 나온다. 나라가 망할 것처럼 휘청거려도 이 집은 문을 열었고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골뱅이 캔을 따서 파채와 양념, 그리고 빻은 마늘 한 숟가락 올려주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빛바랜 벽지와 달력, 나무 기둥과 좁은 계단, 늘 보는 찬모의 얼굴마저도 맛이 되고 멋이 된다. 이곳의 메뉴는 골뱅이무침 하나로 귀결되지만, 꼭 스팸 구이는 먹어보길 권한다.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이곳에서 먹으면 왠지 맛이 다르다. 먹어보지 않으면 또 이 차이를 알 수도 없다. 



만약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 을지로 3가 지하철역 10번 출구에 있는 '안동장'을 꼽아야 한다. 1948년 문을 열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이란 별칭을 얻은 이곳은 단지 오래되었다고 다니는 집은 아니다. 한 번 식당을 개조해 식사하기 쾌적하여 남들에게 추천하기 좋다는 점은 이곳을 찾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안동장에서 맛을 봐야 할 것을 여러 가지지만 초행자라면 우선 굴짬뽕과 탕수육을 맛봐야 한다. 안동장의 굴짬뽕은 특히 유명한데 소문에 의하면 굴짬뽕을 처음 개발한 곳이 바로 이 집이라고 한다. 속에 쌓인 세속의 먼지를 다 씻어내리는 듯한 개운한 국물과 깔끔한 뒷맛은 명불허전, 겨울 찬 바람이 불면 자동으로 안동장의 굴짬뽕이 생각날 정도다. 



중국집의 기본 메뉴인 탕수육도 이곳은 맛이 다르다. 찍먹이니 부먹이니 할 것은 없다. 당연히 중화 냄비, 웍(Wok)에서 소스를 한번 굴려 입혀 나와야 하는 것이 정석, 안동장의 탕수육은 유행하듯이 아주 바삭거리지도 그렇다고 살이 콱 씹히는 두꺼운 종류도 아니다. 조금 폭신하다는 느낌이 있는, 오래전부터 먹은 그 맛, 그러나 얼갈이배추를 썰어 넣어 소스의 감칠맛이 남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연구와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기에 나는 탕수육 한 점을 먹을 때도 겸허해진다. 그리고 하얀 머리를 한 노인이 허리를 숙여 주문을 받고 음료수 한 병을 가져다줄 때도 친절히 마개를 따 주는 그 세심함에 노포의 명성이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게 내가 거리를 쏘다니며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깨달음보다 더욱 나를 이 낡은 거리로 이끄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세월 속에, 그 무상함 속에 살아남는 것들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나이가 들고, 점점 사라져가는 그 무상한 것들, 몇 푼 되지 않는 한 끼 속에 잠든 시간과 그 한 끼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다 전해지지 못하고 다 기억되지도 못하며 그저 거리에 잠들고 잊힐 뿐이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United Kingdom: 런던 1편
이 환
#이환작가
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no.1,THE UNITED KINGDOM,런던 편 Part.1
영국,정식명칭: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위치:서유럽, 프랑스의 북서쪽,언어:여어,수도:런던(LONDON),인구:64,769,452명(2017년7월기준),종교:영국성공회 카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THE UNITED KINGDOM,LONDON

INTRO

융성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나라
영국을 만나다

까만 택시, 빨간 이층버스(Double-Decker), 공중전화기 등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많다. 그만큼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나라다. 나라와 도시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걸 세계 적인 상품으로, 볼거리로 만드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다.

여왕의 나라이자 전 세계에 52개국의 영연방(Commonwealth)국가들을 거느리고 있는 나라, 영국. 지금은 다소 폐쇄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한때 세상의 좋은 것들은 물론 난민까지도 기꺼이 수용했던 개방적인 나라. 그리고 파운드를 고집하고, 극심한 논란 끝에 2016년 EU에서 탈퇴(Brexit)하기도 한 사연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세상이다.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으로나마 쉬어가듯 영국의 단면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영국인을 처음 만나다.
THE FIRST TIME

영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온 것은 언제일까? 1845년 거문도 상륙이 영국인의 우리나라 첫 방문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그 이전 기록도 많다. 1816년 9월 서해안을 순찰한 영국 해군이 충남 서천군 마량진에 정박해 지역 관리들에게 성서를 전해준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성서가 전달되는 순간이다. 그 자리에는 성경전래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1882년엔 영국 해군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가 제물포 앞바다에 정박해 동네 주민들에게 축구를 알려줬다. 이른바 ‘갑판 축구’다.

2004년 인천항을 방문한 영국 군함 엑시터(Exeter)호 위에서 당시 도포를 입고
갑판 축구를 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영국의 심볼, 빨간 공중전화 부스
RED PHONE BOOTH

1924년 자일스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한 빨간 공중전화 부스. 가장 영국 스러운 디자인으로 사랑받아왔지만, 모바일 통신의 발달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공중 전화부스를 개인 사무실,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들도 나오고 있다.

UK LONDON PART1.

영국의 중심, 세계의 중심 런던
영국의 자존심, 트래펄가 광장
TRAFALGAR SQUARE

런던 여행의 시작은 역시 트래펄가 광장이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 혹은 서울 광장 같은 곳. 1805년 영국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이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이긴 트래펄가 해전(Battle of Trafalgar)에서 이름을 땄다. 기념탑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이가 넬슨 제독이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다. 광장 정면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고 아래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지키고 있다. 이 동상들의 원재료가 프랑스 함대의 대포 등을 녹여 만들었다는데 프랑스 방문객들은 난처할 것 같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광장 북쪽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와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이 있다. 입장은 무료이며, 엄밀히 이야기하면 기부금제로 운영된다.
트래펄가 광장 네 귀퉁이 중 한 곳은 동상이 설 자리가 비워져 있다.
앞으로 나타날 영웅의 자리다.
트래펄가 광장 네 귀퉁이 중 한 곳은 동상이 설 자리가 비워져 있다. 앞으로 나타날 영웅의 자리다.
영국 여왕의 주거지, 버킹엄 궁전
BUCKINGHAM PALACE

근위기병대의 강렬한 붉은 의상과 투구 장식이 인상적이다. 왕정체제와 귀족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 영국의 매너와 격식은 전통과 어우러져 세계 표준이 되었다. 본래 귀족 문화라는 게 18세기 신흥 부르주아들이 출현해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하면서, 그들만의 ‘우아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문화코드로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상류층만의 독특한 ‘무언가’는 분명 존재한다.

다이애나비의 흔적을 간직한 켄싱턴 궁전
KENSINGTON PALACE

켄싱턴 궁전은 하이드파크(Hyde Park) 서쪽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그녀를 기리는 추모 포스터와 사진, 꽃 등이 아직도 끊이질 않는다.

의회 민주주의의 원류, 국회의사당
HOUSES OF PARLIAMENT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옆에 있는 세계 민주주의의 산실이며, 명실상부한 영국의 상징 건물이다. 영국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모델과 같은 국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왕권과 귀족 사이의 갈등, 수많은 정쟁과 피비린내 나는 파벌싸움, 타협과 양보의 결과가 오늘날 영국식 민주주의로 안착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위치한 타워, 빅 벤(Big Ben),
높이 약 96m에 이르는 이 시계탑은 세계표준시를 가리킨다.
런던을 한눈에! 런던아이
LONDON EYE

비가 갠 뒤 런던아이 위로 쌍무지개가 떴다. 자세히 보면 아래 무지개와 위 무지개의 색깔 순서가 거꾸로다. 무지개 형성의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런던아이는 템스 강(River Thames)변 주빌리 가든(River Thames) 내에 있다.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 새천년을 기념해 만들어 2000년에 개장했다. 커다란 자전거 바퀴가 회전하면서 런던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30분이 걸린다.

인류 문명의 보물창고, 대영 박물관
BRITISH MUSEUM

1759년 시민들에게 문을 연 최초의 박물관. 그리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고고학 유물들이 가득하다. 보유한 책도 5만여 권에 다다른다. 입장료는 물론 무료다. 서른 번은 넘게 이곳을 드나들었던 것 같다. 동서고금의 문명의 흔적들을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이집트 전시실.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Egyptian Museum)을 온 것 같다. 하루 종일 봐도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면, 목표를 정해놓고 관람 하는 게 좋다. 필자의 경우에는 페르시아 유물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스 로마 컬렉션 또한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 중 하나다. 영국인 토마스 브루스 엘긴(Thomas Bruce Elgin)이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일부를 떼온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를 정당하게 구입했지만, 거의 헐값에 들여와 아직도 그리스 정부와 소유권 분쟁 중이다. 영국 정부는 엘긴 마블스를 세계 관광객들이 공짜로 관람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정당히 구매했고 과학적으로 잘 보존하고 있다는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걸 영국이 다시 전리품으로 뺏어온 로제타 석(Rosetta Stone)진품.
현대예술의 산실,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얼핏 봐도 미술관 같지 않다. 화력발전소가 미술관으로 변모한 것이다. 19세기 말 제당업으로 큰 돈을 번 부자 헨리 테이트(Henry Tate)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뉴욕, 파리와 더불어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등용문이다.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작품이 전시돼 런던 방문 시 필수 방문지가 되었다. 미술관 6층 카페는 템스 강 건너편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최고의 뷰 포인트다.

낙서판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돔, 세인트 폴 대성당
SAINT PAUL’S CATHEDRAL

1666년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 후 1708년 새로 지어진 성당으로, 시티 지역의 대표 성당이다.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한 밀레니엄 다리(Millennium Bridge)가 만들어지 면서 템스 강을 가로질러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곧바로 연결됐다. 지하성당엔 나폴레옹(Napoleon)을 이긴 아서 웰링턴(Arthur Wellesley Wellington) 장군,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무덤이 있다.

영국이 더 궁금하다면
HOME PAGE
ATTRACTIONHOME PAGE
영국 왕실 홈페이지www.royal.gov.uk
영국 국회의사당 홈페이지www.parliament.uk
런던아이 홈페이지www.londoneye.com
영국 관광청www.visitbritain.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복궁, 어디까지 가봤니?
1편. 광화문의 수난과 곳곳에 숨은 보물들
김 석
#김석


천만 인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조선의 대표 궁궐.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서울 관광 1번지. 바로 경복궁입니다. 사드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는데도 평일이고 주말이고 경복궁은 요즘도 북적거립니다. 그만큼 나라를 대표할 만한 자랑스럽고 소중한 문화유산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경복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수난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는 어떤가요. 곳곳에 숨어서 그 진가를 알아봐주길 기다리는 보물들은 또 어떻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요. 500년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이자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봐 왔는지도 모릅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대표 궁궐이었을까요? 실제론 아니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살았던 기간을 계산해 보면 70년이 채 안됩니다. 심지어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모두 불에 타버린 뒤로는 무려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방치됐고요. 그러다 고종 4년인 1867년이 되어서야 경복궁은 옛 모습을 되찾습니다. 이 야심만만한 중건(重建) 사업을 주도한 흥선대원군은 한 술 더 떠 창건 당시의 28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경복궁을 확장합니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절도 잠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의해 경복궁은 말 그대로 누더기가 돼버리고 맙니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국권의 상징인 궁궐인들 온전할 리가 없었지요.





광화문 앞에 서서 수난의 역사를 돌아보다


다시, 광화문 앞에 섭니다. 저리도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다시 서기까지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다니요. 2010년 8월 15일. 시끌벅적했던 광복절 기념식에서 많은 이의 환호와 박수 속에 광화문 현판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제는 명실상부 어엿한 경복궁의 얼굴을 되찾았구나 싶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지요. 현판 글씨를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생기 없는 죽은 글씨’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석 달 뒤엔 현판 곳곳에서 갈라진 흔적까지 발견됩니다.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잖아요? 정권의 빛나는 치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속도전이 빚은 일대 참사였습니다.





사실 광화문 현판 글씨의 고증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광화문 현판 글씨는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공사를 총지휘한 훈련대장 임태영(任泰瑛, 1791~1868)이 쓴 겁니다. 이 현판은 6.25 전쟁 당시에 불타 없어졌지요. 그 뒤로 현판을 다시 만든 건 1968년의 일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한글 현판이었어요. 이 현판을 2006년까지 걸어 놓았다가 광화문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떼어냅니다. 현판을 다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실물이 없으니 사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광화문 현판 복원의 근거가 될 흑백사진이 나옵니다. 1916년에 촬영한 광화문 사진의 유리원판이었습니다



광화문 현판 색깔도 잘못됐다


유리원판이란 다른 말로 유리건판(琉璃乾板, glass dry-plate)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사진 필름에 해당하는 감광판을 뜻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필름이 보편화하기 전에 주로 사용된 것인데, 특히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들은 문화재 복원에 결정적인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거든요. 광화문 현판 복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5년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6년 유리원판을 디지털로 분석해 당시 현판을 70%가량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며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를 공개합니다.





이렇게 해서 광화문 현판을 복원해 공개한 겁니다. 하지만 볼품없는 글씨에 비난이 쏟아지고 현판 목재가 갈라져 긴급 보수를 한다, 현판을 다시 제작한다, 볼썽사나운 일들이 꼬리를 물었지요. 첫 단추를 잘못 꿰어도 단단히 잘못 꿴 셈입니다. 그런데 현판의 수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2016년 2월, 이번엔 광화문 현판 색깔이 잘못됐다는 중대한 사실이 방송 뉴스를 통해 폭로됩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찾아낸 사진 한 장은 문화재 당국을 충격에 빠뜨렸지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진인데다가, 현판 색깔을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였으니까요.






분명 짙은 바탕에 밝은 글씨입니다. 수많은 광화문 사진을 봤어도 이렇게 광화문 세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면서 현판 색깔까지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없었거든요. 박물관 홈페이지의 사진 정보에는 ‘1893년 9월 이전 사진’이라고 돼 있습니다. 촬영 시기 역시 정확합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광화문 입구에 옛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흔히 ‘구(舊) 군복’이라 불리는 옛 군복은 1895년 칙령 제78호 발표로 육군의 복장 규칙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서양식 군복으로 싹 바뀝니다. 사진이 적어도 1895년 칙령 발표 이전에 촬영됐다는 걸 알려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거지요.



옛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의 모습 (빨간 동그라미)



지금 이 시각에도 광화문에는 잘못된 현판이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하도 이리저리 얻어맞아서 그런지 문화재청도 이번엔 신중에 신중을 기할 모양입니다. 현판 색깔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하고 추가적인 고증에다 과학적 실험까지 하겠다고 하니 말이에요. 어찌 됐든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경복궁의 얼굴이자 조선 왕실 문화의 상징으로 오늘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광화문에 제대로 된 현판을 되찾아주는 일이지요. 광화문 앞에 서서 아직 끝나지 않은 수난의 역사를 더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답사는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이토록 무겁기만 합니다.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금천과 그 위에 놓인 영제교


영제교 다리 에 숨은 보물 ‘천록상’


광화문을 출발해 오른쪽으로 경복궁 매표소가 있는 너른 마당을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경복궁 답사가 시작됩니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으로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요. 궁궐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반드시 이 작은 냇물을 건너야 합니다. 여기부터는 신성한 왕의 영역이오, 하는 일종의 관문인 셈이지요.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 이 냇물을 금천(禁川), 다리를 금천교라 합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예로부터 영제교(永濟橋)란 이름으로 불렸다 하네요.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 다리를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대개는 눈높이 위를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화려한 궁궐 건물에 시선을 빼앗기는 겁니다.


영제교 왼쪽과 오른쪽에 보이는 천록. 북서쪽 천록은 혀를 내민 모습입니다.


다리 양옆을 자세히 봅니다.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돌짐승 네 마리가 석축 위에 턱을 괸 채 물길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군요. 앞만 보고 가는 이들에겐 잘 눈에 띄지 않는 뜻밖의 보물입니다. 한눈에 봐도 아주 영험한 동물이란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이 아주 재미납니다. 심지어 한 녀석은 혀를 날름 앞으로 내밀고 있군요.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익살스럽고 친근한 얼굴이에요. 조용하고 엄숙한 궁궐이란 공간에 작은 숨통을 틔워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이 상상 속의 동물을 옛사람들은 천록(天鹿)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조각상은 경복궁 창건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해요.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귀한 유물입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다가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제자리를 찾았지요. 다리 양옆의 석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천록 네 마리는 훼손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작은 기적이라 할 만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도 이 천록상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답사기 제6권 경복궁 편에 꽤 비중 있게 다뤄놓았습니다. 이렇게 숨은 보물을 하나씩 찾아내고 알아가다 보면 답사하는 재미는 물론 그 의미까지도 한층 풍성해집니다.



국보 제223호로 지정된 경복궁 근정전



거칠고 투박해서 더 아름다운 ‘박석’


영제교를 건너 근정문을 지나면 마침내 경복궁의 심장으로 불리는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호)이 그 화려하고도 웅장한 위용을 드러냅니다. 사실 경복궁 하면 근정전이지요. 경복궁이란 무대의 공식적인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근정전입니다. 경복궁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도, 가장 오래 머무는 곳도 바로 이곳이지요. 너도나도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다시 눈높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근정전 앞에 이르면 누구나 고개를 들어 건물이 주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감상합니다. 그리고 멋지게 사진 한 장 박으면 끝. 관광객들은 여기서 대개 발길을 돌립니다.


근정전 앞마당에 깔려 있는 박석


근정전 일대를 가장 멋있게 찍을 수 있는 촬영 장소는 어디일까요? 바로 근정문 양 옆으로 붙은 행각 끝 모서리입니다. 이곳에 서서 초점을 맞추면 근정전이 왜 아름다운지 대번에 알 수 있지요. 땅바닥으로 카메라를 바짝 내려서 찍으면 더 끝내줍니다. 여기에 한몫을 하는 게 바로 근정전 앞마당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납작한 돌덩이들입니다. 두께가 얇고 넓적하다고 해서 박석(薄石)이라고 부르는데요. 위에서 내려다본 생김새가 저마다 천차만별인데다, 표면도 고르지가 않고 울퉁불퉁합니다. 게다가 돌과 돌 사이에 드문드문 잡초까지 자라 있으니 이게 도대체 궁궐 관리를 제대로 하는 건가, 혀를 끌끌 차는 분들도 있다는군요.


그런데요,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만약 저 돌들을 가로 세로 반듯하게 자르고 표면까지 매끄럽게 다듬어서 빈틈없이 깔아놓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더 깔끔해 보이기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인공적인 아름다움은 사실 궁궐이란 공간에는 잘 어울리지 않지요. 조선의 석공에게 돌 깎고 다듬는 기술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닐 겁니다. 저 우툴두툴 불규칙한 돌들의 어울림이 주는 자연스러운 맛은 절대로 자로 잰 듯 잘라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박석이 넓게 잡히도록 구도를 잡아 근정전을 사진에 담으면 탁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바로 그 장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정전 월대를 수놓은 또 다른 보물 ‘석상’


이렇게 멀찍이서 근정전의 아름다움을 한껏 눈에 담은 뒤, 이제 관람객들 틈에 섞여 근정전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사실 근정전이란 주인공 곁에는 근정전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빛나는 조연들이 있어요. 바로 근정전을 떠받치고 있는 돌 축대 사방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갖가지 조각상들입니다. 상월대, 그러니까 위쪽 월대의 동서남북에는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새겨져 있고, 그 사이와 아래쪽 월대에는 십이지 동물들이, 그리고 월대의 끝 모서리에는 똑같은 얼굴을 한 상서로운 짐승이 올라앉아 있습니다. 하나씩 일일이 세어보니 자그마치 40마리나 되더군요.


근정전 남쪽 월대 모서리 아래 위에 있는 석견상


그중에서도 유독 어느 미술사 학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동물이 있었습니다. 근정전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양옆모서리에 꼭꼭 숨어 있는 돌 짐승들이지요. 앙증맞은 표정을 한 사자 새끼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저 위를 쳐다보면 사자 어미가 떡 하니 앉아서 새끼들을 보듬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사신상이나 십이지신상은 그렇다 해도 이 녀석들은 또 뭔가 싶어 호기심이 절로 일어나지요. *수헌거사(樹軒居士)는 『춘성유기(春城遊記)』에서 이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석견(石犬)이라 불렀는데요.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반했다고 했던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수헌거사(樹軒居士) : 유득공(柳得恭)의 아들 유본예(本藝)로 추정된다. 주요 편찬 서적으로 서울의 사적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이 있다. 


사실 건물이 중요하긴 해요. 그런데 경복궁을 두 번 세 번 자꾸 가서 보면 오히려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근정전 월대를 산책하듯 돌면서 한 마리 한 마리 짚어가며 이건 호랑이, 이건 원숭이, 이렇게 맞혀가는 재미가 남다르거든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고 정이 들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돌덩어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 동물들을 괜히 만들어서 두었을 리가 없지요. 덕분에 지엄하기 이를 데 없는 궁궐이 지금 우리에게 한결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일 테고요.


근정전 양옆에 놓여 있는 세 발 달린 솥


세 발 달린 솥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제 근정전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리기 전에 소개해드리고 싶은 보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근정전의 양옆에 있는 금속으로 만든 솥 이야기인데요. 조금 안다는 분들도 이 솥을 향로로 알고 계신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제로 솥 안을 들여다보면 흙을 반쯤 담아놓기도 했으니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향을 피우는 그릇이 아니었을까 흔히 짐작들을 하는 거지요. 제게는 사실 관람객들이 대부분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이 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몇 달 전 현충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현충사 사당 양옆에 모양도 크기도 비슷한 솥이 놓여 있었거든요.


이걸 뭐라고 부르나 찾아봤더니 정(鼎)이라 합니다. 정은 다리 세 개 달린 솥을 가리키는데요. 도대체 용도가 뭘까요? 백방으로 자료도 뒤적거리고 궁궐과 고문헌 전문가들에게 직접 자문도 구해봤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딱 부러지는 답은 못 얻었습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지요. 다만 이 물건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중국 측 사료를 보면 아홉 정의 전설, 이름 하여 구정(九鼎)의 전설이라는 게 전해지는데요. 내용인즉슨 중국 고대 주나라 시절에 9개 주의 금속을 모아 정 9개를 만들어서, 통치권을 넘겨줄 때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로 함께 넘겨줬다는 겁니다.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중화전 앞에 있는 정(鼎)



궁궐에 깃든 것은 다 이유가 있으니…


다시 말해 정(鼎)은 정통 왕조,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 장식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궁궐마다 다 있는 게 아니라, 조선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과 대한 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딱 두 곳에만 있습니다. 결국 지금으로선 향로로 간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지요. 당연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현충사에 둘 이유도 없고요. 왕권을 상징하는 궁궐 유물이니까요. 현충사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사당에서 이렇게 정(鼎) 2개를 설치해 놓고 제사용 향로로 쓰고 있습니다. 틀렸습니다. 향로라면 하나를 쓰는 게 맞지요. 과거 어떤 기록을 살펴봐도 향로를 좌우 쌍으로 두고 쓴 사례는 없었거든요.


안타깝게도 궁궐을 좀 안다는 전문가들의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 부분을 명쾌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없더라고요. 저 역시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찾아보고 물어보고 해서 내린 결론은 적어도 향로는 아니다, 라는 겁니다. 게다가 오직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잖아요. 그만큼 뭔가 깊은 뜻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만 할 뿐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 말이에요. 혹 근정전에 가시거든 이 진귀한 유물에도 한 번쯤 눈길을 주시면 어떨까요. 오랜 세월 궁궐 안에서 살아온 것들은 무엇 하나 이유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게 아니니까요.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