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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쓱(SSG) 답하다 15화
일류 인턴이 되는 꿀팁
이은영
#이은영


인사담당자가 싫어하는 5가지 인턴 유형


인사담당자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인턴들과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빅데이터를 수집했는데요. 이를 통해 인사담당자가 가장 싫어하는 인턴 유형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굳이 꼽아 보자면 이런 유형의 인턴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회사 직원이며 인턴십 담당자인 제게 대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간 큰’ 인턴은 드뭅니다. 그러나 몇 주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진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면접관들이 면접자의 눈빛만 봐도 우리 회사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처럼요.


기업에서 몇십 년씩 일한 어르신들은 신참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끊임없이 접하고 관찰하는 인사담당자들 역시 본능적인 느낌, ‘촉’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촉은 짧은 인턴십 기간 동안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인턴십 과정을 운영하면서 바로 이 촉을 풀풀 풍기는 인턴사원들이 있습니다. 인사담당자들은 어떻게 그들을 파악해내는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인턴십 프로젝트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에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턴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기회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설령 다른 직종이나 유학에 뜻이 있어 해당 인턴십이 ‘스펙 한 줄 더 쌓기’ 내지는 ‘유학 경비 보태기’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이왕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기간만큼은 온전히 인턴십에 몰입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인턴십은 돈이 오고 가는 살아 숨쉬는 비즈니스 현장의 일입니다. ‘진짜 일’이자 학교 과제들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일이죠. 학교 과제가 이미 과거에 일어난, 혹은 막연히 미래에 시행될 수 있는 죽은 프로젝트라면 기업에서는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프로젝트를 다룹니다. 학생 시절 돈 내고도 접할 수 없는 경험을 오히려 돈을 받으며 얻을 수 있으니 실로 귀중한 기회가 아닐까요?


다시 이 기간을 살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할 정도로 인턴십에 열심히 참여해보세요. 분명 배움이 있을 것입니다. 인턴십이 끝난 후 다른 노선을 걷게 되더라도 이때의 경험은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갖게 해 줄 것입니다.


모든 취준생들이 갖고 싶어하는 대기업 인턴 스펙은 우리 인사담당자들에게는 그저 그런 수많은 스펙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자신의 열정을 불태운 단 한 번의 인턴십 경험은 한쪽 발만 담근 미지근한 인턴십 경험 10개를 뛰어넘습니다. 어렵게 인턴십 기회를 잡았다면 평준화된 인턴 스펙만이 아닌, 부디 ‘진짜 내 스토리’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인턴에서 멈추는 사람 vs 인턴에서 성장하는 사람





많은 인턴들, 그리고 청춘들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혹은 ‘이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넣곤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원래 이 질문에는 ‘아니요’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어찌 365일 매일 좋을 수만 있을까요? 우리의 방황은 이 어긋난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현재 하는 일에 회의부터 갖기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는 질문을 바꿔 물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가?’로 말입니다. 아직 정직원도 아닌 인턴 경험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파악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적성에 대한 질문은 삶에 보탬이 될 건설적인 고민입니다. 하지만 그 답을 얻기도 쉽지 않죠.


주어진 일에 최대한 몰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나는 스스로 너무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최면을 걸 정도로요. 설령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몰입을 통해 더 열심히 임해 보세요. ‘반드시 해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정말 그 일을 좋아하게 될 수도, 혹은 실제로 좋아하는 다른 일을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 다섯 가지 항목을 실천해 보세요. 주어진 일에 최대한 몰입하며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한 비결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기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쉬운 선택을 하고자 그럴듯한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이죠. 쉬운 선택에는 딱 그만큼의 결과밖에 기대 할 수 없습니다. 적당히 임하면 적당한 결과만 나올 뿐입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은 과거 자신이 한 선택들의 결과임을 기억하세요.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듭니다. 여러분은 쉬운 선택이 아닌 어려운 선택을 하여 꿈꾸던 미래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답 하다, 쓱(SSG)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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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모나리자를 능가하는 한국의 미소
김 석
#김석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데도 실제로 본 것 마냥 너무도 익숙하고 친숙한 이미지. 수없이 다양하게 복제되고 일상 속에 찬연하게 퍼져 있는 바로 그 얼굴. ‘신비로운 미소’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나리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희대의 명작. 알 듯 모를 듯 수수께끼 같은 미소로 지금까지도 구구한 억측과 궁금증을 낳고 있는 그림이지요.


운 좋게도 두 번이나 직접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실은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에요. 크기도 작을뿐더러 워낙에 관람객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어서 가까이서 그 신비로운 미소를 대면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니까요. 차라리 복제된 이미지로 감상하는 편이 훨씬 더 낫지요. 뭐 사정이야 어떻든 수천 년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미소’ 하면 첫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금동반가사유상,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3.2cm, 국보 7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렇다면 우리 문화재 속에는 어떤 미소가 담겼을까요. ‘한국의 미소’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불세출의 명작 금동반가사유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불상이 각각 국보 78호와 83호로 지정돼 있는데, 아무래도 인간적인 매력은 78호 쪽이 좀 더 돋보이지 않나 싶어요. 만면 가득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저 천상의 미소. 보면 볼수록 마음이 푸근해지는 한국의 미소입니다.


불상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지요. 특히 반가부좌를 한 채 미소 짓고 있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모진 억압에 고통 받고 신음했던 백성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기댈 곳 없는 막막한 현실에 한 줄기 빛과 같은 구원자. 그래서 미륵보살은 늘 변함없이 온화하고 넉넉한 미소로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모든 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 될 거라고, 말이에요.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에 얽힌 사연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6월호에 ‘신라의 가면와’란 제목의 글이 실립니다. 내용인즉슨 당시 경주의 야마구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던 27살의 젊은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가 경주 읍내 일본인 골동품상에게서 유물 한 점을 구입했는데, 특이하게도 사람 얼굴 모양을 한 기와장식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는지 잡지에까지 소개되지요. 글쓴이 역시 당시 경주고적보존회에서 활동하던 오사카 긴타로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유물의 소유자인 다나카 다카노부는 1940년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영영 이별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여 년 세월이 흐른 뒤 용케도 유물의 존재를 기억해낸 분이 있었어요.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었던 박일훈 선생입니다. 끈질기게 유물의 소재를 추적한 끝에 1972년, 마침내 유물의 주인인 바로 그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박 선생은 유물을 기증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결국 마음이 움직인 다나카는 그해 10월 직접 경주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기증합니다.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 현재길이 11.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그렇게 한 뜻있는 분의 간절함이 결실을 맺어 되찾아온 귀중한 유물이 바로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 부르는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1932년,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 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지붕에 얹는 기와 중에서 하늘을 향해 볼록한 수키와(목조건축의 지붕을 덮는 반원통형의 기와)의 끝에 장식하는 유물이에요. 다른 말로 와당(瓦當)이라고도 합니다. 기와의 뒷면에 수키와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실제로 지붕 장식에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느낌은 대체 뭘까요? 서글서글하고 한없이 정다운 저 눈매와 두툼하게 아래로 흐르는 콧대, 그 아래로 한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저토록 향기로운 웃음을 흙으로 빚어 구워낼 줄 알았던 신라 도공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흘러 넘쳤을 겁니다. 더욱이 틀에다 찍어낸 게 아니라 도공이 손으로 직접 빚은 것이라니 말이에요. 이런 기와장식을 실제로 사용할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의 ‘파격’은 또 어떻고요.





그래서 신라의 미소는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당시 ‘새천년의 미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됐고, 저 유명한 경주 빵의 상표에까지 등장하며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으뜸 이미지가 됐지요. 그 미소에 매료된 시인들이 앞 다퉈 노래로 화답했으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이봉직 시인의 동시 ‘웃는 기와’ 한 대목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시대의 간극을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까지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명품의 가치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지요. 신라의 미소에서 깊은 감흥을 얻은 또 다른 시인이 있습니다. 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 유구한 세월에도 전혀 빛 바라지 않은 그 소탈하고 후덕한 미소. 시인의 마음은 그 고운 웃음의 결을 따라 시간을 초극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유영합니다.





깎아지른 벼랑에 새겨진 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백제 <7세기 초>, 국보 84호



먼 옛날 백제 사람들이 터를 닦고 살았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대대로 강댕이골이라 했던 용현계곡 한 쪽 벼랑에 새겨진 부처의 존재를 이곳 주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부처가 찬란한 백제 불교의 유산이라는 사실은 1959년에야 재발견됩니다. 지금 우리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라 부르며 국보로 귀하게 여기는 바로 그 마애불입니다.


유물 안내판의 설명에 따르면 가운데가 석가여래입상, 왼쪽이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이 미륵반가사유상입니다. 세 부처를 나란히 새겼다 해서 이런 배치를 ‘삼존불 형식’이라 하는데요. 왼쪽에 보주(寶珠)를 든 보살이 과연 누구냐를 놓고 지금까지도 해석이 분분하답니다.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같은 한반도 내에서도 신라나 고구려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이라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학술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아무 편견 없이 돌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세 분이 모두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지요. 따로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참 좋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운데 본존상의 얼굴을 한 번 볼까요. 영락없는 뭇사람의 얼굴입니다. 국보 금동반가사유상에서 보던 그 거룩하고 우아한 부처님이 아니라 친근한 옆 집 아저씨의 딱 그 모습이에요. 부리부리한 눈매, 뭉툭한 코, 두툼한 입술, 둥그런 형태에 살집 넉넉한 얼굴이지요. 하늘의 사람이 아니라 땅의 사람, 다시 말해 서민의 얼굴인 겁니다.


그래서 서산마애불은 서민 불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답니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서산마애불에 얽힌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화들이 소개돼 있는데요. 서산마애불이 발견된 직후에 우리나라 고고학의 선구자인 김원용 선생이 이런 유명한 제안을 했다고 해요.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그래서 백제의 미소가 된 거였어요. 2012년 서산마애불을 직접 답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사람 좋은 미소 앞에서 그때 저는 무엇을 생각하고 소망했을까요. 저 바위 위에서 1400여 년을 한 결 같은 미소로 살아낸 부처님은 그 모든 시름도 잊고 팍팍한 세상사도 잠시 내려놓고 여기서 잠시나마 편히 머물다 가시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먼먼 옛날의 백제인은 까마득한 후손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남겼지요.



흙으로 만든 부처와 보살, 고구려 <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라의 미소, 백제의 미소도 있는데 혹시 고구려의 미소라 부를 수 있는 건 없을까? 궁금해서 이리저리 자료를 뒤져보니 아주 흥미로운 유물이 등장하더군요.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실에 가면 한 쪽에 흙으로 빚은 작은 부처와 보살들이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있지요. 1937년 평안남도 원오리(元五里) 옛 절터에서 한꺼번에 발굴된 이 소조불(흙을 빚어 만든 불상)은 6세기 중엽 이후에 만들어진 출토지가 분명한 고구려 불상이라 합니다.


온전한 불상과 보살상에 파편까지 하면 312개나 한자리에서 출토됐다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앉아서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있는 보살상 두 점에 유독 마음이 끌립니다. 순전히 흙으로 빚은 것들이 자그마치 1500년 세월에도 저토록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니 놀랍지요. 게다가 단정하게 앉아 예를 갖춘 보살들의 저 생생한 표정은 또 어떤가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한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바짝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환한 미소가 한결 도드라져 보이지요.





수월관음도에서 찾은 고려의 미소


눈치 채셨겠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유물들은 대부분 불교 문화재입니다. 그리고 이 전통은 불교국가인 고려로 이어지게 되지요. 고려가 남긴 찬란한 문화유산 가운데 특별히 세 가지를 꼽을 만합니다. 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불화(佛畫)입니다. 201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대전>이란 기념비적인 전시가 열립니다. 전 세계 각지에 흩어진 고려불화 108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실로 역사적인 전시였어요.


이 전시가 그토록 중요했던 까닭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불화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가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어서 한자리에 모으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든 일이거든요. 한 달하고도 열흘 남짓한 전시 기간 동안 전국의 승려들이 몇 번이고 전시장에 다시 찾아와 그림 속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고 불공을 드리는 보기 드문 장면도 연출됐습니다. 평생에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말이에요.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6.2×54.8cm, 보물 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고려불화 최고의 미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 조성된 수월관음도입니다. 수월관음(水月觀音)이란 말 그대로 물에 비친 달을 내려다보는 관음보살을 가리킵니다. 수월관음도는 남인도의 바닷가에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에 앉아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방문을 받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그린 겁니다. 그림 속 관음보살은 선재동자를 내려다보고 있지요. 후덕한 얼굴에 은은하게 번지는 저 미소를 한 번 보세요. 가히 압권입니다.





그런데 관음보살의 표정만 그런 게 아니에요. 선재동자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저 천진난만하고 앙증맞은 입술에 머금은 미소를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요. 숱한 수월관음도를 보았어도 이렇게 자애롭고 우아한 미소로 보는 이를 따뜻하게 해주는 명품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고려불화 최고의 명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을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리도 곱고 아름다운 고려의 미소를 말입니다.



서민적인 해학이 빚어낸 조선의 미소


유교 국가인 조선 시대에 이르면 그 전까지 문화 전반을 지배했던 불교의 영향력이 몰라보게 위축됩니다. 굳이 빗대어 설명하자면 줄곧 신의 영역을 지향했던 문화예술이 그제야 비로소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왔다고 할까요. 조선의 미소를 딱 지칭해서 이거다, 못 박은 글을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하면 역시 풍속화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단원 김홍도의 그림 속엔 ‘조선의 미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풋풋하고 건강한 서민들의 웃음이 한가득 담겨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27.8×23.8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당 훈장 선생님께 혼이 났는지 울음을 참지 못해 훌쩍거리는 아이, 그 모습을 아이고 고소해라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참 정겹지요. 시끌벅적한 장터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한 판 씨름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천차만별 다양한 표정은 또 어떤가요. 누구는 웃고 누구는 자못 심각한 표정인데, 다들 판돈 두둑하게 걸었다면 마지막에 웃는 이는 과연 누가 될까요.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의 저 환한 미소 역시 참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은 보는 이를 한없이 따뜻하게 해줍니다. 더도 덜도 보탤 것 없는 서민들의 수수하고 꾸밈없는 삶을 화폭에 그려낼 줄 알았던 화가의 따뜻하기 그지없는 시선, 그 마음의 결이 느껴지니까요.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었을 팍팍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늘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 바로 그 미소가 그저 벗어나고만 싶은 고통에 불과했을 고단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을 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단원 풍속도첩>에 수록된 풍속화 24점 하나하나가 모두 조선의 미소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 기억하시나요. 광대들의 삶과 사랑, 시련과 애환을 그린 이 영화에는 조선시대 전문 연예인이었던 광대들이 펼쳐 보이는 갖가지 예능이 선보이는데요. 그 중에서도 얼굴에 탈을 쓰고 노는 탈놀이 장면은 보는 이를 짜릿하고 조마조마한 긴장감 속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 문화재 가운데 탈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요. 경북 안동의 유서 깊은 하회마을과 이웃 병산마을에 전해지는 탈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회탈이라 부르는 것들이지요.



(좌) 중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121호, 하회병산동민 소유, 국립중앙박물관 위탁 보관

 (우)-(상) 이매탈, (중) 부네탈, (하) 선비탈, 


하회탈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바로 ‘중탈’입니다. 입 주위를 중심으로 얼굴 부분과 턱 부분이 따로 만들어져 줄로 이어놓은 걸 볼 수 있지요. 초승달 모양을 닮아 여지없이 환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눈과 눈썹, 콧구멍이 잔뜩 커진 듯 뭉툭한 코와 불룩 솟아오른 광대뼈, 마치 허허허 웃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쩍 벌린 입모양까지 영락없는 박장대소의 표정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탈은 모두 13점입니다. 이 가운데 하회탈이 주지 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까지 해서 11점이고, 병산 탈은 2점이 남아 있습니다. 탈은 원래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별신굿을 할 때 쓰던 물건이에요. 보통 바가지나 종이로 만들었기 때문에 굿이 끝나고 나면 태워버리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요행히 13점이 남아 국보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례적으로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유래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탈은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진 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셈이지요. 오리나무를 깎은 뒤 옻칠을 여러 겹 해서 반들반들하고 운치 있는 색을 냈다고 합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나는 이런 탈을 쓰고 정월대보름에 한바탕 흥겨운 굿판을 벌였을 옛 사람들의 흥취가 탈에 담긴 각양각색의 표정에 생생하게 담겨 있는 듯합니다. 탈 하나하나에 새겨진 저 웃음, 저 미소야말로 조선의 미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웃을 일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요즘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일까요. 하지만 그 옛날이라 해서 다르진 않았겠지요. 육신의 병을 이겨내는 최고의 묘약이 바로 웃음이라 말하듯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것도 다름 아닌 웃음입니다. 누천 년 조상들의 손때 묻은 소중한 유물에서 찾아낸 한국의 미소. 그 미소에서 삶의 희망과 활력을 얻었던 옛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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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세운 계획들 잘 지키고 계신가요? 


사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처럼

 아무리 굳은 결심이라도 웬만해서는 3일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익숙함과 안락함을 이겨내고 기존의 습관들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계획들이 흐지부지 되었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누구나 그러니까요. 


대신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과 생명의 도약을 느끼며 

 신선한 마음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디뎌 보세요. 

시작과 가장 어울리는 계절, 바로 “봄”이 당신 곁으로 바싹 다가왔으니까요!


저희도 ‘일등이 아닌 일류’가 되겠다는 연초의 각오를 다시 한번 새기며 

신선함이 가득 담긴 신세계그룹의 이야기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신세계그룹 곳곳의 봄 풍경,

 제철 재료를 활용한 디저트의 신세계, 

봄의 유일한 불청객 미세먼지를 대처하는 신세계조선호텔의 노하우까지! 


여러분의 봄을 더욱 싱그럽게 물들일 이야기들과 함께


새로운 마음, 신선한 마음으로! 

SSG블로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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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의 리얼한 마케팅 이야기
뭣이 중헌디, 브랜드여 제품이여?
최훈학
#최훈학


마케팅 부서에서 고민하는 대표적인 실무적 ‘딜레마’는 마케팅을 할 때 브랜드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 제품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마케팅 활동은 ‘제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상품을 개발하기 전에 시장조사와 소비자조사를 통해서 기존 상품들을 분석해서 어떤 타깃을 대상으로 어떤 시장에 들어가야 할 것인지 전략을 수립합니다. 제품을 만들고 나서도 역시 소비자 테스트를 통해 품질에 대한 반응을 확인합니다. 그 이후에 광고전략을 수립할 때도 역시 제품에 집중하여 광고를 만들게 됩니다.



“저희는 정말 싸고 좋은 상품들을 판매합니다. 경쟁사에 비하면 무려 00원이 싸요, 이번 카드사 프로모션을 활용하셔서 00 카드로 구입하시면 더 싸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판매하는 돈가스는 청정 제주지역의 흑돈으로 만들어 신선하며 바삭한 맛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마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이마트는 우리가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 품질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서비스를 소재로 마케팅을 해왔습니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품질은 얼마나 좋은지, 또한 이마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얼마나 편리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주요 소구 포인트로 하여 광고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애플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 고객들은 상품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브랜드 로열티라는 용어보다 ‘브랜드 팬덤’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리는 것이죠. 고객이 상품을 구입할 때 가격과 장단점을 따져서 구입하지만 그 상위 기저에는 고객이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 상품의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객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스티브 잡스가 ‘혁신은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라고 했듯이 혁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고객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그 혁신이 빛을 보게 만들어줍니다. 마케팅팀은 이마트가 만들어낸 혁신적인 스토어와 상품들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마트 타운, 일렉트로마트, 피코크, 노 브랜드는 이마트가 끊임없이 고민해온 혁신의 성과물들입니다. 오늘은 일렉트로마트를 사례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 EDM :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Electronic dance music)

* AR : 가상현실 (Augmented Reality)

* VR : 증강현실 (virtual reality)



스토어 콘텐츠로서의 일렉트로맨은 일렉트로마트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렉트로맨은 일렉트로맨 네이버 웹툰을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히어로의 역할을 하며 스토리 내에서 일렉트로마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곳곳은 스토리상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약간 허당인 일렉트로맨의 캐릭터를 잘 반영하여 설계되었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인스타그램 (electromart.official)을 론칭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기존의 상품, 매장 소개 일색의 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나 어떻게 일렉트로맨의 캐릭터 특성을 잘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피드의 홍수 속에 기존과 같이 상품과 매장의 고퀄 사진이나 프로모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일렉트로맨 스스로가 세상을 바라보고 교감하는 1인칭 시점으로 인스타그램을 구성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문화적인 코드와의 연계 부분입니다. 일렉트로마트에 가시면 일렉트로맨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가 두 편 상영되고 있으며, 매장 음악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코드에서 저희가 주목한 장르는 바로 EDM인데요. 주로 클럽에서만 사용되던 EDM은 아직 한국 시장에서 메인스트림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EDM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닉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활용도가 높아 일렉트로마트는 EDM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여 EDM 음악과의 문화적인 코드를 맞춰가려 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닉 댄스 듀오인 F(X)의 루나, 앰버 그리고 세계적인 DJ Rehab 과 함께 만든 ‘Wave’를 감상해보세요



F(x) 루나, 앰버 및 DJ   ReHab의 뮤직 비디오 Wave


세 번째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 IT 기술들을 접목시켜 보는 것입니다. 최근 AR 게임인 “Touch attack’을 출시했는데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고객들에게 매장을 찾는 즐거움을 주고 쿠폰과 경품을 지급하는 경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새로운 AR 게임, TOUCH  ATTACK!


이마트가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조금이나마 공감 되실까요? 이마트의 혁신은 계속됩니다. 참,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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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쓱(SSG) 답하다 14화
인턴, 일류가 되다!
이은영
#이은영


서류 탈락보다 더 아픈 인턴십 최종 불합격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이 든 탓에 눈을 떠보니 조금 늦은 시간입니다. 바쁘게 집을 나서며 택시를 탈까, 평소처럼 버스를 탈까 고민이 됩니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차가 무척 밀리네요. 느린 택시 안에서 마음이 탑니다. 한 버스가 전용 차선으로 내 옆을 무심히 쌩 지나칩니다. 택시를 탄 조금 전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땀 범벅이 되도록 뛰었지만 도착해보니 3분 늦었습니다. 상사의 눈치가 보입니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커지는 순간입니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를 운전해 공항으로 향하는데 A 도로와 B 도로가 나뉘는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도로를 택할까 고민하다가 B 도로로 갔습니다. 이런, 앞에서 추돌사고가 나 도로가 꽉 막혀 있네요. 겨우겨우 도착했지만 딱 10분 차이로 결국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비행기를 놓친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한번 생각해 볼까요? A 도로로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며 조금 전에 내렸던 선택이 너무나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만약 아예 늦잠을 자서 비행기를 놓친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10분 전 비행기를 놓친 사람과 아예 늦어버려 비행기를 놓친 사람, 과연 둘 중 누구의 아쉬운 마음이 더 클까요? 앞선 예로 3분 지각을 한 사람과 아예 1시간을 늦은 사람, 이 둘 중 누구의 마음이 더 안타까울까요?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후회의 양뿐 아니라 아쉬움의 정도가 큰 사람은 눈앞에서 그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눈앞에서 놓친 기회가 더 아프다


멀리서 놓친 지하철이나 버스보다 더 아쉬운 것은 바로 눈앞까지 왔다가 떠나버리는 기회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심리 때문일까요? 서류전형 단계에서의 탈락보다 최종면접 탈락이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인턴십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때보다 인턴십을 끝마친 후 최종 입사 기회를 놓쳤을 때 아쉬움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답하다> 이번 화에서는 인턴십 기간 중 반드시 얻어 갔으면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턴을 정직원으로 채용시키는 결정요인은 크게 인턴십 실적과 임원진 최종면접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때, 인턴십 과정 자체와 임원진 최종 면접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단순히 최종면접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인턴십을 막 마치고 최종면접을 보는 지원자들에게 과연 임원진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요? 당연히 최종면접의 질문 대부분은 인턴십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최종면접에서는 여러분의 인턴십 평가표가 처음 제출했던 자기소개서와 함께 면접관들에게 제공됩니다. 즉 최종 합격을 위해서는 인턴십 기간 중 주어지는 과제 및 활동 모두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인턴십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 잡은 취업의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가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지원자 모두가 인턴십 과정을 거쳐 그 회사에 정식사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절실한 마음으로 <인턴십 기간 중 반드시 해야 할 일>을 6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름하여 ‘일류 인턴으로 거듭나기 위한 6가지 팁’입니다.



  • 인턴기간 중 반드시 얻어갈 것을 정한다.

    같은 인턴십 기간이라도 얻고자 하는 것이 확실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다른 결과를 얻습니다. 인턴 사원에게 주어지는 과제와는 별도로, 인턴십 기간 동안 꼭 얻어 가고 싶은 것을 하나 이상 정해 보세요. 내가 가고 싶은 부서, 선배와의 네트워크 구축, 닮고 싶은 인턴 동기의 장점 벤치마킹, 인사담당자에게 확실한 이미지 각인, 직무 탐색 등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얻어 가고자 하는 그 한 가지를 마음에 품고 임한다면 그 누구 보다도 값진 인턴십 기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 학생 플랫폼을 넘어 직장인 플랫폼을 구축한다.

    학생 시절에는 수업에 지각해도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이었죠. 심지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하루 정도는 결석해도 성적에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지각과 결석은 학교와는 다르게 엄중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인턴십 기간 중 주어지는 팀 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턴십 기간 동안 학교와는 엄연히 다른 회사 생활과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미 몸에 익어버린 학생 플랫폼을 직장인 플랫폼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 나만의 1등 영역을 만든다.

    모든 면에서 1등인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영역에서도 1등이 아닌 고만고만한 사람이라면 인턴십이 끝난 후 최종면접에서 떨어져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저 특색 없고 평범한 한 명의 인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실성, 열정, 발표 능력, 밝은 에너지, 충성도 등 그 무엇이 되었건 확실한 자신만의 1등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리더십을 발휘해 보자.

    많은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4~6명을 구성으로 한 팀 프로젝트가 주어집니다. 팀 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리더를 해야만 하죠. 리더는 각양각색인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팀을 이끌어야 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몇 년간 접하지 못할 리더역할이죠. 신입사원은 회사의 가장 막내이기 때문에 비록 입사에 성공하더라도 초기 몇 년은 리더십을 발휘해 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리더십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직급이 올라갈 수록 직장인의 필수 덕목이 될 만큼 중요해지는 것이 리더십이니까요. 따라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청하여 리더십을 발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본다.

    내가 본 몇몇 인턴들은 인턴십 기간 중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느라 교육시간뿐 아니라 퇴근 후, 주말, 공휴일에도 만남의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는 자발적으로 찜질방에서 숙박하며 과제에 몰두했지요. 이런 극도의 몰입 때문인지 사귀던 연인에게 버림받는 인턴들도 속출했습니다(이 지면을 빌려 당시 어려운 과제를 시켜 참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른이 넘고부터는 체력이 뒷받침 되질 않아 쉽게 시도하지 못할 일입니다. 젊은 나이이기에 가능한 몰입이지요. 체력이 허락할 때 미친 듯이 몰입해 봅시다.

  • 거침없이 도전해본다.

    지하철에서 회사 홍보 영상을 찍고, 번화가에서 플래시몹을 촬영하고, 임직원들에게 따뜻한 프리허그(Free Hug)를 시도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인턴사원들이었습니다. 사실 회사에서 몇 개월이라도 근무한 우리들이라면 선뜻 못할 일들이었지요. 인턴이기 때문에 가릴 것이 없고, 그들이기에 열정이 넘쳤습니다. 잃을 것이 없기에, 또 젊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턴 때야말로 그 거침없는 도전이 가장 빛나고, 또 가장 어울리는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일류란 무엇일까요? 또 일등과 일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일등은 이등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나만의 1등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일등이 아닌 일류에 속합니다. ‘나만의’라는 단어는 이미 구축된 규칙에 의한 타인과의 경쟁이나 남을 이기는 게임의 범주에서 벗어난,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등이 아닌 일류가 되기 위한 연습을 인턴 기간부터 시도해 보세요. 직장생활은 물론 장기적인 삶과 미래도 확연히 다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인턴십 기간 동안 다른 인턴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닌,  '일류'를 지향해 보세요.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며 더 ‘나음’보다 ‘다름’을 추구하는 그런 인턴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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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냉정과 열정으로 완성한 한 장의 레시피
정동현
#정동현


비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볼 수 있다는 멜버른이었다. 해가 떴다가 소나기가 내리고 심지어 우박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공기와 호주 대륙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만나 기층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 점심이 되지 않은 오전,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방안 공기가 눅눅하게 몸을 감싸 안았다. 두꺼운 이불 속에 몸을 말고 다시 눈을 감았다. 휴일이었다. 간밤 자정까지 일하고 기절하듯 누워 잔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휴일 아침이니 더 잘 수 있다는 느긋한 희망과 잠으로 휴일을 보낼 수 없다는 아쉬움에 갈등했다.


몇 분 후 나는 애벌레가 고치에서 기어나오듯 느릿하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목이 말랐다. 아래층 주방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다. 다시 방에 와 침대에 하반신을 묻고 맥주를 마셨다. 탄산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차가운 기운이 내장을 훑고 알코올은 혈관을 타고 올라왔다. 살짝 올라오는 취기에 잠 기운이 가셨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살짝 비릿한 비 냄새를 맡았다. 해가 높게 뜬 날에는 있는 것조차 몰랐던 내 마음은 비가 오면 그 존재를 알리는 양 잔잔히 흔들렸다.


비가 오면 이 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를 읽으면 간밤의 뜨거운 순간이 다 헛것 같았다. 악다구니를 쓰며 팬을 돌리고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지낸 밤, 날아오는 총알처럼 무수히 쏟아지던 주문을 쳐내며 허둥대던 시간이 가고, 패잔병처럼 텅 빈 주방 구석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몸을 식히던 자정 언저리의 풍경. 그 모든 것이 몇 시간 전이건만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다 꿈만 같았다. 그렇게 흔들리던 마음을 바라보다 정신이 드는 것은 얼마간 후였다.


침대 맡에 둔 요리책을 들어올려 무릎 위에 올리고 책장을 넘겼다. 그 종이 위에는 전쟁의 기록들이 냉정한 숫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g(그램)으로 대표되는 중량이 아니라 한 스푼, 한 컵과 같은 부피로 계량을 한 요리책을 싫어한다. 아예 사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부피로 계량을 한 레시피는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한 컵을 계량하더라도 수분과 밀도에 따라 약 1.5배까지 무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부피 계량을 여전히 많은 요리책에서 쓰는 까닭은 오래된 습관일 뿐이요, 게으른 타성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1g까지도 정확하게 파고드는 집요한 레시피였다. 내가 또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요리는 손맛이란 격언 아닌 격언이다. 한식은 계량할 수 없다며 손맛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측정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게으름을 합리화 하는 행태에 당혹감을 느낀다. 모든 요리는 화학이고 물리학이다. 열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결합되고 그것이 각 분자의 물성과 시간의 변화에 맞춰 작용할 때 우리가 지각하는 맛과 향이 나온다. 과학은 측정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모든 조리법 역시 계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애매모호한 부피 계량과 조리법이 적힌 요리책을 덮었다. 그리고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요리책을 찾아 펼쳤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매일 요리를 하는 주방은 레시피를 검증하기 좋은 무대다. 모든 요리책이 정확한 레시피를 적어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레시피가 부정확할 때가 많다. 그 레시피를 믿고 조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모든 조건을 정확하게 맞춰도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땐 시간과 노력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된다. 잘못된 지도를 펼쳐든 셈이다. 셰프들은 그 지도에 선을 죽죽 긋고 새롭게 측량하여 길을 낸다.


나는 누더기에 가까운 레시피 한 장을 볼 때마다 선조의 오랜 유물을 보는 것 같이 감상에 빠질 때가 잦았다. 1g의 차이를 기록하고 1분의 간극을 조정하며 만들어낸 레시피는 집념의 산물이요 지극한 정성으로 쓰인 연애편지 같았다. 누군가 적어내린 요리에 대한 연애편지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 처음 칼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해군 이등병 시절, 주방에 일손이 달려 칼을 처음 잡았다. 예리한 칼날이 손등에서 1mm 간격을 두고 위 아래를 오고갔다. 초짜 북재비가 북을 치듯 엉성한 리듬에 비뚤비뚤한 간격으로 도마를 내리치던 시간은 잠깐이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면, 그제서야 칼은 주인을 만난 듯 시원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전진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이 악기가 된 것처럼 즐거운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빨리 다음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아침부터 나는 칼 주변을 서성거렸다. 주방의 모든 일에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다보면 칼은 내 차지였다. 밤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주방 구석 작은 의자에 앉았다. 조리 하사가 보던 요리책을 펼쳤다. 지난 낮의 순간이 요리책에 담겨 있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칼로 썰고 몇 g(그램)의 조미료를 넣고 몇 분간 끓이고 볶는다는 문장 속에 잘 벼린 칼날과 뜨거운 불길이 녹아 있었다. 그이는 그 한장의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기록하고 다듬었을 것이다. 나는 홀로 그이가 보낸 시간에 조용히 감탄하고 감사했다.


비오는 소리에 맞춰 책장을 넘기길 몇 시간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문득 방 안이 환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새 비가 그쳐 해가 떠 있었다. 멜버른의 날씨다웠다. 나는 그제야 침대 밖으로 나와 주방으로 내려갔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재료를 꺼내 별 것 없는 파스타를 만들었다. 홀로 앉아 파스타를 깨작이며 창문 너머를 보면 새파랗게 푸른 하늘을 배경에 비현실적으로 풍성한 구름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나는 찬란하게 밝은 멜버른의 오후를 좋아했다. 휴일 오후 멜버른의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것은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밝음을 피해 어두운 주방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반쯤 미친 사람들이 칼과 냄비를 붙잡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 하루를 보내는 지옥 같은 그곳은 어떤 거짓말도 없는 순수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비가 오기를 바랐다. 빗소리를 들으며 거두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생각하고, 숫자와 건조한 지시어로 쓰인 요리책 보는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차분히 쌓아올린 숫자 더미, 그 속에 담긴 시간과 땀, 그것은 시끄러운 구호가 아닌 조용한 열정이었다.


회색빛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요리책을 보던 그 시절처럼 오전 적막한 가운데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그 숫자, 단어 하나 하나, 가득히 쌓인 A4 종이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실히 쌓아올린 하루하루가 무엇보다 진실된 것이 아닌가. 쉽게 이야기 하고 쉽게 강요하는 그 열정은 잔잔히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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