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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일류,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정동현
#정동현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트레일러 영상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힘찬 카덴차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언어의 하나이자,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본 낭만주의 사조에 충실하게 멜로디는 논리가 아니라 급변하는 충동에 따라 흐르고 템포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고저를 오고 간다. 그 흐름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스시 한 점이 접시 위에 올라간다. 푸르게 벼린 칼날에 베인 생선의 단면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그 위에 바른 간장은 오래전 산수화의 담백한 음영처럼 은은히 빛난다. 그 스시를 바라보는 노인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2011)’의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스시를 내놓는 리듬감이 마치 협주곡의 카덴차만큼이나 다이나믹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스시가 단지 밥 위에 생선을 올린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의도와 철학이 담긴 어떤 예술에 가깝다는 조용한 웅변이기도 하다. 엄격한 아버지였다는 지로는 그 음악을 배경으로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본인이 스시를 만들어온 과거를 설명한다.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서 내놓는 것도 내가 처음 한 것이었지. 그러고 나니 다른 스시집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고급 스시집에 가면 손님이 스시에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사가 직접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준다. 손님이 스시를 간장에 찍을 때 밥이 떨어져 나가거나 간이 강하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손님이 요리사가 의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지금은 매우 손쉬운 발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한다. 이런 끝없는 도전과 연구는 긴자 지하철역 지하,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10석가량의 작은 스시집이 미쉐린 3 스타를 받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미쉐린 3 스타란 그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그 나라로 여행을 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제 아흔 살이 넘은 지로의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3개월 이란 수치도 대략적인 것이고 일본의 인맥, 일류 호텔의 컨시어지 등을 통하지 않고서는 쉽게 예약을 할 수가 없다. 힘들게 예약을 하고서도 식사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는다. 전채요리 등이 아예 없고 스시가 10~12점 나오는 게 전부다. 식대는 모두 그날그날 시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만엔, 원화로 대략 3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사케 등을 시킨다면 최소 100만 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 예약 문의가 쇄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초입에 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맛이란 무엇일까? 맛은 설명하기 어려워. 나는 꿈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생각들이 터져 나와서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꿈에서 나는 스시의 환영을 보지.”





나도 요리하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15시간 넘게 주방에 서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집에 들어오면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방의 열기가 몸에 남아 채 식지 않고 곤두선 신경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한 실수, 그 덕에 들어야 했던 수모와 욕설, 어찌할 수 없는 자괴감, 음식이 나가는 빠른 템포, 뜨거운 팬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쓰던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마치 몸에 새겨진 듯했다. 시간이 흘러 늦은 밤, 잠이 들면 나는 또 주방에 서 있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보였다. 나를 보고 비웃는 동료가 보였다. 그러면 꿈에서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시 눈을 뜨면 또 주방에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충혈된 눈을 한 동료들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건조하게 인사를 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이다. 악순환이다. 지친 정신에 몸은 나약해진다. 나의 몸은 아프기를 고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조금 쉴 수 있으려니, 나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픈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몸이 아팠다. 오래 서 있으니 자연히 허리가 아팠고 신경을 계속 쓰니 장이 뒤를 따랐다. 일 년 에 한 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갈라 디너 날, 온몸에서 미열이 났다.


준비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 갈라 디너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는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짬뽕을 만들듯 볶아내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수를 우리는 것부터 시작, 재료에 따라 준비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코스 중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서 투입되는 노동력은 어마어마하다. 접시 하나는 요리 하나가 아니다. 주요리에 부요리 몇 개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요리사는 절대적으로 쉴 수가 없다. 그 중 하나였던 나는 몸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나는 불쌍한 요리사다. 나는 혹사당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모두 나를 불쌍히 여겨라. 아침부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나를 보고 몇몇이 걱정의 말을 던졌다. 나는 괜찮다고 답을 하면서도 아프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주방에 서 있었다. 이윽고 대망의 디너가 시작되기 30분 전이 됐다. 주방장이었던 애쉬가 말을 걸었다.



“너 어디 아프지?”

“어.”

“생애 최고의 날에 아프단 말이야? 말도 안 돼.”



투명한 파란 눈에 꼬불거리는 금발이었던 애쉬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에게 아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고였다. 무엇보다 일주일을 준비해 손님들을 대접하는 갈라 디너 날, 아프다는 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이 가진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모든 요리사가 달라붙어 준비한 이 날은 애쉬에게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처음에는 서러웠다. 나는 아픈 몸이었다. 그러니 위로를 받아 마땅한데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는 애쉬가 미웠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미움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곧추세웠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애쉬의 구령에 따라 음식들은 접시 위에 올라갔다. 수십 가지가 되는 요리들이 모두 똑같은 맛과 모양을 가지고 손님 앞에 나갔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 순간순간은 느리게 느껴졌다. 불이 이글거리는 틈 사이로 손을 넣었다 뺄 수 있을 것만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풀어졌던 신경이 예민해지고 나의 몸은 잘 준비된 도구가 되었다. 얼굴에 흐른 땀이 말라 짠 소금이 되었을 때 모든 요리가 나갔다. 끝이었다. 애쉬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아프다고 했지? 빨리 집에 가. 수고했어.”

“아니야. 괜찮아. 이제 안 아파.”



나의 답에 그는 비웃음도 미소도 아닌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대청소가 시작됐다. 웃으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던 동료들은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주방 곳곳을 쓸고 닦았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 일터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 일은 누구나 하기 꺼린다. 주방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건물 공용 쓰레기장에 갖다 놓는 일도 그랬다. 같이 일하던 백인 요리사들은 그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늘 나나 다른 외국인 요리사가 그 일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었다. 건물 뒤편으로 나가 쓰레기통의 행적을 살폈을 때 나는 애쉬의 뒷모습을 봤다. 주방장인 애쉬는 쓰레기통을 밀며 뛰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일을 빨리 끝내려 뛰고 있었다.


일류와 일등의 차이는 간단하다. 일등은 이등이 필요하다. 이등을 밟고 올라가야 일등이 된다. 남과 비교하고 우열을 가린다. 비교할 수 있는 남이 없으면 일등도 없다. 그러나 일류는 이류가 필요 없다. 일류에게는 남의 시선도 필요 없다. 그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간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그 길이 더럽고 힘들지라도 그곳을 간다. 그래서 그는 일등이란 순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일류(一流), 즉 사조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뒷모습이 아름답다. 깊은 밤, 어두운 지하에서도 빛나던 그의 등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은 나를 부끄러움으로 뜨겁게 달궈 오래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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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교 작가의 사진 여행 2화
베네치아, 물의 도시로 떠나는 여행
신석교
#신석교


낡은 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골목을 가득 채운 옥빛 물결. 그 위에 초승달 같은 조각배가 떠 있습니다.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흐르는 검은 조각배는 벨벳 좌석과 금빛 조각물로 장식되어 화려함을 뽐냅니다. 이 이국적 풍광의 사진 한 장은 보는 이의 로망이 됩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제방 위를 건넌 기차는 베네치아의 관문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합니다. 짐 꾸러미를 챙기거나 도착 기념사진 찍기에 분주한 관광객이 하나둘 광장을 빠져나갑니다. 그러자 인의 장막에 가려졌던 베네치아의 이국적 풍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바닷물,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곤돌라와 크고 작은 유람선의 행렬을 보며 드디어 베네치아에 도착했음을 실감합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은 배와 여행자의 두 다리뿐입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지도는 무용지물입니다. 결국,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끌리는 대로 걸음을 옮깁니다. 좁은 수로 위로 곤돌라 행렬이라도 지나갈 때면 가뜩이나 비좁은 골목길이 관광객의 사진 세례에 정체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수로를 미끄러지듯 떠가는 뱃사공의 노련함과 곤돌라의 우아한 모습이 마냥 신기할 뿐입니다.

베네치아의 골목골목을 연결하는 다리는 운하의 폭에 따라 길이도 높이도 다릅니다. 넓은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올라 조망하는 베네치아의 풍광은 사진에서 보았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역시 여행이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예상치 못했던 낯섦이 결합해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곤돌라, 수상 버스부터 택시, 자가용 보트, 경찰 순시선 그리고 짐을 가득 실은 화물 보트까지 온갖 배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대운하와 그 양편에 가득 자리 잡은 낡은 건물. 한눈에 담기는 베네치아의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무역선 가득한 중세 해양 도시의 환영인 듯합니다.

베네치아는 6세기경 이민족에게 쫓겨 육지에 발붙일 수 없게 된 피난민들이 바다 위의 작은 섬에 촘촘히 말뚝을 박고 건설한 곳입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해상무역시대를 맞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점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밀려왔고, 더 많은 말뚝을 박아 공간을 확장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렇게 400여 개의 다리로 120여 개의 섬을 이어 만들어졌습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베네치아는 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이자 지중해의 맹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큰 상업 도시로 한때는 세속에 찌든 인간들의 온상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그 아름다움 이면에는 생존을 위해 거친 파도와 싸우며 도시를 일구어낸 많은 사람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의지가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아이콘 곤돌라

복잡한 인파를 피해 인적 없는 골목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이따금 낡은 건물 외벽에 부딪히는 물결이 나지막이 찰랑거리며 정적을 깹니다. 허물어진 벽 틈으로 드러난 벽돌과 담벼락에 남아 있는 물 얼룩은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바닷물에 잠기기를 반복했던 세월의 흔적입니다. 물길에 길이 막혀 발길 돌리기를 여러 번. 발 닿는 대로 길을 옮기는 여행은 수상 쪽마루에 누워 깔깔대며 수다를 떨거나 기념사진을 찍으며 느릿한 시간을 즐기는 소녀들을 만나는 우연한 즐거움도 줍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피부에 스미는 베네치아의 오후는 나른한 안식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이따금 소리 없이 나타나 골목 모퉁이를 돌아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곤돌라. 그 위에 몸을 실은 여행객들은 물길 따라 쉬엄쉬엄 흘러가면서 역사를 읽고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속삭입니다.

곤돌라는 가슴 아픈 베네치아 역사의 산물입니다. 힘이 없던 그 옛날 외적들이 침입해 처녀들을 납치해가는 일이 잦아지자 베네치아 청년들은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약탈당한 여인들을 구출해 오기 위해 소리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 날렵한 작은 배가 지금의 곤돌라입니다.

낮의 베네치아가 아름다운 자태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면 밤의 베네치아는 아름다운 선율로 귀를 자극합니다. 상점들이 문들 닫고 도시에 어둠이 깃들 무렵, 운하 가장자리에 자리한 집집에 켜진 등불이 수면 위로 은은하게 반사됩니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노를 젓는 뱃사공의 아리아와 아코디언 선율은 골목골목 메아리치며 잔잔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베네치아 가면

베네치아의 또 다른 상징은 ‘베네치아 가면’입니다. 기계로 찍어낸 값싼 가면을 판매하는 노점도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장인들의 꼼꼼한 수작업으로 만든 가면을 전시한 상점 앞을 지날 때면 절로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다양한 재질, 디자인, 색상의 가면들이 각기 다른 개성과 분위기로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가면은 13세기 초반 십자군 전쟁 후 포로로 끌려온 이슬람 여인의 부르카*에서 유래했습니다. 전쟁이란 정말 많은 것을 파괴하면서도 각기 다른 문화를 뒤섞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르카(Burqa)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의복. 몸 전체를 가리는 망토형의 겉옷으로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눈 부위는 얇은 천이나 망사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

그때 그 시절, 매년 1월 말에서 2월에 시작해 사순절에 끝나는 축제에 시민들이 저마다 개성 넘치는 가면과 의상을 착용한 것이 베네치아 가면 축제의 시작입니다. 축제 때면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춘 시민들에 의해 도시는 자유와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가면은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도구이자 반대로 억눌린 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도구, 페르소나였던 것입니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가면에 가려진 또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면은 어떤 것일까?’ 라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면을 살펴가며 걷는 일도 베네치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리알토 다리를 건너서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와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의 모든 길을 연결하는 랜드마크입니다.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리알토 다리는 오래전부터 베네치아 상권의 중심지이자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입니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탁 트인 베네치아 전경을 감상한 후 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은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여행자들이라면 예외 없이 찾는 이곳은 다른 유럽 대도시의 전형적 광장과 같은 구조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넓은 공간입니다. 거대한 돔과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산 마르코 대성당, 연분홍 대리석에 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두칼레 궁전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내는 회랑이 광장을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당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날개 달린 황금빛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입니다. ‘베니스 영화제’로 우리에게 친숙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 베네치아의 휴양지인 리도섬이고 그 최우수상의 명칭이 황금사자상인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옛날 베네치아공화국의 위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두칼레 궁전은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이 건물은 오랫동안 도시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총독의 주거지이자 공화국 청사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궁전의 한 귀퉁이를 연결한 탄식의 다리입니다. 그 옛날 궁전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향하던 죄수들이 세상과 단절되는 절망감에 통곡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세기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사교계의 슈퍼스타 카사노바 역시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즐비한 광장에는 괴테, 토마스 만, 바이런, 루소 등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플로리안’ 이 1720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광장에 늘어놓은 야외 테이블 사이로 하얀 양복에 까만 나비넥타이를 정갈하게 멘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 극찬했던 광장 카페에서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유럽 귀족이 된 듯 호사를 누려봅니다.

베네치아의 부속섬,
유리공예 전시장 무라노 섬과 무지갯빛 색의 향연 부라노 섬

본섬도 좋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수상 버스를 이용해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매력적인 섬들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산 마르코 광장을 넘어 넓은 바다로 나가면 물 위에 불쑥불쑥 솟은 말뚝이 널려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솟은 듯 보이지만 인근 섬으로 연결되는 베네치아 수상 버스의 뱃길입니다.

이른 아침 수상버스를 타고 무라노 섬에 내려 느긋하게 산책을 시작합니다. 고요한 공원에 선 독특한 가로등과 다양한 유리 조각품이 눈길을 끕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공방 진열장에는 독특한 유리 공예품들이 아침 햇살에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유리공예 전시장에서는 전통 기법으로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장인은 빨갛게 달아오른 유리를 볼이 터져라 풍선처럼 부풀리고 다듬어서 말, 꽃병 등을 순식간에 만들어냅니다. 마치 노련한 마술사의 쇼를 보는 듯합니다.

13세기까지만 해도 본섬에서 번창했던 베네치아 유리 공예품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귀족층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유리공예품을 탐낸 유럽 각국에서 베네치아의 기술을 빼돌리려 하자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해 기술자들을 무라노 섬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무라노 섬이 오늘날의 유리공예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본섬에서 40분. 물길을 달려 도착한 부라노 섬은 베네치아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부속 섬입니다. 이 작은 섬마을의 매력 포인트는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색채입니다.

수상 버스에서 먼발치에 보이는 섬의 모습은 바다 위에 뜬 무지개처럼 곱고 화려합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수로 양편으로 형형색색의 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물 위에 비친 카페와 공방의 알록달록한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오밀조밀 들어선 주택 창가의 화분이 생기를 더해줍니다. 골목 곳곳에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너울너울 춤추고 소꿉놀이하는 아이들과 레이스를 뜨는 아낙들의 평화로움이 어우러진 곳. 부라노 섬은 지상낙원을 꿈꾸게 합니다.

현란한 색채와 평화로움에 매료되어 연신 셔터를 누르다 보니 대용량 메모리 카드의 용량이 금세 채워집니다. 부라노는 그야말로 사진을 위한 아름다운 섬입니다. 아름다운 건물의 채색은 그 옛날 고기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으슥한 밤이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 자기 집을 쉽게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빛바랜 색을 바꿀 땐 구역마다 지정된 몇 가지 색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게 되어있었습니다. 덕분에 화려한 원색의 건물들이 튀는 법 없이 하나로 어우러져 부라노 특유의 색채 미학이 되었습니다.

부속섬 여행을 마치고 느지막이 도착한 산 마르코 광장 옆 수상 버스 선착장. 파도가 넘실대는 탁 트인 바다 건너편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과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석양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선착장 풍경은 베네치아 여행의 백미입니다. 영업을 마친 선착장 곤돌라에 짙은 푸른 기가 감돌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여행자의 낭만에 맞춰 고달픈 하루를 보낸 뱃사공, 그의 애환을 실은 곤돌라는 출렁이는 물결에 아리아 선율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아련하게 사라집니다. 그렇게 베네치아 여행도 아쉬운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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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21세기 파가니니, '로만 킴'을 아십니까?
김 석
#김석




이름 로만 킴(Roman Kim). 올해 나이 스물여섯.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고 국적은 러시아. 국내에서 몇 차례 공연. 2015년 10월 KBS 열린음악회 출연. 별명은 ‘21세기의 파가니니.’ 인물검색에도 안 나오는 무명의 바이올리니스트. 이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런데 왜 주목하느냐고요? 놀랍도록 비범한 연주 실력 때문이지요. 보고도 믿지 않는 신들린 연주 때문입니다.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린 바로 그 연주,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Roman Kim] 파가니니의 ‘God Save the King’



입이 딱 벌어지지 않나요? 바이올린 대가들조차 어려워한다는 최고난도의 기교를 저리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다니요. 게다가 바이올린 현을 이빨로 뜯기까지 합니다. 한 번 보고 나면 반할 수밖에 없지요. 이 무명의 연주자를 유명하게 만든 건 유튜브에 자기가 직접 올린 동영상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유튜브 채널 이름도 미친 바이올린(insaneviolin)이에요.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아래 영상은 더 충격적이니까요.



[Roman Kim]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Air’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Air’



한 클래식 음악가에게 물어보니 악기가 최소 5대는 있어야 낼 수 있는 소리라고 하더군요. 바이올린 한 대로 협주곡을 연주하다니요. 로만 킴이 직접 편곡한 이 연주곡의 악보는 독일의 베렌라이트 출판사에서 찍어낸 초판이 매진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연주 실력은 물론 뛰어난 편곡 능력까지 지닌 연주자이건만 왜 그토록 알려지지 않았을까. 로만 킴의 연주를 접한 이들이 몹시도 안타까워하는 부분입니다.


로만 킴은 음악가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가 바이올린, 아버지가 트럼펫 연주자였다고 해요. 그 영향으로 5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불과 2년 만인 7살에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우승합니다. 이듬해 모스크바로 건너가 모스크바 중앙 음악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게 되지요. 로스트로포비치 재단의 후원을 받았고 막심 벤게로프, 미도리 고토, 기돈 크레머, 미리암 프리드 등 대가들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더 관심이 가는 대목은 바로 로만 킴이 김 씨 성을 쓰는 고려인이란 점일 거예요. 로만 킴의 증조할아버지는 1905년 을사늑약 때 고국을 떠나 시베리아로 건너갔다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카자흐스탄이었고, 그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태어난 로만 킴은 고려인 4세입니다. 예술적 대물림이었던지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숨길 수 없었지요.



[Roman Kim] 로만 킴이 13살 때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멜로디’와 바치니의 ‘론도’



저 감수성, 저 격정. 13살 소년에게서 나오는 연주라고는 정말 믿기 힘듭니다. 가난했던 가정형편을 무릅쓰고 로만 킴을 더 큰 무대로 데려간 건 할아버지였다고 해요. 로만 킴은 16살에 독일로 건너가 쾰른 음대에 진학합니다. 타고난 자질에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 독일을 중심으로 서서히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지요. 2011년 쾰른 국제 음악 콩쿠르, 이듬해인 2012년 발세시아 무지카 국제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요. 음악가의 길은 험난했습니다. 제2의 조국 러시아에서도, 유학생활을 한 독일에서도 로만 킴은 주류 음악계에 편입될 수 없는 무적자(無籍者)였지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 이방인을 향한 냉대까지…. 게다가 로만 킴의 연주는 이른바 클래식의 주류에서 상당히 비껴난 파격으로 가득합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활짝 피어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조용히 잊히고 사라지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로만 킴이 할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찾은 건 14살 때인 2006년입니다. 한•러 수교를 기념해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특별 공연 무대였다고 해요. 물론 그때는 아무도 이 소년을 주목하지 않았지요. 몇 년 뒤 이 천재를 ‘발견’한 건 바이올리니스트 배은환 선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4년 10월 국내 모 대형 교회 두 곳에서 로만 킴의 독주회가 열립니다. 머나먼 고국 땅에서 로만 킴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출발점이었어요.



[Roman Kim]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한 대목을 변주한 ‘브린디시’



로만 킴의 국내 활동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배예자 선생은 바로 이 연주에 흠뻑 매료됐다고 합니다. 저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Libiamo ne’ lieti calici’를 자기식으로 바꿔 연주한 건데요. 실로 가공할 만한 기교가 유감없이 드러나지요. 이쯤 되면 진짜 궁금해집니다. 왜 이토록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주자가 못 뜨는 걸까. 세계라는 더 큰 무대에서 화려하게 비상하지 못하고 머나먼 고국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걸까.


‘벽’입니다.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주치게 되는 넘어서기 힘든 벽 말이에요. 계통을 착실하게 밟아나가 주류 음악계에 편입되는 행운을 얻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불운이라고 할까요. 한국말은 단 한 마디도 못한다는 고려인 4세는 어디에도 깃들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할아버지의 고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지요. 2016년 수원국제음악회 폐막 무대에서 보여준 로만 킴의 연주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Roman Kim] 2016 수원국제음악제 폐막공연에서 연주하는 로만 킴 (영상제공: 수원문화재단)



로만 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음악가는 전설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니콜로 파가니니입니다. 그 화려하고 능수능란한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력에 호소력 짙은 음악성까지 겸비했으니 ‘21세기의 파가니니’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로만 킴은 2015년 독일 아헨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습니다. 당시 아헤너 자이퉁에 실린 공연 리뷰 기사의 한 대목입니다.



위 연주 영상에서 또 하나 특이한 게 있어요. 그 정체가 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두꺼운 안경입니다. ‘프리즘 안경’이라 불리는 이 희한한 물건은 로만 킴의 발명품이에요. 연주할 때 가까운 활 닿는 부분이 눈에 자꾸 아른거려서 눈이 쉽게 피로하더랍니다. 그래서 집중력을 높여보자고 만든 특수 안경이지요. 간혹 무대에 이 안경을 쓰고 나타나면 저게 뭐야 하고 놀라는 분들이 제법 많아서 더 화제가 되곤 합니다.


로만 킴은 굉장히 다재다능합니다. 음악가로서 연주뿐 아니라 편곡에 작곡 능력까지 출중하지요. 10대 시절부터 직접 곡을 쓰기도 해서 2015년 10월 18일에 방송된 KBS 열린음악회에서 연주한 ‘로망스(Romance)’가 바로 로만 킴의 대표 자작곡입니다. 최근에는 바이올린 현을 만드는 기계까지 직접 고안했을 정도로 발명가적 자질까지 뽐내고 있다니 그 많은 재능이 퍽 아깝게 느껴질 정도예요.



사실 저를 매혹시켰던 건 아래에 소개해드리는 영상입니다. 바이올린 사제나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이 영상에서 로만 킴의 당당한 자부심이 느껴졌거든요. 사람들은 로만 킴에게 21세기의 파가니니다, 유튜브 스타다 해서 찬사를 보냈지요. 하지만 로만 킴은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많은 가능성의 연주자입니다. 그 재능과 열정이 화려하게 꽃필지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유튜브로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탔다가 속절없이 잊히고 마는 반짝스타가 한둘이 아니니까요.


2017년 새해에는 그래서 더더욱 이 전도유망한 연주자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보통의 음악대학 학생들이 쓰는 평범한 악기와 몸뚱어리 말고는 가진 게 별로 없지만, 음악을 향한 불타오르는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는 타고난 바이올리니스트. 멀게만 느껴졌던 고국에서 더 늦기 전에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다는 부푼 꿈을 간직한 스물여섯의 고려인 4세 로만 킴.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Roman Kim] 베르디의 <레퀴엠> 중 ‘진노의 날(Dies I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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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월 Publisher’s letter
First Class




우리 마음 속 깊이에는 언제나 최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최선이 꼭 일등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을 생각하고, 정성을 담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

기존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와 규칙을 찾는 일.

바로 우리가 일상 속에 담는 최선이죠.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류가 되기 위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등과 일류의 차이가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일등은 무한 경쟁 속에서 한 사람만이 승자가 되는 개념입니다.

반면, 일류는 한 사람이 아닌 우리가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SSG블로그가 2017년을 열며 생각한 가치는 ‘일등이 아닌 일류’입니다.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원래 시작의 계획은 그런 거잖아요.

여러분은 2017년의 시작과 함께 어떤 목표를 세우셨나요?


SSG블로그는 일등이 아닌 가치와 마음을 담아 일류를 추구하는 

신세계그룹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러분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정유년, 여러분의 일상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붉은 닭의 기운으로 새해의 SSG블로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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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쓱(SSG) 답하다 13화
면접장 실전, Unique G.P VS Unique B.P
이은영
#이은영



면접의 계절 겨울.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처럼 면접 준비는 버티기 힘듭니다. 하지만 긴 추위가 가고 따뜻한 봄바람이 찾아오는 것처럼 고된 면접 준비 역시 언젠가는 끝이 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원하는 결과에 한 발자국 다가서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다음과 같은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꼭 취업이 됐으면 좋겠는데…

명절에 친척들 보려면 면접결과가 꼭 좋아야 하는데…

도대체 왜 나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보고 떨어트리는 걸까?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어느때보다 희망에 부풀어야할 때지만 웃음소리 대신 취준생들의 한숨소리만 가득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쓱(SSG) 답하다 13화에서는 면접 현장에서 직접 관찰한 유니크 굿 포인트(Unique Good Point)와 유니크 배드 포인트(Unique Bad Point)와 관련된 실질적인 면접 팁을 준비했습니다.





면접은 결국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의 과정입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의사결정 과정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하버드 대학의 트버스키와 카네만 교수는 인간의 복잡한 선택 과정을 이렇게 도식화하였습니다. 대안1과 대안2가 있을 경우, 인간은 가장 먼저 이 둘의 공통속성을 놓고 비교한 후 하나를 탈락시킵니다. 그 후 대안1만의 특성과 대안2만의 특성을 비교하여 그 중 유니크 굿 포인트를 선택하고 유니크 배드 포인트는 기각시키는 것입니다. 이 때, 선택은 언제나 유니크 굿 포인트에서만 일어나게 됩니다.


이 범지구적인 선택이론은 면접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면접 현장이야말로 집중적이고 치열한 선택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오직 뚜렷이 구별되는 유니크 굿 포인트(Unique good)에서만 일어납니다. 반면 비슷한 공통 속성(Common Feature)들은 탈락(Cancel)됩니다. 비슷한 공통속성은 구별되거나 주목되는 지점이 없어 정보처리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직 각자의 개성과 유니크함만이 면접관의 주목을 끌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굿 포인트에 가까울수록 선택될 가능성 또한 높아지겠지요.





혹시 내게 해당하는 것은 없었나요? 혹은 자신도 잘 모르는 나만의 습관이 있지는 않나요? 면접은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가진 생각을 전달하고 ‘나’라는 사람을 선보이는 세일즈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작은 차이 하나로 면접의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으니, 제시된 유니크 배드 포인트(Unique Bad Point)들을 꼼꼼히 따져 살펴본 후 아래의 선택전문가가 직접 전하는 실전 팁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지원자의 작은 목소리는 면접관의 집중력을 저하시킨다.


작은 목소리는 의사전달 능력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자칫 취업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자신감이 낮아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평소 목소리가 작다면 면접 때만큼은 일상 톤보다 조금 힘을 주어 말할 것을 권합니다. 제한된 시간 동안 자기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만큼, 면접관에게 잘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2. 높은 톤, 강한 악센트, 우렁찬 목소리는 지원자의 매력을 떨어트린다.


PT 직무면접의 경우 질문 없이 지원자가 보통 7-12분 동안 발표를 하게 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니, 몇몇 지원자들은 마음이 앞서 너무 빠르게 말하거나 말의 강약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악센트가 강하고 쉴새 없이 빠른 프레젠테이션은 앞서 제시한 작은 목소리만큼이나 내용 전달력을 떨어트립니다. 어렵게 잡은 면접의 기회인 만큼, 급한 마음을 잠시만 덜어내고 너무 많은 내용을 다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핵심이 되는 몇 개의 내용만을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3. ‘한 군데만 취업하자’식의 묻지마 지원자가 되지 마라.


최근 많은 기업에서 직무면접을 도입하는 이유가 바로 이 ‘여러 군데 회사 중 한 군데만 붙자’ 식의 묻지마 지원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균 이상의 스펙과 잘 갖추어진 비즈니스 매너를 가진 이들이라도 몇 가지 질문을 해보면 금세 우리 회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지원자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느 회사든 평소 해당 업종에 관심이 있는 지원자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이 아닌, 평상시의 관심과 열정으로 새롭고 젊은 에너지를 가진 신입사원을 뽑고 싶어 하지요. 따라서 어떤 기업의 면접 기회를 잡았다면 그 기업을 철저히 분석하고 뉴스 몇 개가 아닌 100개 이상의 기사를 모두 섭렵해야 합니다. 면접관들은 최소 그 회사에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회사의 역사, 최근 이슈들을 꼼꼼히 공부해 간 후 면접에 임하도록 합시다.


4. 귀여운 말투와 말끝 흐리기는 아마추어처럼 보인다.


면접을 진행하다 보면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지원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실제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격식 없는 옷차림, 어울리지 않게 코디된 정장 등은 삼가길 권합니다. 해당 지원자가 아직 입사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실수하거나 말을 잊었을 경우 혀를 내밀거나 귀여운 말투를 사용하는 지원자가 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임을 잊지 말고 최대한 깔끔한 매너를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5. 자기주장에 대한 100% 확신은 위험할 수 있다.


가끔 회사에 대한 신문기사나 보도자료를 보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스럽게 하는 지원자가 있습니다. 심지어 면접관들 앞에서 자신이 전문가인 것처럼 컨설팅하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면접관들은 최소 그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실무를 맡아 온 베테랑입니다. 전문성과 논리분석력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자칫 서투른 자신감처럼 보일 수 있으니 이 부분을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 실제 면접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지원자로부터 관찰된 유니크 배드 포인트(Unique Bad Point)들과 더불어 인재선택 전문가의 실전 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지원자들과 뚜렷이 구별되고 선택받는 지원자들의 공통된 유니크 굿 포인트(Unuique Good Point)는 무엇이 있을까요?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원자들의 공통된 굿 포인트를 살펴봅시다.





앞서 살펴본 하버드대학교 교수들의 연구처럼 선택은 누구나 다 가진 비슷한 속성이 아닌, 내가 가진 독특한 장점, 즉 구별되는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면접은 사람을 뽑는 선택의 과정입니다. 선택은 우리가 막연히 바라고 간절히 소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사람을 선발하고 인재가 뽑히는 취업의 과정에는 분명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막연히 소망하지 말고, 타인으로부터 구별되는 나만의 유니크 굿 포인트(Unique Good Point)를 만들기를 권합니다.


이번 화에서는 치열한 선택의 현장, 면접에서 일어나는 유니크 굿 포인트와 배드 포인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선택과 관련된 조금 더 큰 이야기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글에서 다룰 수 없었던 부분까지 논의할 수 있습니다. 또 내용이 좋았다면 다른 이들과 공유해 보세요. 좋은 것은 함께할 때 더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저와 더 소통을 원한다면 페이스북에서 @glamjulie를, Youtube에서 ‘이은영의글램토크’를 검색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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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꿈, 역사 그리고 신들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
이 환
#이환



Introduction


수도 아테네 Athens 위치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남단 언어 그리스어 인구 1077만 5643명(2015년 기준) 정식명칭 그리스공화국 Hellenic Republic : Greece 종교 그리스정교, 이슬람교

꿈의 도시·역사의 도시·신들의 도시

아테네
ATHENS

오늘날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는 서구의 제도와 문화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다. 그 서양정신문화 유산의 원류는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학교 다닐 적, 모든 사회, 세계사 교과서의 초입 부분을 장식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알았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철학, 정치, 의학, 문학, 예술 등 인간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영역의 원천은 바로 이 곳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아테네. 인류 정신사의 기나긴 여정의 총집합이지만, 조금이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
아크로폴리스 Acropolis, 신들의 집

신화(神話,Myth)는 그저 상당수 영어단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 상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론하고, 신들의 희로애락 이야기에서 삶의 통찰을 얻고 지혜를 얻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상식 이상인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신화 속에 등장한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 트로이 등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실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냥 허구로만 볼 일은 아니다.

내게 어떤 단어든 물어봐.
어떤 말이든 그리스말에서 생겼다는 걸 증명해줄 테니까
-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중 -

그리스 수도 <아테네>가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수호신이 〈아테나〉 여신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옛 이름은 <아테나이>, 즉 <아테네 여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 불렀다. 아크로폴리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국가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새였지만, 종교적인 행사장이기도 했다. 각 도시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그 도시의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의 집이 있었다.

석회암반으로 구성된 해발 156m의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파르테논 신전이 우뚝 서 있다. ‘처녀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바로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다. 이곳은 신성불가침 지역 그 자체였다. 가로와 세로가 1:1.682의 황금비〔黃金比〕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다.

아크로폴리스는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항상 복잡하다. 입구를 통과하자 거대한 근육질의 신전이 파란 하늘을 지붕 삼아,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장중하며 위엄있다. 46개의 기둥은 지름만 해도 1.5~1.9m, 한 번에 안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13미터 높이의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 상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신전 안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모든 것은 파괴되고 사라져버렸다. 고대 여행가들의 기록에는 목조상에 금박을 입혔고, 얼굴과 손발만이 상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상당수 벽장식 등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엘긴스 마블(Elgin’s Marble)로 알려진 정교한 부조장식은 1802년 헐값에 당시 그리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반입됐다. 오늘날 그리스 정부는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을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파르테논 외에 현재 남아 있는 신전으로는 아크로폴리스 입구 쪽 아테나 니케 신전과 왼쪽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 그리고 아테나 폴리아스 신전 및 포세이돈 신전 등이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신상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신전 아래에는 고대의 시장 및 광장인 〈아고라〉가 있다.

제우스의 딸로 태어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는 완전 무장한 채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테나는 남성에게 필요한 기술인 농경, 원예, 항해술부터 여성에게 필요한 기술인 길쌈, 베 짜기, 바느질 기술까지 관장했다.
왜 하필 이곳이 아테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테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이 도시의 주인 자리를 두고 겨루었다. 이들을 제외한 올림푸스의 신들(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데메테르, 헤스티아, 아폴론, 헤르메스, 헤파이토스, 아레스, 디오니소스)은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주는 이에게 이 도시를 주겠다고 했다. 포세이돈은 소금호수(일부 기록은 말)를,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솟아나게 해 각각 선물로 내렸다. 신들은 소금과 올리브를 비교해 역시 올리브가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판정, 이 도시를 아테네에 주었다. 이 도시의 이름을 아테네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올리브나무인 것이다.
아직도 파르테논 옆 에레크테이온 신전 옆에는 몇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많은 관광객이 그리스인들에게 올리브가얼마나 중요한 작물인 걸 아는지 모르는 지… 그 나무들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들의 신, 제우스 신전
Temple of Zeus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신전들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정면 쪽에서 가장자리를 향해 쭉 걸어나가면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면 신전 터가 하나 보인다. 얼른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덩그러니 기둥들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이 바로 아테나 여신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우스 신전은 높은 언덕 아래에 있는 평지에 세워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인다.

막상 아크로폴리스를 내려가 제우스 신전의 성역에 들어서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다. 실제로 제우스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크고 넓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이 총 46개였다면 제우스 신전의 기둥들은 104개나 된다. 또한, 파르테논의 기둥 높이가 11m인 데 비해 제우스 신전의 기둥 높이는 17m나 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기둥은 고작 16개뿐이다.

헤로데이온 Herodeion
예술의 전당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숲으로 싸인 극장이 보인다. 기원후 160년경에 로마의 귀족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아내 레기나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극장이다. 당시엔 지붕과 벽이 가득하고 무려 6000명이나 수용했다니 그 규모가 엄청난 극장이다.

이곳 역시 복원이 매우 잘 돼 매년 여름엔 야외공연이 열린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이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스팅, 엘튼 존 등 세계적인 가수, 연주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다. 그리스 국민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고별공연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조수미씨도 2005년 호세 카레라스와 공연했다고 하니 명소임은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 국가의 중심,
삶의 현장 아고라 Agora

옛날 그리스인들은 이곳 아고라(Agora)에서 철학, 정치 등을 논했다.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거리였다. 그리스어로 '함께 모이다'라는 동사에서 나왔고 집회 또는 모임 장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고대 아테네의 민회가 열렸던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지 토론이나 재판 및 공적 업무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고 시장의 기능도 하던 도시의 중심가였다. 즉, 아고라는 아테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정치와 경제 및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아고라는 여기저기 돌무더기만 눈에 띄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헤파이스토스 신전뿐이다. 옛날에 아고라에 있었다고 말해지는 아폴론 신전 및 아레스 신전은 주춧돌도 찾지 못할 정도로 흔적조차 없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종교적인 성지고,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꽃핀 곳은 다름 아닌 아고라다.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정치와 철학은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한 복원,
아탈로스의 스토아 Stoa of Attalos

다른 건물에 비해 멀쩡하고 멋졌다. 복원이 잘되어 그리스식 주랑이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헬레니즘에 의해 번성을 누렸던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 2세가 아테네 유학을 마치고, 감사의 뜻으로 아테네에 헌정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록펠러 2세에 의해 옛 양식과 형태를 그대로 살려 복원되었다. 그리스의 유적 중 유일하게 완전 복원된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 그리고 현대
수 천년의 시간이 공존하는 아테네 Athens

아테네의 밤이 깊어지면 여행자들은 주로 오모니아(Omonia) 광장 부근으로 모인다. 이곳에 많은 호텔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오모니아 광장은 현대 아테네인들의 경제 중심지다. 도시의 이름은 '일치' 혹은 '동의'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사람이 출퇴근하기 위해 북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모니아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타그마(Syntagma) 광장이 있다. 신타그마는 그리스어로 '헌법'을 의미한다. 이곳에 국회 의사당 건물이 있다. 1843년 그리스 최초의 헌법을 제정한 후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 시내의 중심이다. 1456년부터 오스만제국의 지배에 항거한 독립전쟁의 전사자들과 1, 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이들도 모셔져 있다. 무명용사의 무덤 뒤 벽엔 비문이 있는데 페리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 희생장병을 위한 추도연설문 중 일부를 발췌한 명문장이다.

만들어졌지만 아직 비어있는 관 하나가 있다.
무명용사의 관. 용감한 자들에게는
어디나 무덤이 될 수 있다.

대통령 근위대인 ‘에브조니(Evzones)는 185cm 이상의 건장한 청년만 선발하는데 빨간 베레모에 화려한 금박자수가 박힌 조끼와 주름 잡힌 치마, 검은색 방울이 달린 신발이 눈길을 끈다. 에브조니란 이름도 오스만제국 지배 때 저항했던 산악 게릴라의 이름과 복식에서 유래됐다.

수많은 시민들이(이 중에 관광객도 많으리라) 삼삼오오 식당 옆 노변을 가득 채워 식사하랴 이야기하랴 분주하다. 하루의 고단함을 다 내려놓고 좋은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항상 이곳에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경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거의 매일같이 신타그마 광장은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아테네에 머물면서 깊은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 위대한 문명을 이룬 그리스인들은
어디 가고 초라하고 역사의 무게에 찌든
저 농부들만 남았는가?

장기 경제침체로 그리스는 전체적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외곽 벽은 곳곳에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백화점 세일 폭은 50~70%로 놀랄 정도로 높다.

그리스 신의 전설이 숨쉬는
리카베토스 언덕 Lycabettus Hill

숙소에서 가장 높이 보이는 언덕. 아테네 어딜 돌아다니든 눈에 띄는 언덕, 리카베토스 언덕이다. 저녁 무렵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이 언덕에 올라섰다. 해발 277m로 아테네 중심부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이다.

저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야간조명과 어울려 위용을 자랑한다. 도시 끝자락 피레우스 항구와 에게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척박한 땅에서 그리스인들은 수천 년 동안 오늘날 인류의 기초자산을 일구어왔다. 아테네에서 보았던 수많은 돌은 그저 단순한 파편들이 아니다. 말없이 지천으로 깔린 옛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먼 옛날의 화려함을 떠올린다. 인류는 그렇게 땀 흘리고 고민하며 정신과 물질세계를 서서히 진화시켜왔다. 인류의 무한한 상상력, 가능성과 함께 인간 존재의 왜소함과 겸손함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한 여행자는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킨 채 이렇게 서 있다.
한바탕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친다.아!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철학을 꽃피운 가장 아름다운 도시 아테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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