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콘텐츠

COLUMN 냉정과 열정으로 완성한 한 장의 레시피
TV 네오인이 말하는 쓱-배송 이야기
PEOPLE 일류의 가치를 빛내는 신세계人의 손
COLUMN 참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닭이야기

SSG뉴스

ssg.com 이얼싼이 얼마나 싼가
emartmall 봄맞이 생활의 힘!
SCS뉴스 신세계그룹의 핫한 소식! 2월 셋째주

SSG 스페셜/칼럼

Home > SSG 스페셜/칼럼
Home > SSG 스페셜/칼럼
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쓱(SSG) 답하다 14화
인턴, 일류가 되다!
이은영
#이은영


서류 탈락보다 더 아픈 인턴십 최종 불합격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이 든 탓에 눈을 떠보니 조금 늦은 시간입니다. 바쁘게 집을 나서며 택시를 탈까, 평소처럼 버스를 탈까 고민이 됩니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차가 무척 밀리네요. 느린 택시 안에서 마음이 탑니다. 한 버스가 전용 차선으로 내 옆을 무심히 쌩 지나칩니다. 택시를 탄 조금 전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땀 범벅이 되도록 뛰었지만 도착해보니 3분 늦었습니다. 상사의 눈치가 보입니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커지는 순간입니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를 운전해 공항으로 향하는데 A 도로와 B 도로가 나뉘는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도로를 택할까 고민하다가 B 도로로 갔습니다. 이런, 앞에서 추돌사고가 나 도로가 꽉 막혀 있네요. 겨우겨우 도착했지만 딱 10분 차이로 결국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비행기를 놓친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한번 생각해 볼까요? A 도로로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며 조금 전에 내렸던 선택이 너무나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만약 아예 늦잠을 자서 비행기를 놓친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10분 전 비행기를 놓친 사람과 아예 늦어버려 비행기를 놓친 사람, 과연 둘 중 누구의 아쉬운 마음이 더 클까요? 앞선 예로 3분 지각을 한 사람과 아예 1시간을 늦은 사람, 이 둘 중 누구의 마음이 더 안타까울까요?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후회의 양뿐 아니라 아쉬움의 정도가 큰 사람은 눈앞에서 그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눈앞에서 놓친 기회가 더 아프다


멀리서 놓친 지하철이나 버스보다 더 아쉬운 것은 바로 눈앞까지 왔다가 떠나버리는 기회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심리 때문일까요? 서류전형 단계에서의 탈락보다 최종면접 탈락이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인턴십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때보다 인턴십을 끝마친 후 최종 입사 기회를 놓쳤을 때 아쉬움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은영의 청춘이 묻고 인사담당자가 답하다> 이번 화에서는 인턴십 기간 중 반드시 얻어 갔으면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턴을 정직원으로 채용시키는 결정요인은 크게 인턴십 실적과 임원진 최종면접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때, 인턴십 과정 자체와 임원진 최종 면접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단순히 최종면접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인턴십을 막 마치고 최종면접을 보는 지원자들에게 과연 임원진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요? 당연히 최종면접의 질문 대부분은 인턴십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최종면접에서는 여러분의 인턴십 평가표가 처음 제출했던 자기소개서와 함께 면접관들에게 제공됩니다. 즉 최종 합격을 위해서는 인턴십 기간 중 주어지는 과제 및 활동 모두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인턴십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 잡은 취업의 기회를 잡느냐, 놓치느냐가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지원자 모두가 인턴십 과정을 거쳐 그 회사에 정식사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절실한 마음으로 <인턴십 기간 중 반드시 해야 할 일>을 6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름하여 ‘일류 인턴으로 거듭나기 위한 6가지 팁’입니다.



  • 인턴기간 중 반드시 얻어갈 것을 정한다.

    같은 인턴십 기간이라도 얻고자 하는 것이 확실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다른 결과를 얻습니다. 인턴 사원에게 주어지는 과제와는 별도로, 인턴십 기간 동안 꼭 얻어 가고 싶은 것을 하나 이상 정해 보세요. 내가 가고 싶은 부서, 선배와의 네트워크 구축, 닮고 싶은 인턴 동기의 장점 벤치마킹, 인사담당자에게 확실한 이미지 각인, 직무 탐색 등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얻어 가고자 하는 그 한 가지를 마음에 품고 임한다면 그 누구 보다도 값진 인턴십 기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 학생 플랫폼을 넘어 직장인 플랫폼을 구축한다.

    학생 시절에는 수업에 지각해도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이었죠. 심지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하루 정도는 결석해도 성적에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지각과 결석은 학교와는 다르게 엄중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인턴십 기간 중 주어지는 팀 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턴십 기간 동안 학교와는 엄연히 다른 회사 생활과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미 몸에 익어버린 학생 플랫폼을 직장인 플랫폼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 나만의 1등 영역을 만든다.

    모든 면에서 1등인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영역에서도 1등이 아닌 고만고만한 사람이라면 인턴십이 끝난 후 최종면접에서 떨어져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저 특색 없고 평범한 한 명의 인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실성, 열정, 발표 능력, 밝은 에너지, 충성도 등 그 무엇이 되었건 확실한 자신만의 1등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리더십을 발휘해 보자.

    많은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4~6명을 구성으로 한 팀 프로젝트가 주어집니다. 팀 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리더를 해야만 하죠. 리더는 각양각색인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팀을 이끌어야 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몇 년간 접하지 못할 리더역할이죠. 신입사원은 회사의 가장 막내이기 때문에 비록 입사에 성공하더라도 초기 몇 년은 리더십을 발휘해 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리더십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직급이 올라갈 수록 직장인의 필수 덕목이 될 만큼 중요해지는 것이 리더십이니까요. 따라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청하여 리더십을 발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본다.

    내가 본 몇몇 인턴들은 인턴십 기간 중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느라 교육시간뿐 아니라 퇴근 후, 주말, 공휴일에도 만남의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는 자발적으로 찜질방에서 숙박하며 과제에 몰두했지요. 이런 극도의 몰입 때문인지 사귀던 연인에게 버림받는 인턴들도 속출했습니다(이 지면을 빌려 당시 어려운 과제를 시켜 참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른이 넘고부터는 체력이 뒷받침 되질 않아 쉽게 시도하지 못할 일입니다. 젊은 나이이기에 가능한 몰입이지요. 체력이 허락할 때 미친 듯이 몰입해 봅시다.

  • 거침없이 도전해본다.

    지하철에서 회사 홍보 영상을 찍고, 번화가에서 플래시몹을 촬영하고, 임직원들에게 따뜻한 프리허그(Free Hug)를 시도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인턴사원들이었습니다. 사실 회사에서 몇 개월이라도 근무한 우리들이라면 선뜻 못할 일들이었지요. 인턴이기 때문에 가릴 것이 없고, 그들이기에 열정이 넘쳤습니다. 잃을 것이 없기에, 또 젊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턴 때야말로 그 거침없는 도전이 가장 빛나고, 또 가장 어울리는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일류란 무엇일까요? 또 일등과 일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일등은 이등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나만의 1등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일등이 아닌 일류에 속합니다. ‘나만의’라는 단어는 이미 구축된 규칙에 의한 타인과의 경쟁이나 남을 이기는 게임의 범주에서 벗어난,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등이 아닌 일류가 되기 위한 연습을 인턴 기간부터 시도해 보세요. 직장생활은 물론 장기적인 삶과 미래도 확연히 다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인턴십 기간 동안 다른 인턴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닌,  '일류'를 지향해 보세요.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며 더 ‘나음’보다 ‘다름’을 추구하는 그런 인턴이 되길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이마트의 리얼한 마케팅 이야기
뭣이 중헌디, 브랜드여 제품이여?
최훈학
#최훈학


마케팅 부서에서 고민하는 대표적인 실무적 ‘딜레마’는 마케팅을 할 때 브랜드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 제품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마케팅 활동은 ‘제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상품을 개발하기 전에 시장조사와 소비자조사를 통해서 기존 상품들을 분석해서 어떤 타깃을 대상으로 어떤 시장에 들어가야 할 것인지 전략을 수립합니다. 제품을 만들고 나서도 역시 소비자 테스트를 통해 품질에 대한 반응을 확인합니다. 그 이후에 광고전략을 수립할 때도 역시 제품에 집중하여 광고를 만들게 됩니다.



“저희는 정말 싸고 좋은 상품들을 판매합니다. 경쟁사에 비하면 무려 00원이 싸요, 이번 카드사 프로모션을 활용하셔서 00 카드로 구입하시면 더 싸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판매하는 돈가스는 청정 제주지역의 흑돈으로 만들어 신선하며 바삭한 맛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마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이마트는 우리가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 품질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서비스를 소재로 마케팅을 해왔습니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품질은 얼마나 좋은지, 또한 이마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얼마나 편리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주요 소구 포인트로 하여 광고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애플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 고객들은 상품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브랜드 로열티라는 용어보다 ‘브랜드 팬덤’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리는 것이죠. 고객이 상품을 구입할 때 가격과 장단점을 따져서 구입하지만 그 상위 기저에는 고객이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 상품의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객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스티브 잡스가 ‘혁신은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라고 했듯이 혁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고객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그 혁신이 빛을 보게 만들어줍니다. 마케팅팀은 이마트가 만들어낸 혁신적인 스토어와 상품들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마트 타운, 일렉트로마트, 피코크, 노 브랜드는 이마트가 끊임없이 고민해온 혁신의 성과물들입니다. 오늘은 일렉트로마트를 사례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 EDM :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Electronic dance music)

* AR : 가상현실 (Augmented Reality)

* VR : 증강현실 (virtual reality)



스토어 콘텐츠로서의 일렉트로맨은 일렉트로마트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렉트로맨은 일렉트로맨 네이버 웹툰을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히어로의 역할을 하며 스토리 내에서 일렉트로마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곳곳은 스토리상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약간 허당인 일렉트로맨의 캐릭터를 잘 반영하여 설계되었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인스타그램 (electromart.official)을 론칭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기존의 상품, 매장 소개 일색의 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나 어떻게 일렉트로맨의 캐릭터 특성을 잘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피드의 홍수 속에 기존과 같이 상품과 매장의 고퀄 사진이나 프로모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일렉트로맨 스스로가 세상을 바라보고 교감하는 1인칭 시점으로 인스타그램을 구성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문화적인 코드와의 연계 부분입니다. 일렉트로마트에 가시면 일렉트로맨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가 두 편 상영되고 있으며, 매장 음악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코드에서 저희가 주목한 장르는 바로 EDM인데요. 주로 클럽에서만 사용되던 EDM은 아직 한국 시장에서 메인스트림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EDM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닉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활용도가 높아 일렉트로마트는 EDM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여 EDM 음악과의 문화적인 코드를 맞춰가려 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닉 댄스 듀오인 F(X)의 루나, 앰버 그리고 세계적인 DJ Rehab 과 함께 만든 ‘Wave’를 감상해보세요



F(x) 루나, 앰버 및 DJ   ReHab의 뮤직 비디오 Wave


세 번째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 IT 기술들을 접목시켜 보는 것입니다. 최근 AR 게임인 “Touch attack’을 출시했는데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고객들에게 매장을 찾는 즐거움을 주고 쿠폰과 경품을 지급하는 경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의 새로운 AR 게임, TOUCH  ATTACK!


이마트가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조금이나마 공감 되실까요? 이마트의 혁신은 계속됩니다. 참,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냉정과 열정으로 완성한 한 장의 레시피
정동현
#정동현


비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볼 수 있다는 멜버른이었다. 해가 떴다가 소나기가 내리고 심지어 우박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공기와 호주 대륙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만나 기층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 점심이 되지 않은 오전,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방안 공기가 눅눅하게 몸을 감싸 안았다. 두꺼운 이불 속에 몸을 말고 다시 눈을 감았다. 휴일이었다. 간밤 자정까지 일하고 기절하듯 누워 잔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휴일 아침이니 더 잘 수 있다는 느긋한 희망과 잠으로 휴일을 보낼 수 없다는 아쉬움에 갈등했다.


몇 분 후 나는 애벌레가 고치에서 기어나오듯 느릿하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목이 말랐다. 아래층 주방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다. 다시 방에 와 침대에 하반신을 묻고 맥주를 마셨다. 탄산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차가운 기운이 내장을 훑고 알코올은 혈관을 타고 올라왔다. 살짝 올라오는 취기에 잠 기운이 가셨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살짝 비릿한 비 냄새를 맡았다. 해가 높게 뜬 날에는 있는 것조차 몰랐던 내 마음은 비가 오면 그 존재를 알리는 양 잔잔히 흔들렸다.


비가 오면 이 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를 읽으면 간밤의 뜨거운 순간이 다 헛것 같았다. 악다구니를 쓰며 팬을 돌리고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지낸 밤, 날아오는 총알처럼 무수히 쏟아지던 주문을 쳐내며 허둥대던 시간이 가고, 패잔병처럼 텅 빈 주방 구석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몸을 식히던 자정 언저리의 풍경. 그 모든 것이 몇 시간 전이건만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다 꿈만 같았다. 그렇게 흔들리던 마음을 바라보다 정신이 드는 것은 얼마간 후였다.


침대 맡에 둔 요리책을 들어올려 무릎 위에 올리고 책장을 넘겼다. 그 종이 위에는 전쟁의 기록들이 냉정한 숫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g(그램)으로 대표되는 중량이 아니라 한 스푼, 한 컵과 같은 부피로 계량을 한 요리책을 싫어한다. 아예 사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부피로 계량을 한 레시피는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한 컵을 계량하더라도 수분과 밀도에 따라 약 1.5배까지 무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부피 계량을 여전히 많은 요리책에서 쓰는 까닭은 오래된 습관일 뿐이요, 게으른 타성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1g까지도 정확하게 파고드는 집요한 레시피였다. 내가 또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요리는 손맛이란 격언 아닌 격언이다. 한식은 계량할 수 없다며 손맛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측정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게으름을 합리화 하는 행태에 당혹감을 느낀다. 모든 요리는 화학이고 물리학이다. 열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결합되고 그것이 각 분자의 물성과 시간의 변화에 맞춰 작용할 때 우리가 지각하는 맛과 향이 나온다. 과학은 측정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모든 조리법 역시 계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애매모호한 부피 계량과 조리법이 적힌 요리책을 덮었다. 그리고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요리책을 찾아 펼쳤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매일 요리를 하는 주방은 레시피를 검증하기 좋은 무대다. 모든 요리책이 정확한 레시피를 적어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레시피가 부정확할 때가 많다. 그 레시피를 믿고 조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모든 조건을 정확하게 맞춰도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땐 시간과 노력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된다. 잘못된 지도를 펼쳐든 셈이다. 셰프들은 그 지도에 선을 죽죽 긋고 새롭게 측량하여 길을 낸다.


나는 누더기에 가까운 레시피 한 장을 볼 때마다 선조의 오랜 유물을 보는 것 같이 감상에 빠질 때가 잦았다. 1g의 차이를 기록하고 1분의 간극을 조정하며 만들어낸 레시피는 집념의 산물이요 지극한 정성으로 쓰인 연애편지 같았다. 누군가 적어내린 요리에 대한 연애편지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 처음 칼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해군 이등병 시절, 주방에 일손이 달려 칼을 처음 잡았다. 예리한 칼날이 손등에서 1mm 간격을 두고 위 아래를 오고갔다. 초짜 북재비가 북을 치듯 엉성한 리듬에 비뚤비뚤한 간격으로 도마를 내리치던 시간은 잠깐이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면, 그제서야 칼은 주인을 만난 듯 시원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전진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이 악기가 된 것처럼 즐거운 소리가 들렸다.





그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빨리 다음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아침부터 나는 칼 주변을 서성거렸다. 주방의 모든 일에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다보면 칼은 내 차지였다. 밤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주방 구석 작은 의자에 앉았다. 조리 하사가 보던 요리책을 펼쳤다. 지난 낮의 순간이 요리책에 담겨 있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칼로 썰고 몇 g(그램)의 조미료를 넣고 몇 분간 끓이고 볶는다는 문장 속에 잘 벼린 칼날과 뜨거운 불길이 녹아 있었다. 그이는 그 한장의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기록하고 다듬었을 것이다. 나는 홀로 그이가 보낸 시간에 조용히 감탄하고 감사했다.


비오는 소리에 맞춰 책장을 넘기길 몇 시간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문득 방 안이 환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새 비가 그쳐 해가 떠 있었다. 멜버른의 날씨다웠다. 나는 그제야 침대 밖으로 나와 주방으로 내려갔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재료를 꺼내 별 것 없는 파스타를 만들었다. 홀로 앉아 파스타를 깨작이며 창문 너머를 보면 새파랗게 푸른 하늘을 배경에 비현실적으로 풍성한 구름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나는 찬란하게 밝은 멜버른의 오후를 좋아했다. 휴일 오후 멜버른의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것은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밝음을 피해 어두운 주방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반쯤 미친 사람들이 칼과 냄비를 붙잡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 하루를 보내는 지옥 같은 그곳은 어떤 거짓말도 없는 순수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비가 오기를 바랐다. 빗소리를 들으며 거두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생각하고, 숫자와 건조한 지시어로 쓰인 요리책 보는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차분히 쌓아올린 숫자 더미, 그 속에 담긴 시간과 땀, 그것은 시끄러운 구호가 아닌 조용한 열정이었다.


회색빛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지금,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요리책을 보던 그 시절처럼 오전 적막한 가운데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그 숫자, 단어 하나 하나, 가득히 쌓인 A4 종이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실히 쌓아올린 하루하루가 무엇보다 진실된 것이 아닌가. 쉽게 이야기 하고 쉽게 강요하는 그 열정은 잔잔히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참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닭이야기
김 석
#김석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닭 띠의 해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영 편치가 않네요. 닭들의 모진 수난 때문이지요. 조류 인플루엔자라는 몹쓸 바이러스에 수많은 닭이 차디찬 땅속에 묻혔습니다. 나란히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닭에게 정말 큰 빚을 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참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아왔는데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닭은 우리 인간에게 퍽 중요한 식량 공급원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닭은 대단히 신성하고 상서로운 존재였어요.



서쪽에서 올려다본 경복궁 근정전 계단. 앞쪽 월대 기둥머리 위에 닭 한 쌍이 앉아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은 돌로 쌓은 두 단의 월대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대개 관람객들은 근정전 건물에만 눈길을 주게 마련인데, 실은 월대를 찬찬히 둘러보는 맛이 정말 각별하거든요. 위아래 월대 곳곳을 지키는 예쁜 돌조각들 때문이랍니다. 사신상과 십이지신상들이지요. 이 가운데 근정전 서쪽 계단의 아래쪽 월대 기둥 위에 닭 한 쌍이 다소곳이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임금이 앉았던 자리에서 보면 왼쪽이 수탉, 오른쪽이 암탉입니다.





닭이 울면 귀한 존재가 태어났다!


닭이 궁궐 계단을 지키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닭은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이지요. 방향으로는 서쪽, 시간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로는 음력 8월을 지키는 방위의 신이자 시간의 신입니다. 닭이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 역사적 유래는 아주 깁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듯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지요. 게다가 혁거세 왕의 왕후가 탄생한 과정은 더 흥미롭습니다.


“그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여자아이의 얼굴과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 부리와 같았다.”


“처음에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으므로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脫解王) 때 김알지(金閼智)를 얻자,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국호를 고쳐 계림이라 했다고 한다.”


신라 김 씨의 시조로 여겨지는 김알지의 탄생설화에도 닭이 등장합니다.


“하늘에서 땅까지 자줏빛 구름이 드리워지고 구름 속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황금 상자가 걸려 있었다. 상자 안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중략) 왕이 숲으로 가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바로 일어났는데, 혁거세의 고사와 같았기 때문에 알지(閼智)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속 <조속필금궤도>, 비단에 채색, 105.5×56.0cm, 163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숲 속에서 닭이 울어서 나라 이름을 고쳤다 했을 정도로 우리 옛 시조 설화에서 닭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과 건국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이 김알지 설화를 그림으로 남긴 이가 있었지요. 조선 후기의 사대부 화가인 창강 조속(趙涑, 1595∼1668)이 그린 <금궤도>란 그림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커다란 나무에 금궤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목을 빼 울고 있습니다.



(좌) 고구려 무용총 천장 그림 / (우) 경복궁 근정전 주작상



닭을 신성시하고 숭배했던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 오면 구체적인 유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고구려 고분 무용총 천장에는 긴 꼬리를 가진 닭이 그려져 있습니다. 닭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주작입니다. 닭의 모습을 본떠서 그려냈기 때문이겠지요. 아시다시피 주작은 남쪽을 지키는 동물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을 정면에서, 다시 말해 남쪽에서 바라보면 위쪽 월대 기둥머리에 닭의 모습을 한 돌조각이 놓여 있어요. 닭으로 여기기 쉽지만 주작입니다.



(좌) <계형토기>, 백제시대, 높이 19.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닭>, 통일신라시대, 전(傳) 민애왕릉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백제의 유물로는 닭 모양 토기가 남아 있어요. 생김새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질그릇 특유의 소박한 멋이 참 아름답지요. 섣부른 감은 있지만 닭의 이미지가 생활 속 물건에 반영된 가장 오래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른쪽에 있는 유물은 신라의 44대 왕인 민애왕의 것으로 전해지는 무덤에서 출토된 겁니다. 1980년대 발굴조사 당시 무덤 안에서 십이지상 가운데 쥐ㆍ돼지ㆍ소ㆍ닭 4개만 발견됐다고 해요. 높이 10cm로 아담한 이 조각들은 무덤의 바깥쪽을 보며 서 있었다고 합니다.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던 거지요.



<김유신묘 십이지 유상 탁본>, 통일신라, 가로 71×세로 159,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무덤까지 함께하는 동반자! 닭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에도 십이지신상 가운데 닭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그 탁본 중 하나가 단국대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닭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두 손에는 각각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지요. 무덤을 지켜야 하니까요. 박물관 유물 해설에 따르면 김유신묘의 십이지상은 현존하는 십이지상 가운데 예술적인 면이나 규모 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힌다고 해요.



조선시대 닭 그림의 대가 변상벽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에 닭이 등장합니다. 조선의 닭 그림 하면 단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요. 그 주인공은 바로 조선 후기의 화원화가 변상벽(卞相壁, ?~?)입니다. 두 차례나 영조의 초상화를 그렸을 정도로 그림 솜씨로는 당대 최고였던 변상벽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바로 고양이와 닭 그림입니다. 얼마나 귀신같이 잘 그렸으면 변 고양이(卞古羊), 변 닭(卞鷄)이란 별명으로 불렸을까요.



변상벽, <모계영자도>, 비단에 수묵담채, 100.9×50.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설적인 닭 그림이라고 불러도 좋은 변상벽의 작품은 대표적으로 두 점이 거론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그림이 바로 위에 보시는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에요. 어미닭의 부리를 자세히 보면 벌레를 물고 있지요. 귀엽고 앙증맞은 새끼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줄 참입니다. 어미와 새끼들이 다정하게 어울린 모습에서 살뜰한 모정(母情)과 따스한 가족애(家族愛)가 느껴져 마음이 다 푸근해지네요.


그래서 이 그림은 우리 옛 그림을 소개하는 여러 미술 책에 꽤 자주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작고한 미술사학자 오주석 선생의 글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 감동이 어찌나 컸던지 각기 다른 자신의 책에 두 번씩이나 이 작품에 대한 깊고도 진한 애정을 토로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 강연에서 절대 빼놓지 않았던 그림으로 바로 이 <모계영자도>를 꼽으면서 이런 상찬의 말을 남겼지요.


“세상에 원, 외국 박물관에서도 여기저기서 닭 그림을 많이 보시겠지만 이렇게 정답고 살가운 그림은 다시없어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선한 작품을 그리고, 또 그것이 좋아서 벽에 걸어 두고 흐뭇해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얼마나 순박하고 착한 것이었는지 절로 느껴집니다.”



변상벽, <자웅장추>, 종이에 채색, 30.0×46.0cm, 간송미술관 소장



여기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닭 그림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에 잘 생긴 수탉과 암탉 한 쌍이 있고, 왼쪽으로는 암탉 주위로 병아리들이 종종 모여 있군요. 닭 가족의 평화롭고 단란한 한때를 그렸습니다. 소재도, 구도도 평범하지요. 하지만 닭과 병아리를 묘사한 솜씨만큼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랍거든요. 아주 가는 붓으로 닭의 깃털을 한 올 한 올 그어냈을 화가의 집착에 가까운 육체노동이 빚은 경탄스러운 극사실의 세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초상화로 다져진 숙련된 기량이 닭을 그리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니, 가히 닭의 초상이라 할만하다.”라고 썼습니다. 절묘한 그림에 걸맞은 절묘한 표현입니다.


백인산 선생의 책 <간송미술 36 회화>를 보면 조선 후기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이 변상벽의 그림을 품평한 흥미로운 글이 소개돼 있습니다. 당시에 변상벽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이보다 더 잘 알려주는 글은 없지 싶어요.


“변상벽이 변 고양이로 불리는 것은 고양이를 잘 그린다고 사방에 이름이 나서이다. 이젠 또 닭과 병아리를 그려내니, 마리 마리가 털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중략) 형형색색 세밀하여 실물과 똑같고, 도도한 기상 또한 막을 수 없다. 듣자 하니 이 그림을 막 그렸을 때, 수탉이 잘못 알고 울어 댔다 한다.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도 쥐들이 겁을 먹었으리라. 기예의 지극함이 여기까지 이르니, 만지고 또 만져도 싫지가 않다. 되지 못한 화가들은 산수화를 그린다며 이리저리 휘두르니 거칠기만 할 뿐이다.”


예로부터 닭은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 했지요. 머리에 벼슬을 이고 있는 것은 벼슬자리, 즉 입신출세를 상징한다 해서 문(文), 발에 달린 발톱은 무기로 쓰이니 무(武), 적 앞에서 물러섬이 없이 싸운다 하여 용(勇), 먹이가 생기면 서로 알려주고 먹여주는 것은 인(仁), 때를 놓치지 않고 정시에 꼬끼오 하며 정확하게 제 할 일을 한다 해서 신(信)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닭을 사랑했고, 그림으로도 그렸던 겁니다.



정선, <등롱웅계>,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의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닭


조선 최고의 화가들도 한두 점씩은 닭 그림을 남겼지요. 진경산수의 대가로 추앙받는 겸재 정선의 그림 가운데 <등롱웅계(燈籠雄鷄)>란 작품이 있습니다. ‘꽈리와 수탉’이란 뜻입니다. 겸재 하면 워낙에 산수화 걸작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낯설게 보일 정도인데요. 이 그림에서 우리는 가장 기세등등하고 호전적인 장닭의 위용을 보게 됩니다. 자세를 한껏 낮춰 당장이라도 돌격 앞으로 할 것만 같은 자세에서 생생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더욱이 흰 벼슬은 바로 토종닭의 징표이기도 하니, 참 장하고 자랑스러운 토종닭 그림입니다.



김득신, <야묘도추>, 종이에 담채, 22.4×27.0cm, 간송미술관 소장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이니 따로 소개해 드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린 이는 조선 후기의 화원화가인 긍재 김득신(金得臣, 1754~1822)입니다. 마치 움직이는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보듯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며 동물들의 자세, 표정 하나하나에 사실감이 넘칩니다. 선배 김홍도와 후배 신윤복, 두 대가 사이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김득신이었다지만, 이 그림만큼은 화가의 유명세와 관계없이 걸작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눈길은 닭에게 가닿습니다. 새끼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따라가보려고 홰를 치는 어미닭의 자세에서 자식을 잃을지 모르는 어미의 절박함이 뚝뚝 묻어나지요. 어미닭 주위로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느라 여념이 없는 병아리들의 모습은 또 어떻고요. 병아리 절도 사건이란 심각한 내용을 다뤘지만,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떠오르는 미소까지야 어쩌겠어요. 기분 좋은 해학이 깃든 그림입니다.



신윤복, <닭>, 비단에 채색, 23×23.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혜원 신윤복의 것으로 전하는 닭 그림도 한 점 있습니다. 두 마리 모두 발 뒤에 뾰족한 칼날을 달고 있지요. 싸움닭입니다. 자세를 보면 한 판 붙기 전에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에요. 그런데 자세를 보아하니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닭의 다섯 가지 덕 가운데 무(武)와 용(勇)을 드러낸 이 그림의 오른쪽 위에 있는 글귀는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였던 한유의 글을 인용한 겁니다.


高行若矜豪 (고행약긍호) 고상한 행동은 거만하고 호방한 듯

側睨如伺殆 (측예여사태) 곁눈질로 허점을 살피네.



닭에게서 각별한 깨달음을 얻다


그런 닭이 어떤 선비에게는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자신의 문집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닭에 관한 글을 여럿 남겼는데요. 병아리(鷄雛)란 글을 보면 어쩜 그렇게 병아리의 생태를 면밀하게 관찰해 놓았는지요. 배고픔과 추위에 곧잘 죽는 병아리를 먹여 살리는 방법이라든가, 먹이 경쟁에서 밀려난 병아리를 돌보는 요령, 심지어 병아리 똥구멍이 막혔을 때 뚫어주는 방법까지 적어놓았으니 말입니다. 학문의 실질적 쓸모에 관심을 기울였던 실학자답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 단락을 함께 읽어볼까요.


“백성들이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는 모습 또한 잘 살고 귀한 지위에 있는 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백성들이 온갖 고통을 겪고 또 배도 곯게 되니 어찌 떠돌아다니다가 도랑과 구렁에 엎어져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승업, <계도(鷄圖)>, 19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140×43.5cm, 개인 소장



그런가 하면 축계지편당(祝鷄知偏黨)이란 제목의 글도 있습니다. ‘닭을 키워보면 당파에 치우치는 걸 알 수 있다.’는 뜻인데요. 서로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 싸우는 닭들의 생태에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를 탐하는 인간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본 겁니다. 요즘도 닭의 특정한 신체 부위를 들어 상대를 비꼬고 폄하하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지요. 닭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겠습니다. 심지어 그런 닭만도 못한 사람에 대한 비유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말입니다.


“사람에겐 닭보다 못한 것도 있다. 닭들이 먹을 것을 다툴 때는 날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싸우다가도 그 일만 끝나면 서로 다투던 일은 잊은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지낸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폭포의 물이 용솟음치듯 노여운 모습을 가라앉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반드시 상대를 죽여 없애 버리고자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결코 뉘우치지 않으니, 이야말로 차마 못할 일이다.”


번잡한 도시의 삶은 꼬끼오 우렁찬 닭 울음소리를 속절없이 앗아갔지요. 그래서 이제는 식탁 위 먹을거리로 제 한 몸 내준 닭이 우리에겐 더 친숙합니다. 뜻하지 않게 닭 값, 계란 값이 오르는 초유의 상황을 겪고 나니 아낌없이 주고 또 주는 닭의 존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닭의 해인 2017년에는 부디 여느 해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심전 안중식 <쌍계도>(1900년) 부분



※ 이 글은 아래 책과 글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흥식 엮음, 정종우 해설 <조선동물기>(서해문집, 2014)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컬처그라퍼, 2014)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솔, 2003)

오주석 <그림 속에 노닐다>(솔, 2008)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민음사, 2008)

천진기 ‘여명과 축귀의 계명성’ <정유년 닭띠 학술 토론회 자료집>(국립민속박물관, 2016)

탁현규 <고화정담>(디자인하우스, 2015)

<간송문화 :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전>(간송미술문화재단, 2014)

<간송문화 90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간송미술문화재단, 201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일류,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정동현
#정동현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트레일러 영상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힘찬 카덴차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언어의 하나이자,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본 낭만주의 사조에 충실하게 멜로디는 논리가 아니라 급변하는 충동에 따라 흐르고 템포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고저를 오고 간다. 그 흐름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스시 한 점이 접시 위에 올라간다. 푸르게 벼린 칼날에 베인 생선의 단면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그 위에 바른 간장은 오래전 산수화의 담백한 음영처럼 은은히 빛난다. 그 스시를 바라보는 노인은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2011)’의 한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스시를 내놓는 리듬감이 마치 협주곡의 카덴차만큼이나 다이나믹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스시가 단지 밥 위에 생선을 올린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의도와 철학이 담긴 어떤 예술에 가깝다는 조용한 웅변이기도 하다. 엄격한 아버지였다는 지로는 그 음악을 배경으로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본인이 스시를 만들어온 과거를 설명한다.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서 내놓는 것도 내가 처음 한 것이었지. 그러고 나니 다른 스시집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고급 스시집에 가면 손님이 스시에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사가 직접 스시 위에 간장을 발라준다. 손님이 스시를 간장에 찍을 때 밥이 떨어져 나가거나 간이 강하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손님이 요리사가 의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지금은 매우 손쉬운 발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한다. 이런 끝없는 도전과 연구는 긴자 지하철역 지하,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10석가량의 작은 스시집이 미쉐린 3 스타를 받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미쉐린 3 스타란 그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그 나라로 여행을 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제 아흔 살이 넘은 지로의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3개월 이란 수치도 대략적인 것이고 일본의 인맥, 일류 호텔의 컨시어지 등을 통하지 않고서는 쉽게 예약을 할 수가 없다. 힘들게 예약을 하고서도 식사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는다. 전채요리 등이 아예 없고 스시가 10~12점 나오는 게 전부다. 식대는 모두 그날그날 시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만엔, 원화로 대략 3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사케 등을 시킨다면 최소 100만 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스키야바시 지로에 가기 위해 예약 문의가 쇄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초입에 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맛이란 무엇일까? 맛은 설명하기 어려워. 나는 꿈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생각들이 터져 나와서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꿈에서 나는 스시의 환영을 보지.”





나도 요리하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15시간 넘게 주방에 서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집에 들어오면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방의 열기가 몸에 남아 채 식지 않고 곤두선 신경은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한 실수, 그 덕에 들어야 했던 수모와 욕설, 어찌할 수 없는 자괴감, 음식이 나가는 빠른 템포, 뜨거운 팬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쓰던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마치 몸에 새겨진 듯했다. 시간이 흘러 늦은 밤, 잠이 들면 나는 또 주방에 서 있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보였다. 나를 보고 비웃는 동료가 보였다. 그러면 꿈에서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시 눈을 뜨면 또 주방에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충혈된 눈을 한 동료들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건조하게 인사를 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이다. 악순환이다. 지친 정신에 몸은 나약해진다. 나의 몸은 아프기를 고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조금 쉴 수 있으려니, 나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픈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몸이 아팠다. 오래 서 있으니 자연히 허리가 아팠고 신경을 계속 쓰니 장이 뒤를 따랐다. 일 년 에 한 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갈라 디너 날, 온몸에서 미열이 났다.


준비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 갈라 디너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는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짬뽕을 만들듯 볶아내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수를 우리는 것부터 시작, 재료에 따라 준비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코스 중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서 투입되는 노동력은 어마어마하다. 접시 하나는 요리 하나가 아니다. 주요리에 부요리 몇 개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요리사는 절대적으로 쉴 수가 없다. 그 중 하나였던 나는 몸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나는 불쌍한 요리사다. 나는 혹사당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모두 나를 불쌍히 여겨라. 아침부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나를 보고 몇몇이 걱정의 말을 던졌다. 나는 괜찮다고 답을 하면서도 아프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주방에 서 있었다. 이윽고 대망의 디너가 시작되기 30분 전이 됐다. 주방장이었던 애쉬가 말을 걸었다.



“너 어디 아프지?”

“어.”

“생애 최고의 날에 아프단 말이야? 말도 안 돼.”



투명한 파란 눈에 꼬불거리는 금발이었던 애쉬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에게 아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고였다. 무엇보다 일주일을 준비해 손님들을 대접하는 갈라 디너 날, 아프다는 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이 가진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모든 요리사가 달라붙어 준비한 이 날은 애쉬에게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처음에는 서러웠다. 나는 아픈 몸이었다. 그러니 위로를 받아 마땅한데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는 애쉬가 미웠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미움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곧추세웠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애쉬의 구령에 따라 음식들은 접시 위에 올라갔다. 수십 가지가 되는 요리들이 모두 똑같은 맛과 모양을 가지고 손님 앞에 나갔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 순간순간은 느리게 느껴졌다. 불이 이글거리는 틈 사이로 손을 넣었다 뺄 수 있을 것만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풀어졌던 신경이 예민해지고 나의 몸은 잘 준비된 도구가 되었다. 얼굴에 흐른 땀이 말라 짠 소금이 되었을 때 모든 요리가 나갔다. 끝이었다. 애쉬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아프다고 했지? 빨리 집에 가. 수고했어.”

“아니야. 괜찮아. 이제 안 아파.”



나의 답에 그는 비웃음도 미소도 아닌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대청소가 시작됐다. 웃으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던 동료들은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주방 곳곳을 쓸고 닦았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 일터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 일은 누구나 하기 꺼린다. 주방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건물 공용 쓰레기장에 갖다 놓는 일도 그랬다. 같이 일하던 백인 요리사들은 그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늘 나나 다른 외국인 요리사가 그 일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었다. 건물 뒤편으로 나가 쓰레기통의 행적을 살폈을 때 나는 애쉬의 뒷모습을 봤다. 주방장인 애쉬는 쓰레기통을 밀며 뛰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일을 빨리 끝내려 뛰고 있었다.


일류와 일등의 차이는 간단하다. 일등은 이등이 필요하다. 이등을 밟고 올라가야 일등이 된다. 남과 비교하고 우열을 가린다. 비교할 수 있는 남이 없으면 일등도 없다. 그러나 일류는 이류가 필요 없다. 일류에게는 남의 시선도 필요 없다. 그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간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그 길이 더럽고 힘들지라도 그곳을 간다. 그래서 그는 일등이란 순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일류(一流), 즉 사조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뒷모습이 아름답다. 깊은 밤, 어두운 지하에서도 빛나던 그의 등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은 나를 부끄러움으로 뜨겁게 달궈 오래 잠들 수 없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Home > SSG 스페셜/칼럼
신석교 작가의 사진 여행 2화
베네치아, 물의 도시로 떠나는 여행
신석교
#신석교


낡은 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골목을 가득 채운 옥빛 물결. 그 위에 초승달 같은 조각배가 떠 있습니다.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흐르는 검은 조각배는 벨벳 좌석과 금빛 조각물로 장식되어 화려함을 뽐냅니다. 이 이국적 풍광의 사진 한 장은 보는 이의 로망이 됩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제방 위를 건넌 기차는 베네치아의 관문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합니다. 짐 꾸러미를 챙기거나 도착 기념사진 찍기에 분주한 관광객이 하나둘 광장을 빠져나갑니다. 그러자 인의 장막에 가려졌던 베네치아의 이국적 풍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바닷물,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곤돌라와 크고 작은 유람선의 행렬을 보며 드디어 베네치아에 도착했음을 실감합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은 배와 여행자의 두 다리뿐입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지도는 무용지물입니다. 결국,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끌리는 대로 걸음을 옮깁니다. 좁은 수로 위로 곤돌라 행렬이라도 지나갈 때면 가뜩이나 비좁은 골목길이 관광객의 사진 세례에 정체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수로를 미끄러지듯 떠가는 뱃사공의 노련함과 곤돌라의 우아한 모습이 마냥 신기할 뿐입니다.

베네치아의 골목골목을 연결하는 다리는 운하의 폭에 따라 길이도 높이도 다릅니다. 넓은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올라 조망하는 베네치아의 풍광은 사진에서 보았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역시 여행이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예상치 못했던 낯섦이 결합해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곤돌라, 수상 버스부터 택시, 자가용 보트, 경찰 순시선 그리고 짐을 가득 실은 화물 보트까지 온갖 배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대운하와 그 양편에 가득 자리 잡은 낡은 건물. 한눈에 담기는 베네치아의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무역선 가득한 중세 해양 도시의 환영인 듯합니다.

베네치아는 6세기경 이민족에게 쫓겨 육지에 발붙일 수 없게 된 피난민들이 바다 위의 작은 섬에 촘촘히 말뚝을 박고 건설한 곳입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해상무역시대를 맞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점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밀려왔고, 더 많은 말뚝을 박아 공간을 확장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렇게 400여 개의 다리로 120여 개의 섬을 이어 만들어졌습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베네치아는 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이자 지중해의 맹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큰 상업 도시로 한때는 세속에 찌든 인간들의 온상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그 아름다움 이면에는 생존을 위해 거친 파도와 싸우며 도시를 일구어낸 많은 사람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의지가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아이콘 곤돌라

복잡한 인파를 피해 인적 없는 골목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이따금 낡은 건물 외벽에 부딪히는 물결이 나지막이 찰랑거리며 정적을 깹니다. 허물어진 벽 틈으로 드러난 벽돌과 담벼락에 남아 있는 물 얼룩은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바닷물에 잠기기를 반복했던 세월의 흔적입니다. 물길에 길이 막혀 발길 돌리기를 여러 번. 발 닿는 대로 길을 옮기는 여행은 수상 쪽마루에 누워 깔깔대며 수다를 떨거나 기념사진을 찍으며 느릿한 시간을 즐기는 소녀들을 만나는 우연한 즐거움도 줍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피부에 스미는 베네치아의 오후는 나른한 안식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이따금 소리 없이 나타나 골목 모퉁이를 돌아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곤돌라. 그 위에 몸을 실은 여행객들은 물길 따라 쉬엄쉬엄 흘러가면서 역사를 읽고 추억을 만들고 사랑을 속삭입니다.

곤돌라는 가슴 아픈 베네치아 역사의 산물입니다. 힘이 없던 그 옛날 외적들이 침입해 처녀들을 납치해가는 일이 잦아지자 베네치아 청년들은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약탈당한 여인들을 구출해 오기 위해 소리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 날렵한 작은 배가 지금의 곤돌라입니다.

낮의 베네치아가 아름다운 자태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면 밤의 베네치아는 아름다운 선율로 귀를 자극합니다. 상점들이 문들 닫고 도시에 어둠이 깃들 무렵, 운하 가장자리에 자리한 집집에 켜진 등불이 수면 위로 은은하게 반사됩니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노를 젓는 뱃사공의 아리아와 아코디언 선율은 골목골목 메아리치며 잔잔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베네치아 가면

베네치아의 또 다른 상징은 ‘베네치아 가면’입니다. 기계로 찍어낸 값싼 가면을 판매하는 노점도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장인들의 꼼꼼한 수작업으로 만든 가면을 전시한 상점 앞을 지날 때면 절로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다양한 재질, 디자인, 색상의 가면들이 각기 다른 개성과 분위기로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가면은 13세기 초반 십자군 전쟁 후 포로로 끌려온 이슬람 여인의 부르카*에서 유래했습니다. 전쟁이란 정말 많은 것을 파괴하면서도 각기 다른 문화를 뒤섞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르카(Burqa)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의복. 몸 전체를 가리는 망토형의 겉옷으로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눈 부위는 얇은 천이나 망사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

그때 그 시절, 매년 1월 말에서 2월에 시작해 사순절에 끝나는 축제에 시민들이 저마다 개성 넘치는 가면과 의상을 착용한 것이 베네치아 가면 축제의 시작입니다. 축제 때면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춘 시민들에 의해 도시는 자유와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가면은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도구이자 반대로 억눌린 자아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도구, 페르소나였던 것입니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가면에 가려진 또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면은 어떤 것일까?’ 라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면을 살펴가며 걷는 일도 베네치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리알토 다리를 건너서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와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의 모든 길을 연결하는 랜드마크입니다.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리알토 다리는 오래전부터 베네치아 상권의 중심지이자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입니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탁 트인 베네치아 전경을 감상한 후 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은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여행자들이라면 예외 없이 찾는 이곳은 다른 유럽 대도시의 전형적 광장과 같은 구조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넓은 공간입니다. 거대한 돔과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산 마르코 대성당, 연분홍 대리석에 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두칼레 궁전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내는 회랑이 광장을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당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날개 달린 황금빛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입니다. ‘베니스 영화제’로 우리에게 친숙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 베네치아의 휴양지인 리도섬이고 그 최우수상의 명칭이 황금사자상인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옛날 베네치아공화국의 위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두칼레 궁전은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이 건물은 오랫동안 도시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총독의 주거지이자 공화국 청사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궁전의 한 귀퉁이를 연결한 탄식의 다리입니다. 그 옛날 궁전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향하던 죄수들이 세상과 단절되는 절망감에 통곡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세기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사교계의 슈퍼스타 카사노바 역시 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즐비한 광장에는 괴테, 토마스 만, 바이런, 루소 등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플로리안’ 이 1720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광장에 늘어놓은 야외 테이블 사이로 하얀 양복에 까만 나비넥타이를 정갈하게 멘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 극찬했던 광장 카페에서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유럽 귀족이 된 듯 호사를 누려봅니다.

베네치아의 부속섬,
유리공예 전시장 무라노 섬과 무지갯빛 색의 향연 부라노 섬

본섬도 좋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수상 버스를 이용해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매력적인 섬들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산 마르코 광장을 넘어 넓은 바다로 나가면 물 위에 불쑥불쑥 솟은 말뚝이 널려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솟은 듯 보이지만 인근 섬으로 연결되는 베네치아 수상 버스의 뱃길입니다.

이른 아침 수상버스를 타고 무라노 섬에 내려 느긋하게 산책을 시작합니다. 고요한 공원에 선 독특한 가로등과 다양한 유리 조각품이 눈길을 끕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공방 진열장에는 독특한 유리 공예품들이 아침 햇살에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유리공예 전시장에서는 전통 기법으로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장인은 빨갛게 달아오른 유리를 볼이 터져라 풍선처럼 부풀리고 다듬어서 말, 꽃병 등을 순식간에 만들어냅니다. 마치 노련한 마술사의 쇼를 보는 듯합니다.

13세기까지만 해도 본섬에서 번창했던 베네치아 유리 공예품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귀족층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유리공예품을 탐낸 유럽 각국에서 베네치아의 기술을 빼돌리려 하자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해 기술자들을 무라노 섬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무라노 섬이 오늘날의 유리공예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본섬에서 40분. 물길을 달려 도착한 부라노 섬은 베네치아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부속 섬입니다. 이 작은 섬마을의 매력 포인트는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색채입니다.

수상 버스에서 먼발치에 보이는 섬의 모습은 바다 위에 뜬 무지개처럼 곱고 화려합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수로 양편으로 형형색색의 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물 위에 비친 카페와 공방의 알록달록한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오밀조밀 들어선 주택 창가의 화분이 생기를 더해줍니다. 골목 곳곳에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너울너울 춤추고 소꿉놀이하는 아이들과 레이스를 뜨는 아낙들의 평화로움이 어우러진 곳. 부라노 섬은 지상낙원을 꿈꾸게 합니다.

현란한 색채와 평화로움에 매료되어 연신 셔터를 누르다 보니 대용량 메모리 카드의 용량이 금세 채워집니다. 부라노는 그야말로 사진을 위한 아름다운 섬입니다. 아름다운 건물의 채색은 그 옛날 고기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으슥한 밤이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 자기 집을 쉽게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빛바랜 색을 바꿀 땐 구역마다 지정된 몇 가지 색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게 되어있었습니다. 덕분에 화려한 원색의 건물들이 튀는 법 없이 하나로 어우러져 부라노 특유의 색채 미학이 되었습니다.

부속섬 여행을 마치고 느지막이 도착한 산 마르코 광장 옆 수상 버스 선착장. 파도가 넘실대는 탁 트인 바다 건너편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과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석양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선착장 풍경은 베네치아 여행의 백미입니다. 영업을 마친 선착장 곤돌라에 짙은 푸른 기가 감돌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여행자의 낭만에 맞춰 고달픈 하루를 보낸 뱃사공, 그의 애환을 실은 곤돌라는 출렁이는 물결에 아리아 선율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아련하게 사라집니다. 그렇게 베네치아 여행도 아쉬운 막을 내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